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시노 - 황금알 시인선 306

무사시노 - 황금알 시인선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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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인 안준휘(安俊暉)가 ‘모시풀 들판(苧種子野, 무사시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시집 『무사시노(武蔵野)』의 편집을 마무리하던 무렵이었다. 『무사시노(武蔵野)』는 갑자기 『모시풀 들판(苧種子野, 무사시노)』이 되었다. 그때 시인은 한 연구서에서 ‘무사시노(武蔵野)’의 어원이 한국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연구서에 따르면, 서기 600년대 무렵,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이 지금의 ‘무사시노(武蔵野)’ 지역에 직물 기술과 함께 마의 일종인 ‘모시풀 종자’를 들여왔고, 그 모시풀 종자의 들판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것을 알게 된 시인은 가슴 속 깊이 거듭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 책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무사시사카이(武蔵境) 역’에 내렸는데, 마침 무사시노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크고 신비한 보름달이었다. 보름달은 낮고 크게 불같은 색을 띠고 무사시노의 하늘에 둥실 떠 있었다. 그때 안준휘가 그 자리에서 지은 시가 “오늘 밤 무사시노의 보름달 한 점 구름 없고, 내려서니 등뼈인 조선 다시 불 켜지며, 무사시노 모시풀 들판이 되네”이다.
그 가슴 속 수많은 감동 중 하나는, 시인이 문학에 눈뜬 계기가 ‘구니기타 돗포(国木田独歩)’의 『무사시노(武蔵野)』라는 소설이었다. 안준휘는 이바라키(茨城)현의 산촌에서 태어나 자라,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한 소년이었다. 그때 안준휘는 무사시노가 어느 지역의 지명인지 알지 못했고, 또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랬던 것이 훗날 문득 깨닫고 보니, 놀랍게도 시인 자신이 그 땅에 살고 있었고, 시집 『무사시노(武蔵野)』를 집필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와 관련된 깊은 감동은 안준휘 자신이 재일한국인 2세로서의 내력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그의 고향의 자연이 무사시노의 자연과 유사한 것도 있어, 신기하게도 향수어린 무사시노와 시인 자신의 뿌리가 부합했던 것이다.

저자

안준휘

저자:안준휘
1943년일본이바라기현에서태어나,그곳에서성장했다.재일한국인2세.
본적은경상북도영일군.
조치(上智)대학철학과및조치대학철학과대학원철학연구과졸업.
일본어시집으로『모시풀들판(苧種子野,무사시노)』『오디(桑の,뽕나무열매)』『무사시노』『등심초』가있으며,모든시집이일본최고의명문출판사인시초샤(思潮社)에서출간되었다.영어시집『MUSASHINO』,한국어시집『무사시노』『등심초』『꽃그림자(花の影)』(근간)가있다.

역자:한성례
한성례시인은1955년전북정읍출생.세종대학교일문과졸업및동대학원국제지역학과에서일본학전공.1986년‘시와의식신인상’으로등단.한국어시집『실험실의미인』,『웃는꽃』,일본어시집『감색치마폭의하늘은』,『빛의드라마』,네덜란드어시집『길위의시(Gedichtenvooronderweg)』,인문서『일본의고대국가형성과만요슈』등의저서가있고,1994년‘허난설헌문학상’,2008년일본에서‘시토소조문학상’,2022년‘포에트리슬램번역문학상’을수상했다.번역서로는소설『구멍』,『달에울다』,에세이『세계가만일100명의마을이라면』,동화『은하철도의밤』,인문서『시오노나나미의리더이야기』등,한국과일본에서시,소설,동화,에세이,인문서,비평서등200여권을번역했고,4권의‘한일대표시인앤솔로지’를기획,번역했다.그중에서도많은시집을번역하였으며,김영랑,정호승,김기택,안도현등한국시인의시를일본어로,고이케마사요,이토히로미,티엔위안등일본시인의시를한국어로번역했다.또한여러번역서가한국중고등학교의국어,사회문화,도덕,윤리등40여종의교과서와지도서에글이수록되었다.1990년대초부터일본의여러문학지에매호마다한국시를번역,소개하고있다.현재세종사이버대학교겸임교수.

