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탄생과윤리의시학
김영탁(시인·『문학청춘』주필)
들어가며;사무침의미학과‘생각’이라는존재론
김환식의시집은처음부터끝까지한인물의‘생각’이생生의모든국면을두루떠도는거대한서사적구조를지니고있다.이시집에서‘생각’은단순한감정적잔여물이아니라이승과저승,시간과기억,슬픔과회한,풍경과존재를잇는전차원적인주체로서한몸을이루며시편전반을관통한다.그러니까시인은이‘생각’을인간처럼걷게하고,말하게하며,고통을느끼게하고,늙게하고,잊게한뒤다시기억하게만든다.이러한과정에서흩어져있던생각들은점차결집하며,시집전체를이끄는하나의윤리적중심으로수렴된다.
이‘생각’은흔히말하는심리적단위가아니다.그것은시인이구축한독자적인존재론적장치로서작동한다.어떤시에서는노루나돌고래,낙타의형상으로나타나고,또어떤시에서는의자나바람,장독대나난전의풍경속으로스며든다.이처럼다양한형상과사물,풍경으로변주되는‘생각’의표류가곧이시집의세계를움직이는중심동력이다.시인은이생각을매개로상실과그리움,나이듦의자의식,기억의탈각,자연과존재의겹침,죄의식과회한,덧없음의철학을한올씩엮어낸다.결국이시집은고통을품은인간의내면을‘생각’이라는알레고리로외화한장엄한서사시라할수있다.
헤겔이말한‘외화外化,Entäußerung’는이념,곧정신이자기자신을외부로드러내며자신과대립하는형식을통해스스로를인식하는과정이다.이과정에서주체는외부세계와의분리를거쳐다시자기내면으로귀환하며,대립과통합을경험한다.이러한관점에서볼때김환식의시편들역시하나의외화과정을거친다.육체성을획득한‘생각’은자연과사물,타자의형상을빌려외부로나아갔다가다시내면으로돌아오는경로를반복한다.
이를불교적으로진술하자면,고苦와업業,식識,무상無常,연기緣起의관점속에서‘생각’은다시여과되는과정을거치며,그과정에서몸과마음,그리고언어는한층두터워진다.김환식의시는바로이지점에서감정의서정을넘어사유의밀도를획득한다.이시집이보여주는것은슬픔그자체가아니라,슬픔을통과한이후에도사유가어떻게계속될수있는가라는질문이다.그리고그질문의중심에는언제나‘생각’이라는존재가놓여있다.
‘아비의상실’이라는기원
‘생각’은가장생동감있는육체를갖는다.맨발로달리고,돌고래처럼울부짖고,싸락눈소리를듣고,터질듯부풀어오르는신체를갖는다.「맨발의생각」「그리움」「거룩한행로」「그의자」「빈자리」등에서시인은반복적으로자식을먼저떠나보낸부모의비극적체험을끌어낸다.특히돌고래가죽은새끼를업고며칠째포구를떠도는장면은,시집전체에흐르는정서의원형을제시한다.이대목에서시인은스스로를“돌고래보다못난아비”라고낮추며,자책의정조를말없이누적한다.생각의육체는바로이자책에서탄생한다.시편들의‘생각’은슬픔을견딜수없는한인간이자책의고통을받아들이며,원점으로거슬러올라가는행위는회피하지않고직시하는윤리적책임으로작동하면서제2의몸으로생성된다.
그애가앉았던
그의자
그식탁앞에그대로두고
아내와나는마주앉아
처음인듯생뚱맞게저녁을먹는다
밥한술떠먹고
의자
한번쳐다보고
그애가즐겨먹던
문어다리하나썰어놓고
우리는번갈아
문어한번쳐다보고
그리고또,
의자
한번쳐다보고
그래도
그식탁앞엔
빈의자하나
-「그의자」전문
김환식의「그의자」는표면적으로는한가족의식탁풍경을그린짧은서정시처럼보인다.그러나이시는단순한상실의서정에머물지않는다.이작품은부재가어떻게하나의‘존재’로작동하는지를극도로절제된형식으로구현한시다.이시의중심에는사람이아니라의자가놓여있다.더정확히말하면,누군가부재한의자가시의모든시선을끌어당긴다.
