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밭에는 배꽃이 핀다

배밭에는 배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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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꽃처럼 빛나는 사랑의 언어’는 여든을 바라보는 시인 홍경흠의 인생과 문학, 사랑과 회한, 생의 고비마다 새겨진 통찰을 담은 시집이다. 체육교사로 40여 년을 살아오다 쉰이 넘어 시단에 등단한 그는, 지난 20년간 타오르는 듯한 열정으로 언어의 불꽃을 일구어 왔다.

이 시집은 ‘노화’ ‘죽음’ ‘집’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인간 존재의 보편적 문제를, 시인의 내밀한 체험과 감정으로 빚어낸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병상에서 마주한 죽음 앞의 겸허한 기도, 무주택자로 살아온 삶의 솔직한 고백, 아내를 향한 늦은 애틋함,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회한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킨다.

홍경흠의 시는 직설적이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시적 진실로 이끌며, 도시인의 고단함과 노년의 상실감, 그리고 그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희망과 사랑의 불씨를 이야기한다. ‘공원’을 사랑이라 말하고, ‘연둣빛’에 새로운 계절과 사랑의 부활을 보는 그의 시선은, 삶의 끝자락에서조차 따뜻한 생의 언어로 피어난다.

이 시집은 고통과 기쁨을 껴안은 생의 정면을 향한 치열한 시적 응시이며 고요한 성찰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노화와 이별, 결핍과 그리움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 이 시집은 따뜻하고도 단단한 빛으로 남을 것이다.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필))
저자

홍경흠

저자:홍경흠
경북문경에서태어나경희대학교체육대학체육학과졸업하고,동대학교교육대학원을졸업했습니다.2003년『현대시문학』신인상(시)으로당선하여작품활동을시작했습니다.시집으로UniversityofWashington소장된『푸른생각』『시간의틈새로걸어나온언어』『감정을읽는시간』과2011년미국,DatapointWOPULAR소개된『그림자는미친듯이희망곡을듣는다』등이있습니다.칼럼니스트로서경향신문에‘교단일기’를연재하고,금천뉴스·금천방송논설위원·시인협회회원·국제펜클럽저작권위원·한국문인협회해외문학발전위원·문학과학통섭포럼본부이사·한국공무원문인협회이사로활동하고있습니다.홍조근정훈장수훈,자랑스러운서울시민600인표창,경희대학교체육대학총동문회사자상,경희대학교총동문회공로상,국제교육공로대상(일본문화진흥회),에피포도문학상(미국),화천문학상,허균문학상,국제문화예술상,황희문화예술상본상등을수상했습니다.

목차

1부
기도12
병원가는길13
초록안부14
헤어질결심15
노을에게경건히16
묏자리18
배밭에는배꽃이핀다20
국군22
미세플라스틱24
최종합격26
하루살이28

2부
잠깐의실수에도병색이깊다고한다32
안나푸르나34
그게어떻게되었는지모른다35
초록별의눈물36
삼베홑이불을위한독백38
죽음이라말하고삶을생각했다40
온천에서41
영신숲에서본여름42
집이라는말에44
우정의궤도46
출산47
가묘앞에서48

3부
북해도의안개52
복귀무대54
잘있어,를말할수밖에56
후유증58
별스런방정식60
도리를몰랐던것에대하여62
여행데시벨을높이면64
해프닝이라고하기엔66
멈출수없는날갯짓68
감동심해69
뇌졸중을따라가다70
빙하,저파리한얼굴72
눈벽74

4부
연둣빛76
이번길도또다른길이아니다77
고물상78
그렇다고는어제의모습으로오지않는다79
푸른내사랑80
덜컥적시며날아오르려는데82
배롱나무가흐느끼는소리들어보셨나요84
온천에서85
주흘관86
풀88
슬픔의회전89
웃음을먹습니다90
막걸리92

5부
개인기록96
채마밭97
이제태양으로살아야한다98
혐오99
못100
절망101
어제의모습과달라질까102
노인과공원1103
노인과공원2104
노인과공원3105
노인과공원4106
노인과공원5108

