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켜 있는 삶은

떨켜 있는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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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인은 사물을 거울이 비추어 내듯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리얼리즘적 자세를 취하지는 않는다. 모든 문학 전통 가운데 리얼리즘만큼 생명력이 강한 것은 없다. 사라졌는가 하면 어느덧 불사조처럼 잿더미를 헤치고 다시 부활한다. 어찌 보면 모든 예술은 어느 정도 리얼리즘의 ‘재현’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리얼리즘의 재현성 또한 배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자연이나 삶의 실재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 따라 종래의 시공간에 대한 전통적 사고는 버려진다. 시인은 작품 구성에 있어서 논리적 일관성이나 유기적 통일성을 배제한다. 대신 자신의 주관적 의식을 강조한다. 즉 자신만의 내부의식의 ‘위상과 특성’을 주시하며 이것들을 의도적으로 작품 안에 반영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외부 세계를 향해 들고 있는 거울을 향해 작가는 또 다른 자신만의 거울을 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김유

김유(본명_김영한)시인은경기파주에서태어나한양대경영대학원을졸업(보험경영학석사)하고중앙대예술대학원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수료했다.2014년『문예춘추』로등단했다.문예춘추문인협회회원,〈시인부락〉〈당신이꿈꾸는동안〉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시집으로『귀뚜라미망치』『시간의길』이있고,2019년경기문화재단문예진흥기금수혜와2021년문예춘추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떨켜있는삶

나의지문은언제완성될까-서시·12
수레국화·14
싹이아닌싹·16
바늘귀·18
시간으로만존재하는·20
언덕,그고비에서·22
그리움너머엔·24
그림자도언젠가는·27
우울한발라드·28
예인曳引·31
어린장醬꽃을어루만지며·32
떨켜있는삶·34
맞닿을수없는·36
무르익음을향해·38
서강西江에여울지는·40
??를탓하지않고·42
메타버스Metaverse로돌아보는·44
“??입니다”·46

2부엇갈린시선

찧다·50
틈새·53
게을러지고싶은,·54
완연해진·57
가시가?던게아니다·58
엇갈린시선·61
모닝콜의질감·62
맥문동·64
꽃눈·66
디바Diva·68
이파리반짝깨어나·70
사막의장미·72
굴레를벗고·74

3부헌책방에서

헌책방에서·76
양미리가많이나면·78
엎치락뒤치락·80
해봤어?·82
이젠지켜볼때·84
찬란한끝을위해·86
생뚱맞은,·88
도심의벌집·90
인생김장·92
물골·94
세상을바로보려면·96
다多문화국화·98

4부강으로간펭귄

강으로간펭귄·100
마스크인생·102
테두리만남은,·104
투구게의위기·106
??증후군시대·108
세대교체·111
몸부림치는말·112
믿기지않던말·114
비오톱Biotope·116
뚜께우물·118
숫눈·120
꿈꾸는호야·122

해설|호병탁_눈보라속,봄을품고있는삶의무늬·126

출판사 서평

김유작품을독해하는과정에서시인이견인한어휘들과그것들이이루어낸문장들이서로어떤상관성을갖게되는지,그유기적객관성에의문을가질만한것들이상당하다.그러나그연결고리를찾기위해시인의개연적설명을기대하며눈길을저절로다음연으로눈을옮길수밖에없을듯하다.그러니까독서과정에서파편처럼흩어져있던어휘와문장들이서로개연적상관관계로얽혀져있음을알게되었고,이런글쓰기스타일은실상시인의면밀한의도와기획안에서창출된것임을또한이해하게된다.이제표제시작품을보자.

