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이끌고상실의강을건너가는존재의용지(勇志)와미학
염선옥(문학평론가)
‘시밖에’쓸수없는삶이라면,그것은더이상세계에말을주고받을,아니한때말을주고받았던대상을잃은존재가남을생을위한마지막통로로시를붙들었다는뜻일것이다.박열아시인의유고시집『구름위의여자』는그길머리를따라천천히걸음을옮기는한사람의얼굴을오래비추는결실이다.이시집의화자는죽음과슬픔의가두리안에서성급히현실로복귀하려들지않는다.그저결핍과상실의자리에서서삶을풍요롭게만들어주었던,다시만나기를바라는존재들을향해이쪽의시간을묵묵히견딜뿐이다.그광경은삶을던지는체념에가깝기보다이미저편으로건너간이들과그부재가남긴실존의무게를정면으로마주보려는자의조용한용지勇志에가깝다.이러한시인의삶과문학은사랑하는존재를잃고저승으로내려갔던그리스신화의음유시인오르페우스를자연스레불러낸다.오르페우스가자신의노래를앞세워죽음의강을건넜듯이,박열아시인은‘시밖에’남지않은몸을이끌고상실의강을건너가려는존재로선다.그의시집이우리에게보여주는것은파스칼이말한인간조건의추상적인도식이나죽음과슬픔,공허를서둘러벗어나려는아나바시스Anabasis의상상력이아니다.오히려상실의바닥까지기꺼이내려가려는카타바시스Katabasis의길위에서,꺼져가던말을다시일으켜사랑하는이들을향해나아가는느리고낮은정동이다.하강과상승이한몸처럼겹쳐지는자리에서독자는상실과죽음의경계에서시를감수하는시인의삶이어떤얼굴을하고있는지,과장되지않은어조와거짓없는서정의결로또렷이드러내보이는용기를마주하게된다.
박열아의시집은동일제목의연작구조와두대상에수렴하는서정화자의정서적구성을통해,자칫새로움이푼푼하지못하다고읽힐위험을안고있다.하지만‘새로움’이라는코드를도식적으로이해하고,기존의문법과권위를깨뜨리거나흔드는몸짓만이문학적갱신으로떠받드는태도야말로‘낡아빠진’‘새로움’에대한‘상투적도식’(김춘식,「시의새로움이시대를관통하는방식」,『현대문학』2014년7월호)이아닐까.현대적이라는이름으로제시되는파괴와갱신의제스처만을진정한기준으로삼는태도와관습이야말로오히려기계적인발상이라는것은옳다.박열아의시는이런시류에편승해‘새로움’을위시하는대신,자기현실을끝까지감수하면서주어진삶의얼굴을통해시의몸을서서히바꾸어나간다.남은삶을진동하는부재한존재와의조우의여정을,동일한듯매번다른계절에새기며변주하며연작시에애정을고집스럽게새기며,시가터져나오는자리의실감을끝까지밀어올린다.이지점에서그의시는내용적으로늘새로운방식으로상실을견디며애도하는얼굴을하고있다고보아야할것이다.
2.
박열아의시세계는상실과애도의정동이서정적언술을따라오래도록번져나가면서,결여의중심에살아가는한주체의내밀한고뇌를드러낸다.『구름위의여자』를관류하는것은한개인에게만국한된어떤사건의단순한회고가아니라상실이후에도쉽게수그러들지않는애도의지속적인발화이며,우리삶전체를관통하는아픔의감각이다.「四月」「낙화」「봄비」「辛씨의봄날」연작시「구름위의여자」와「자하문밖」「서녘하늘」연작시에이르기까지반복되는“가고싶어라”“가지마라”“울고있느냐”“어디로가는가”는그반복자체가곧결핍의시간성을증언하는리듬이자메아리로기능한다.여기서자연은더이상충만한현전의배경이아니다.꽃잎과흰새,구름과달,비와낙엽은아름다운장식이기보다부재한존재의흔적을되비추는감각의표지로되돌아온다.
