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은 리스본 - 황금알 시인선 303

오늘밤은 리스본 - 황금알 시인선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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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영찬

저자:김영찬
김영찬시인은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프랑스어를전공한후문학과무역분야에서활동해온다재다능한인물입니다.그의시세계는보헤미안정신과자유로운언어실험으로특징지어지며,한국어뿐만아니라영어,프랑스어,라틴어등다양한언어를활용합니다.이러한다국어적접근은시에독특한개성과아나키즘적사고를불어넣습니다.
김시인은중년이후인2002년부터본격적으로문단활동을시작했으며,대표적인시집으로는『불멸을힐끗쳐다보다』와『투투섬에안간이유』등이있습니다.그의작품들은독자가자유롭게해석하도록열려있으며,의미에서벗어난새로운상상의공간을탐구합니다.이와같은특성덕분에그의시는단순히언어의유희를넘어선철학적사유를유도합니다.
또한그는“세대차이나권위의식없이살아가는것”이자신의삶의철학이라고밝힌바있으며,젊은감각을유지하려노력하는태도를통해다양한세대와소통하는특징이있습니다.이러한열린사고는그의시세계에반영되어더욱실험적이고파격적인작품들을만들어내는원동력이되고있습니다.

목차

1부푸석푸석한나라의푸수수한국경을건너뛰다가

라볼바시옹lavolvation·12
나의고독은,·13
타락을타락시킨고슴도치의도취·16
검은발등에솟은눈물·17
알락꼬리마도요의갓차Gotcha,득템력·20
그리하여숲이숨어서숲길감추었다·22
니체의별·25
프레베르벤치위의모자·26
아낭케anatkh,밤의피크닉상자를열고·28
사랑이라는글자와고양이라는글자를바꿔써보자·36
미미끄지뢰밭아상블라주mimiqueassemblage·38
썸머타임프리패스Summertimefreepass·41
마라케시의구둣방·44

2부죽어가는이왈츠를받아줘!

비오는날의우리Suna·48
짐자무쉬에게묻고싶지않은질문·49
늑대별이웃다·52
꾸꾸루꾸꾸~,그라나다의비둘기·54
장미스물셋과데이트·58
누낭淚囊의뱃길·60
나의시작노트에적힌압운은이렇게·62
산세리프sansserif·65
비익秘匿의틈·68
수요일의도둑-뮤지컬풍으로·69
말테를위한수기·72
끄노Queneau에게어제쓴시·74
오늘밤은리스본·76

3부키케로가말한것을페트라르카가받아적듯이

고독강점기·80
롱고롱고몰디브를마시면,·82
후마니타스의포도주·84
권총차고죽는이데올로기의고양이와꼼짝안하는
에셔의도마뱀·87
대낮의횃불하나,-시인안수환의불먹인화살과촌철살인·90
함마슐트에기록될릴리함메르라는시·92
불쑥솟아오르는still-life,정물화·94
오무아무아Oumuamua의꼬리에편승해보면·96
몽곤고나무와‘!쿵부시맨족!KungBushmen’·97
올리브동산의7월칠석七夕·101
불가사의의불가리아여인·104
사진한장의포에트리·107

4부아름답게누워서침이나뱉고싶네

맑은날꽃들의한계를넘어·110
플라뇌르플라뇌르빠리의플라뇌르·112
밤의난간에서수잔발라동·115
과월호는과월호·118
갈대밭의판신Pan神·119
어섯이어섯눈을뜨다·122
베로니카의지나친눈물·123
어느날의막다른충동衝動·126
자고새를위한자고새·128
토마스S,엘리엇을추억함·130
경외敬畏경외주의자aweist들·134
삼각형이생각할줄안다면·136
나의시집·138

해설|고봉준_시적헤테로토피아·142

출판사 서평

시적헤테로토피아
-김영찬의시세계

고봉준(문학평론가·경희대교수)

