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이나라를지킨사람들의육성,그증언의전투사
전쟁은흔히날짜와지명과숫자로기억된다.1950년6월25일,북한군의남침,한강방어선,낙동강전선,인천상륙작전,38선돌파,중공군개입,고지전,정전협정.전쟁사를말할때우리는대개이런굵은줄기부터떠올린다.그러나전쟁의진실은언제나그줄기아래에있다.지도위의화살표가움직이는동안,누군가는장갑차안에서전우의죽음을보았고,누군가는포탄이쏟아지는연곡천참호속에서다리를잃을만큼큰부상을입었으며,누군가는병원도아닌임시치료공간에서밀려드는부상병들의피를닦고붕대를감았다.또누군가는총을들지않았지만,기차를몰고병력과물자를실어날랐고,누군가는산악험로를밤새달리며탄약과식량을전선으로보냈다.
『호국영웅들의증언』은바로그이름들의책이다.이책은6·25전쟁을단순한사건으로정리하지않는다.전쟁을살아낸사람들의몸,기억,말,침묵을통해다시듣게한다.저자양정훈은6·25참전용사의손자로서,사라져가는참전세대의기억을붙잡기위해이책을집필했다.그마음은단순한조사자의관심이아니다.혈육의기억에서출발했지만,그기억을한가족의사연에가두지않고대한민국현대사의공동기억으로확장하려는보훈의실천이다.
이책에는6·25참전용사36인의증언이담겨있다.이들은모두전쟁사의큰이름뒤에가려져있던사람들이다.장군이나작전지도위의부대명만으로는온전히설명할수없는사람들이다.그러나전쟁은바로이런사람들의어깨위에서버텨졌다.『호국영웅들의증언』은그어깨의무게를기록한다.이책의가치는바로여기에있다.전쟁의역사를위에서아래로내려다보는것이아니라,참호와장갑차,산길과병원,포대와철길,섬과고지에서위로올려다본다.그시선은낮지만깊고,조용하지만오래남는다.
저자는참전용사들의구술을단순히받아적는데머무르지않는다.각증언이놓인전투와작전의역사적배경을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육군군사연구소자료,각종사료,지역향토사,회고록,논문등을바탕으로보강한다.그래서이책은회고록이면서도전투사이고,인터뷰집이면서도보훈기록이며,개인의기억이면서도국가적기억이다.한사람의육성이전투사의좌표를얻고,전투사의건조한기록이사람의체온을얻는방식이다.이결합이『호국영웅들의증언』을특별하게만든다.
책은모두10부로구성되어있다.제1부는개전발발일부터낙동강전선에이르기까지를다룬다.제2부는38선돌파와중공군의개입을,제3부는군인·경찰관·자유의병들의공비토벌작전을,제4부는전선의고착화이후전개되었던고지전을다룬다.이어국군포로의역경,UN군에소속되어참전한국군,해병대의도서작전,포병의화력지원,전투를가능하게한각종지원임무,특수부대원들의유격전까지폭넓게이어진다.이구성은6·25전쟁을하나의정면전으로만보지않는다는점에서중요하다.전쟁은전선의병사만으로치러지지않는다.경찰과의용대,학도병과간호원,철도기관사와운전병,포병과통신병,유격대원과국군포로가모두그안에있었다.이책은그들을한권의증언공동체안으로불러모은다.
가장먼저독자의마음을붙드는것은손양기일등상사의증언이다.그는전쟁전육군독립기갑연대장갑대대에입대했고,6·25전쟁발발이후한강방어선과김포일대작전에투입되었다.그의증언에서특히강렬한장면은장갑차피습장면이다.영등포로복귀하던중북한군의기습공격을받았고,장갑차운전수는총상을입고즉사했다.그러나그는죽은뒤에도핸들을놓지않은채그대로있었다.손양기일등상사는그모습을보며전우의죽음과군인정신을동시에목격한다.이장면은어떤전쟁영화의연출보다더깊은인상을남긴다.총성과피,당황과공포가뒤엉킨순간에도한병사는마지막까지자기자리에서물러서지않았다.
