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다 (허형만 시집)

만났다 (허형만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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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동안 허형만 시인의 시는 ‘생명에의 침묵’을 언어에 집중함으로 생성되는 신성한 사유 체계를 보여주었다. 이번 시집 『만났다』 역시 순도 높은 언어가 무르익은 결정체로 “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축복”(「누리장나무 열매」)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저마다 매혹적인 영혼의 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만이 추구해온 언어를 통해 기존의 언어를 파기시켰다. 이러한 시작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나무”(「얼마 남지 않은 시간」)로부터 “손톱까지 선명한/ 나무의 저 고운 손가락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라는 근원적 탐구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언어의 덫과 미로에 갇힌 사물의 언어를 그의 시를 통해 발견하게 한다. 이로써 허형만이 가지는 사물에 대한 시 의식은 기표의 표면에서는 미완이며 심층에서만이 해소될 수 있는 기의를 상기시켜 준다.
이같이 그의 시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음성으로 보여주는 ‘심층적 방식’을 통해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여 왔다. 이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말로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게 하는 데 ‘순간의 침묵’이 환원된 것. 이 침묵은 보여주는 간접적인 전달 방안으로 언어의 한계와 이성의 한계를 필연적으로 넘어서기 위함이다.
저자

허형만

허형만시인은1945년전남순천에서태어났다.1973년『월간문학』(시),1978년『아동문예』(동시)로등단했다.목포대학교국문과명예교수이며,시집으로『청명』『풀잎이하나님에게』『모기장을걷는다』『입맞추기』『이어둠속에쭈그려앉아』『供草』『진달래산천』『풀무치는무기가없다』『비잠시그친뒤』『영혼의눈』『첫차』『눈먼사랑』『그늘이라는말』『불타는얼음』『가벼운빗방울』『황홀』『四人詩集』『바람칼』『음성』등과시선집으로『새벽』『따뜻한그리움』『내몸이화살』『있으라하신자리에』,활판시선집『그늘』이있다.한국대표서정시100인선『뒷굽』그리고중국어시집『許炯万詩賞析』과일본어시집『耳な葬る』,수필집『오매달이뜨는구나』와평론집및연구서로『시와역사인식』『우리시와종교사상』『영랑김윤식연구』『문병란시연구』『오늘의젊은시인읽기』『박용철전집-시집주해』『시문학1-3호주해』『허형만교수의시창작을위한명상록』등이있다.
한국예술상,한국시인협회상,영랑시문학상,공초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1부얼마남지않은시간

마침내피워낸꽃처럼·12
투신投身·13
상실에대하여·14
누리장나무열매·15
작은몸짓·16
얼마남지않은시간·17
이은총의아침·18
박쥐·19
상했다는것·20
사냥·22
함부로,그러니함부로·23
까치소리·24
두마리의개·25
기적·26
해질녘·27
방문객·28
한생은또그렇게견디고·29
얼룩에대하여·30
유적·31
대국對局·32
한사나이·33
양성우시인·34
우리가원하는것·36
대면·37
입춘지난이른아침·38
유채꽃밭에서는모두가황홀하다·39
이제야알게되었습니다·40
나무를우러르며·41
봄날의젖내·42
백신맞은날·43
손·44

2부산까치

시간의무늬·46
시詩·47
산까치·48
한번도가보지못한길·49
시집을읽는다·50
독자를위한기도·51
새벽녘에·52
지금써라·53
시여,시여·54
이유·55
당신에게묻는다·56
나는오늘도시를쓴다·57
시의벼랑·58
전사戰士·60
내시의텃밭·61
탄생·62
나의시·63
나의언어·64
순간의침묵·65
눈맞춤·66

3부숲에서배운다

행복·68
숲에서배운다·69
비밀·70
상대성이론·71
첫눈·72
한겻의숲·74
숲에서꾸는꿈·75
오후네시쯤·76
숲길에서·77
숲의성채·78
숲에서바라보기·79
따뜻한숲·80
지금,이순간의숲·81
오늘도비오시는날·82
한겨를·83
나는신문을보지않네·84
나무의기억·85
나는숲에들어고요한데·86
숲길은안다·87
숲에가는이유·88
숲에서·89
침묵의숲·90
숲을사랑하는이유·91
위대한숲·92
만났다·93

