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백년 기다릴게 - 황금알 시인선 278

서너 백년 기다릴게 - 황금알 시인선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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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소해(1947~) 시인은 그런 여정 중에도 정형의 난망을 조화롭게 타넘고 있는 중진이다. 그러는 동안 시인이 더 기울여 찾고 공들여 그려온 것들은 낮고 외지고 뒤처진 삶의 고샅들이다. 어딘가 그늘이 깊이 끼친 우리네 삶의 골목골목에서 길어낸 곡절의 노래에 자신만의 시적 발화를 입히고 빛을 얹어온 것이다. 1983년 『현대시조』 등단 후의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도 그런 열망을 다지는 계기였나 보다. 이후 시인은 꾸준한 창작으로 『대장장이 딸』을 비롯한 5권의 시조집을 펴냈고, 문학상(한국시조시인협회 본상)이나 아르코 문학나눔에 선정되는 등 문학적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좋은 시인이 그러하듯, 지금까지보다 더 아름다운 정형의 미학을 궁구하며 자신의 노래를 찾아 세상의 그늘 속을 계속 헤쳐 가고 있다.
그중에도 악보에 담지 못한 노래를 위한 탐색은 이번 시조집 「서너 백년 기다릴게』는 특별한 권역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쩌면 “피나게 배워도 모를 일”이고, 지금도 여전히 “아직 모를 일”(「모를 일」)이라는 탄식도 따르지만, 세상을 더 깊이 살피고 헤아리는 시적 소명의 하나라 하겠다. 보다 더 기울여 생의 면목이며 이면을 짚어야 사람살이 저간의 사정들에 자신이 찾은 시적 발화를 피워내는 오솔길인 까닭이다. 그 길은 삶의 곡절에 따라 생기기 쉬운 “상처도 보석”(「실금」)임을 깨닫는 과정이며, 그때그때 발견한 것들을 정형 구조에 아름답게 정제하는 머나먼 절제의 여정이기도 하다.
-정수자(시인·문학박사)
저자

김소해

김소해시인은경남남해에서태어나1982년『현대시조』초회추천1983년『현대시조』2회추천완료,1988년부산일보신춘문예(시조)로등단하였습니다.시집으로『치자꽃연가』『흔들려서따뜻한』『투승점을찍다』『만근인줄몰랐다』『대장장이딸』등이있습니다.성파시조문학상,한국시조시인협회본상,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한국시조시인협회선정‘올해의시조집상’등을받았습니다.

목차

1부

배롱꽃·12
붉은식사·13
모를일·14
남해·15
도래샘·16
둔하다고핀잔이다·17
우리동네·18
화들짝꽃밭이라·19
하지감자·20
찔레꽃명당·21
산나리꽃·22
큰북·23
11월·24

2부

굴·28
실금·29
얼음새꽃·30
ㄷㆍㄹㅎㆍ노피곰도ㄷㆍ샤·31
세진교를건너는가을·32
소라계단―동광동·33
이것!·34
밤나무꽃필적에·35
길의순장·36
처서·37
젓가락질이서툴러서·38
술래들의저녁시간·39
초록열차·40
도마뱀꼬리를자르고·41

3부

누에고치·44
미완으로세운집·45
달빛공장완월동玩月洞·46
봄밤·47
여기는명당·48
e편한―엄마생각·49
가을브레이크·50
교차로·51
바람과함께사라지다·52
팬fan팬pen·53
삼월에는·54
울음학·55
가난한그늘·56
밤의주차장·57
달빛만축내지·58

4부

운석·60
봄편지·61
입양·62
다정국수·63
보리밥집·64
고래·65
삼천포·66
케인·67
묻지말자·68
부싯돌·69
태풍·70
계산없이·71
구렁도꽃밭이네요·72
죄·73

5부

반고흐의해바라기·76
청동거울·77
풀을다시읽다·78
오자미놀이·79
즐거운꽃밭·80
카사블랑카·81
아폴론동호회·82
섣달·83
다시,채석강에·84
펜플룻을부는인디언·85
질문들·86
냉장고그녀·87
장다리꽃밭나비들·88

해설|정수자_그늘에물든노래를찾아·90

출판사 서평

시인의먼탐색이담긴시적여정을깨우는작품은독자도오래당긴다.많은시인이혼자가만히뇔법한탄식의순간과무언의행간등이더많은말을건네는까닭이다.그렇게악보에싣지못하고무음으로간소하게응축한시편이공감으로깊어지고넓어지는것은간명한구조를살리는매력이다.