더놀라운것은그이후다.손양기일등상사는부상당한채수박밭에몸을숨겼다가가까스로살아남았고,수원의야전병원,대전,여수,부산으로이어지는후송과정에서제대로된치료조차받지못한채전쟁의비참함을온몸으로겪는다.이후다시부대로복귀했지만,행정상으로는이미전사처리되어있었다.그는3개월동안‘전사자’의이름으로살아있는전선을누빈셈이다.이아이러니는6·25전쟁초기국군이처했던혼란과절박함을상징적으로보여준다.살아있는병사가전사자로기록되고,부상병이병원바깥에서주먹밥을얻어먹으며버티고,제대로된보급과치료가불가능했던상황.그럼에도그는다시전선으로돌아갔다.이사실하나만으로도우리는‘호국영웅’이라는말이결코과장이아님을알게된다.
김용선일등상사의연곡천전투증언도오래남는다.그는8사단10연대소속으로강릉전투의일환인연곡천전투에투입되었다.전쟁발발직후완전군장을하고출동한그는연곡천부근에참호를파고북한군의공격에대비했다.그러던중전방에서포탄이날아드는소리가들렸고,곧진지주변으로포탄이쏟아졌다.그의분대원가운데두명은총한번제대로쏴보지못한채전사했다.한명은참호에포탄이떨어져목숨을잃었고,또한명은포탄이나무를치며생긴파편에맞았다.김용선일등상사자신도허벅지부터다리까지파편상을입어골절되는큰부상을당했다.
이장면은전쟁이젊은병사들에게얼마나불공평하고무자비하게닥쳤는지를보여준다.누군가는전투를준비할시간도없이죽는다.누군가는명령의의미를충분히이해하기도전에포탄의목표가된다.누군가는전쟁이시작된지며칠되지않아평생의상처를입는다.그러나김용선일등상사의증언은단지고통의기록에머물지않는다.그것은국군이압도적인병력과화력앞에서도연곡천방어선을지키기위해어떤싸움을벌였는지를증언한다.6·25전쟁초기의국군은무너진것이아니라,무너지면서도버텼고,밀리면서도지연시켰으며,후퇴하면서도시간을벌었다.그시간이결국대한민국을살리는시간이었다.
임영복이등중사의증언은또다른차원에서전쟁을보여준다.그는호국군으로시작해현역으로편입되었고,전쟁전공비토벌작전에투입되었다.6·25전쟁은어느날갑자기전선에서만시작된것이아니었다.이미전쟁전부터남한곳곳의산악지대에서는공비토벌작전이이어지고있었다.경북영양과청송,태백산맥일대에서벌어진공비토벌은국가형성기의불안정성과냉전의폭력이지역사회깊숙이들어와있었음을보여준다.임영복이등중사의경험은6·25전쟁을‘1950년6월25일하루에시작된전쟁’으로만이해해서는안된다는사실을말해준다.전쟁은그이전부터사회의균열과이념의폭력,산악지대의게릴라전속에서이미징후를드러내고있었다.
이처럼『호국영웅들의증언』은전쟁의시작과전개를다층적으로보여준다.개전초기정규군의방어전,후방의공비토벌,경찰과의용대의지역방어,학도병의참전이서로맞물려있다.제3부에등장하는군인,경찰관,자유의병들의공비토벌작전은이책의중요한축이다.전쟁은군인만의몫이아니었다.경찰관은경찰관의자리에서,의용경찰은의용경찰의자리에서,부락대원은부락대원의자리에서,학도병은학도병의자리에서싸웠다.국가가무너질듯한순간,제도와민간의경계는흐려졌고,사람들은자신이선자리에서방어선이되었다.이들의증언은‘전선’이라는말의의미를넓힌다.전선은철책이나고지만이아니라마을어귀,산길,경찰지서,피난민이지나가는길위에도있었다.
제4부의고지전은이책에서가장처절한대목가운데하나다.전선이고착된이후,전쟁은한뼘의고지를두고수많은생명을소모하는방식으로전개되었다.수도고지,지형능선,이름조차차갑게느껴지는고지들이병사들의운명을삼켰다.고지전의참혹함은단순히전사자가많았기때문만이아니다.그곳에서는전진과후퇴가반복되었고,낮에빼앗은고지를밤에빼앗기고,다시새벽에공격해야했다.포탄은흙을뒤집었고,참호는무덤과구분되지않았으며,전우의시신을수습하는일조차목숨을걸어야했다.
