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입술 - 황금알 시인선 279

바다의 입술 - 황금알 시인선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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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첫 시집에서 손 시인은 삶의 모순이나 부조리를 발생시키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냉철한 분석과 비판적 성찰을 집요하게 이끌고 간다. 거기에 비해서 이번 두 번째 시집에서는 존재에 대한 탐구와 분석이 한층 예리하고 감각적 접근으로 다가간다.
살아가는 일이란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微視的 관점의 조화로운 응용이리라. 너무 미시적 관점에만 치우친다면 근시안적 사고가 되기 쉽고, 거시적 관점에만 머물게 된다면 삶의 정교한 부분들을 놓치거나 소홀하게 흘려버릴 위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념을 가지면서 손영숙 시인의 이번 시집 작품들을 읽어 가노라면 바로 우리가 강렬하게 바라는 중용적 가치관, 즉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의 조화로운 배합과 그 어울림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자못 소중하다. 구체적 작품에서 이것을 확인해보기로 하자.
- 이동순(시인·문학평론가)
저자

손영숙

손영숙시인은경남마산에서태어나경북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고,2014년『문학청춘』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지붕없는아이들』『바다의입술』이있다.제5회『대구문학』올해의작품상,제5회『문학청춘』동인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계절의얼굴

두얼굴·12
입덧중·13
봄프리즘·14
뒷모습·16
그자리·17
화관을씌운이누구냐·18
석양의집·19
귀뚜라미통신·20
철골소심·22
빗방울연가·24
낙하의시간·26
까치밥·28
12월의영산홍·29
얼음폭포·30
오대산설경·31

2부삶의맨얼굴

찬란한정원·34
수중분만·35
침묵의내막·36
코로나천사―2019년겨울의대구·37
산위에서부는바람·38
노랑나비그아이·40
간격·41
소문·42
숨·44
그대의마지막춤·45
태양의아들―까뮈의이방인·46
몸탑·48
제4악장·50
수목장배웅·52
꽃씨사설·53

3부시대의얼굴

입석묘지·58
‘위하여’의행방―영화<동주>를보고·60
묵란도아버지·62
무게중심1·64
무게중심2·65
삐끗―2017년,여름·66
바다의입술·68
변신·70
섬진강꽃길·71
귀향·72
월급날―1989년10월·74
그녀의시독법·75
파킨슨아저씨·76
사라진제국·78
공양·80

4부신앙의얼굴

해탈의순간·82
구토·83
흔적·84
무심차·86
해탈의문―싯다르타,헤르만헷세·88
사순절·90
공현公現·92
원죄·93
빛나는약속·94
고백·95
그날아침―요한21.1-14·96
구름프란치스코·97
동백꽃대관식·98
부활절아침·100
그럴수·102

해설|이동순_미시微視로껴안는따뜻한시적탐색·104

출판사 서평

이번시집의표제가된시작품「바다의입술」은우선특이한바다이미지로부터출발한다.한국현대시사에서가장신선하고생동감이느껴지는바다이미지는정지용(鄭芝溶,1902~1950)시인의바다가으뜸이아닌가한다.지용은바다의파도를‘푸른도마뱀’에비유했다.기상천외하고도그생기로움이끓어넘치는그야말로절창이다.어느누구도추종을불허한다.과연어느시인이지용의파도표현을능가할수가있는가.그만큼지용의시적문맥에서는고유의완강한성채(城砦)를쌓았다.이런표현수준에대해친구였던이상(李箱,1910~1937)시인이탄복했었다.지용은‘달아나려고’의문맥도‘달아날랴고’로짐짓의고체(擬古體)형태를쓰고있다.‘흰발톱에찢긴/산호보다붉고슬픈생채기’는또어떠한가.시인은무심한파도에유정한기운을불어넣어놀랍고도처연한인간의효과로되살아나게한다.이런능력은언어의연금술사만이쓸수있는방식이다.

바다는뿔뿔이달아날랴고했다

푸른도마뱀떼같이재재발랐다

꼬리가이루잡히지않았다

흰발톱에찢긴
산호(珊瑚)보다붉고슬픈생채기!

그런데손영숙시인의파도시를읽으며나는놀란가슴을진정하지못한다.파도의거품하나하나를하고싶은말이제각기담긴갈망의입술로읽어내고있는것이다.그수를헤아릴수없는엄청난입술들이지금도바닷가에서는어떤절규를줄곧허공에날리고있는것이다.하지만그말뜻을제대로알아듣는이는없다.그저바닷가에가서대책없이파도소리만멍하게듣고돌아올뿐이다.하지만청력과감각이특별히뛰어난시인이하나있어파도가형성해내는거품을입술에비유하고그입술에서어마어마한말을쏟아내고있는광경을보고듣는다.고향이마산인손영숙시인이니마산과관련된지난시기민주화운동의슬픈경과를비롯해서여러젊은이의죽음까지도호출해내고있는것이다.그런점에서이시작품의파도이미지는지용의경지에상당히근접해간수준으로놀라운시적깨달음을경험했다고평가할수있겠다.

동동입술이뜬다
파도속거품만큼많은입술
입술마다가득말을물고있다

우르르달려와서
자르르쏟아놓는말
푸푸거품을물고있다

-시「바다의입술」부분

시인의말

시,

‘어떻게’보다
‘왜’에오래머물렀다

씨는뿌렸지만
저마다의마음뜰에서
어떤꽃으로피어날지알수없다

그대들께서
정원사가되어주시기를….

2023년시월와룡산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