해설|권온_불꽃처럼빛나는사랑의언어109

출판사 서평

불꽃처럼빛나는사랑의언어
-홍경흠의시세계

권온(문학평론가)

1.
홍경흠은열정적인사람이다.체육을전공하고중등교사로서40년정도근무한그는쉰이넘은나이에시인으로서등단하여20년넘게치열하게시작(詩作)활동에매진하고있다.홍경흠은다수의문학상을수상하였고,미국과같은해외에작품이소개된국제적인영향력이있는시인이기도하다.이번시집은그의시세계에서새로운터닝포인트로서기능할수있다.연속성을유지하면서도전환점의역할을담당하는이시집에서홍경흠이주목하는시적주제는노화(老化),죽음,집등의어휘와무관하지않다.또한시인은엄마,아내,친구등친밀한사람들과의대인관계를심층적으로탐색한다.친애하는독자들이여!70년이상의세월을강건하게살아낸이의인생노하우가가득담긴독특한시적언어를확인해보자.

2.
병실침대에서몇달째웅크려있다
오늘은죽을까
내일은살까

한겨울
눈이두텁게쌓인산자락에
차디찬백골로눕기싫었다

한번도찾지않았던
신(神)앞에
공손히무릎을꿇었다
오늘만큼은착한성도가된다
―「기도」전문

홍경흠의시에는독자들의심금을울릴수있는힘이있다.이시의배경에는시인의내밀한체험이위치한다.홍겸흠은여기에서“병상침대에서”의“몇달째”경험을매우진솔한언어로형상화한다.그는병원에입원한상태에서죽음을염려한다.1연2행의“오늘은죽을까”에는죽음을향한염려나두려움이내재한다.그러나시인은죽음의낭떠러지로추락하는대신삶을향한강한의지를피력한다.우리는1연3행의“내일은살까”를읽으며미래를향한긍정성을기대한다.

이시의2연에등장하는“한겨울”,“눈”,“백골”등의어휘는인간에게다가오는죽음의공포를암시한다.질병과죽음은인간에게두려움의정서를제공한다.그러한두려움앞에서사람들은“한번도찾지않았던/신(神)앞에/공손히무릎을꿇”게되는데,무신론자(無神論者)로서의사람들을“착한성도”로서변신하게만들만큼죽음은힘이세다.홍경흠의이시는독자들에게“공손히무릎을꿇”고,“기도”할수있는용기를북돋운다.죽음속에서고민하는오늘을넘기면,우리는분명내일의희망을발견할수있을테다.

한줌재로마침내잊히게될
나를생각했다

정답과오답을오가는
한생이저물무렵
볕바른쪽이
정답일때도오답일때도있다는걸뒤늦게알았다

어디선가육신이떠나버린목소리가들려왔다
내게아직은올때가아니라고하는듯했다

돌아설까망설이다가
또다른환생을믿으며
묏자리를샀다

수많은봉분들과
덧없는세월을주거니받거니했다

그간움켜쥔용심을
슬며시내려놓자
어린아이처럼해맑아졌다

좌로도우로도치우치지않은
내마음은
어느새0시방향을가리키고있다
―「묏자리」전문

이시에서시적화자‘나’가주목하는어휘에는“묏자리”,“재”,“봉분들”등이있다.‘나’가집중하는단어들은공통적으로‘죽음’과연결된다.‘나’는“한줌재로마침내잊히게될”자신의모습을“생각했”고,“육신이떠나버린목소리”를들었다.‘나’가“묏자리를”산이유는“또다른환생을믿”기때문이다.‘나’는“수많은봉분들”에얽힌“덧없는세월”을목도하면서,자신에게도“정답과오답을오가는/한생”어머무를공간을제공하기로결심한다.홍경흠에의하면인간은‘정답’과‘오답’사이에서방황하고,‘좌’와‘우’사이에서흔들린다.시인은죽음을생각해야하는나이에이르러비로소“용심”을“내려”놓고“어린아이”와같은“해맑”음에도달한다.그러므로우리는그가추구하는“0시방향”에서타율적인삶이아닌주체적인삶의뚜렷한방향을확인하게된다.

