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 인형 (장인환 시집)

목각 인형 (장인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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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장인환의 첫 시집 『목각인형』은 외부와 소통이 끊긴 단독자가 점차 늘어나는 최근 우리 사회의 면모를 반영한다. 타자와 나누는 말의 효능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는 화자의 목소리에 공감하면서 이 시집을 읽게 된다. 그가 먼저 말을 걸어 소통하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가 건넨 말의 빈틈을 메우지 못한다. 가족·친구·연인, 그리고 가까이 사는 이웃들과의 관계 경험과 상념들이 그 타자성을 사유하는 계기를 안길 뿐이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세대 간, 부부간, 부자간, 이웃 간 갈등에 주목하여 이 타자적 존재들과 어떠한 배려와 마음 씀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거지는 기성세대와 Z세대 간 갈등을 가족 내 관계로 짚어나가면서 아버지의 자리에 변화가 생겼음을 환기한다.
수사를 동원하지 않고 일상어로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시인의 실제 경험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어쩌면 이는 시인의 고도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라고 믿게 만들면서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인이 있다면 이 같은 화법이 가능하겠기에 해보는 생각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게 이 시집의 진실 내용이다. 대부분의 시에 등장하는 주체는 독백체로 자신의 경험에 얽힌 인물 간 관계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녹아 있는 아버지의 외로움에 우리가 어떤 위안이 될 수 있을지 사유하게 하는 시집이다.
- 김효숙(문학평론가)
저자

장인환

저자:장인환
1972년전라남도고흥에서태어나2022년『시와편견』으로등단했다.
한국시인협회와시연회회원으로활동하고,현재초등학교에봉직하고있다.

목차


1부

책읽는강아지·12
콜라주·13
화살표·14
거짓말·16
스테이플러·18
재볼게요·19
오학년이반·20
스카치캔디·21
미련·22
사방치기·24
소원·26
지키지못할약속·28
부메랑·29
소리·30

2부

진실·34
중독·35
공중전화·36
갈대·37
애인·38
미술시간·40
게임·42
부부·43
Z세대·44
배보다배꼽·46
관심·47
마스크KF-94·48
그냥혼자고장났어요·49
사랑방정식·50
융에게·51

3부

애완동물·54
부부싸움·55
금연·56
미인도·57
법칙·58
부모·59
가뭄·60
일용직·61
죄수·62
슈퍼대디·63
솔직함·64
실직·65
허수아비·66
게임지존·68
로그인·70

4부

목각인형·74
행복·76
이웃·77
템플스테이·78
어느날·79
화장지·80
재회·81
쪽잠·82
사나이·83
정상에서·84
지우개·85
이유·86
보드마카·87
리모컨·88
삼복이·90
습관·91

해설|김효숙_사람의말과그빈틈·92

출판사 서평

인간은말을할수있어서만유중가장소통이원활한종이라는믿음이있다.하지만말은이해와오해를동시에유발하기때문에소통의어려움이필연이다.현시대는인간의말을알아듣고인간처럼써내는기술까지개발하는시대여서인간의말이해석되지않는세계를상상하기어렵다.말이란본래과학의황무지에서태어나지만,지금은과학처럼정교한말의탄생이가능한시대다.이런마당에도우리는말때문에갈등이깊어지면서말의빈틈을수시로경험한다.사람의말이사람사이를갈라놓지만,이것을다시봉합하기는어려운경우가흔히있다.

장인환의첫시집『목각인형』은외부와소통이끊긴단독자가점차늘어나는최근우리사회의면모를반영한다.타자와나누는말의효능에대한질문을이어가는화자의목소리에공감하면서이시집을읽게된다.그가먼저말을걸어소통하려하지만그누구도그가건넨말의빈틈을메우지못한다.가족·친구·연인,그리고가까이사는이웃들과의관계경험과상념들이그타자성을사유하는계기를안길뿐이다.시인은이시집에서세대간,부부간,부자간,이웃간갈등에주목하여이타자적존재들과어떠한배려와마음씀이가능한지를묻고있다.특히최근우리사회에서불거지는기성세대와Z세대간갈등을가족내관계로짚어나가면서아버지의자리에변화가생겼음을환기한다.

시인은작은공동체인가정의평화를지키기위해일방적으로한사람이희생하도록몰아가는일보다중요한것이서로를위한배려라고본다.누군가희생되어야평화와안정이가능하지만과연누가먼저그일을자임할것인지는크나큰고민거리가아닐수없다.그래서이겠지만이시집에는아버지가묵언수행자처럼이일을자처하는경우가많다.누구보다먼저마음씀의미덕을발휘하여가족의평화를조성하고싶은사람이아버지다.그는고통을고통이라말하지않고,슬픔을슬픔이라말하지않는다.고통이없는사람처럼묵묵히살아가는그의내심을헤아려보게하고,그가피우는담배한대의의미를생각해보도록이끈다.

