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에 쉬다 (황금알 시인선 | 312 | 양장본 Hardcover)

수평에 쉬다 (황금알 시인선 | 312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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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수평에 쉬다」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실존적 통찰을 발견하고 이를 간결한 시적 언어로 풀어낸 조승래 시의 정수를 보여준다. 인간 존재의 구조를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사유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고정된 근대적 사고와 경쟁 중심의 삶을 벗어난 새로운 삶의 철학을 제시한다. 이 시는 도시성과 자연성, 개인성과 공동체, 삶과 죽음, 수직과 수평을 조화롭게 교차시키며, 시인이 추구하는 ‘고요한 긍정의 시학’을 강하게 드러내는 대표작이라 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죽음조차 평등한 생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공동체적 삶의 윤리까지 성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조승래 시 세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편들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서 출발하여 삶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통찰을 제시하는 작품집이다. 그의 시는 일상성과 존재론적 질문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독자에게 삶을 더욱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며,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존재의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도록 안내한다.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필)

조승래 시인의 시편들은 재밌게 잘 읽힌다. 일상에서 솟구치는 언어와 마음으로 쉽게 쉽게 시를 쓴다. 이리저리 머리 굴려 가며 써 머리 아픈 시가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난 시이기에 독자 가슴에 그대로 직격 해 들어가 둔중한 울림과 깨달음을 준다. 그리하여 우리네 삶과 세상에 가없는 깊이를 돌려주고 있다.
“내 귀도 열리어/말이 부질없어 침묵했다는// 그 소리가 들릴 것이다/ 나잇값을 치르고 난 뒤쯤에는”이라는 구절에 드러나듯 ‘나잇값’, 삶의 경륜에서 시가 우러나고 있다. ‘말’, 언어로는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침묵’,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지경을 일상의 말로 다가서는 시편들이기에 쉽고도 깊이 있는 울림을 주고 있다.
- 이경철(문학평론가)
저자

조승래

저자:조승래
경남함안에서태어나2010년『시와시학』으로등단하여,계간문예문학상(2020),남양주조지훈문학상(2021)을수상했습니다.시집으로『몽고조랑말』『내생의워낭소리』『타지않는점』『하오의숲』『칭다오잔교위』『어느봄바다활동성어류에대한보고서』『적막이오는순서』,시선집『수렵사회의귀가』,공동시집『동행』『길위의길』,수필집『풍경』등을펴냈습니다.한국타이어상무이사를거쳐단국대학교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역임하고,현재한국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문학의집서울이사,계간문예작가회부회장,시와시학문인회회장,시향문학회회장,가락문학회,함안문인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습니다.특히문단의눈길을끌고있는뉴스경남‘시통공간詩通空間’과인져리타임‘좋은시’코너에서한국문단의다양한시편들을리뷰하고있습니다.

목차


1부불의맛

나잇값·12
초,분,시·13
비몽사몽·14
자리내어주기·15
재기再起―절망은없다·16
천사·17
일출과일몰·18
가족정원·19
불의맛·20
기회·21
수평과공평·22
과제2.0·23
새로운꿈·24
인터폰소리·25
진행형·26
다산의습성·27

2부수평과공평

잘,가셨을까·30
대보름·31
오래된버릇·32
수목장·33
뼈를뽑다·34
그놈을잡아서·35
허공의연기·36
기어코·38
간격에대한집착·39
풀밭위의기도·40
밥생각·41
눈시울떨림증·42
오래걸리는계산·43
한계·44
소리에젖다·45
흰죽,미음생각―매미3·46

3부뼈가굳다

인칭의거주지·48
치료와치유·50
뼈가굳다·51
푸른눈·52
허물의꿈·54
석고데생·55
수작酬酌·56
짝지가없다·58
귀향·59
나의시농장·60
시급한생계비·62
등뒤의시선·63
나무악보·64
설화舌禍축제·66
비과세딱지·68
씨감자의눈·69

4부절필은없다

유비무환·72
동명이인·73
00님혜존·74
무효기간·76
절필은없다·77
비우면보여·78
만년설만년수·79
수평에쉬다·80
야간라이더·82
아득한저너머·83
명사名詞의세월·85
일상의고요·86
주름잡다·87
우리아빠에게이를거야·88
시선너머·89
반사이익·90

