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형용 (동시영 시선집 | 양장본 Hardcover)

기억의 형용 (동시영 시선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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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동시영의 시선집 『기억의 형용사』는 그동안 펴낸 열 권의 시집이 집성集成된 미학적 결실이다. 그는 이제 삶의 연륜에서 빚어지는 오랜 감동과 깨달음의 세계를 노래함으로써, 그 안에 나날의 삶에 대한 발견의 순간을 녹이고, 인간과 세계를 원초적으로 이어주는 고리로서의 언어를 열망해간다. 그래서 그의 시는 우리에게 이성적 사유를 위한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고, 실천적 삶에 대한 자극을 주기도 하며, 시인 자신의 순수 원형을 상상케 함으로써 어떤 삶의 표지標識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가 수행해가는 이러한 시쓰기의 도정은 삶의 순간순간을 지탱해온 운동의 결과로서, 시인 스스로의 실존적 조건을 힘겹고도 아름답게 유지해가는 원리로 각인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지남指南을 탐색해갈 수 있었으리라.
결국 동시영의 시는 서정의 원리에 대한 섬세한 감각, 삶의 근원과 구체성에 착목한 의미 있는 성취로 우리 문학사에 남을 것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불모성에 대한 유력한 항체를 쉼 없이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만의 고전적 사유와 감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이 오랜 시간 바쳐온 등불 같은 사유와 감각을 통해 자신의 시편들을 더욱 밝혀갈 것이다. 또한 그의 기억을 만들어준 소재 역시 그 스스로 만나온 사람과 사물이었으니, 앞으로도 이러한 것들이 동시영 시의 확고한 바탕이자 궁극이 되어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존재론적 기원을 환기하는 시공간에서 생의 근거ground를 구성하면서 또 다른 시쓰기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 ‘또 다른 시쓰기’의 모습은 그 특유의 실존적 성찰과 함께 다양한 형식과 기법, 구조적 완결성을 구축해가는 ‘동시영 브랜드’의 과정으로 하염없이 이어져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시인 동시영’의 이러한 아름다운 언어와 사유가 우리 시단을 출렁이게 하는 것을, 매혹의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저자

동시영

충북괴산에서태어나동국대학교국어국문학과졸업이후한양대학교국어국문학과박사과정을졸업했다(문학박사).이후독일레겐스부르크대학교인문학부를수학하고,한국관광대학교와중국길림재경대학교교수를역임했다.2003년『다층』으로등단했다.
시집으로『미래사냥』『낯선신을찾아서』『신이걸어주는전화』『십일월의눈동자』『시간의카니발』(선집)『너였는가나였는가그리움인가』『비밀의향기』『일상의아리아』『펜아래흐르는강물』『마법의문자』『수평선은물에젖지않는다』를펴냈다.그밖의저서로는『노천명시와기호학』『한국문학과기호학』『현대시의기호학』『여행에서문화를만나다』『문학에서여행을만나다』등이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의예술창작지원금수혜(2005년),박화목문학상시부문본상수상(2010년),시와시학상젊은시인상수상(2011년),한국불교문학상대상수상(2018년),제32회동국문학상(2019년),영랑문학상평론대상수상(2020),한국문인협회박종화문학상(2021),문학청춘작품상(2024년)을수상했다.

목차

1부수평선은물에젖지않는다

그를방랑하다·12
생각은누구의주소인가·15
해석을넘어가고질문으로간다·18
춤추는물컵·20
채널9.20·24
수평선은물에젖지않는다·26
리기산이시속을지나가다·27
생각을발가벗기다·30
군산·32
줄장미가피어나는생각·34
푸른건반,베른·36
바람의종을치다·39
시간에붙어있는이끼를떼다·41
0도의흐름·43
판화전·45
나를여는문·47
장난감과생각·49
책이달빛을읽다·50
기억의형용사·53
취한물·55
‘챙모자처럼’,지금을살짝눌러쓰다·56
사람이라는곳으로가보다·58
시계처럼눈뜨다·59
오캔,넷캔,꿈캔·61