시집『오늘밤은리스본』은김영찬시인의문학적혈통증명서이다.이책에는현기증이날만큼많은시인,소설가,예술가,철학자의이름이등장한다.뽈베를렌,아르뛰르랭보,니체,자끄프레베르,테라야마슈우시,베토벤,짐자무쉬,월레스스티븐슨,윌리엄카를로스윌리엄스,파울첼란,페데리코가르시아로르카,보르헤스,레이먼드끄노…….이들은시인랭보가‘나쁜혈통’이라고말한태생적혈통이아니라의도적으로선택된예술적혈통,즉시인의선조(先祖)들이다.김영찬은이들예술적조상의이름과그들의언표를다양한형태로전유하여궁극적으로텍스트에서주체나중심의흔적을지우는방식의시쓰기를수행한다.프랑스의철학자막심로베르(MaximeRovere)는스피노자에관한자신의저작에‘스피노자와그의친구들’이라는흥미로운제목을붙였다.한철학자의삶과철학을조망한책제목에‘친구들’이등장한다는것은스피노자의사상이한개인의산물이아니라다양한관계의결과물이라는의미이다.김영찬의이시집도마찬가지이다.이책의곳곳에등장하는수많은예술가와사상가는시인의시쓰기에직간접적으로영향을끼친존재들이며,이런점에서시인의친구들이라고불러도무방하다.요컨대김영찬의시는주체/중심없는상태에서다양한목소리가뒤엉킨상태에서발화된기표들의직조물,즉퀼트(quilt)내지헤테로토피아적(Heterotopia)공간이라고말할수있다.미셸푸코의말처럼헤테로토피아가다른모든공간에대한이의제기라면김영찬의시집은다른모든시(詩)에대한이의제기라고말할수있다.여기에는주체나중심이존재하지않는다.오로지시시각각분열하는언술이,그결과에따라파편처럼흩뿌려져있는언표가있을따름이다.

김영찬의시에는우리가시(詩)라는말에서응당기대하는것들이거의존재하지않는다.가령그의시에는심리적상처나그것을위로하는목소리가없다.그에게시는독자를위로하거나감동을선사하는것이아니다.그의언어는감동이나위로보다는전쟁,특히언어의층위에서펼쳐지는전투에가깝다.‘대중의취향에따귀를때려라’라는마야코프스키의말처럼김영찬의시는대중의기호나취향을의도적으로배반하는듯하다.또한그의시에는독자들의관음적시선을만족시킬내적고백이나가족사에대한정보같은것이없다.그의시는개인적상처나결핍따위에관심을두지않으므로,결핍보다는이미-항상흘러넘치는욕망의연쇄적인질주에서출발하므로,그것들을승화시키는카타르시스장치를갖고있지않다.요컨대그의시는김소월,정지용,서정주,백석,기형도를거쳐오늘날에이르는한국시의계보에대한부채(負債)가없다.대신그는유럽적인것,혹은그것의영향을받아만들어진비(非)한국적인것에친연성을느낀다.벨기에태생의프랑스시인앙리미쇼는자신이태어나고성장한곳이아니라남아메리카와아시아같은비(非)서구문화에관심을가진것으로유명하다.프랑스의철학자질들뢰즈는프루스트의말을빌려“좋은책들은일종의외국어로씌어진다.”라고말한적이있다.앙리미쇼의비(非)서구,질들뢰즈의외국어는위대한예술이예술가가속한문화적전통이나계보에대한충성이아니라배반을통해성취된다는사실을지적하고있다.

김영찬의시역시매우적극적으로,분명한방식으로한국시의전통에대한무관심을표현하고있다.오히려그의시는초현실주의와의친연성을드러낸다.이러한시적태도는두가지사실을전제한다.하나는김영찬의언어가깊이(심층)가아니라표면을중심으로기능한다는것,따라서‘의미’로낙착되는언어가아니라는것이다.다른하나는시작방식이무의식적자동작용,즉자동기술법(Automatism)에기초하고있다는것이다.물론,초현실주의적자동기술이온전히무의식의산물은아니다.앙리미쇼는“자동기술은무절제다.”라고주장했으나시작(詩作)이쓰기와선별/퇴고의이중적절차로이루어지는한의식의개입은필연적이다.이무의식과의식사이의간극(間隙)으로인해우리는잠시나마의식저편의세계를엿볼수있다.

이런날
이티비티티니위니비터브타임ittybittyteenieweeniebitoftime
흥진이반興盡而反이면뭘어떻고

뜬금없는

스웩swag
스웨기swaggie
스웨거swagger들의실력없는거들먹거림

밤을모르는부랑아들은아무도모르는밤에아무것도모르지단지

밤을좋아해야할이유를묵살하고
아,아낭케ANATKH
밤에
밤의블랙박스를발로걷어차며삐뚤삐뚤걷는다
걷다가허풍쟁이와만나면밤길에
최대한의허장성세
가령자투리시간까지빈술병비워내는간다르바gandharva,
건달바乾達婆들의핑계좋은일탈
살찐엉덩이만흔든다