이시집의「서문」은그정조를더욱선명하게만든다.「서문」을쓴아들박의연씨는어머니와누이동생의죽음,그리고아버지의병문안을지나며박열아가“소멸의마지막길”을통과했다고전하고,그길위에서시는삶을위로하는말보다삶의상처를정직하게응시하는말로나아간다고밝힌다.그래서박열아의시에서“가고싶어라”는단순한도피의욕망이아니라,더는머물수없는상실의자리에서부재한세계를향해몸을기울이는절박한움직임이며,“가지마라”는그와반대로대상의소실을끝내받아들일수없는애틋한부름이다.그래서「구름위의여자」연작시의딸에대한호명과「서녘하늘」의부름은이미멀어진존재를향해끝내가닿지못하는목소리로남는다.꽃이피고바람이부는세계는여전히아름답지만,그아름다움은화자에게따뜻한위안으로도착하지못하고오히려닿을수없는거리만더또렷하게드러낸다.박열아의시는바로그거리감속에서상실을지우지않은채오래응시하며,사라진것을사라진자리그대로불러세우는시적태도를끝까지밀고간다.
1959년동국대국문과에입학하고1학년인1960년동아일보신춘문예시부문에「전표지역戰標地域」으로등단한시인박열아(박영열)의유고시집『구름위의여자』의첫독자를자처한다는일은,‘애도이후’의세계에조용히발을들여놓는일과도다르지않다.두번의상실과지속한고통을통과한이에게,어떤위로나설명이더는닿지않는지대가있다는사실을「서문」은조용히숨막히게알려주지않았던가.레비나스가말하듯삶의충만함과향유가타자에게서시작된다면,타자의부재는곧향유의붕괴이며나와세계를이어주던감각의회로가한꺼번에끊겨나가는사건일것이다.플뤼게가‘아픔’을단순한신체통증이아니라살아가며감당해야하는실존전체의고통으로확장해사유했듯,아픔은어느한지점을찌르는바늘이아니라삶의전영역을변조시키는보이지않는필터다(헤르베르트플뤼게,『아픔에대하여』,김희상역,돌베개,2017).우울과상실,애도의시간을통과하는주체에게세계의현상은더이상중립적이지않다.꽃이피고바람이부는그모든광경이,‘나’의피부에닿지않는‘그림’으로만존재하게된다.세계의다채로움과풍요는여전히거기에있지만,그것은나와무관한것,나의감각이닿지않는것,그리하여오히려잔인할만큼선명한타자의부재가된다.
꽃이피는데
바람이부는데
꽃잎처럼황홀한슬픔에
가슴이타는데
환각에지쳐
잠드는오후
꿈인듯,꿈인듯
머언거울앞에
당신의검은머리칼이지는데
아,부질없어
지친목그늘에쓰러져버리면
어지러워라나의사랑은
남모르게피흘리는
나의사랑은어지러워라
꽃이지는데
바람이부는데
꽃잎처럼황홀한슬픔에
四月이가는데
-「四月」전문
이작품은‘색을잃은세계’를가장강렬한형식으로드러낸다.“꽃이피는데/바람이부는데”는자연이저혼자리듬을따라착실히흘러가고있음을전하는,건조한보고의문장이다.피고지는것은꽃이고,불고지나가는것은바람이지만그안에서‘나’는고정불변하고부재할뿐이다.화자는그저“피는데”“부는데”라는말로세계의진행을관조하고확인할뿐이다.이거리감속에서세계는더이상‘향유’의장이아니라‘나’의상실을역설적으로비추는배경으로자리한다.꽃과바람은그자체로자족적인아름다움이라기보다,‘나’와의관계속에서의미를발화하기에숭고한것이었다.그러나이제그아름다움이더이상‘나’에게도달하지않기에그것들은오히려고통의징표가되어버린다.안타까운것은이러한세계에의비참여앞에서오히려과도하게타오르는것은화자의내면이다.“꽃잎처럼황홀한슬픔에/가슴이타는데”부분에서,‘황홀’과‘슬픔’은기묘하게포개진다.보통황홀은기쁨의극점으로기쁨이감당할수없을만큼넘치는상태를가리키지만,여기서는슬픔이감각을끝까지밀어붙여화자를태워버리는위태로운국면을가리킨다.황홀한것은기쁨이아니라슬픔이고,그슬픔이야말로사랑하는존재를떠올릴수있는유일한방식이기에,화자는그황홀을끝까지포기할수없다.