5부텃밭원고지

내부의적들·92
시비詩碑시비是非·94
그림자와의거리·95
하나만으로·96
꿈의꿈·97
이슬·98
등신等神들·99
‘아니’가아니라·100
뼈가있는말·102
사람을찾아서·103
소리를좇다가·104
물한잔의춤·106
텃밭원고지·107
은행나무와효경孝經·108
유사와상이·109
솥뚜껑·110

해설|황정산_사유의힘으로빚어낸긍정의언어·111

출판사 서평

사유의힘으로빚어낸긍정의언어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1.들어가며

조승래시인의시들을읽으면먼저떠오르는생각이‘깊이’와‘넉넉함’이다.그의시들은우리를무한한사유의공간으로안내하여안온한긍정의세계에안착하도록인도한다.요설로난삽해진언어와신경증인예민한감각만으로우리의눈과마음을피곤하게하는최근시들을읽다조승래의시들을읽는순간사유의깊이에서오는평안한안정감이이모든피로를씻어준다.그는삶을깊이들여다보는또하나의눈을더가지고있는것같다.특히,일상에서출발하여인간존재와시간,언어,관계의본질에까지도달하는그의시편들은읽는사람으로하여금고요한사유의강을건너게한다.그렇다고그의시가추상적이거나사변적이라는것은아니다.조승래시인은일상의순간을포착하여그안에내재하는진실을들여다보는예리한눈을가지고있다.이깊은시선과오랜삶의연륜은겉으로보이는피상적세계를삶의내면을바라보는사유의세계로확장한다.한마디로조승래시인은사물에대한구체적감각경험을깊은철학적깨달음으로심화시킬줄아는시인이다.그의눈과입을통하면모든일상의사물은시적언어로변화되고그것은사유의재료가되어삶의경구로재탄생한다.이글은‘사유의깊이’라는관점에서어떻게조승래시인의시편들이일상을철학으로,감각을존재론으로전환하는지를탐색하고자한다.

2.사유의힘과감각의언어

조승래시인은사물의내면을바라보는특별한눈을가졌다.이눈으로바라보는사물은일상을벗어나사유의세계로들어가다른존재가된다.‘목검’,‘영양보조식품’,‘커피’,‘텃밭’과같은일상적소재는시인의손과입을거치며사유의언어로재탄생한다.가령다음과같은시를살펴보자.

3백년넘은올리브나무를깎아만든
목검이진열대위에누워있다

스페인에서살다가죽어서는
한국에까지와서살아있다

말을걸어도아무런대답도안하므로
네가아직죽지않았음을안다

내가백살정도는되어서
네흉내를내며입을다물면

내귀도열리어
말이부질없어침묵했다는

그소리가들릴것이다
나잇값을치르고난뒤쯤에는
-「나잇값」전문

시인은자신이소중하게간직한목검을통해,침묵이지혜로승화되는과정을그려내고있다.세월을견디며살아온올리브나무목검은침묵속에서자신의존재가치를드러낸다.목검의기품있는외양에서려있는그것의강도와무게감은구태여그목검을휘둘러보지않아도우리는짐작할수있다.이렇듯말없이놓여있는오래된목검은한존재의사멸을보여주는것이아니라오히려그것이가진생의깊이를드러낸다.이침묵을아는것이“나잇값”이라고시인은말하고있다.말은자신을드러내기위해대개사용된다.젊은시절에는자신의존재를알리기위하여자신의주장을사람들에게강변하기위해말을하며살아왔다.이렇게말하는동안우리는자신의귀를닫는다.하지만입을닫고말을멈추는순간우리의귀는열리게된다.그리고그귀가열릴때우리가얼마나불필요한말을많이하고살았는지깨닫게된다.말은자신을표현하는것이아니라끊임없이자신을지우는것임에반해,침묵은존재를존재로살아있게하는것이라고시인은생각한다.“말을걸어도아무런대답도안하므로/네가아직죽지않았음을안다”라는두행이바로이런생각에도달하게하는빛나는구절이다.

