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순례길에서현자가발견한‘봄’과‘생명’의서정
염선옥(문학평론가)
유자효시인의신작시집『AI와詩』(황금알,2025)는고통과고독이라는실존적조건속에서그가품은고아하면서도넉넉한온정을드러내는동시에,사회현안에대한날카로운분석과깊이있는사유를통해여러사건들의이면을섬세하게포착한다.이번시집은1~3부를자유시로,4부를정형시로편제하였다.모든경계와분리,차이와차별을해체하며균형과통일을이루고자하는시인의‘정釘’과같은의지가강하게드러난다.1부에는실존적질문과일상성의파편들이담겨있고,2부에는관계와동행그리고연대의중요성이심도있게탐구된다.3부는국경과경계,분단과분리의문제를해체하려는시적실천으로특징지어지며,마지막4부에서는와카나하이쿠,루바이야트등다른정형시와견주어오직한국시조만이지닌고유한매력인절제된언어와깊은여운,정형시의리듬,우리말의온유함,표현의절제,언어적품격을고스란히살려내었다.이렇듯이번시집은경계의해체와인간적통합을바탕으로,우리말의고유한아름다움과한국시조의미학을한층정제된언어로드러내고있다.
유자효시인은시의적글쓰기라는요구에응답하면서도,평생품어온주제를마음깊은곳에굳건히간직해왔다.시인은‘정釘의세계’를바라보았던청년기를지나정신의성스러움을경배하던‘성스러운뼈’의중년기를거쳐,장년기의‘아직’의세계를통과해노년기‘꼭’의세계를향해나아가는길위에서있다(유자효,「시인의말」,『세한도』,시선사,2019,5쪽).시인이말하는‘정釘의세계’와‘꼭’의세계란굳게닫힌신념이나고정된형상이아니라끊임없이흔들리는현실속에서도중심을지키려는존재의굳은의지이자태도를뜻할것이다.그는불확실한삶의밑바닥에서자신의신념을못처럼박으며,흔들림속에서도스스로의실존적긴장을끝까지견뎌내는것이다.
오늘날의세계는효율과속도를찬양하는거대한시스템으로우리를몰아넣고있다.“제목만주면/금방뚝딱/한편”(「AI와詩」)인공지능이시를써내는“처음보는세상,시간”(「겨울행行」)에서우리는변화의표면을따라가며외적번영과완벽함에쉽게매혹된다.그러나유자효시인은이러한흐름속에서자신을잃지않고,오히려존재의본질을붙잡으려는고투를멈추지않는다.그는“끝없는미완未完”의자리에서“살을에는고통”과“얼음장같은외면의진실”을응시하며,그속에서도“사람을끌어모으는”“그겨울의포옹을사랑”(「겨울행行」)한다고고백한다.유자효시인에게‘정釘’과‘꼭’은“현란한언어”가가져다주는유희보다“인간을구할수”(「AI와詩」)있는“얼싸안는힘”(「겨울행行」)이라는신념에서비롯된다.외적인효율과가치를모두갖춘시스템의세계에서,우리가잃어버리지말아야할것은바로체온과온기그리고존재의내면을흔드는‘떨림’이라는확신이시집전체의중심에자리한다.
유자효시인은문명의진보가인간을구원하지못한다는사실을누구보다섬세하게인식하고있다.그는인간내면의야만과도덕성의결핍을응시하며그부끄러움의자각이야말로세상을바꾸는첫번째윤리적힘임을일깨운다.살아있다는것은곧부끄러움을아는일이며그부끄러움속에서인간은자신이인간임을비로소깨닫는다.유자효의시는이단순하지만명징한근본적인진실위에서있다.그의시에서‘살아있음’은“괴로워”하고“후회”하며“번뇌”와는분명다른이름이지만동시에존재의가장확실한증거이기도하다.시인이말하는삶과윤리는완전함이아니라부끄러움을통해자신을성찰하는불완전한인간의윤리인것이다.
살아있어실수를한다
살아있어후회를한다
살아있어괴로워한다
실수도,후회도,번뇌도
살아있음의축복
-「축복」전문
길을알만하면그길로다녀야할일이끝난다
친해질만하면그사람을만나야할일이끝난다
일이손에익을만하면그일을해야할때가끝난다
익숙해지면떠나야하니
삶은늘서투른연습
-「서투름에대하여」전문
시인은“살아있음”으로인해“실수”하고“후회”하며“괴로워”할수있다고말한다.우리는존재로서머물기위해,살아있음을증명하기위해,실수에서그치는것이아니라그실수를반성하고괴로워해야한다.부끄러움을깨달을줄아는것,그것이인간존재의근원적조건인셈이다.나아가시인은“살아있어실수를한다/살아있어후회를한다/살아있어괴로워한다/실수도,후회도,번뇌도/살아있음의축복”이라고고백한다.그에게서인간의실수,후회,번뇌등부정적인감정과경험들은오히려‘살아있음’이라는긍정의표지가된다.「축복」은인간의불완전함을윤리적각성의자리로바꾸어놓으며실존의어두운시간마저희망으로해석한다.그리하여시인은삶의고통을‘축복’이라고부르는것이다.「서투름에대하여」또한같은맥락에서읽힌다.“길을알만하면그길을다녀야할일이끝난다/친해질만하면그사람을만나야할일이끝난다/일이손에익을만하면그일을해야할때가끝난다/익숙해지면떠나야하니/삶은늘서투른연습.”익숙함은끝을데려오고끝은다시서투름의시작이된다.결국삶이란완성될수없는연습의연속이다.여기서‘서투름’은부끄러움이아니라성장의징후다.시인이말하는인간의서투름은조금씩나아가며끊임없이바뀌어가는존재의운동이다.서투름을인정할때,우리는비로소존재다울수있다.
