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소녀 (신남영 시집)

명왕성 소녀 (신남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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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인은 마침내 “때론 어설픈 말보다 한 컷의 눈이 불립문자를 이룬다 해도.”라는 마지막 발화로 작품을 마감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는 도의 깨달음을 문자나 말로써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의 불가의 말이다. 그렇다. ‘한 컷의 눈’, 즉 하나의 이미지로 조감하여 보는 풍광이 ‘어설픈 말’보다는 오히려 감각적으로 더 잘 전달될 수 있다.
시는 끝이 났다. 우리는 이제 시인의 깊은 사유를 통하여 그가 추구하는 시세계를 인지하게 된다. 점도 선도 면도 모두 형상의 일부다. 그러나 각자의 프레임이 따라 그 형상은 달리 보이고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소녀가 개구리를 보고 “저만의 시니피에”를 발화하는 것과도 같다. 시인은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하는” 자신의 시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이미지’, 즉 심상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의 경험은 우선적으로 오관을 통한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적 지각’이다. 그렇게 대상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도록 자극하는 말이 곧 ‘심상’이다. 이는 시적 심상의 가장 큰 부분인 ‘비유’로, 더 나아가 ‘상징’으로 전개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공중을 나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으로 이미지를 포착하여 “형상의 기호를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 호병탁(문학평론가)
저자

신남영

신남영시인은1962년전남해남에서태어나2013년『문학들』로등단하여시집으로『물위의현』이있다.

목차

1부

쇼팽을듣는밤·12
기호의기하학·13
무녀舞女,오디세이·14
폴타는여자·16
명왕성소녀·18
북치는소년·20
수련水蓮의수련修鍊·21
마른발목이보인다·22
검은허공을켜는-자클린뒤프레·24
클롱의힘으로·26
낙화,행운유수·28
늦가을저갈가마귀는·30

2부

미조낙조·34
물결의나락으로·35
삼생연三生戀·36
환생이있다면-꽃나무통신8·38
네무수한꽃잎의만다라에-꽃나무통신9·40
저녁의산책·41
몽유록처럼-꽃나무통신10·42
흰빛의환청-꽃나무통신11·44
마음의꽃잎이돋아난다·46
모과꽃이다진다해도-꽃나무통신13·48
살아생전에-꽃나무통신14·50
망부운望夫雲·52

3부

천무天舞·56
하늘의소리를엿듣다·58
남도의남당南堂·60
지난봄의도화빛을담다·61
산천초목·62
부용당에서·64
적벽가를듣다가·66
바람에달빛을담다·67
진양조·68
타령조로·70
현의노래·72
행서초行書抄·74
고절孤節·76

4부

고요한바다로·80
전선야곡戰線夜曲·82
어느봄날의동행·84
꽃잎,유서같은·86
눈꽃이피어나는-양동시장·88
이폭염의날에·89
촛불이횃불이되어·90
김군·92
시인박석준·94
천년이걸리더라도·96
봄날의신천지·98
길을묻다·100
낙화유정2·102

해설|호병탁_‘18!저만의시니피에’에담긴엄청난함의·103

출판사 서평

신남영의시편들을관통하는‘언어’와관련한시와,‘음악’과관련한시들이압도적이었다.작품에견인되고있는어휘들만보더라도모두가지적전문성을띤작품들이었다.소위‘사랑’과같은인간의정감을파고드는시는없는지의문이들정도였다.
그러나여기‘사랑’이란말하나없이애절한사랑을노래하고있는작품이있다.

늘시차를안고살아야하는
넌어느별에서왔을까

끊어질듯이어지는너의메시지는
새벽을건너온지친목소리로
무겁게쓰러지고만다

아마처음으로내게건너온
너의메시지는박하향나는
캔디맛같은것

잠시스쳐간손길이라도
한때는굳게다짐했던약속도
이제는네가멀어져갈수록
허공에사라지는별빛이되겠지

너는이제명왕성에간다는것일까
그곳은너무멀고도추운곳
적막한흑암의공간을비행하듯
네앞에놓인삶의궤도는
또어찌그리아득할것인지

산다는것이따스한빛과물이있는
저만의숲길을찾아가는것이라면
눈과얼음의길을지나
우리는어느먼별에서라도
다시만날수있을까

지금은함께갈수없다해도
시간과공간이휘어버린그런
행성하나쯤있다면

-「명왕성소녀」전문

명왕성은지구에서가장‘멀리’떨어진,가장‘작고외로운’소행성이다.크기는달보다도작고지각대부분이얼음과바위로구성되어있다.1930년발견된이후‘태양계의아홉번째행성’으로인정되었으나그나마2006년국제천문연맹의행성분류법이바뀜에따라이외로운별은행성의지위조차잃고지금은‘소행성134340’이란공식명칭으로불리고있다
이작고쓸쓸한별이시인의아픈사랑의대상으로비유되고있다.
첫연에서부터소녀는“늘시차를안고살아야하는”사람으로표현된다.천문학적전문용어로도설명할수도있겠으나쉽게가자.‘시차’에는일반적으로두가지뜻이있다.지역에따라시간차이가있는‘시차時差’와,같은물체라도다른두곳에서보았을때서로달리보이는‘시차視差’가있다.어떤경우라도두사람사이에는문제가있다.
처음에건너왔던소녀의메시지는“박하향나는/캔디맛같은것”이었으나이제는“새벽을건너온지친목소리”가되어“끊어질듯”사라지고만다.‘시차時差’때문인가.한때“굳게다짐했던약속”으로보였던것도이제는“허공에사라지는별빛”이되고만다.‘시차視差’때문인가.
여기까지가두사람이처한현재상황이다.그런데다섯째연에서화자는“너는이제명왕성에간다는것”이냐묻고있다.그리고그곳은“적막한흑암의공간을비행”해야갈수있는“너무멀고도추운곳”이라며,“네앞에놓인삶의궤도”는또얼마나아득할것인지걱정을하고있다.명왕성에대해좀더알아볼필요가있다.이명칭은‘명부冥府’의왕,즉저승세계의지배자플루토(Pluto)에서따왔다.그래서‘밝을명(明)’자대신‘어두울명(冥)’자를쓴다.이명칭은아직그대로‘명왕성’이다.‘행성의지위’를박탈당한것이지,태양계밖으로나간것도아니고이름까지빼앗긴것은아니기때문이다.그럼에도이슬픈별은‘태양계의행성’으로다시복귀될가능성이없다.화자는천왕성도해왕성도아니고가장멀고외로운명왕성으로가려하는사랑하는사람을염려하고안타까워하지않을수없는것이다.
그러나화자는어떤경우에도절망하지는않는다.일곱째연에서화자는“산다는것이따스한빛과물이있는/저만의숲길을찾아가는것”이라며두사람도어렵고험한길을지나마침내“어느먼별에서라도”반드시“다시만날수”있을것이라는희망의끈을놓지않는다.화자는마지막연에서상대성이론까지언급하며자신의희망을재천명한다.즉“시간과공간이휘어버린”별이있다면둘은반드시다시만날수있다는것이다.시공이휜다면당연히만날것이다.그러나현실적으로그것이가능할것인가.우리는그의간절한희망에박수로동의하면서도한편으로는강한안타까움을느낀다.
작품은끝났다.앞서말한것처럼‘사랑’이란말하나없는작품이지만우리의가슴에는그사랑의애절함이긴여운을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