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스미는 인디고블루 (박계숙 시집)

빛이 스미는 인디고블루 (박계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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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는 언어의 예술이고, 언어 예술 가운데서도 정금精金 같은 언어를 골라서 쓰는 예술이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재능이고 흔치 않은 어려운 방법이다. 박계숙 시인은 말을 재미있고 재주 있게 다루는 사람이다.
저자

박계숙

박계숙시인은대전출생으로충남대학교국문과및동대학원을졸업했으며,1997년충남대학교대학원문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충남대학교강사및경안고등학교국어교사를역임했다.저서로『한국현대시의구조연구』와청사문학회동인시집『문자메시지길을잃다』가있다.

목차

1부어둠속에무지개

너는·12
이브가낳은능소화凌霄花·13
풍등의비밀·14
폼페이의얼음,땡놀이-화산재석고상의절규·16
새봄에,땅속에서,불꽃놀이·18
콩깍지탈출작전·19
시가그림처럼·20
어둠속에무지개·22
제비꽃,이른봄에·24
경계는없다·26
수종사水鐘寺하모니·27
맷돌,춤추다·28
고요의노래1·30
동행同行·31
인간이카로스·32
숯불·33
밥상앞에서·34
바람이불면·36
머리에풀나다-의식과무의식·38

2부시를사랑하는지팡이

사춘기·40
는개·41
우리가사는·42
삶을매우쳐라·43
고요의노래2·44
밤의영혼·45
외줄타기·46
기우뚱한사랑-아날로그시계를추억하며·47
生·48
부재의흔적·49
시시포스와나·50
춤추는의자·52
나직이부르는사모곡·54
한생명-신생아실유리창너머·56
희미한자者들의노래·57
숨바꼭질·58
반가사유상·60
열매·61
시詩를사랑하는지팡이·62
행복,가득히·64

3부감은눈을한번더감으면

긴팔원숭이처럼·66
들숨과날숨·67
푸른세례·68
속깊은미소·69
손가락꽃,웃다·70
윤슬,늦은가을에·72
뜨거운죽먹기·73
감은눈을한번더감으면·74
소망하지않을자유·76
풍선과소녀-뱅크시전·77
유희遊戲하는세상·78
스펀지위에서쇠공굴리기-현대인의난중일기·80
티눈·82
꽹과리와푸닥거리·84
시간이오래묵으면·85
시간·86
사로잡힘을건너다·87
경계를넘다·88
순간,영원에닿다-폼페이최후의날의독백·89
고흐의풀밭·90

4부빛이스미는인디고블루

주거침입자·94
길·96
빛이스미는인디고블루·97
발효,삭아지는것들·98
말랑한퇴근길·100
후회·102
벽·103
키높이구두와하이힐·104
불꽃놀이,한강공원·105
적멸궁가는길·106
냉이꽃,하얗게·108
절반으로,넘치는행복·109
돌덩이와풍선·110
시간의큰키·112
가생이,희망별곡·114
검은성모와금빛예수·116
소나기와떡갈나무·117
시간말리기·118
그리움·120

해설|방승호_남아있는것의윤리·122

출판사 서평

남아있는것의윤리

방승호(문학평론가)


1.
막스피카르트는『침묵의세계』에서자기앞에있는대상에응답하는일이인간의본성이라고말한다.앞에놓인사물을정의하고그것의이름을부르는일이우리의본성이라는게피카르트의설명이다.그래서인간은때로자신에게제공되는지나치게많은사물로인해심한압박을받는다.설령그것이아무런의미가없는이미지에불과한것일지라도인간은그복제물을끊임없이말할수밖에없는숙명에놓여있다.언어가인간을정의하는중요한기준이되는것도이러한이유에서다.눈앞에펼쳐지는현상에대해말하는일.피카르트의말처럼이것은인간에게주어진,피할수없는본능이다.
박계숙이이번시집에서말하는것도이러한본능과무관하지않다.시인은인간이존재하는본질적이유를이야기하기위해가장먼저사물을응시한다.시인은자신앞에있는사물,다시말해‘시뮬라크르(simulacre)’로서이미지를포착하고이로부터삶의본질을하나씩찾아나선다.이번시집의문을여는「너는」에서화자가“너는꽃속에꽃/꽃피기전에꽃/꽃이오기전에꽃”이라며꽃을거듭호명하는대목은이여정의첫걸음이나다름없다.시인의시는눈앞의이미지를직시하고이를호명하는작업이지만,시인은대상의이름을부르는것에머물지않고대상에잠재한가치를언어화하는데더주력한다.언어의기표에묶인개념에서벗어날때그실질을발견할수있음을시인은알고있는까닭이다.꽃잎이피기전부터존재했던아름다움을포착하는일.그것이시인이말하려는삶의본질중하나다.