2부마법의문자,펜아래흐르는강물

세상부스러기조금맛보다·64
바텐더가있는풍경·66
황혼과바이올린소리사이로·67
앞으로만그어대는직선·68
허공에싹트는먼지·70
바다의하루·71
눈물속에흐르는바다·73
나무들도흔들릴때사랑한다·74
손잡이·75
노동에빠져야삶을건지는사람들·76
영화가사람을보다·78
감자를깎다가우주를깎다·79
웃음하나불러타고·80
미소를들고돌을깎았다·81
목숨엔눈물도모르는슬픔이있다·82
해풍이혀를내어핥아주고갔다·83
집나갈집도없다·84
오늘흘린시간·86
몰아의방향·88
다가의노래·89
말의하늘에오로라가뜬다·93
산할미사설·94

3부일상의아리아,비밀의향기,너였는가나였는가그리움인가

태초를낳는아낙·98
습관이발자국이다·99
한마디말처럼·100
상처·102
오늘·103
광장에서들린말·104
일상의아리아·107
나무·108
은하수·109
발자국·110
지금만큼못넘을산·111
나뭇잎·112
쌀쌀한날씨로쌀을씻는다·113
시간의비늘·115
따뜻한지금·116
노예·118
사랑하고흐르고·119
절·120
수종사·121
우연의목소리·122
새벽시장·124

4부십일월의눈동자,신이걸어주는전화

산국화피어있는길·126
막다른길·127
물방울시야·128
길·130
혼잣말·131
도서관풍경·132
지구타기·133
나무와새·134
나무는·135
눈꽃·136
기미·137
거울의사상·138
시는·139
빗자루명상·140
트로이의목마·141
눈내리는밤·142
귀걸이·143
신이타는자동차·144
강화기행·145
만추·146

5부낯선신을찿아서,미래사냥

스핑크스눈빛마주치다·148
베네치아·149
라스베이거스·150
캐리비안카니발·152
앙크로와트·154
하롱베이·155
하루가우릴위해시중드는데·156
시계·157
흔들리지않는법칙·158
새벽·160
더템플바·162
물음표의거처·164
여름과가을사이·165

해설|유성호_시간이벗어놓고간저찬란한한벌의옷·168

출판사 서평

시간이벗어놓고간저찬란한한벌의옷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학교인문대학장)

상상적모험과서정적품격

동시영(董時泳)의시선집「기억의형용사」는개성적상상력과선명한자의식이빛을뿌리는심미적언어의보고(寶庫)라고할수있다.시인은“열권의시집은열권의생각”(「시인의말」)이라고말함으로써이번시선집이그동안출간한열권의시집에서가려뽑은정선(精選)의결실임을토로하였다.등단20년을훌쩍넘긴시인이펴내는이번시선집에서우리는시대를품고넘어서는시인의활달한상상적모험과타자를포괄하려는흔치않은서정적품격을만나보게된다.그만큼시인은자신의기억속에서가장반짝이는순간들을우리에게데려와그것을공공적기억으로확산해가는작법을일관되게취해간다.
우리가잘알듯이,서정시는시인자신이스스로를탐구하고돌아보는자기인식속성의장르이다.그래서그창작동기에는나르시시즘이라는자기확인욕망이잠재적으로드리워져있게마련이다.하지만동시영의시는이러한자기몰입의에너지를여러차원에서벗어난다.가령그의시세계가단순한자기도취의나르시스적몽환에그쳤다면,우리는한자연인의내면은관찰할수있었겠지만거기서완결된타자지향의미학을발견하기는어려웠을것이다.다행스럽게도그는철저하게자아의경험으로부터시상(詩想)을길어오지만그것이타자들과소통하려는열망을내포하게함으로써관계론적신생과확장의가능성을열어보여준것이다.그래서우리는동시영의시를통해자아와세계가경험적언어속에서접점을이루며상호소통하는탄성(彈性)의미학을발견하게된다.이제그세계안으로성큼들어가보도록하자.