이작품에서시적긴장은사건이나서사에서발생하지않는다.긴장은오직사물의배치,시선의반복,행위의리듬에서생성된다.이점에서「그의자」는김환식시세계전반을관통하는‘부재의현존화’기법이가장순도높게응축된작품이라할수있다.
「그의자」에서핵심은‘의자’보다‘그’라는지시어다.‘그’는특정대상을이미알고있다는전제위에서만성립하는말이다.즉,이의자는아무의자가아니라이미누군가의기억속에깊이침윤된의자다.이시제목에서부터시는독자에게묻는다.‘우리는이의자를알고있는가.’라는이질문은곧윤리적질문으로확장된다.왜냐하면‘그’라는말은단순한지시가아니라관계의지속을전제하는언어이기때문이다.떠난존재는사라졌지만,그존재가앉았던의자는여전히‘그의자’로불린다.이는관계가물리적으로단절되었음에도,기억의차원에서는종료되지않았음을선언하는언어행위다.
이시에서가장두드러지는형식적특징은반복이다.“밥한술떠먹고/의자한번쳐다보고/문어다리하나썰어놓고/문어한번쳐다보고/그리고또/의자한번쳐다보고”라는반복적구문은시의리듬을형성한다.이때반복되는음성적요소인‘한’의울림은정서적으로‘恨’을연상시키지만,과도한감정으로흘러가지않도록절제된거리를유지한다.이반복은단순한리듬이아니라의례다.의례란감정을과잉으로분출하지않으면서도,감정을삭제하지않기위해인류가오랫동안선택해온형식이다.
김환식은이시에서울지않는다.대신밥을먹고,고개를들고,사물을바라본다.애도는폭발이아니라생활속에침윤된리듬으로나타난다.이반복구조는슬픔을하나의사건으로만들지않는다.슬픔은이시에서일상의동작속에고정된지속상태로존재한다.그렇기에이시의슬픔은쉽게소진되지않고오래남는다.
「그의자」에서문어다리와의자는단순한병렬관계가아니다.두사물은상호교환적으로작동한다.문어다리는‘그애가즐겨먹던’음식이며,의자는‘그애가앉았던’자리다.하나는기억의미각이고,다른하나는기억의공간이다.문어다리는현실적으로지금이자리에존재하지만먹히지않는다.반면의자는비어있음에도가장강한존재감을획득한다.이역전은현실과비현실,현재와과거의경계를무너뜨린다.사물들은서로충돌하면서도연대하며,떠난존재를호출하는환영의장치로기능한다.
이지점에서김종삼의‘부재와현존의시적존재론’을소환할수있을듯하다.박선영(「부재不在의무게와현존現存의무게」-김종삼의시적존재론,돈암어문학회,2016.)은김종삼시에대해,“부재를암시하는시적형식이인간에게부과된불가항력적운명을각인시키는동시에,내면깊은곳에서출렁이는비극적정서를드러내는역할을한다”고분석한바있다.김환식의「그의자」역시부재를통해현존을강화한다는점에서김종삼의시적존재론과연대하고있다.그러나김환식의시에서부재는초월적지향으로나아가지않는다.현실의“문어다리하나”와“그의자”는초월로도피하지않고,생활의한복판에그대로놓인다.
그리하여의자는누군가앉아있지않음으로써오히려더강한존재감을획득한다.이는김환식시세계전반에서반복되는존재론적역설이다.존재는물리적점유에서발생하는것이아니라,의미가집중되는자리에서발생한다.빈의자는단순한공백이아니다.그것은더이상누구도대신할수없는자리이며,대체불가능성의상징이다.그렇기에의자는끝내치워지지않고그대로남는다.이때의자는가구가아니라기억의신체가된다.
이시에서인물들은계속해서의자를‘쳐다본다’.그러나이쳐다봄은관찰이아니다.그것은확인행위다.여전히거기에있는지,여전히비어있는지,여전히사라졌는지를반복해서확인한다.중요한것은,그들이의자를보면서도끝내의자에손을대거나치우지않는다는점이다.이는단순한정서적미련이아니라윤리적태도다.의자를치우지않는다는것은부재를지우지않겠다는선택이며,그선택은곧책임의지속을의미한다.