러시아의작가톨스토이는소설『안나카레니나』에서첫문장을이렇게썼다.“행복한가정은모두모습이비슷하고,불행한가정은모두제각각의불행을안고있다.”이문장은제각기다른불행을앓고있는사람들이가족이라는이름으로같은공간에서살아가야하는일에대한곤경이녹아있다.사회의가장작은단위를가족공동체로알고있는우리는작가가재현한가족이야기를읽으면서미적즐거움을누리지만,막상자신이속한가족공동체에불행의요인이끼어든다면사정은달라질것이다.아래시는단지불행한가족이야기에그치지않고이시대아버지의위상을아들의그것과대비하여보여준다.

지니티비꺼
아니야지니티비켜

조용히말하던서로의목소리가
점점언성이높아집니다

위험한신경전이
말이없는가운데오가고
리모컨을찾아쥔아들이
말없이
틱틱
시청권을찾아쟁취합니다

―「리모컨」부분

누구나가족내에서성장통이필연인것처럼시적화자의경험도가족안에서먼저일어난다.가부장중심의가족구도에서억압되었던욕구에관하여말하는경우는시인에게통과의례같은것이다.장인환시인의가족이야기는개별시편에실려나오지만,이시들을한줄에꿰어읽다보면매우의미있는지점을발견할수있다.제각기자기욕구에충실한가족구성원들로하여평온과안락,공평함등의균형이깨진가정의분위기를읽을수있다.이는어느가정이든희로애락을나누는공동운명체로존속하려하는한흔히일어날법한이야기다.이같은당위성을잃어버릴때가족간갈등을자초하고,이시집의화자인아버지처럼홀로말없는고투를이어가야한다.

명령어“꺼”와“켜”에아버지와아들의감정이첨예하게실려있다.리모컨장악력이아버지에게있을거라고흔히생각하지만시현실에서는의외로아들이그주권자다.그가선점한리모컨때문에방에서밀려난아버지가감정의균형을유지하려애쓰고있다.서로취향이달라서밀려난아버지가할수있는건마음을다스리며아무일없는척생활현장으로복귀하는일이다.시인이쓴것처럼“조용한음악을들으며/고급스런감정을더듬어보는데”아들이텔레비전을켜놓고소파의주인인양앉아있는상황,텔레비전의장악력이음악을압도하는가운데조용한음악은조용한아버지처럼‘꺼진(turnedoff)’상황이다.다음시에서는조부-아버지-아들로이어지는3대의에피소드를들려준다.이로미루어아들은“Z세대”다.

누구든공평하게단독자로이세계에던져진다.부모슬하에서성장기를거치면서아버지를넘어서고자할때비로소사회에나가홀로설수있다는자신감도생긴다.세상의아들들은아버지극복후아버지가되며,결혼과출산,양육의시기를지나면다시금부부만남게된다.장인환시인은어린시절의추억담을시작으로,한인간의생애곡선을따라일어날법한일들을이시집에매우세심하게담아내고있다.부부가한마음으로키운자녀가성인이되었을때문득빈공간이생기고,부부사이를부드럽게매개해주던자녀가그자리에없을때빈둥지증후군을앓기도한다.그러면서이세계에홀로던져진자신을다시금자각하기에이른다.

아름다운꽃밭이펼쳐지고뒤로보이는
쉼터에가서드러눕고싶지만
바윗덩이가슴에담고
세상속동행자를찾아보지만
한명한명왔다가바라보고사라진다
유창한말도사라진다
언제나이상황끝이나는지
기대하는마음을허공에걸어둔다

늘제자리다
오늘도허허벌판에하늘을이고서있다

―「허수아비」부분

자아상을“허수아비”라지칭하는화자의마음은지금허공에걸려있는듯허하기만하다.마음의거처를자기의몸이아니라허공으로보고있다.홀로선채,지나가는사람들중에서“동행자를찾아보지만”누구나왔던걸음으로그냥뒤돌아선다.기다림과기대가한낱허수아비같은자신에게서피어올랐다사라질뿐이다.세상은온통“허허벌판”이고,화자의자리는“늘제자리”여서기대가먼곳까지이르지못한다.“아름다운꽃밭이펼쳐”진다해도,“뒤로보이는/쉼터”가있다해도자유의지발산은생각으로그친다.꿈을꾸는일마저제한된다면서화자는한인간에게주어진삶의조건이결정되어버린정황을이야기한다.그에게는조건결정론에저항하기어려운조건이있는데언제나제자리를지켜야한다는점이다.그의이름은다름아닌“아비”다.