압축과여백의미(美)를통해회복하는서정의본령

동시영시인은세계내적존재로서인간의복합적삶을장광설로언어화하지않고일종의생략과정을통해독자의상상적참여를강화한작품을이번시선집에여럿실었다.이렇게사유와감각을축약하면서비본질적언어를배제하는그의시는초월과암시를주음(主音)으로하는미학을빛나게구현한결실들이다.말하지않음으로써의미과잉을경계하려는이러한작법은잃어버린서정적윤기와총기를되부르는강력한방법으로원용되고있다.그가운데몇편을만나보도록하자.

가끔씩
신들이지상으로걸어주는전화
-「시는」전문

절만절이아니다
마음절절한곳
그곳이절이다
-「절」전문

촌철살인의축약성을핵심으로하는단시(短詩)들은번다한언어를배제하면서순간적인공감을불러온다.가령‘시(詩)’가“가끔씩/신들이지상으로걸어주는전화”라고할때‘시인’은그전화를받고지상에서그언어를받아쓰는이가되어간다.신성하고아름다운천상의전화가‘시’를거룩한언어행위로규율해준순간이아닐수없다.그런가하면‘절’이라는소재를향해서시인은“절만절이아니다/마음절절한곳/그곳이절이다”라고쓴다.사찰이라는일차적이고평면적인의미를넘어‘절’은절절한마음이울리는모든곳으로한없이확장되어간다.이러한울림의확장과정이결국단시의효과를극대화한성과가아닐까한다.다음은어떠한가.

날마다하늘을여는열쇠
키로문을연다
-「나무」전문

나무는거꾸로선빗자루
오늘도
하루종일
허공을쓸고있다
-「빗자루명상」전문

발을따라간
발자국은없다

무한으로가는
삶을따라간
사람도없다
-「발자국」전문

앞의두작품모두‘나무’를불러왔다.나무는“날마다하늘을여는열쇠”여서문을열수있고“거꾸로선빗자루”여서하루종일허공을쓸수있다.이러한짧은언어의명상이‘나무’를신성하고친숙한존재자로만들어준다.뒤의시편은일종의잠언적성취를이룬작품인데,가령“발을따라간/발자국은없다”면서발은떠나고지상에는발자국만남았음을암시하고있다.마침내시인은“무한으로가는/삶”을따라갔던사람은존재하지않았음을강조하면서,우리도발자국을남긴채떠나야하는유한자(有限者)임을고백한다.이러한경구(警句)지향의짧은언어는“은하수는별들의산책로”(「은하수」)라든가“시계는시간의물레방아”(「시계」)같은참신한비유적명명에서도그흔적을이어가고있다할것이다.
동시영시인은언어과잉을경계하고배제하려는선택행위를통해이성적경계를지우면서나머지는여백으로돌리는시적방법론을우리에게보여주었다.압축과여백의미를통해서정의본령을회복해가는동시영시편의밀도가새삼깊게다가오고있다.

‘오늘’이라는현재형에듣는‘한마디말’

두루알다시피서정시는시인이스스로살아온삶의내력을회상하고성찰하는시간예술이다.앞에서도강조하였듯이,고백과기억이라는가장원초적인서정시의원리는자신의내면으로몰입하려는힘으로나타나기도하고다양한타자들로번져가려는충동으로나타나기도한다.어엿한시간예술로서의서정시는이러한고백과기억을통해시인자신이지나온시간을섬세하게재구성함으로써그안에녹아있는보편적삶의이법을탐색해가는과정을우리에게선사한다.동시영의경우,지나온시간에대한초월적미화(美化)보다는자신의삶을가능케해준현재형의흔적을추스르는쪽에서그러한발화가이루어지고있다.다음시편을한번읽어보도록하자.

