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 황금알 시인선 288

점 - 황금알 시인선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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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정현의 시집을 읽는 독자들은 고요와 안식, 그리고 평화를 느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성급하게 대답과 결론과 해결을 원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모든 것의 자명함과 명쾌함을 갈구하는가. 우리의 피로는 원칙적으로 대답이 없는 공간에서 성급한 대답을 기대하고 찾는 행위에서 축적된다. 우리는 화끈하고 명쾌한 길을 원하며, 불분명함, 대답 없음 혹은 대답할 수 없음의 희미한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우리가 이렇게 성급하고 천박한 진리-경쟁의 공장에서 숨을 헐떡이며 확실한 성과물을 향해 돌진할 때, 이정현은 그런 기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들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무도 없는 숲속 오두막 조그만 창에 그림처럼 가득한 초록 나뭇잎들, 목적도 성취도 없이 흘러가는 강물, 겨우내 키우고 키워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커진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알리는 목련,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항상 처음 같은 풍경으로 흘러가는 구름, 이런 것들은 해명해야 할 진실도, 끝내 구해내야만 할 명쾌한 해답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인간보다 먼저 무명, 무념, 무상, 무위의 상태에 가 있으며,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존재의 충만’에 도달해 있다. 이정현의 이 시집은 정복과 성취의 담론에 지친 독자들에게 이런 고요와 평화와 안식의 풍경도 있다는 사실을 섬광처럼 보여준다.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때 절은 옷을 벗고 맑고 푸른 숲속에서 영혼의 삼림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느낄 것이다. 평화는 거기에서 온다.
저자

이정현

저자:이정현
이정현시인은1964년강원도횡성에서태어나동국대대학원선학과를졸업하고,2007년『수필춘추』(수필)2016년『계간문예』(시)로등단했다.시집으로『살아가는즐거움』『춤명상』『풀다』등과시선집『라캉의여자』,평론집『60년대시인깊이읽기』,산문집『내안에숨겨진나』가있다.문학비평가협회상,문협서울시문학상,수필춘추문학상,한국시원시문학상을수상했다.현재관공서,동국대평생교육원에서요가와명상을강의하고있다.

목차

1부

점點·10
환장할봄날·12
여름비·14
선방에들이기전·16
비결·18
그네·20
살생·22
당신·24
무위진인無位眞人·26
꽃게·28
나비한마리머물다·30
금장대나룻배·32
계곡물·34
부도浮圖·36
은행나무·38
팬데믹·40
화두·42
바람을엮다·44
편식·46
퍽치기·48
불면증·50
화장터에서·52
꽃이꽃으로보이질않는다·54
낚시·56
운명·58

2부

자화상·62
감자꽃·64
동백꽃·66
지심도只心島·68
파도·70
친정엄마·72
바람들다·74
아버지·76
온난화溫暖化·78
핵폭탄·80
유산·82
요즘뉴스·84
보물찾기·86
칼의소리·88
고기잡이·90
그들만의법·92
오후불식·94
푸른사랑법·96
하마터면·98
바다사막·100
즐거운식사·102
즐거운술·104
동안거·106
춤·108
시詩한갑·110

해설|오민석_무슨종이냐고누가묻거든·114

출판사 서평

주신엽서에“밖으로모든연緣을쉬고안마음이헐떡임이없어야가可히써도道에든다하심이여,이는방편문方便門이라”하셨느니라.
-「비결」전문

이시집모든시의끝에는위에서처럼“선문답식노트”가달려있다.이것은일종의‘시작노트’라고할수도있는데,일반적인시작노트와달리본문과화학반응을일으키며본문의영역을더욱확장한다.이런형식은중국남송대의선승무문혜개가지은(선사상의고전이라할)『무문관無門關』의구조와유사하다.『무문관』은총48칙則의공안을싣고있는데,각칙의본문이라할“고칙”은“무문의말”과“무문의송”으로이어지며,말미엔항상“군소리”라는형식이따라붙는다.그야말로선문답인고칙의의미는말과(게)송을거쳐군소리에이르면서더욱분명해지는데,이시집의“선문답식노트”는바로그“군소리”의역할을한다는점에서시의바깥이아니라안에있다.말하자면이정현의선시에서“선문답식노트”는시의일부이지시의설명이아니다.위의작품은짐짓가벼운위트를동원하며‘도에이르는길’의핵심을보여준다.“꽃같은나이”의화자는선방에서도를가르치는선승에게가르침을받기는커녕깨우침을준다.잠을잘자는비결이뭐냐는선승의질문에화자는“그냥앉아있었다”고말한다.화자는역설적이게도깨우침의열성조차버리고“졸다가”깨우침의경지에이른다.어떻게그럴수있을까.이시의“선문답식노트”에그답이있다.집착을버렸을때“밖으로모든연緣”의쉼이오고,“안마음이헐떡임이없어야”도에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