해설|권성훈_마법의언어와허형만나무의기억술·94

출판사 서평

허형만시인은기존에있던것을지금생겨난것같이새롭게현현하는사유의전달방식을효과적으로보여준다.그것은홀로존재하는사물들의시적향기를축출하여언어적파장을주기위함이다.이는궁극적으로존재의고유한향기를언어로덧붙이는데있으며우리가아는기왕의인식을넘어서존재본연을겨냥한다.이로써사물을통해세계에대한해답을제시하는것이아니라일상성의세계를보편적인언어로,추상적인세계를명료한언어로서의가치를가지게한다.
무엇보다그에게집중되어있는세계관은다름을인식하는것도,차이를인정하는것도아니다.이것은이원론적인것이아니라일원론적인것에기인하는데처음과끝이구별되지않는동양적인사유체제에서비롯된다.“동양사상은다른것,곧실재하면서동시에실재하지않는것에대한혐오를저지르지않았다.서양은이것아니면저것인세계이지만,동양은이것과저것심지어는이것이저것인세계이다.”(옥타비오빠스,김현창역,『옥타비오빠스-시와산문』,민음사,1990,225쪽.)이를테면처음과마지막의구분이없고그것이연장선에서있을때마지막이처음이고처음이마지막이된다.처음에서마지막이나온다는해석은그의시에서마지막에서처음이연원하는것처럼편철되어있거나,처음과마지막은처음부터우열이없는하나의의미일뿐이다.
아래시편「만남」과「마침내피워낸꽃처럼」은이시집의‘마지막시’와‘첫시’다.이처럼내용으로보아‘만남’이있고,‘결실’이있어야하는데반대로결실을먼저만남을나중에배치하는것이다.이두편의시의배열처럼그의시는처음이끝이고,끝이처음으로서이것과저것이존재하지않으며이것과저것이구별되지않는다.말하자면실재하는모든것이처음이자끝이기때문에그의시작에서만나는존재적사유는「나무를우러르며」에서명확해진다.처음과끝은그자체가중요한것이아닌깊이와연결되어심연의중요성을일깨우는데“나무의저높은우듬지를우러르며/뿌리의깊이를생각한다./하늘을향해치솟는저결기는/결국땅속을얼마나깊이/파고드는가와직결되어있을터”와같다.마찬가지로그의시편에서마주하는사물들은길고짧고,크고작고,많고적고등‘단층적표피’에초점을맞추는것이아니라‘입체적심연’에가닿고있다.

숲길을거닐때마다
나를위해기도하는참나무
나를위해기도하는멧새
나를위해기도하는풀잎
나를위해기도하는그를만났다.

오늘은평생을나와함께걸었던
그의연약한뒷모습이안쓰러워
나는그를살포시껴안아주고는
십자가앞에꿇어앉은그를일으켜세워
나의식탁으로모시고
보림사큰스님이손수덖어보낸
우전차를그에게대접했다.
그는천천히차를마시며
낯설지않은듯나에게미소를보냈다.

너무도멀고너무도가까웠던
나와그는
참으로오랜시간의숲길에서
서로를향해걷고있음을알았다.
-「만났다」전문

그의많은시편들이사람에대한관심과이해로시작되고있지만우선적으로집중하는것은자신에대한성찰이다.여기서자신은자기(Self)와자아(ego)를대상으로하는데지금까지의자신의삶을‘나와그’를통해만나게한다.“너무도멀고너무도가까웠던”나로부터세계가열리는것이아니라“평생을나와함께걸었던”세계로부터내가열려있다는것,그러므로모든존재하는것들에대해“숲길을거닐때마다/나를위해기도하는참나무/나를위해기도하는멧새/나를위해기도하는풀잎/나를위해기도하는그를만났다”는것이다.이는세계에모든존재들이자신을위해기도하게함으로써자연스럽게감사함을깨닫게하는,상황적역설을보인다.또한‘십자가앞에꿇어앉은그를일으켜세워보림사큰스님이손수덖어보낸우전차를대접’하는등다원적이고초월적인종교관을함의하고있다.
허형만삶의태도를관통하는이시는이번시집의마지막에서앞에놓인시편들의전체하중을견디면서시인의세계관을페이소스하고있다.그에게시는한결같이마지막이면서처음이라는사실을“아침밥을먹고나서커피를마시며,이게마지막일걸,생각한다.허긴,아침밥을먹으며이게마지막밥이지아마,생각했었다.커피를마시고책상에앉아원고를손질하며,이게마지막작품일걸,하며끙끙”(「한생은또그렇게견디고」)거리는것과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