속까지까맣게태워낸불맛을뜨겁게내린커피
잔속에서얼음조각을만나벌인타협,
흑갈색고집이차가운투명과악수하며만났지만

점차커피는연갈색으로얼음은빙하의꿈을버리며
시간의얼굴을씻고있었어
아메리카노,아이스의불맛은시원하지

찻잔의바깥에는
시간이남긴것으로보이는
진땀이차갑게송송슬고있었어
-「불의맛」전문

커피에서불맛을느끼는시인의예리한감각이돋보이는작품이다.시인의예민한감각은이미볶아져한잔의액체로변하고더욱이“얼음조각”이채워진아이스아메리카노커피안에스며있는불꽃의맛을감지해내고있다.시인은커피의이불맛과얼음이섞이는장면을통해뜨거움과차가움의감각을체현하게하고고집과타협이라는인간관계의중요한지점을생각하게만든다.그런데이시에서가장빛나는대목은그러한관계의긴장감을“진땀이차갑게송송슬고있”는커피가담기유리잔의모습을감각적으로묘사하여생생하게그려내고있다는점에서찾을수있다.우리는모두긴장속에서일상의삶을영위하며살고있다.그런데그긴장은대개사람과사람사이에서발생한다.사업을하거나물건을파는영업을하거나생산이나유통라인에배속돼작업을하더라도다른사람과의관계에서이모든일들이이루어진다.그리고그관계가긴장을만든다.불맛과얼음사이에서“진땀을차갑게송송슬고”있는유리잔처럼우리도고집과타협의긴장속에서진땀흘리는삶을살아가고있다는것이다.감각적인언어로일상사물을그려내면서조화와타협이라는삶의이치를생각하게하는통찰력의시이다.
조승래시인의많은시들에서시인의시선은내면으로향해있다.시인은이내면의시선을통해끊임없이자신을돌아본다.

또하늘을오래보았습니다
파란허공아래구름이떠다니고
마른잎날다가착륙하는
그틈새로잠자리들이피해다닙니다

만개의카메라로도다찍을수없는
넓이와높이의하늘에
가득찬얼굴이있습니다
저세상으로가신어머니의얼굴입니다

젖은눈으로보아야잘보이지만
초점이잘안잡혀
손수건으로눈비비기를수십년,
참오래된하늘보기습관입니다
-「오래된버릇」전문

이시는상실과기억의층위를더듬는다.시인은하늘을올려다보는것으로어머니를추모한다.아마도돌아가신어머니가그곳에계신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이때하늘을올려다보는것은어머니를기억하는방식이다.그런데이그리움이반복되어일상적인습관이되면그것은매너리즘에빠지게되고추모의염은습관속에서희미해질수밖에없다.우리는보이지않는것을상상하고추구하고추모하는행위를습관적으로하고만다.일주일에한번교회가는것만으로예수님의가르침을대신하고,일년에한번제사지내는것으로조상의은혜를더는고마워하지않는다.시인은특별한의식을통해이런내용없는관습적행위를벗어나고자한다.그것은하늘보기이다.시인이“초점이잘안잡혀”희미해진눈을손수건으로비벼서라도하늘을분명히보고자한다.이는이애도의의식속에깃든진실한마음을생생하게간직하고싶어서이다.그래서시인은이생생하게그려진하늘의모습을감각적언어로마음속에단단히새겨넣는다.이시의1연에서어머니가그리워쳐다본하늘에있는구름과잠자리의모습을구태여강조하여보여주는이유는바로여기에있다.

3.긍정의세계관과수평의상상력

조승래시인의시들에서보이는가장큰특징은삶에대한든든한긍정적자세이다.시인은이긍정의언어를통해강퍅한세상을견디고타인의삶을넉넉한마음으로받아들이고있다.이런긍정적세계관은그의시에등장하는시간에대한관념속에서잘확인된다.그의시들에서시간은늘중요한배경이자화두이다.가령다음시를보자.