목차

1장무사시노1章武野7
2장떡갈나무집2章の宿25
3장직박구리3章ひよ鳥43
4장순간4章一瞬61
5장석류꽃5章ざくろ花79
6장봉선화6章鳳仙花95
7장무화과7章無花果109
8장구기자열매8章枸杞の123
9장잔영9137
10장물방울10章149
11장모시풀들판11章苧種子野159
12장회귀12章回173
13장꽃그림자13章花の影187

시인의말|안준휘운명과회귀209
옮긴이의말|한성례무사시노들판에서고대
한반도도래인의언어로사랑과바람을노래하다231

출판사 서평

무사시노들판에서고대한반도도래인의언어로사랑과바람을노래하다
한성례(시인·번역가)

극도로응축된언어로쓴절창의단시

재일시인안준휘의시는일본에서가장오래된시가집만요슈(萬葉集,1,400여년전에성립)의와카(和歌),단카(短歌,5·7·5·7·7의5구31음절로짓는전통정형시),하이쿠(俳句,5·7·5의17음절로짓는근세기에형성된정형시)등일본고전시의정형미,음률,리듬등의형식을취하여서정적으로처연한내면세계를펼쳤다.그속에고뇌와철학이깔려있다.일본의전통정형시는각각의시에제목을붙이지않는다.그는이러한일본전통시가의단시작법을빌려하나의거대한장시로완성했다.독특한이시집은일본에서출간되자마자크게화제와기대를모았다.
또한그는아버지를통해조선의정형전통시인시조와한시를접한적이있어,그의시에는한반도의전통시세계도깔려있다.그의시의형태를대략살펴보면다음과같다.

1.일본의전통적단시형인와카,단카,하이쿠가가진공통의본질을품고있지만,글자수라든가하이쿠에들어가야하는계절어의제약없이자유롭게썼다.
2.조형적아름다움을염두에두고,필요없는언어를최소한으로생략하여완성된형태로만들었다.
3.한편한편은독립적이지만전체를하나로연결하여유기적으로전개했다.
4.시편들은소설처럼이야기성을가졌고,음악성을내포하여실내악이나교향곡이연주되는것처럼이어져있다.
5.자연이라는무대에서인간의운명과본래의자신,그리고신등을주제로삼았다.

이시집은시인이자신의인생을되돌아보고자신과관련된땅과자연,그곳에서만난사람들을독자적이고독특한음률로그려낸장대한장편연작시집이다.
시에구어체와문어체가미묘하게섞여있어자칫딱딱할수있지만,음악성과리듬감이풍부하여아름다운서정성이느껴진다.

일본의마루치마모루(丸地守,1931~)시인은안준휘시인의시를“고전적일본어의시적표현을현대시에살려,가장아름다운일본어로시를쓰는시인”이라고절찬했다.또한야마구치케이(1928~2016,시인,작가.조선과일본의고대문화의역사적관계를중시하여그것을알리는데힘을기울였으며,항상재일조선인에대한진정한이해자,지원자였다)시인은안준휘시인에대해“현대일본의단시시인중지금까지아무도이시인의경지를넘지못했다고단언한다.안준휘의시는일본단시의전형과같은시편들이다.현재일본의시인중이처럼품격있고아름다운문체와언어를사용하여시를쓰는시인은드물다.일본인들도도달하지못한경지의아름다운일본어다.일본의아름다운시어를배우고자하는분들에게도모범적인시라고생각한다.”라고최고의찬사로평가했다.이처럼문고체,의고체를살려운율에맞춰시를쓴안준휘의시는일본에서가장아름다운시어의표본으로써많은시인들에게상찬을받았다.

일본에1400년전에는시가집『만요슈』가있고,중세에는이즈미시키부(和泉式部,978~몰년미상,일본헤이안시대최고의여성시인)의시가있고,현대에는안준휘의시가있다고칭송받을정도로그의시는빼어난일본어와한자어로표현되어있다.

