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중력 (양장본 Hardcover)

그리운 중력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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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리운 중력’은 강영은 시의 핵심 모티프인 ‘끌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응축한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존재자들을 한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힘, 즉 존재의 연관과 무게는 묵직한 슬픔이 녹으면서 사랑이 꽃핀다. 극지로 향하는 열차, 빙벽 아래 싹 트는 꽃, 눈보라 속의 침묵 등은, 시인이 존재의 극점에서 마주하는 모든 존재가 서로 관계 맺고 있다는 실존적 조건을 드러낸다. 이때 ‘중력’은 물리적인 힘을 넘어, 인간의 본질과 무의식, 사랑, 회귀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근원적 힘으로 작용한다. 시인은 함박눈을 “수목한계선에 피는 꽃”이라 명명하며, 종말과 시작이 동시에 존재하는 생의 경계에 시적 자아를 위치시킨다. 「언어」 「비의 수상식」 「무성무기양순파열음」 등은 강영은 시의 언어관을 잘 보여준다. 그는 언어를 고정된 관념을 넘어, 감각과 감정이 뒤엉킨 존재의 형상으로 부조浮彫함으써 휘황한 오로라로 빛난다. 특히 「무성무기양순파열음」에서는 입술, 물, 불, 말발굽 등의 이미지가 반복되며, 언어와 육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성적 시학이 구현된다. 이 시에서 언어는 “발아래 누운 여자”이며, 동시에 “비읍悲泣”으로 표현되는 고통의 음절이다. 시인은 언어 이전의 감각, 말해지지 않는 울음까지도 시의 세계로 견인하고 있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필)

강영은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그리운 중력』은 그의 내면구조 속에 깃들어온 사랑과 구원의 응결체로서의 형상을 단단하게 보여준다. 세계의 불화와 모순 앞에서 대지모신大地母神적 연민의 정서를 체득한 시인은 ‘그대’라는 타자를 향한 동일성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이토록 간절한 사랑의 언어를 구현한 것이다. 이 사랑의 시학은 “작살이 꽂혀도 달아날 줄 모르는 너”(「갈마의 바다」)에 대한 처연한 인식에서 시작하여 “눈물이 한 생을 완성하는 그때”(「눈물은 공평하다」)에 이르러 기쁨과 슬픔이 수평을 이루는 인생에 대한 각성을 구가하게 되었으니 ‘논짓물에 스며든 그 말을 들은 날부터 밤마다 속눈썹에 돋는 너’(「여름밤이 남긴 것」)에 대한 발견은 실로 애틋하고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머나먼 너에 대한 갸륵한 동경을 통해 얻은 “함박눈 같은 극지”(「그리운 중력」)의 현현은 강영은 시학이 도달한 구원의 숭고한 실체이다. 우리는 이 시집 속에서 강영은 시인의 숨결 속에 깃든 목숨 같은 별들이 우주적 비극성을 치유하는 ‘수목한계선의 꽃’으로 화하는 환상적 모멘트를 편편마다 만나게 될 것이다.
- 김종태(호서대 교수·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회장)
저자

강영은

제주서귀포에서태어난강영은시인은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을졸업(문학석사)했습니다.2000년『미네르바』등단이후주업은주로시를쓰는일이지만,한국의좋은시작품을싣는개인블로그를운영하면서시와사진그리고에세이의밭을일구고있습니다.시집으로『스스로우는꽃잎』『나는구름에걸려넘어진적이있다』『녹색비단구렁이』『최초의그늘』『풀등,바다의등』『마고의항아리』『상냥한시론(詩論)』『너머의새』등과시선집『눈잣나무에부치는詩』,에세이『산수국통신』등이있습니다.2014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받았고2015년세종우수도서,2018년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우수콘텐츠,2024년문학나눔도서에선정되었습니다.문학청춘작품상,시예술상우수작품상,한국시문학상,한국문협작가상,서귀포문학상등을받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kiroro1956

목차

1부그리운중력重力

그리운중력重力·12
나의애인·14
섬망譫妄의숲·16
TheTreeOfLife·19
우로보로스·22
시계의미래·24
나의두개골·26
대상a·28
당신의결심·30
회복기回復期·32
방문visitation·34
동행·36
언어言語·38

2부여름밤이남긴것

여름밤이남긴것·40
가을아침·42
시간의나비·43
오늘밤엔바나나가자라는구나·44
뫼비우스의띠·46
알마게스트벚나무·48
자연주의자自然主義者·50
갈마羯磨의바다·52
지구가달을가릴때·54
돛대·56
유리창의내면·58
비의수상식授賞式·60
개불알꽃·62
아름다운오독·64