삶은오래전부터
숨바꼭질을했다.
술래인내가찾을수없게
깊이깊이
어딘가로숨어들어
늘나만혼자남아쩔쩔매었다.

삶은언제나
위장술의천재였다
본래의얼굴에가면을쓰고
어둠속에서능청스런웃음을짓고는
술래인나를골려먹으며즐거워했다.
나는늘속수무책이었다.
나는늘당황했고
늘안타까웠다.
-「숨바꼭질」부분

시인이말하는삶은화자가술래가되어찾아다니지만쉽게잡을수없는능청스러운존재이다.시인과숨바꼭질하는삶은가면을쓰고있어본래의모습을알수없는존재로형상화된다.이러한까닭으로시인은삶이언제나“위장술의천재”였으며그런상황에서자신은늘속수무책이었다고고백한다.시인의언어는삶과숨바꼭질하는자의토로와도같다.그의시가삶의의미(“주소지”)를찾지못하였으므로계속해서시를쓸수밖에없는자아의고백으로독자에게전달되는것도이러한까닭에서다.그런데당연하게도우리가주목해야하는부분은숨바꼭질의결과보다는과정에있다.과연시인은어떠한방식으로자신이찾으려하는삶의본질에다가서려는것일까.시인이숨바꼭질끝에찾은의미는과연무엇일까.이번시집을읽을때우리에게필요한것은이두가지물음이다.

2.
삶을말하기에앞서시인은먼저감각에대해말한다.본래감각은여러현상을감지하는것이기도하지만때로인간의지적능력으로포섭되는기반이된다는점에서유의미하다.직관으로포착되는다양한현상들은선험적도식과통합되어하나의인식적체계를이루기때문이다.이는칸트의말을빌려말하자면‘상상력’이라는개념으로풀이되는,감성과지성을매개하는인식역량의토대가된다.시인이존재의미를찾기위해반복적으로이미지를직관하는것도이러한이유와무관하지않다.박계숙이존재의가치를찾기위해가장먼저하는일은복잡다기한세계의이미지를포착하고이를언어화하는일이다.

生에선등푸른생선의비린내가난다
生에선대장간에울리는쇳소리가들린다
生에선여름한낮의쨍쨍한햇빛이보인다
生에선늦가을한강에서반짝이는물비늘이빛난다
「生」전문

시인은삶에서느낄수있는것들을이야기한다.시인이말하는것은삶의한가운데있는것보다는삶의가장자리에서존재하는것에더가깝다.우리의삶중심에있는감각들이아니라시간의변두리에서작게숨쉬고있는것들을시인은기록하는것이다.이는세계의바깥에있지않지만익숙해서의도적으로지각하지않으면인식하기힘든존재라는점에서유의미하다.시인은현대인의시각에서쉽게지나쳤던현상을주목하고그곳에잠재한생의움직임을감각의층위로다시꺼내보인다.이러한특징은「生」에서“등푸른생선의비린내”,“대장간에울리는쇳소리”,“여름한낮의쨍쨍한햇빛”과같은복합감각으로형상화된다.
시인은가장원초적인현상이지만가장강렬하게삶의형식을대변하는감각을주시하며생의의미를찾아나선다.이러한삶의가치는「밥상앞에서」에서“생로병사/희노애락/삶의밥상에놓인/각각의반찬들”로표현되기도하고「숯불」에서는“형태를잃을때까지열정의발효를기다려야하”는인고의시간으로비유되기도한다.중요한것은시인이세계의이미지를언어화하며존재론적의미를찾으려하면할수록오히려그의앞에는희미한생의감각만이아른거린다는점에있다.“나뭇가지사이로축축한밤의혼이스며드”(「밤의영혼」)는공허한시간의고요만이시인에게더가까워지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