4부에이르러정형시를배치한유자효시인의투명하고명징한언어는그어떤수사적장치없이도한글이지닌아름다움과품격을또렷하게드러내며,그자부심을온전히전해준다.한국시조는3행(혹은6구)이라는독특한구조와절제미학,그속에내포된‘기서결’의의미적3단구조를바탕으로인간현실에대한깊은통찰을담아왔다.특별히마지막행에서찬란하게빛나는의미의‘전환’이극적인효과와철학적깊이를부여한다.시조는유자효시인이의미하는통일과통합의사상과온전히부합되는철학적장르인셈이다.정형시는자연,인간관계,사회,철학등다양한주제를다루며,본질적으로인간사의윤리와사색에초점을두고있기때문이다.
기억의창고는나날이비워지고
중요한일부터차례로잊어가고
내가날못믿어하니누가나를믿으랴
-「근황」부분
모호했던안개가한꺼풀씩벗겨지며
마침내선명해지는세상의참모습들
생애에소중한것은좋은관계맺는일
-「노년에알다」전문
이두작품은시조의간결한구조안에인생의노년과존재의위태로움을날것그대로담아낸다.“기억의창고는나날이비워지고/중요한일부터차례로잊어가고/내가날못믿어하니누가나를믿으랴”라는「근황」에선자기존재의취약함이무심하게드러난다.이표현은흔히‘정형’이라불리는시조의3장,즉세개의단락으로절제되어배치되면서,독자를향한고백과독백사이의경계선을날카롭게세운다.유자효시인은자신의망각과불안,신뢰의붕괴에대해군더더기없는언어로말한다.이때정형시의구체적리듬과간결함덕에,고백이더욱명징해지고잔상으로남는다.「노년에알다」는“모호했던안개가한꺼풀씩벗겨지며/마침내선명해지는세상의참모습들/생애에소중한것은좋은관계맺는일”이라는구절을통해‘관계’에관한시인의깊은성찰로나아간다.이작품의초장은유년시절의혼미와어둠을,중장은청년과장년의시간속에서조금씩드러나는삶의면면을,그리고종장은노년의지점에서비로소도달한깨달음을연상시킨다.결국이시조는,모든것에확신하기어려웠던지난시간들을지나마침내인생의본질이‘좋은관계’에있음을‘꼭’일러주는것이다.
유자효의시는타자와세계를향하고있으며,운율과압축의미를드러내는정형성덕분에배제될수있는사회적고삽성苦澁性을포기하지않는다.내용에서피어나는율동감과세계적인보편성을확보하여조화를이룬다.메리올리버의고백처럼,시는“우리중일부에관한것이아니라우리모두에관한것”이다.유자효의시세계에는이정신이깊게공명한다.그의시는언제나‘나’라는한계를넘어타자와세계를향해열린구조를지니고있기때문이다.다만메리올리버처럼유자효의시는사회를비판하면서도결코냉소적이지않다.그는상처입은세계에대한체념보다구체적삶의현장에들어가낱낱이파헤치면서도인간의존엄과연대의가능성,그리고기적을‘봄’처럼믿고있다.시란세계를꾸미는언어가아니라세계를느끼게하는언어다.유자효의시는그진리를잊지않는다.그는어두운생의순례길에서인간적빛의온도를잃지않으며,언어로고통을견디는법을,그리고곧다가올봄과희망을우리에게단단히말한다.유자효시인의‘봄’은그점에서진행형이며미래시제다.
시인의말
스무번째신작시집을낸다.1982년에첫시집이나왔으니43년의세월이흘렀다.
그동안30대청년이팔순을바라보는노인이됐다.세상도많이변했다.
이번시집에는20대때쓴작품도있다.시집수록을피해오다가나를정리하는심경으로수록한작품들도있다.1부와2부,3부는자유시,4부는시조로묶었다.
인공지능시대다.AI가만든시를보니기존자료들의종합이라표절의위험이있음을알았다.나는지금처럼AI의도움없이시를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