어제는나를따라왔을까

풀처럼뽑혔을까

시간의자식으로커오르는내일

꽃입고걸어온다

저봄은몇살일까?

봄처럼생각은늙지않고자란다

기억의형용사
계속의몸
입도생각도모른다

하루를찾으면
하루를잃는

갈등을먹여살리는,마음하나지나간다

시간이뿌리친다,씨의집,공간숨터

종로를걸어가며
종로닮는사람들

오늘을힘껏짜,
시간즙을마신다
-「기억의형용사-씨의집」전문

시선집의표제작이기도한이시편은그동안살아온시간을기억하고오늘의시간을다짐하는마음을담고있다.시인자신을따라온‘어제’가풀처럼뽑히고,시간의자식으로커가는‘내일’이꽃을입은채찾아온다.그렇게찾아온봄처럼,시인의생각은늙지않고힘있게자라갈뿐이다.시인이지향해온시쓰기는그렇게“기억의형용사”에의탁하여역동적으로펼쳐져온것이다.하루를찾으면하루가사라지는흐름속에서시인은“씨의집,공간숨터”로서의시간의처소를만들어간다.‘오늘’을떠올리면서시간즙을한껏자서마시고자하는것이다.어제-오늘-내일의선조적흐름이아니라‘오늘’을중심에두고어제와오늘을끌어당기는그“기억의형용사”가바로‘시인동시영’의모습을아련하게전해준다.이러한적공(積功)의과정은그자체로자신을가능케해준가장종요로운내질(內質)이시간이었음을고백하는시인의모습을암시해준다.모든순간순간이오늘이라는현재형에붙박여있으며그렇기때문에우리는“사라지는순간을잡기위해사랑”(「사랑하고흐르고」)하고그“순간만새것이고모든것은헌것”(「광장에서들린말-제마알프나광장」)임을증언해가는것이다.아름답고애잔한문양(文樣)이그안에가득흐르고있지않은가.

-중략-

또다른시쓰기를향해나아갈아름다운언어와사유

지금까지우리가천천히읽어온것처럼,동시영의시선집「기억의형용사」는그동안펴낸열권의시집이집성(集成)된미학적결실이다.그는이제삶의연륜에서빚어지는오랜감동과깨달음의세계를노래함으로써,그안에나날의삶에대한발견의순간을녹이고,인간과세계를원초적으로이어주는고리로서의언어를열망해간다.그래서그의시는우리에게이성적사유를위한계기를제공하기도하고,실천적삶에대한자극을주기도하며,시인자신의순수원형을상상케함으로써어떤삶의표지(標識)가되어주기도한다.그가수행해가는이러한시쓰기의도정은삶의순간순간을지탱해온운동의결과로서,시인스스로의실존적조건을힘겹고도아름답게유지해가는원리로각인되어간다.그래서그는자신의시를통해앞으로살아갈날들의지남(指南)을탐색해갈수있었으리라.
결국동시영의시는서정의원리에대한섬세한감각,삶의근원과구체성에착목한의미있는성취로우리문학사에남을것이다.그는우리시대의불모성에대한유력한항체를쉼없이만들어냄으로써자신만의고전적사유와감각을보여주었기때문이다.시인은자신이오랜시간바쳐온등불같은사유와감각을통해자신의시편들을더욱밝혀갈것이다.또한그의기억을만들어준소재역시그스스로만나온사람과사물이었으니,앞으로도이러한것들이동시영시의확고한바탕이자궁극이되어줄것이다.그만큼그는존재론적기원을환기하는시공간에서생의근거(ground)를구성하면서또다른시쓰기를향해나아갈것이다.그‘또다른시쓰기’의모습은그특유의실존적성찰과함께다양한형식과기법,구조적완결성을구축해가는‘동시영브랜드’의과정으로하염없이이어져갈것이다.그래서우리는,오랫동안이어져온‘시인동시영’의이러한아름다운언어와사유가우리시단을출렁이게하는것을,매혹의눈으로바라보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