3부눈물은공평하다

눈물은공평하다·68
봄의시그널·70
나는내게가장먼상처·72
분재盆栽·74
개똥참외·75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76
검정개·78
젖은돌·80
무성무기양순파열음無聲無氣兩脣破裂音·82
사구沙丘이야기·84
이것·86
이것은‘이것’을해석한시이다·88
고사은거도高士隱居圖·90

4부지중해

지중해·92
에페소,잿빛고양이·94
깊은우물·96
투즈괼·98
안탈리아·100
히드리아누스의문·102
블랙홀탈출익스프레스·104
에스키모인사·106
펭귄우체국·108
라쿠카라차Lacucaracha·110
지구인·112
말테우리·114
시데,시대時代·116

해설|고봉준_‘나’는어디에있는가·120

출판사 서평

‘나’는어디에있는가

고봉준(문학평론가·경희대교수)


1.

강영은의시는내향성언어로쌓아올린존재물음의건축물이다.여기에서내향성언어란세계를재현하는풍경화의언어가아니라사물과세계에자신의내면을덧칠한추상화의언어에가깝다는뜻이고,건축물이란시집이단일한세계가아니라그내부에몇개의독립적인공간들을포함하고있다는의미이다.시집이라는형식은건축물과유사하다.어떤공간을,어떤경로를따라탐사하느냐에따라그건축물에대한인상이완전히달라지기때문이다.시집『그리운중력』에는최소3개이상의독립적인공간들이존재한다.어떤공간은여기와저기,현재와과거의차이를중심으로직조되어있고,어떤공간은삶과죽음,그속에서‘나’의기원과근거를반추하는실존적물음으로채워져있다.그리고또어떤공간은글쓰기,즉시(詩)에관한자의식이중심을이루고있다.따라서『그리운중력』이라는세계를이해하기위해서는이중적방식의읽기가필요하다.먼저독립적공간들이펼쳐보이는미학적풍경을중심으로읽어야한다.그리고다음으로복수의공간들이어우러짐으로써서서히드러나는세계의풍경에주목해야한다.이풍경의핵심은‘나’에관한존재물음이다.시인은과거와현재,저곳과이곳사이의불화를매개로끊임없이자신의존재에관해질문한다.이런점에서강영은의시에서시쓰기와삶은평행적관계를형성한다.표제작「그리운중력」에서시쓰기와삶의문제는정확히중첩되므로형식적층위에서는이시를건축물의‘입구’라고명명해도좋을듯하다.하지만「그리운중력」은내용적층위에서‘출구’에가깝다.두가지읽기방식이교차하고시쓰기와삶의문제가이시에서중첩되기때문이다.

2.

어제떠나간네가있고너와거닐던강가가있고
새한마리앉았던가는벼랑너머나부끼는바람

건빵봉지에든별사탕처럼빛나지않는두눈은
조금도사리도없는밤바다

이모든비유는먼옛날켜두었던등잔

넌누구니,
어두워질때까지놀아도괜찮은거니,

인적드문우리들의내면은질문의문을열지못하네.
혼자남은질문이슬픔을어루만지네.