정체성을초월한재일디아스포라문학의정수

재일1세대시인들은일제강점기를직접겪은세대들이다.해방후에도일본에서살아야했던그들은고향과어머니는늘가슴한쪽을차지하는아련함이고애잔함이었다.조국의동족상잔과분단을무기력하게바라보아야했고,일본땅에서이념에따라남과북으로갈리었다.일본에살며일본어로시를쓰고창작활동을했지만,시적정서나정체성은조선인이었던이들세대는일본어를사용할지라도모국어는한국어였다.

그러나재일2세대이후로는재일문학에서도많은변화를한다.그들은주로일본에서태어나일본에서살아가는세대들이다.일본에서살지만그렇다고일본인이되지는못한다.그러므로영원한디아스포라,경계인으로서살아갈수밖에없었다.

최근에는재일문학을크레올(creole,지배자와피지배자사이에서태어난혼혈적인문화를뜻하는말)문학으로파악하려는주장이새롭게등장했다.자기,언어,문화인식자체를근본적으로변혁시키려는문화적사상이다.크레올예찬론자들은주로해방이후에태어난재일2세대들이다.크레올화한힘은토착문화와모국어의정통성을근거로구축해온모든제도와지식,논리를새로운비제도적인논리에의해무력화시키고,인간을내면에서부터갱신하고혁신하는새로운비전의전략을내포하고있다.그들은자신들의문학을‘조선어인가일본어인가,조선문학인가일본문학인가’를뛰어넘어,세계적인관점에서파악하여세계적인문학으로확장시킨다.두나라가뒤섞인누더기언어,불완전한언어라고멸시받아온언어를오히려새로운창조물로구축하고,언어표현을더욱적극적으로활용한다.또한모든면의혼혈성,다종성을플러스요소로파악하여,보다전략적으로방법화한다.일본어·일본문화자체나조선어·조선문화자체를포함하여그어떠한언어나문화일지라도혼합하여크레올이라는문화의기본구조로전환시킨다.이처럼재일1세대의시는조국을그리워하고분단된조국을안타까워하는시가주를이루지만,재일2세대이후의시는차츰조국을바라보는복잡한시선,또는조국과는관계없이일본전통시가바탕이된시,해외의문학적경향과접목한시,내면의흐름을쓴모더니즘의시등다양하게변화하고있다.더욱이재일3세대이후의시인들은언어와국경을뛰어넘어새로운세계로도약하고있고,일본도한반도도아니며,콜로니(colony,식민지.집단거주지등을뜻함)도,크레올도아닌새로운시의영토를향해준동(蠢動)하고있다.

안준휘시인의시는이처럼변화하는재일문학을대표하는시중하나이며,정체성을초월하여재일디아스포라의정수를가진시,재일문학의새로운영토를획득한시라고할수있다.그의시는한국과일본을포함하지만,그렇다고어디에도국한되지않는다.인간의비애와운명,자연을일체화해서누구나공감할수있는시세계를펼친다.

전통서정을구축한시세계

안준휘시인은재일2세대다.일본의이바라키현산촌에서태어나자랐고,대학에서는철학을전공했다.중학교때우연히구니키다돗포(1871~1908,일본의소설가,시인,저널리스트,편집자)의『무사시노』라는소설을읽고깊은감명을받아문학에눈을뜬다.당시그는무사시노에대해잘몰랐다.나중에대학생이되었을때,우연히무사시노지역이한반도도래인들과관련이있다는것을알게된다.무사시노의어원은서기600년대에한반도도래인들이직물기술과함께가져온마의일종인‘모시풀종자의들판(苧種子野)’이라는의미였다.그것을알게된그는형용할수없는뜨거움이가슴속에서차오른다.그소설집을들고무사시노의무사시사카이역에내려서자그때까지본적없는붉은색을띤커다란보름달이두둥실떠있었다고한다.그가‘무사시노모시풀들판’과만나는순간이었다.환상같기도하고몽상같기도한그의무사시노와의신비한만남이었다.그는1,400년의아득한시공을넘어,불가사의한강한힘에이끌려무사시노땅을밟았다.그때까지한번도가본적없는한국이었지만,어쩌면그심층에자신의근원에대한물음을품고있었는지도모른다.

