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정현의 시집을 읽는 독자들은 고요와 안식, 그리고 평화를 느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성급하게 대답과 결론과 해결을 원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모든 것의 자명함과 명쾌함을 갈구하는가. 우리의 피로는 원칙적으로 대답이 없는 공간에서 성급한 대답을 기대하고 찾는 행위에서 축적된다. 우리는 화끈하고 명쾌한 길을 원하며, 불분명함, 대답 없음 혹은 대답할 수 없음의 희미한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우리가 이렇게 성급하고 천박한 진리-경쟁의 공장에서 숨을 헐떡이며 확실한 성과물을 향해 돌진할 때, 이정현은 그런 기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들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무도 없는 숲속 오두막 조그만 창에 그림처럼 가득한 초록 나뭇잎들, 목적도 성취도 없이 흘러가는 강물, 겨우내 키우고 키워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커진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알리는 목련,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항상 처음 같은 풍경으로 흘러가는 구름, 이런 것들은 해명해야 할 진실도, 끝내 구해내야만 할 명쾌한 해답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인간보다 먼저 무명, 무념, 무상, 무위의 상태에 가 있으며,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존재의 충만’에 도달해 있다. 이정현의 이 시집은 정복과 성취의 담론에 지친 독자들에게 이런 고요와 평화와 안식의 풍경도 있다는 사실을 섬광처럼 보여준다.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때 절은 옷을 벗고 맑고 푸른 숲속에서 영혼의 삼림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느낄 것이다. 평화는 거기에서 온다.
점 - 황금알 시인선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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