위의시는앉아있어도누워있어도아비일수밖에없는자의애환을이야기한다.“힘줄이울퉁불퉁”불거지고,“허리춤에대검”을찬모습,“입은굳게다물고쉼없이조잘대는것을/듣는귀”를가진그는자신보다는가족을지킨다는명분을한시도잊지않는다.앞에서부터읽어온대로장인환시는장황한레토릭을동원하지않고솔직담백한언어로시적상황을구사한다.아비로서,남편으로서,이웃으로서애쓰는모습이애처로워보일만큼그는진정어린마음으로타자를대한다.여성의목소리가우세한최근의시에서아버지의솔직한목소리를듣는건매우희귀한시읽기경험이다.아픔도상처도눈물도없을것처럼강인해보이는아버지의애환을읽으면서,여성주의시가앞서가는시대에뒷전으로밀려버린남성시의현주소를보게된다.상대적타자인남성과여성이함께어우러져살아가는세상의조화로움을위하여장인환시인이용기있는목소리를냈을것이다.이제시인은진정한자아를찾아어린시절로돌아가고자한다.

만지면감촉이좋은
목각인형
손때가묻어서군데군데
거무스름한윤기가돌지만
아직도나무냄새가난다

분리가된조각을
이젠설명서가없어도
척척맞추지만
어렸을때의상상속처럼
살아움직이지않는다

아들도가지고놀지않는
목각인형을버려야할까
가지고있어야할까
망설이다버리기는아까워
상자에일기장과함께
다시보관해둡니다.

나와이야기를나눌
어린친구가생기면
목각인형을선물할생각입니다

―「목각인형」전문

되새겨읽을수록의미의진폭이커지는시다.목각인형,일기장,그리고자신과“이야기를나눌/어린친구”라는구절에화자의심리지층이형성되어있다.우리의마음을애잔하게하는이시한편만으로도장인환시인은모든말을다하고있는듯하다.화자는어린시절의친구였던목각인형을일기장과함께지금도잘보관하고있다.자신과이야기를나눌어린친구가생기기를바라면서그때까지인형을보관해두겠다고말한다.아이시절로돌아갈수는없을지라도아이의마음이되어혼잣말로라도목각인형과즐겁게대화를나눌수있는세계를꿈꾼다.라캉에기대어읽으면,거울속의자신을타자로인식하는그순간에자아상도알게되는데그는이것을이마고(imago)라칭하면서최초의이마고를타자인식의원리로보았다.요컨대자아인식과타자발견의동시성에의한환상형성이그것이다.이후자아는타자에대한환상을끊임없이갖게된다.

위의시에서목각인형을화자의이마고로보면그가이야기상대로어린친구를기다리는이유를짐작하기어렵지않다.독백이자신과의대화인것처럼목각인형은화자의모습이거울에비친자화상이라할수있다.그의성장기에대화상대였던목각인형이사실상화자의독백대상으로서이마고라는점에서,성인이된지금도그는이장난감을버릴수가없다.일기장을버리지않는이유도같은맥락에서이해가가능하다.일기의독백체가언어기록물이라는점과목각인형의상(像)을같은지평에놓고볼때이는고스란히화자의언어,화자의자화상을대신한다.지금화자가바라는바는최초의자화상같은어린친구와의만남이며,그와사람의말로소통하고싶다는것이다.

그가어린친구를기다리는것은,목각인형에게했던어린시절의말로써만그친구와소통할수있다고여기기때문이다.타자의신비로움을처음알게된그날에자아상도보았던어린시절의화자,그리고목각인형이생겼을때부터나누었던많은말들은분명독백체였으리라.그때맡았던나무냄새를아직도품고있는인형을어린친구에게선물해주고싶다는화자에게는모든것이변한다해도불변하는것이있다.자아는타자성을의식하면서부터말로소통하고자한다는것,라캉의언술대로라면,주체가형성되는상징계에서는주체들간상호작용에어떤식으로든언어가필요하다는점이다.첫시집을세상으로내보내는장인환시인의마음에온세상이들어앉아있을것이다.그리고그마음에목각인형의나무냄새를품은듯한한어린아이가있어자신의이야기를들려주고싶어한다.아무쪼록아이처럼투명하고담백한말로소통하고자하는시심이이후에도내내변하지않기를기대한다.

시인의말

길가에핀꽃위에요정
수염이하얀신선
옛친구와마음이머물렀던여인
상상한모든것들이눈에아른거리면멈추어서서나는글을씁니다.
오랫동안이어왔던이야기의한조각을써놓고고쳤다다시썼다합니다.
제가만든이야기끝낼수가없군요.
누군가제가쓴이야기에저를포함시켜줄때까지요.
바램과는다르게사라져가는다른이의열망이찾아오는것아닌가요
혼란스런꿈을꾸고나면또누군가를사랑해야만하는숙제가주어집니다.
사내들의정치판이야기와낮은자들의천박한음담패설속에서나는계속해서꿈을꿀수있는아내와어머니를찾고있습니다.
시를써두고시를다시읽으면그시는나를거부하고있는것을느낍니다.제가아닌다른주인을찾고있는것처럼말이지요
참오랫동안혼자낑낑대다써놓은글을황금알출판사를통해내보냅니다.
여러분이이시의주인공이되어주시지않겠습니까?저는당신에게존재하는누군가이면만족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