대졸자도노동계급인가
《인볼루션》에는전공과경력이서로다른여덟명의중국청년이등장한다.금융학을전공한대학생은채권추심업체에서하루700통의전화를걸며실적압박과벌금에시달린다.소도시학원강사에서제약회사인턴으로옮긴청년은낮은임금과벌금제도,성희롱과유해물질에노출된일터를경험한다.언론인을꿈꾼청년은스트리밍플랫폼과지역방송국,인터넷기업,신문사를돌며무급인턴생활과성차별적채용을견딘다.자동차부품제조업체에서인턴으로일한청년은정규직전환에실패한뒤미취업상태로돌아가‘탕핑’을선택한다.
국영출판사인턴을거쳐사립대강사가된청년은대학원학위를갖고도낮은임금과불안정한고용에서벗어나지못한다.또다른청년은직업학교와스타트업인턴,유치원강사,마사지사를거쳐소프트웨어엔지니어가되기까지생계를따라직업을거듭바꾼다.상장자동차회사에서‘996근무제’(오전9시부터오후9시까지6일간근무하는형태)를견디다외국계기업대리점으로옮긴청년은돈과삶의여유사이에서갈등한다.대학원까지졸업한청년은테슬라인턴과국내자동차회사사원을거친뒤다시미취업자가되어,필요할때충전해쓰고수명이다하면버려지는청년노동자를‘일회용배터리’에빗댄다.
이들은전공도,학력도,거쳐온직장도서로다르지만,공통점을갖고있다.공부를하지않은것도,취업준비를게을리한것도아니라는점이다.이들은부모세대와사회가요구한경로를충실히밟았고,자격증과인턴경력을쌓았으며,때로는눈높이를낮추라는요구에도응했다.그러나그끝에마주한것은장시간노동과저임금,무급인턴십,실적을채우지못하면벌금을물리는직장,성차별과유해한노동환경,손쉬운해고와반복되는실업이었다.
고학력청년들이기대했던사무직중산층의문은갈수록좁아지고,이들은저임금·고강도·불안정노동으로밀려났다.문제는육체노동이나서비스노동의가치가낮다는데있지않다.학위가계층상승과안정된삶을보장한다는약속이깨지고,고학력화이트칼라역시해고와과로,저임금에서자유롭지않다는데있다.이책이‘대졸자도노동계급인가’라고묻는이유다.자신의노동력을팔아야만생존할수있고,해고와과로앞에서아무런통제권도갖지못한다면화이트칼라를노동자와노동운동의바깥에둘수있는가.《인볼루션》은쉽게결론을내리는대신이질문을독자앞에남겨둔다.
게을러서눕는것일까
청년실업담론에선흔히청년과일자리사이의‘불일치’를부각한다.기업이원하는능력을갖추고,유망산업을선택하며,눈높이를낮추면취업할수있다고진단한다.이런분석은결국실패의책임을청년개인에게돌리기쉽다.
《인볼루션》은질문의방향을바꾼다.청년이일자리에맞지않는것이아니라,청년에게제공되는일자리가인간다운삶에맞지않는것은아니냐고.대학진학자는급격히늘어났지만,안정적인일자리는그만큼생기지않았다.기업은혁신과성장을외치면서도청년에게장시간저임금노동과손쉬운해고를요구했다.교육은계속경쟁하라고가르쳤지만,경쟁을통과한뒤의삶은책임지지않았다.
물론탕핑은아직조직된사회운동이아니다.책속청년들이찾는출구도제각각이다.누군가는일을그만두고부모집으로돌아가고,누군가는공무원시험에매달리며,또다른누군가는외국계기업이나해외이주에서탈출구를찾는다.탕핑역시이들이선택한개인생존법가운데하나에가깝다.그러나“더열심히하지않은네탓”이라는사회의말을거부한다는점에서탕핑은분명히정치적이다.청년은게을러서눕는것이아니다.계속달려도삶이나아지지않는다는사실을알아버렸기때문에눕는다.
혐오말고‘연결’
노동사회학자일라이프리드먼은《인볼루션》을중국이라는한나라의보고서로만읽어서는안된다고강조한다.고학력청년이불안정노동과계층하락을경험하는현상은한국과대만,미국과유럽등세계곳곳에서반복되고있기때문이다.감당하기어려운집값,불안정한고용,결혼과출산의유예나포기,우울과미래에대한공포역시국경을넘는다.
인볼루션과탕핑은중국특유의기이한풍경이아니라세계자본주의가낳은공통의증상아닐까.따라서필요한것은어느나라청년이더불행한지를따지는경쟁이나이웃나라청년을향한혐오가아니다.비슷한조건에놓인청년노동자들이서로의고통을알아보고연결되는일이다.
어떤출판사도내려고하지않은
문제작!
공라오컬렉티브는중국대륙과대만·홍콩등여러지역에서활동하는노동운동가들이2022년만든단체다.중국정부의검열과통제에도,좀체드러나지않는중국노동자의현실을기록하고알리는데힘을쏟고있다.공라오컬렉티브의첫책인《인볼루션》은2024년말자비로출판됐다.중국어느출판사도내려고하지않았기때문이다.중국서점에서는판매도되지못했다.해외에서도제한된경로로만유통됐다.
공라오컬렉티브는노동자들이자신의고통과분노를직접말할자리를마련했고,그결과물이《인볼루션》이다.당사자들의목소리를가공하지않고생생하게전한다는점이이책의가장큰미덕이다.이책은거창한이론으로청년을대신해설명하거나미리준비된결론에청년들삶을끼워맞추지않는다.청년들이어떤일을했는지,얼마나일하고얼마를받았는지,어떤것을부당하다고여겼는지,왜일을그만두었는지,왜탕핑을선택했는지를끝까지듣는다.전문가가해답을대신제시하게하기보다,아직명료한언어로정리되지않은청년들의망설임과모순까지그대로남겨둔다.그불완전한목소리들이청년들이마주한노동현실을적나라하게드러낸다.
정말일어나야할쪽은
누구인가
이책은취업을준비하는청년만을위한책이아니다.자녀에게공부만잘하면안정된삶을살수있다고말해온부모세대,청년에게취업과성과를강요하는대학관계자,사람을비용과생산성으로만계산하는기업경영자,청년실업을개인의눈높이문제로치부해온정책담당자가먼저읽어야한다.
무엇보다한국독자에게이책은낯선중국청년들의이야기가아니다.한국청년들의현실도이들과크게다르지않기때문이다.그래서이책은묻는다.청년들이차례로드러눕는사회에서,정말일어나야할쪽은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