부딪다웅크렸다
한마디씩허공으로낸길

새순에는
솜털같은바람에도
꼭보듬었다
가지가제법반듯해지면
맘껏풀어주며
여기까지달려왔다

환절마다
삶은표정을바꾸고

불쑥옹이가덧나면
그때마다잎을떨어내고
멈춰서야만했었다

짧아지는햇살에
마디마디굳은살로버티는
지난한길

아무리빛과온도
모진바람이흔들어대도
한결같은나이테가
너무장하다

나는아직도
겨울앞을주춤거리는데

눈보라속에서도
기꺼이봄을품고있는

떨켜있는
생살박이삶

내려놓고기다릴줄아는
삶의무늬가
너무부럽다
-「떨켜있는삶」전문

작품첫연에는“허공으로낸길”이등장한다.‘길’은일반적통념상사람이나짐승이한곳에서다른곳으로오고갈수있게된땅위에뻗은공간적선형線形을말한다.새나비행기가다니는‘허공의길’도있을수는있다.그러나그런허공의길도“부딪다웅크렸다/한마디씩”가는길은절대로없다.도대체어떤길을말하는것인가.눈길은절로다음연으로향하게된다.
둘째연에서화자는그길이“새순에는/솜털같은바람에도”꼭보듬고,“가지가제법반듯해지면/맘껏풀어주며”달려온길이라고말한다.‘새순’과‘가지’라는새로운어휘의등장으로우리는확실하지는않지만,이길이사람이나짐승이오고가는본래의구상적실체로서‘길’이아니라식물인‘나무’의성장과정을의미하는비유적길이아닌가짐작하게된다.시선은다시다음연으로향한다.
그렇다.“옹이가덧나면/그때마다잎을떨어내고”멈춰서고,“짧아지는햇살에/마디마디굳은살로”버티는삶을살아야했다면그것은확실히‘나무가걸어온길’이라할수있다.게다가‘옹이’,‘잎’,‘마디’와같은어휘와함께다음연에나타나는‘나이테’라는말은결정적으로‘허공의길’이나무를의미하고있음을증거하고있다.
그런데화자는“모진바람이흔들어대도/한결같은나이테가/너무장하다”고나무를상찬한다.나무줄기를가로로자른면에나타나는바퀴모양의나이테는우리가나이를먹는것처럼해마다하나씩늘어난다.그렇다면매년나이테를늘리며나무가걸어온“지난한길”은나무가살아왔던‘삶’자체를의미한다.맞다.‘길’은또한삶의여정을함의하고있는것이아닌가.이제허공으로낸‘길’은바로나무의‘생’을말하고있음이확실하다.
그삶이구체적으로어떠했기에“너무장하다”고상찬하는것인가.작품마지막부분에서는아예“너무부럽다”고‘너무’라는부사까지연발하며자신도그렇게되고싶은마음을표출한다.화자는마침내그정확한이유를발화한다.그것은바로나무가“떨켜있는/생살박이삶”을살고있기때문이다.
우리는드디어시제이기도한「떨켜있는삶」을대하게된다.
‘떨켜’는낙엽이질때잎자루와가지가붙은곳에생기는특수한세포층을말하는것으로이부분은굳어져서수분이통하지못한다.이는곧죽음을의미한다.사실푸르던잎이낙엽으로떨어질때는그잎은생을다한것이다.그러나이부분은그자리를보호하는‘분리층’의역할을한다.그래서나무는“눈보라속에서도/기꺼이봄을품고”있을수있는것이아닌가.화자는“내려놓고기다릴줄아는”삶을사는나무가부럽다며작품의문을닫는다.
우리는작품의독서를수행하며나무가걸어온길,즉‘떨켜있는삶’에대한시인의치열한탐색을인지하게된다.어찌보면시인은이를통해‘삶의근원적가치’를‘추구하고있는것같다.그럼에도작품에는철학적사유에따른어떠한관념언어도보이지않는다.또한,교훈이나가르침을제시하고자하는직접적인발화도없다.이는시인의미덕이라할수있다.만약이런것들이명시적으로드러나면드러날수록작품의호소력은약해지고문학성도떨어지게될것이다.시인은’떨켜있는삶‘에대한자연스러운’공감의교환‘으로이런사항을암시적으로표출함으로써오히려삶에대한사유를설득력있게증폭시키고있다.이와관련하여특별히주목할점은독자들은자신이교훈이나가르침을받는직접적대상이되는것에대해본능적거부감을느낀다는점이다.직접적·명시적표현에대한유보감은인간본연의주체성과도연관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