고지전증언을읽다보면‘영웅’이라는말의의미가달라진다.우리는흔히영웅을돌격의이미지로떠올린다.그러나이책에서의영웅은화려하게앞으로나아가는사람만이아니다.영웅은버티는사람이다.포탄이떨어지는고지에서자리를지키는사람,전우가쓰러져도임무를놓지않는사람,두려움을느끼면서도두려움보다더큰책임감으로몸을일으키는사람이다.전쟁의영웅성은무서움을모르는데있는것이아니라,무서움을알면서도물러설수없는자리에서는데있다.『호국영웅들의증언』은바로그인간적인영웅성을보여준다.
제5부의국군포로이야기는전쟁이정전이후에도끝나지않았음을드러낸다.국군포로의삶은전투중의고통과는다른고통이다.그것은기다림의고통이고,잊힘의고통이며,살아있어도돌아오지못하는사람의고통이다.전쟁사는종종포로를숫자로기록한다.그러나포로가된한사람에게전쟁은포로수용소와강제노역,감시와결핍,귀환의희망과좌절속에서계속된다.이은찬이등상사의증언이따로한부를이룰만큼중요하게배치된것은,저자가전쟁의승패나작전만이아니라전쟁이후에도이어지는인간의시련을놓치지않으려했기때문이다.
제6부는UN군에소속되어참전한국군의이야기를다룬다.6·25전쟁은한반도내부의전쟁이면서동시에국제전이었다.미국을비롯한UN군이참전했고,중공군이개입했으며,전쟁의흐름은세계냉전질서와맞물려있었다.그러나국제전이라는거대한이름안에서도실제로전쟁을치른것은한사람한사람의병사였다.UN군체계속에서임무를수행한국군장병들의증언은한국전쟁을세계사적맥락으로확장하면서도,그속의한국인병사들이어떤긴장과책임을감당했는지를보여준다.이책은세계사의거대한바람이한병사의군복자락을어떻게흔들었는지를보여주는책이기도하다.
제7부의해병대도서작전은전쟁의공간을바다와섬으로넓힌다.육지의전선만을떠올리기쉬운독자에게이장은6·25전쟁이해안과도서지역에서도치열하게전개되었음을일깨운다.섬은고립된공간이다.보급도어렵고,철수도어렵고,적의움직임을살피는일도쉽지않다.그러나그곳역시대한민국의일부였고,지켜야할공간이었다.해병대의도서작전은지형과작전의특수성속에서전쟁의또다른얼굴을보여준다.
제8부의포병이야기는전투의구조를이해하게한다.보병이전선을직접마주한다면,포병은그뒤에서전투의리듬을바꾸는힘이다.포탄한발은고지를흔들고,적의진격을멈추게하며,아군의퇴로를열어준다.그러나포병역시안전한후방에만있던것은아니다.관측과이동,포대운용,탄약보급은모두위험을동반했다.김춘식이등상사와손봉진이등상사의증언은보병의돌격뒤에어떤화력지원의세계가있었는지를보여준다.전쟁은단독자의용맹만으로이루어지지않는다.한부대가전진하기위해서는다른부대의엄호가필요하고,한병사가살아남기위해서는보이지않는곳에서누군가가포를쏘고탄약을나르고통신을이어야한다.
제9부는이책의시야가얼마나넓은지를가장잘보여주는부분이다.‘원활한전투를위한지원’이라는제목아래에는양태석일등상사,우준영이등상사,박송렬이등중사,신영태이등중사,이태근이등중사,박춘화간호원,배병구철도기관사의이야기가놓여있다.전쟁을말할때우리는종종전투병만을떠올린다.그러나전쟁은전투병만으로지속될수없다.총알이있어야하고,밥이있어야하며,연료가있어야한다.부상병을치료할사람이있어야하고,병력과물자를이동시킬철도가있어야하며,고장난장비를정비할사람이있어야한다.전투지원은전쟁의보이지않는혈관이다.그혈관이막히면아무리용감한병사도싸울수없다.
박춘화간호원의사례는특히오래기억할만하다.그는경북안동의도립병원에서간호원으로일하던중전쟁을맞았다.국군수도사단이안동에주둔하게되면서민간간호원으로서수도사단의무대에배속되었고,전방에서후송되어온부상병들을치료하고간호하는임무를수행했다.전쟁당시에는대량의전상자가한꺼번에발생했기때문에기존의간호장교와의무병만으로는감당하기어려웠다.민간병원과학교건물이병원으로활용되었고,민간간호원들이군부대에배속되어의료지원임무를수행했다.박춘화간호원의증언은전쟁의또다른최전선을보여준다.그곳에는총성이없을수도있다.그러나비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