벽장속에갇힌새처럼
새장속에남은새처럼

슬픔은빠져나오기힘든눈동자
만져지지않는밤하늘

입김불어가며그렷다지우는
이차가움

캄캄한적막,지울수없는각막
눈코입잡아당기는착각

메아리없는곳,두손두발되돌려주지않는곳으로
미끄러질까봐

금갈것같은나를,깨질것같은나를
감싸는

이노래는오늘도반복되는노래
유리창의노래.
-「유리창의내면」전문

첫번째공간은‘나’에관한존재물음의세계이다.이시에는‘freestylerap형식으로’라는부제(副題)가붙어있다.이것은이시가의미의계열이아니라랩(Rap)처럼‘소리’의계열을따라,그리고유기적인전체성이아니라연상작용의파편성에기대어창작되었음을알려주는시적기호이다.가령이시에등장하는“벽장속에갇힌사람처럼/새장속에남은새처럼”이나“캄캄한적막,지울수없는각막/눈코입잡아당기는착각”같은진술은이러한랩(rap)의흔적이라고말할수있다.따라서이시에서‘벽장’과‘새장’의관계,‘적막’과‘각막’과‘착각’의의미론적관계를따지는일은그다지중요하지않다.그렇다고이‘rap형식’으로쓰인이시를단순한유희의결과물로간주해선안된다.여기에는강영은시의근본적지향이분명하게각인되어있기때문이다.
이시를읽기위해서는먼저시적상황을이해해야한다.우선,시적상황을짐작할수있는몇몇시어들을찾아보자.일차적으로제목에등장하는‘유리창’과본문에등장하는‘밤바다’,‘등잔’,‘슬픔’,‘밤하늘’,‘입김’등이눈에띈다.오독의위험을무릅쓰고시적상황을재구성해보면화자는지금실내공간에서유리창을통해바깥풍경을바라보고있다.‘밤바다’와‘밤하늘’이라는시어가등장하는것으로보아시간은밤이며,유리창에“입김불어가며그렸다지우는/이차가움”이라는진술로미루어짐작건대계절적배경은겨울인듯하다.요컨대이시는화자가어느겨울저녁창밖풍경을바라보고있는것이핵심이다.그런데화자가응시하고있는창밖풍경은아무래도현재형이아닌듯하다.왜냐하면거기에는“어제떠나간네가있고너와거닐던강가가있고/새한마리앉았던가는벼랑너머나부끼는바람”이존재하기때문이다.화자는이러한풍경을배경으로삼아“넌누구니,/어두워질때까지놀아도괜찮은거니,”라고묻는다.이것은현재의‘나’가유년의풍경속에존재하는과거의‘나’를향해묻고있는장면이다.그러니까화자에게‘유리창’은그너머,즉바깥풍경이펼쳐지는캔버스가아니라자신이‘내면’에존재하는과거-시간이펼쳐지는스크린인셈이다.화자는누구도대답할수없는이질문을던지면서‘혼자’남은‘슬픔’을경험하며,“입김불어가며그렸다지우는”행동의반복이암시하듯이과거의시간을그리워한다.따라서“금갈것같은나를,깨질것같은나”의주체는사물-유리창이아니라화자의내면-유리창이라고말할수있으며,화자는이균열의위험을직감하고있으면서도“유리창의노래”를반복한다.사정이이러하므로이시는시인의말처럼‘랩(rap)형식’을빌렸다고할지라도지극히슬프고쓸쓸한곡조(曲調)의노래라고말해야할것이다.특히유리창을통해바깥풍경을바라보는행위가궁극적으로자신의내면에떠오른몇몇풍경을들여다보는행위로귀결되는장면은강영은의시가근본적으로내향성임을암시하고있다.

나를가장많이울리고
나를가장많이웃게하는이가
나의,애인입니다.
누구보다나를잘알고
누구보다나를모르는이가
나의,애인입니다.
나의표정과감정을살피거나
나의외모와마음을지배하는이가
나의,애인입니다.
함께쓰러지고
함께일어서는이가
나의,애인입니다.
어제했던약속도
어제라는독약도모두삼키는이가
나의,애인입니다.
매일만나거나죽어서도만날이가
나의,애인입니다.
너무많은애인을가져서
무겁습니다.
너무많은애인을두어서
괴롭습니다.
아니외롭습니다.
내가
나의,애인이기때문입니다.
-「나의애인」전문

내향성의시작(詩作)에서는글쓰기의출발점과도착점모두에‘나’가위치한다.물론이때복수의‘나’들,가령출발점의‘나’와도착점의‘나’,질문의대상이되는‘나’와질문하는‘나’는다른존재이다.강영은에게시쓰기는이처럼존재의근원에대한물음과성찰이라는문제와연결된다.다만,이러한물음과성찰이환기하는존재물음은정확하게대답할수있는질문이아니다.시적인의미에서‘나’에관한존재물음은지금-이곳이,나아가그곳에있는‘나’라는존재가단일하지않다는의미이다.하이데거가설명했듯이존재물음이란결국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이다.그리고이러한질문은지금-이곳에서의존재방식에관해확인하고싶은것이있거나최소한현존자체에대해불안한마음을갖고있다는뜻이다.지금-이곳에서의삶이만족스러운사람은결코‘나’에대해질문하지않는다.따라서이존재물음이라는사건에서중요한것은대답이아니라질문그자체,즉‘나’가자신을메타적시선으로바라본다는것이다.
이시에서‘나’와‘나’의관계는“내가/나의,애인이기때문입니다.”라는진술에서확인되듯이‘애인’관계이다.일반적으로‘애인’은가장친밀한사람,즉‘나’의리비도가집중되는대상을가리킨다.이러한특수한관계로서의‘애인’이라는의미는이시에서도동일하다.문제는“너무많은애인을가져서/무겁습니다./너무많은애인을두어서/괴롭습니다.”라는진술처럼‘애인’이너무많다는점이다.화자는너무많은‘애인’이괴로움과외로움의원인이된다고진술하고있다.왜너무많은‘애인’이괴로움과외로움의원인이되는것일까?그것은‘나’와애인으로서의‘나’가“나를가장많이울리고/나를가장많이웃게하는일”나“누구보다나를잘알고/누구보다나를모르는이”라는진술처럼친밀하면서도때로는가장먼존재이기때문이다.이런의미에서“너무많은애인을두어서/괴롭습니다.”라는진술과“두개골은너무많은나를가졌다.”(「나의두개골」)라는진술은일맥상통한다.