사방천지이어진철로위
종착역에가보면역은또있고

고향역저만치두고도
역마살무거워갈수가없네

내배역은아직도진행형
어느간이역도세울수없네
-「진행형」전문

기차역을통해시간의흐름을비유적으로형상화한작품이다.이시에는우리네삶은계속되는여정이며,종착점은또다른시작이라는인식이담겨있다.시인역시고향을그리워하지만머물수없는존재로서,‘역마살’이라는운명을타고난자로등장한다.이시에는그런시인의내면모습이잘드러나있다.“어느간이역도세울수없네”라는한탄은머물수없어안식할수없다는자조이기도하지만아직은시인이라는자신의길을가고있다는자신감의표현이기도하다.“진행형”이라는제목을이를잘대변해준다.아직끝나지않는시간을그대로받아들이며그것으로무거운역마살의삶을받아들이고있다.고향을지척에두고시인은왜가지못하는것일까?시인에게는안주보다는정처없는유랑이더중요하기때문이다.비록머물곳없는피곤한삶이기는하지만여전히“진행형”으로살가치가있음을인정하는긍정적인인생관이이시에잘나타나있다.
다음시는이공존의정신을수평적이미지로다시확인시키고있다.

승강기에25층,B1층위치표시등이켜진새벽
늦은귀가와이른출타를한사람들이있음을추측하며
곤충도감개미집단면도에서본것과대칭형구조의
아파트를비교해본다.

지하에서지면으로나온개미와지상에서지면으로나온사람들
서로의만남이쉽지않은겨울이지만
누구나수평에등을댄채잠들거나깨고
그익숙함으로세상은평등하다고생각하며산다

그아니좋은가,
햇살이평평하게찾아오는지상의시간에
층마다등을펴고쉴수있는공간
수직의이동에서멈추어볼만한수평이있으니

아니그러한가,
생사불문하고수평은등뒤를쫓아다니고
누군가의등이되려는등나무가
제등비틀어가며가는그너머또수평이있으니
-「수평에쉬다」전문

우리는수직의상승을꿈꾸며산다.출세하고권력을획득해높은위치에올라서고아파트나빌딩도높게지어야성공이고발전이라고생각한다.그높은수직의아파트공간에서편리하고부유한삶을꿈꾼다.그래서경쟁을하고남을누르며밟아서야한다.이수직적사고가우리를불행하게하고우리모두를갈등구조에몰아넣는다.하지만시인은생각한다.아파트나개미집이나모두삶의공간이나쉼의공간은다수평이라는것이다.수평의공간에서쉬기위해우리는살고있고.“등비틀어가며”자라도결국은수평을유지하여누군가의등이되는등나무처럼살아가는삶이가장행복한삶임을시인은역설하고있다.인생은수직적으로움직이지만종국은모두수평에서쉰다는인생의평등함을받아들이는긍정적세계관을이시에서엿볼수있다.결국,이수평은영원한쉼이라는죽음마저의연하게받아들이는자세이기도하다.

4.맺으며

이시집의시들은모두하나의공통된믿음위에서서있다.그것은“사유하는삶이야말로살아있는삶”이라는깨달음이다.시인이다루는사물,감정,관계,시간,언어모두가삶을다시생각하게만드는재료이며또한화두이기도하다.시인은이모두를통해독자에게‘깊이있는삶’즉사유하는삶을살기를권유한다.어쩌면조승래시인에게시를쓴다는행위는곧‘삶을사유한다’는말과다르지않을것이다.다음시가이를잘말해준다.

제몸만큼제마음만큼쓰다가쉬었다가
다시이세상원고지위에긁적이는그어느존재들도
시詩를다쓰더라고굳이말하는이는없었다.

멈추었으면삶이아니다.
삶은멈추지않는다.
-「절필은없다」부분

삶이계속되는한절필은없다.시인에게시는삶의이유이고삶자체이기도하다.자연의미물도끊임없이흔적을남기는것처럼,삶은멈출수없고글도멈출수없다.시인은존재의흔적을남기며계속해서‘삶의시’를써가고자한다.그아름다운여정을우리는이시집에서확인할수있다.그리고생생한시인의육성을마음속으로듣는다.“쓰지않으면삶이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