이런때나는각촉부시刻燭賦詩,

모든걸차치하고사타구니에불길솟는기분
마이아스트라Maiastra에황금빛날개를접은‘금의새’처럼웅크리고
포란抱卵하는시를쓴다

교령회交靈會의스마우그SmaugtheGolden들처럼SF무대를단박에
장악하는시
그래,세상을제멋대로내맘대로재구성해야직성이풀리지
아마도,아마느그들뜻대로그렇게되진않겠지
그렇게는안될거야,아마도아마
느그들멋대로

홀대받는외지인포가니Pogany는루마니아태생
그녀의촌스럽게쪽진머리시뇽chignon의정결함,절박한상황에도
두손모은숭고미
나는왜그토록염결한초절주의에
둔감할까

-조타수없는방향타
-「아낭케anatkh,밤의피크닉상자를열고」부분

이시는김영찬의시적지향을분명하게보여준다.앞에서우리는무의식과의식사이의간극(間隙)에관해이야기했다.작품이시인의퇴고를거쳐발표되는한자동기술에는일정한한계가존재할수밖에없다는것이다.우리는이시가처음창작되었을당시의원형적인모습을확인할수없다.하지만이작품또한무의식과의식이뒤섞인상태라고추론할수는있다.먼저이시의제목에대해살펴보자.모리스블랑쇼는『문학의공간』에서‘밤’을두가지로구분했다.낮의건축물인“최초의밤”과모든것이사라졌다가다시나타나는“또다른밤”이그것들이다.블랑쇼는초현실주의자가아니지만그가말하는“또다른밤”은초현실주의가주목했던‘무의식’의영역과유사하다.그것이의식과이성의바깥이라는점에서그렇다.이시에서‘밤’은낮의반대편에존재하는,그리하여낮의연장이라고말할수있는시간으로서의밤이아니라‘낮’과완전히다른질서로작동하는세계이다.블랑쇼는그러한‘밤’에죽음의이미지를부여했는데,여기에서시인은그것에‘피크닉상자’라는기호로표상되듯이유희/놀이의이미지를부여하고있다.요컨대시인에게‘밤-무의식’의세계는피크닉의세계이다.따라서이시의언표들은피크닉상자에서끄집어낸것들인셈이다.

‘피크닉’은유희의세계이다.그것은이성/논리의질서에속하지않는다.이것은이시의언표들이이성/논리의산물이아니라는의미이다.그렇다면시에서이성/논리의질서를따르지않는다는것,또는유희의방식을따른다는것은어떤의미일까?그것은이시에서언어/기호가논리적연관성,나아가의미의층위에서작동하지않는다는뜻이다.그구체적증거가바로“이티비티티니위니비터브타임ittybittyteenieweeniebitoftime”라는진술이다.이것은읽기에따라음악적효과를연출할수는있어도‘의미’의층위에서접근할수있는진술이아니다.그러니까독자는이구절을읽고‘이게무슨뜻이야?’라고질문해선안된다.왜냐하면이것들은특정한의미를전달하기위해배치된의사소통의수단으로서의언어가아니기때문이다.실제로이단어들에는어떠한의미도담겨있지않다.말그대로이것은(언어)유희일뿐이다.“스웩swag/스웨기swaggie/스웨거swagger들의실력없는거들먹거림”이라는진술도마찬가지이다.독자들은‘스웩swag’이젊은세대.특히레퍼들이자신의스타일과개성을표현하기위해즐겨사용하는용어로서흔히‘허세’나‘자유분방함’이라는의미로통용된다는사실을알고있을것이다.대중문화평론가들에따르면이단어는원래‘약탈품’이나‘전리품’을의미하는단어였다.하지만이시에서‘스웩swag’은이러한‘의미’와관계가없다.그러므로이시에서‘스웩swag’이무엇을지시/의미하는가를따지는일은전혀중요하지않다.중요한것은“스웩swag/스웨기swaggie/스웨거swagger”라는표현을잇달아발음할때만들어지는음악적성질,즉리듬감이다.

한편이시에등장한진술들,가령“밤의블랙박스를발로걷어차며삐뚤삐뚤걷는다”,“간다르바gandharva,/건달바乾達婆들의핑계좋은일탈”,“그래,세상을제멋대로내맘대로재구성해야직성이풀리지”등은모두질서를벗어나는일탈의해방감을겨냥하고있다.이처럼김영찬의시는“삐뚤빼뚤”과“일탈”과“제멋대로내맘대로”를지향한다.“간다르바gandharva,/건달바乾達婆”라는구절역시건달(乾達)을의미하는산스크리트에서온것이라는사실보다는그것들을연속적으로발음했을때느껴지는음성적ㆍ음악적느낌이훨씬본질적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