아직집이없다니까
그동안뭐하고살았냐고묻는다
머뭇거릴사이도없이
다들농담이겠지라고한다

기나긴엇박자삶을보이기싫어
고개를빳빳이쳐들었지만
아무리떼어내도따라붙은무주택자
집있는그들이부러웠다

나는늘
변명을늘어놓았지
곧큰돈이들어올거야
그래봤자막힌부분이
한순간에뚫리는것도아니었다

무엇하나내세울것없어도
매번기운차게허세를떨고다녔지

내심살려고발버둥쳤어도
바람만누구에게나공평할뿐

모로움츠러누운밤이면
놓치고없는것들을
빈손에꽉쥐고있다

내일을기약할수없는밤이적막하다
―「집이라는말에」전문

한국인에게“집”은비바람따위를막고그속에들어살기위하여지은건물이라는사전적의미를뛰어넘는다.이시에는시적화자‘나’를포함한사람들의‘집’에관한복합적인정서가담겨있다.대한민국에서사람들은‘집’을‘소유’의관점에서바라보는경우가많다.한국에서“집있는그들”은‘유주택자(有住宅者)’가되고,“아직집이없”는이들은“무주택자”가된다.이시의화자‘나’는‘무주택자’로서‘유주택자’들을“부러”워한다.‘나’는‘무주택자’라는현실앞에서“고개를빳빳이쳐들”거나“변명을늘어놓았지”만또는“허세를떨고다녔지”만,“기나긴엇박자삶을”부정할수가없다.‘나’의손은“놓치고없는것들을”,“꼭쥐고있”는,“빈손”이기때문이다.특히“곧큰돈이들어올거야”라는‘나’의호언장담은“내일을기약할수없는밤”의“적막”함과어우러지며무주택자의서러움을적화하게포착한다는점에서유의미하다.

-<중략>-

봄,여름,가을,겨울이또가고

올이굵은무명치마저고리입은
힘센황소같은엄마

뵐수없는엄마가마음속에있고
엄마를향한수많은노래가흘러나온다

엄마의궤도를따라가면
훅끼쳐오는만장바람이인다

상석만덩드러니묘를지킨다
울컥,굵은눈물이쏟아진다

봄이돼서야야생화겹겹이둘러싸여빙긋이웃는
그때내가왜속을썩였을까
뒤늦게후회남발하는바보천치다

응급실에서느닷없이떠나지않으셨다면
엄마손꼭잡고
발바닥에통증올때까지여행다닐텐데

늘부족한나를
한집안을일으키는재목감으로
손색이없다는엄마

눈감으면
도리에어긋난행동에익숙했다는것에
눈뜨면
한걸음쯤물러나생각했으면하는것에

누런옛사진을보면
산너머어디쯤에엄마가오고있을것만같다
―「도리를몰랐던것에대하여」전문

홍경흠은이시에서시적화자‘나’의“엄마”를향한“도리”를이야기한다.‘나’는‘엄마’에대한“도리를몰랐던것에대하여”,“도리에어긋난행동에익숙했다는것에”사과하고싶다.시인은‘엄마’에게마땅히행해야할바른길에충실하지못했던,이세상모든자식들의입장을시적언어로서형상화한다.엄마는“늘부족한나”를“한집안을일으키는재목감으로”서추켜올렸지만,‘나’는“그때”,엄마의“속을썩였”다.‘나’는“뒤늦게후회남발하는바보천치”인셈이다.“봄,여름,가을,겨울이또가고”라는이시의1연은계절,시간,세월,인생의속절없는흐름을제시한다.엄마는이제“뵐수없는엄마”가되었다.“응급실”“만장”“상석”“묘”“누런옛사진”등의어휘는‘엄마’가‘나’와는다른세계로떠나버렸음을암시한다.“엄마손꼭잡고/발바닥에통증올때까지여행다닐텐데”라는‘나’의심경은,부모와이별한이세상모든자식의마음을대변한다.홍경흠의이시를21세기의사모곡(思母曲)으로규정해도좋을것이다.