3.

시집『그리운중력』의두번째방은시(詩)에관한자의식의세계이다.강영은에게시는시인이라는존재,혹은감정과자의식을지닌신체를통과한세계의이미지에언어라는형식을부여하는행위이다.이처럼시는궁극적으로‘언어’와의관계를떠나존재할수없다.시인이자신을가리켜“말을돌보는건나의사명”(「말테우리」)이라고소개할때,그것은‘시’와‘언어’에관한자의식을강조한것이라고말할수있다.「말테우리」는말[馬]과말[言]이라는동음이의어를활용하여‘말’이라는기호에중의적의미를부여하고있다.이러한기호의중의성은‘말[馬]’과‘말[言]’이라는기호의간격이좁을때,다시말해두가지모두의의미로해석될때절정에이른다.가령“별도달도뜨지않는밤,말중의말,고독이마중나온다.말과나는유일한어둠이된다.말과나사이경계가없어진다.”라고이야기할때가그렇다.하지만분명한것은“영원히말을모는말속에영혼을모는나는말테우리.”라고말할때,그것이말[馬]에관한진술이아니라는사실이다.“말중의말”이나“말과나사이의경계가없어진다.”라는진술도마찬가지이다.시는시인의마음과신체를통과함으로써특정한방식으로굴절된이미지에언어라는형식을부여하는행위이지만,이때‘언어’는시인의소유물,즉시인자신이마음대로주무를수있는대상이아니다.시를가리켜언어예술이라고말할때,그것은시인이‘언어’를자유자재로운용한다는의미가아니라시적인무언가가시인의신체를관통하여‘언어’로표현된다는의미이다.이경우‘언어’는시인의신체또는손끝에서현현하지만,그렇다고시인의소유물이라고말할수는없다.

그가다녀갔다.

책상앞에앉아깜빡조는사이
잠깐,다녀갔다.

다시올까?

그가좋아하는펜을들고기다려보지만
온다는기약없다.

언제오려나,

할미꽃필때까지시간을던져보지만
할미꽃진무덤처럼감감무소식이다.

머리가하얗게센시인에게
로맨스가찾아올리는만무?

오늘은수태하기가장좋은날
떠나간영감(靈感)대신살아있는영감(令監)과
나들이간다.

죽은영감(靈感)대신탯줄잡아주던영감(令監)과함께
꽃핀다고,꽃진다고,

뻐꾹새우는산천지나기도로늙은
내어머니사는마음속보금자리,

유다마을로간다.
뱃속에든아기를기다리는
마리아처럼,
-「방문(visitation)」전문

철학자플라톤이자신의예술관을피력한『이온(ION)』에는시의원천에관한다음과같은설명이나온다.“모든훌륭한서사시인들은전문적기술로해서가아니라신들린상태에서그리고영감에사로잡힌상태에서이모든아름다운시들을읊으며,훌륭한서정시인들도마찬가지니까요.”플라톤은시를영감의산물이라고주장하면서신령(Spirit)에서영감의원천을찾았다.시가영감의산물이라는플라톤의주장은시가전문적인기술의결과라는주장에대한반론이다.시가영감의산물이라고말할때,근본적으로중요한것은시가시인의‘바깥’에서도래한다는사실이다.시가‘바깥’에서도래한다는것은어떤의미일까?그것은일차적으로시인-신체의바깥에존재하는대상이나세계가시인의신체를통과함으로써시가탄생한다는의미이며,궁극적으로는시의출발점이시인-신체의내부가아니라바깥,즉의지의영역이아니라는것이다.시인은이러한시의타자성의문제를“그가다녀갔다.”라는말로요약하고있다.강영은에게시는끄집어내는것이아니라오는것이다.그리고그것은“책상앞에앉아깜빡조는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