그렇듯작품에깊이머물게하는흡입력에는여러요소가있지만,김소해시인의경우에는고백의응축이크게기여하는듯하다.얼핏보면간명한소묘같은구조인데볼수록시적농축이며깊이의문양이달리번지는것이다.그런작품중에「찔레꽃명당」은김소해시인의무수한속말과속생각을담아두고발효시키는시적‘명당’이아닐까싶다.평범한‘봄밤’의소회라기엔아주긴시간이담겨있고,바람에도“필생”의바람[願]이함축돼있기때문이다.

보름의달밤인데찔레의봄밤인데
늦도록늦은밤나는아직길에있네
몰라라,얼마나멀리
언제그렇게,그러게

시냇가라했던가바닷가어디쯤
정자하나짓겠다고필생을다놓치네
바람도잠들지못한길
서너백년기다릴게
-「찔레꽃명당」전문

머나먼시적탐색과고단한여정이짚이는작품이다.그냥평범한‘봄밤’의소회라기엔아주긴시간이담겨있고,깊은함의인“필생”의바람이담보된까닭이다.“찔레의봄밤”인데,그것도“늦도록늦은밤”인데,왜“나는아직길에있네”라는탄식이터지는가.무엇을그토록찾아나섰고,“얼마나멀리”왔는지,길게돌아본후나직이뇌는말은“몰라라”다.그한숨실린탄식을오롯이받아든게둘째수의“정자”,시인이평생찾던무엇곧시의은유라할것이다.이보다큰의미의이상향혹은영혼의처소로볼수도있지만,시인의입장에유념해보면필생찾아헤매는최상의시적거처일가능성이높다.흔히‘산좋고물좋고정자좋은데없다’라고일러온말즉다좋을순없다는인생의깨달음보다시적추구와의연결을환기하는시인의여정때문이다.그렇게보면“정자하나짓겠다고필생을다놓치네”라는문장의공명도시적울림이더깊어진다.현실속의정자야마음만먹으면지을수있지만,정자를“필생”의시적궁극으로치면얼마나멀고높은거처인가.그래서“바람도잠들지못한길//서너백년기다릴게”의여운또한더길고깊어지는것이다.

이처럼좋은시편에목을매듯찾고기다리고골몰하는마음은때로일을내기도한다.“세줄짜리시쓰느라냄비를태워버렸네//공들기로치자면석줄이나열줄이나//아무리//헐하더라도//냄비값은되려나?”(「이것!」)이런정도의몰입이바라는작품에고료까지나온다면그얼마나좋을까만,글값이대부분헐값인판이니“냄비값”도고급에는턱없는값일테다.하지만절창만얻는다면무슨값이대수이랴.비록냄비는태웠지만단수한편을얻었으니시인도웃어넘길다행으로여긴후편이아닐는지.무릇쓰는자라면웃을수만은없는이콩트같은소회역시쓰기의자세를일깨운다.

여기서문득문득되짚는말을다시꺼내본다.“자기창조와재창조는모방한형식과새로운형식사이의투쟁”에서나오는것,특히“자동성에굴복말아야”(파스칼브퀴르네르)한다는전언을깊이새겨본다.시조라는정형성의조건이자칫자동성에의굴복같은안주로이어질우려를지닌까닭이다.쇄신의명제가더어려운정형의미적쇄신,그것은한권의시조집을묶을때마다더크게더많이보인다.이전의시조집에서얼마나새롭게깊어지거나넓어지거나나아가고있는가.그런질문이끝까지자신을괴롭히며다음여정을일깨우는것이다.

『서너백년기다릴게』는그런고뇌어린여정에서길어낸김소해시인의가편들을보다깊이보여주는시조집이다.이글에서는주로악보에담지못한노래들이나그늘이물든소리의뒤를따라거닐며시인의발견과발화를함께즐겼다.하지만이런작품보다더풍성한시인의모색과발화가있으니,그런편마다많은기울임이이루어지길기대한다.깊숙이귀기울이는가슴들과더불어더그윽한울림이이어지길.

시인의말

질문하고답하고,답하고질문하고
시조의길이라서…
무겁거나가볍거나질문들이길동무다
길동무있어가는길이즐겁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