이후로무사시노는그의시세계와정신세계에서빼놓을수없는존재가된다.소년시절에읽은소설집에의해눈뜬그의자연관은‘자연의미와질서에서신을보는경지’에이른다.그리고신이불러주는것을받아쓰듯무사시노를소재로방대한시를써나간다.

일본강점기에일본에건너간재일한국인들은대부분신산한삶을살았다.그의어머니는부산항에서16세때연락선을타고시모노세키로건너간제사공장(누에실뽑는공장)의여공이었고,같은경로로일본에온아버지와결혼하여자신을낳았다.그는첫번째결혼한재일교포아내와도헤어져야했다.그는어려서부터쭉죽음을생각했다고한다.허무와상실은그를죽음과친밀하게했다.부모님이정착한일본인마을에는그들가족만이유일한조선인이었던것도큰원인이었다고한다.

그러나일상에서는아무리힘들어도자연은언제나그를따뜻하게받아들여주고포근하게감싸주었다.고향의솔바람과멧새지저귀는소리,잡초속에서도라지꽃이흔들리는풍경을떠올리면위안이되곤했다.여기서그의고향은한반도가아니고자신이나고자란일본의고향을말한다.그는고뇌와죽음의유혹에서손잡아준구원의여인을무사시노에서운명적으로만난다.그리고세상의중심에그녀를두고쉬지않고시를써내려간다.그에게무사시노는자신의영혼과하나인자연이며,어렸을때부모님께들었던부모님의고향인분단전의한반도이며,그상상속한반도와하나가되는원고향이었던것이다.

깊은적요감과고요함의여백

언어를극도로응축하여쓴안준휘의시는페이지마다넓은여백을품고있다.이여백은시인이무언가를전하고자하는의미와도같고,무사시노에불어오는보이지않는바람과도같다.무사시노에서보낸과거가되살아나,나무,꽃,바람,물결,햇빛,새떼등모든시간과자연이페이지의여백마다펼쳐져있는듯하다.

안준휘시인은걷는사람이며보는사람이다.보는것,말하는것,침묵하는것,그리고나머지는여백이다.투명함이고,적요감이고,고요함이다.이적요감과고요함은무엇일까.그것은그가이심경에도달할때까지의긴세월에걸친고통과의싸움,그리고보편적인한사람으로서살아가기위해정신적,사상적갈등을겪으며다다른경지라는생각이든다.그러나이시집에는한도,원망도없다.고통의그림자도없다.

대학과대학원에서독일철학을전공한영향때문인지,그의시에는예리한감성과엄격하게언어를다듬어한편의시를완성하는견실함이있다.수도없이무두질한그의시는극도로짧지만,하나하나결코짧은시가아니다.최소한의글자속에삼라만상과자연,고뇌,사랑,인간존재의아름다움과경이로움등모든것이응축되어절정을이룬다.

그의시는진한고독이느껴지면서도항상절망하지않는빛을가졌다.그강인한빛은타인에게까지미친다.그는존재하는모든것은반드시소멸한다는것을끊임없이생각하며현실의고통과아픔을뛰어넘었다.그리고1400년전으로시간여행을떠나무사시노들판에서서멀리뻗쳐나가는모시들판의연기를바라보며넓은대지의제단에제사를드린다.

일본에게병합당해고향을떠나적국의시골에뿌리내린아버지와어린아들,그아이를바라보는아버지의따스한눈빛속에감춰진슬픔.아들은섬세하게그모든것을체화하여자신의시속에녹여냈다.
이시집을번역하는동안,시에포함된음률과리듬을살리고,응축된언어가풀어지지않도록숨죽여응시했다.시인은떠나는사람이기도하다.우리들또한자신의여행을계속해나간다.이시인과시집의여행길을배웅하며,그길에꽃잎흩날리고,햇살환한여로이기를염원한다.

이시집은일본의명문출판사시초샤(思潮社)에서출간된『무사시노』를바탕으로번역했음을일러둔다.격조높고단아한안준휘시인의시가자신의뿌리이자부모님의고향인한국에서널리사랑받기를바라는마음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