노인이노인에게말을걸면
아픈말을뱉어낸다
살아있어도죽은거나매한가지여
현실적인것이하나도없으니까시간만죽이고있잖아
독보적인아이디어가반짝거려도
줄줄이달려나오기는커녕멈춰설수밖에없잖아
죽을일만남았다는거지
공원에라도있다보면죽음을잊거나
죽음에서빠져나올수가있어서좋다
어쩌다가울리는휴대폰에서는부고장뿐이다
저장된사진들은모두영정사진같다

몸이찌뿌둥해도
출근도장찍듯공원에간다
날궂어도쓸쓸해도간다
내게는공원이사랑이다
그곳엔털털한사람냄새가난다
―「노인과공원5」전문

70대중반에서후반을넘나드는나이를고려할때,홍경흠은“노인”에해당할수있다.그는이번시집에서“노인과공원”이라는제목의연작시(連作詩)를제공한다.이번시는‘노인과공원’연작의다섯번째작품으로서독자들에게생생한현장감을전달한다는점에서유의미하다.시적화자‘나’는친구나지인으로서의노인에게서“아픈말”을듣게된다.“살아있어도죽은거나매한가지여”,“시간만죽이고있잖아”,“멈춰설수밖에없잖아”,“죽을일만남았다는거지”등날카롭고매서운말의폭력앞에서‘나’는해결책을찾아본다.“휴대폰”에“저장된사진들은모두영정사진같”고,수신되는메시지에는“부고장”이쌓이는암울한상황속에서‘나’는“공원”을발견한다.

‘공원’은‘나’에게“죽음을잊거나/죽음에서빠져나올수”있는힘을제공한다.‘나’가“날궂어도쓸쓸해도”,“출근도장찍듯공원에”가는이유는,그곳에가면“털털한사람냄새가”나기때문이다.“내게는공원이사랑이”었던것이다.그런의미에서이땅의노인들을포함한이시를읽는모든독자들은시인의제안을수용하여공원에나가볼일이다.사람들에게밝고긍정적인기운을공급하는소중한공간으로서의공원은이렇게사랑과동의어가된다.

3.
홍경흠의새시집을독자들과함께읽어보았다.이번시집에서그가집중하는주제는노화,죽음,집,사랑등의어휘와긴밀하게관련되었다.여든을바라보는나이의시인에게안개처럼다가오는노화의그림자는두려움의정서를불러일으킬수있다.노인이라는불가피한현실속에서홍경흠은죽음에대해진지하게생각하기시작한다.「기도」「묏자리」「고물상」「노인과공원5」등의시들은노화와죽음을향한시인의반응과대응을진솔하게제시한다.

홍경흠의이번시집에서독자들의호기심을이끄는시적주제중하나는집과무관하지않다.그가「집이라는말에」,「덜컥적시며날아오르려는데」등의시들에서언급한“무주택자”“큰돈”“허세”“빈손”“창문없는방한칸”“통장잔고”“마이너스”“몇억”“십수억원”“내집마련”등의단어나어구는자본주의사회를살아가는현대인의욕망을가감없이전달한다.

시인은진실한사람이고솔직한사람이다.노화,죽음,집등의대상은그에게때로는아픔으로서다가왔을테고,때로는슬픔의정서를불어넣었을테다.그러나홍경흠은이대로무너지는사람이아니었다.그에게는사랑이라는특별한정서가있기때문이다.「별스런방정식」,「연둣빛」,「노인과공원5」등시인이준비한시들속에는사랑이위치한다.

헨리데이비드소로(HenryDavidThoreau)는사랑에관해다음과같이이야기한바있다.“사랑은불꽃만큼이나빛이어야한다.(Lovemustbeasmuchalightasitisaflame.)”사랑에관한헨리데이비드소로의언급에동의할수있다면,우리는홍경흠의시에내재하는사랑의힘과가치에공감하게된다.불꽃처럼빛나는사랑이사람들의마음속에살아있을때,우리는아픔과슬픔의장애물들이숨겨진인생이라는이름의행로를거뜬히걸어갈수있을것이기때문이다.그러므로시인의시세계는앞으로도더욱크고힘찬불꽃의형태로지속되어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