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속의의학,의학속의문학,진료실의시인들의소박하고찬란한시편들!
말라뒤틀렸다붉디붉게
물들어펼쳐진진홍빛저고리
매웁디매운마음을품고서
노란꿈을저미고저며야위어도
생이비틀어질때까지
독을품고있었던너
어느누구도쉬이건드릴수없는
농염한자태
꿋꿋이변색하며검붉어질때까지
등을기대었던황금토양에서
발가벗겨진채내밀었다
점막을찌른다
반질반질하게잘생긴것들
볼품없이척추가휜것들
하나의집념만으로모였다
이제는비틀리고꼬여도
알알이떨어뜨리며내려놓는
씨앗들의합창,좌르르
참고참다이제는
노랗게흘려보내도좋은씨앗들
고추의눈물인가
나의눈물인가
-박세영,「씨앗들의합창」전문
박세영의시「씨앗들의합창」은이번의사시인회12집의표제시이다.고추를소재로하여생명과고통,그리고그안에서의희망을다룬시이다.고추가겪는변화를통해인간의삶과고난을은유적으로표현하고있다.
첫연에서는붉게물든고추의모습이생생하게그려진다.“말라뒤틀렸다붉디붉게”라는진술에서고추가마르고붉어지는과정을묘사하며,“진홍빛저고리”는고추의강렬한색감을형상화한다.이는고추가겪는고통과함께,그강렬한생명력을상징적으로보여주고있다.
고추는“매웁디매운마음을품고서”자신이지닌고통과집념을나타낸다.이는삶의고난을견뎌내는인간의모습과겹친다.“노란꿈을저미고저며야위어도”라는태도는꿈과희망을잃어가는과정에서도생을포기하지않는고추의집념을보여준다.
고추는“어느누구도쉬이건드릴수없는농염한자태”를지닌다.이는신산스러운현실에서도꿋꿋이살아가는존재의아름다움을드러낸다.“검붉어질때까지”변색하며삶의끝까지버티는모습은인간의굳은의지를상징한다.이는고추가“황금토양”에서자라나는것처럼,결국고난을이겨내고성숙해지는과정을보여주지만,고통을수반할수밖에없는성장통인것이다.“발가벗겨진채내밀었다”라는진술은고추가씨앗을내놓는장면을묘사하면서,관능적인면모와함께새로운생명의탄생을상징하고있다.고난을통해새로운희망이싹트는과정에서“점막을찌”르는행위는필연적인고통을수용성을의미하고있다.
씨앗들은“반질반질하게잘생긴것들”과“볼품없이척추가휜것들”로묘사된다.이는다양성의존재들이모여하나의생명력을이루는여정을나타낸다.“하나의집념만으로모였다”라는구절은이들이고통을견디며함께하는힘을강조한다.
마지막연에서는씨앗들이“비틀리고꼬여도알알이떨어뜨리며내려놓는”모습을통해,고난을이겨내고새로운생명을탄생시키는과정을묘사한다.“씨앗들의합창,좌르르”는그들이하나되어만들어내는생명력의아름다움을상징한다.“참고참다이제는노랗게흘려보내도좋은씨앗들”은이제는고통을벗어나새로운시작을암시하고있을터이다.고추의눈물이“나의눈물인가”라는질문으로끝나는시는,고추와인간의삶을동일시하며깊은울림을주고있다.「씨앗들의합창」은고통속에서도생명과희망을잃지않는존재의이유와아름다움을강조하며,고난을견디는모든이들에게위로와용기를주는작품이다.
인간의질병과함께살아야하는의사는의학의과학적특성과더불어희로애락과다양한감성을지닌인간을그대상으로한다는점을항상상기해야한다.그래서인간이해의접촉점인인문학과그바탕이되는문학에관심을주어야완전한의사로행세할수있을것이다.
좌뇌파로서의과학자와우뇌파적인감성과인문학을두루겸비해야환자에게는이해심많은훌륭한의사,자신에게는편향되지않으면서도자유를향유하는행복한의사가될수있을터이다.
한국의사시인회결성12년이되었다.회원들이모여첫시집『닥터K』를펴낸이후열한권째시집이다.의사의일상은그리한가로운것이아니고그틈새시간에시를생각하고글을쓴다는것은말같이쉬운일이아니다.이제전국의훌륭한의사시인들이밤잠을밀어두고섬세한인간애를시의행간에심어놓은것을살필기회가왔다.과학자인의사가어떻게환자라는인간의고통과불안을함께아파하고또함께눈물흘리는지를볼기회가왔다.
더불어의사라는인간이목석이아니고어떻게자신의의지를지키며불완전한자신을깨워이겨나가는지를볼수도있을것이다.장기적인안목으로보면시를사랑하는이런모임과꾸준한시집발간은이나라에의료문화를널리전파하고의사의질을높이는데도한몫을하리라는믿음을준다.환자를사랑하는마음으로,詩를사랑하는의사들이함께모였다.아직詩는탄생하지않았고,영원히완성되지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