이제시는이슬픔의감각을“환각”과“거울”로바꿔증언한다.“환각에지쳐/잠드는오후/꿈인듯,꿈인듯”에서현실과비현실의경계는이미흐려져있다.상실의고통이너무클때,감각은세계를있는그대로받아들이는대신,잃어버린장면과잃어버린얼굴을계속재생하는방향으로기울어진다.보는것은현재의풍경이지만거기에겹쳐지는것은이미떠난사람의이미지다.먼거리에놓인거울앞에나타나는것은자기의모습이아니라“당신의검은머리칼”이다.거울은원래자기동일성을확인하는장치이지만,여기서는사랑하는타자의잔상을비추는장치이면서결코넘어올수없는단절을의미한다.거울앞에서화자는자기자신을인식하는대신타자의결핍과그결핍이남긴잔향을다시마주하게된다.“꿈인듯”의반복은이잔상이얼마나믿기어렵고,동시에얼마나떨쳐내기어려운지를애타게보여주는것이다.
「四月」은계절의순환과존재에대한그리움을말하는시가아니라,세계의아름다움이화자에게도착하지못할때그것이어떻게고통으로바뀌는지를보여주는시라할수있다.꽃이피고바람이부는장면은여전히눈앞에있지만,그장면은이제사랑의기억을되살리는대신상실의심연을더깊게드러낸다.상실은특정한날짜와사건으로끝나는것이아니라,살아있는동안계속해서현재를물들이는기억의방식으로지속된다.바로그점에서이시는상실을겪은독자에게깊이공명하면서도,애도와사랑,시간과세계에대한사유를동시에촉발하는아름답고도아픈사월의얼굴을하고있다.
3.
파스칼은『팡세』(블레즈파스칼,『파스칼의팡세』,강현규엮음,이선미역,메이트북스,2025)에서인간의조건을슬픔·고독·고통으로파악하면서,그조건들을피하지않고끝까지응시할때비로소존재가허무를넘어어떤진실에닿을수있다고말한다.박열아시의화자는바로그자리를떠나지못하는인물이다.‘나’는상실의곁을떠나지못하고,한번닫힌문앞에서오래서성이며,끝내그비극을외면하지않는쪽을선택한다.롤랑바르트가“애도의슬픔은제자리에서꼼짝도하지않는그런것”(롤랑바르트,『애도일기』,김진영역,걷는나무,2024,159쪽)이라고말한바로그명제를,마치실천하듯살아내는존재인셈이다.이렇게시인의화자는오르페우스처럼늘애도하는자,애도의현장을벗어나지못한채상실을되풀이해서마주하는자로나타난다.애도가번번이실패로돌아가는자리에서그는우울과슬픔,고독사이를홀로떠돌며,그럼에도그자리에머무는자로드러난다.그떠돌이같은머묾속에서시는인간이견딜수밖에없는아픔을조금도완화하지않은채,다만그아픔곁에끝까지머물러있는사랑의얼굴을비추어보인다.
시월
서성이는내가슴에
하얗게부서지는
낙엽의빈그림자
혜화동로터리에해가저물면
울고싶어라
그대는어디로가고
나홀로여기에남아
빈가슴으로서성이는가
가고싶어라
초록바다물결치는그대가슴에
이제는
나도잠들고싶어라
-「辛씨의봄날1」전문
옥색버선발로건너가는
바다저편에
해가저물면
울고싶어라
멀리서바라만보는
가버린사람
-「辛씨의봄날2」부분
꿈속에서라도
한번만더
보고싶은당신의모습
한세월다가도록오지를않고
하얗게저무는내가슴에
비가내리네
-「辛씨의봄날5」부분
위에인용한세편의「辛씨의봄날」은,끝내귀환하지못하는‘그대’를향한비가悲歌와연모戀慕를매개로박열아시의세계를하나의불귀의식不歸儀式속에서전개되는애도서사로드러낸다.여기서화자는“빈가슴으로서성이”고,“멀리서바라만보”고,“한세월다가도록오지를않”는타자를향해무기한으로대기하는존재,곧귀환불가능한타자를향한항구적대기의주체로형상화된다.“무너져내리”는그의세계는실상기다림과울음외에는다른어떤기표로도충전되지못한채공허와결핍의정조속에머문다.
「辛씨의봄날1」에서“시월”과“혜화동로터리”는함께였던시간이한점에응고된자리이자,이제는손을뻗어도닿을수없는관계의빈그림자가하얗게부서져내리는상실의좌표다.“시월/서성이는내가슴에/하얗게부서지는/낙엽의빈그림자”속에서화자가붙드는것은생생한낙엽의촉감이아니라그위에겹쳐진허공의그림자이며,“혜화동로터리에해가저물면/울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