이처럼「그의자」는감상적인애도의시가아니라,상실이후의삶을어떻게지속할것인가에대한윤리적사유를담은작품이다.김환식은슬픔을말하지않음으로써,오히려슬픔을가장오래살아있게만든다.
눈만뜨면
해바라기처럼웃었다
늘그랬다
그리고,해바라기처럼
그자리를맴돌다훌쩍돌아앉았다
그게일상의전부였다
살가운아침햇살이커튼을열고
면경같은창가에앉아
가끔은,묵은새치를뽑았다
생각하면
코끝이시큰거릴뿐이었다
아치로웠다
손을잡으면
뼈만남았던생각들이왈칵
또,왈칵
눈물을쏟았다
부정맥같은숨소리가
수시로한옥타브씩오르내리고
헤픈눈물은스스로고집을피웠다
돌아보면
휑뎅그렁한생각의빈자리들
골이깊어도
너무깊었다
-「빈자리」전문
김환식의「빈자리」는상실을감정의문제가아니라신체의문제로견인한작품이다.이시에서슬픔은마음속에머무는정서가아니라,숨의리듬을교란하고눈물을통제불가능하게만드는생리적사건으로형상화된다.따라서이작품은애도를사유나태도의차원이아니라,몸의차원에서임계점까지밀어올린밀도높은작품이다.이시에서가장중요한특징은‘생각의육체화’다.생각은더이상추상적개념이아니라,뼈만남은상태로묘사되며,손을잡는순간눈물을쏟는신체적존재로변형된다.이는상실이기억이나회상의차원을넘어,신체에새겨진흔적이라는인식을드러낸다.기억은생각에남고,생각은다시몸에남는다.이연쇄속에서상실은결코과거형으로정리되지않고,현재형의고통으로지속된다.
「빈자리」는「그의자」와의연대속에서더욱선명해진다.「그의자」에서부재는사물에고정되어외부에배치된다.의자를치우지않는선택은부재를지우지않겠다는윤리적태도이며,상실을외부에두어삶을지속가능하게만드는완충장치다.그러나「빈자리」에이르면이완충장치는붕괴된다.부재는더이상사물에머물지않고,생각과몸의내부로스며든다.이이동은단순한표현상의변화가아니라,상실을감당하는방식의변화다.
이시에서윤리는더이상작동하지않는다.눈물은의지와상관없이쏟아지고,숨은스스로리듬을잃는다.화자는더이상선택의주체로남아있지않으며,상실은통제가능한태도의문제가아니라감당해야할신체적현실이된다.이지점에서김환식의시는중요한정직성을획득한다.그는상실이후의삶이언제나윤리적품위만으로유지될수없음을인정한다.애도는때로태도가아니라붕괴의형식으로나타난다.그럼에도이작품은자기연민이나감상으로기울지않는다.상실을미화하지도,초월로밀어올리지도않는다.대신상실이어떻게사물에남고,끝내몸에새겨지는지를끝까지따라간다.이점에서「빈자리」는김환식시집의존재론을한단계더깊은층위로견인한작품이다.
결국「빈자리」는단순한결핍의서사가아니다.그것은관계가남긴흔적이며,상실이후에도사라지지않는존재의자국이다.이시에서빈자리는삶을흔드는신체적현실이며,애도는윤리에서생리로이행한다.따라서「빈자리」는김환식시세계에서상실의가장깊은국면을보여주는핵심시편이며,그의시가단순한서정이아니라상실이후인간존재를끝까지사유하는시학임을증명한다.
늦은
저녁
식탁위에
그아이
좋아하던
옥돔
한마리
구워놓고
내외는
마주앉아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움」전문
김환식의「그리움」은제목과달리그리움을직접말하지않는시다.이작품은‘그립다’라는감정어를단한번도사용하지않으며,감정의표출이나설명을철저히배제한다.대신늦은저녁식탁위에놓인옥돔한마리와그앞에마주앉아서로의얼굴을바라보는두사람이라는최소한의장면만을제시한다.그러나바로이절제된장면속에서이시는김환식시세계에서가장깊은감정의층위를건드린다.이작품에서그리움은정서가아니라하나의장면으로존재하며,감정은말이아니라생활의형식으로정물화된다.
시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