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색채 (서동욱 소설집)

겨울의 색채 (서동욱 소설집)

$13.80
Description
“눈이 녹을 때까지, 감금에서 풀려나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으로 내리는 눈
그 눈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
서동욱 첫 소설집 『겨울의 색채』
서동욱 작가가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써 내려간 작품을 모은 첫 소설집이다. 오래전 가출한 마리는 어느 날 아버지의 부고를 듣게 되고 아버지 집을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제이를 만나게 된다(「당장 필요한」). ‘나’는 대장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 재규를 보기 위해 그가 사는 곳으로 가서 오후 내내 그와 함께 낚시를 한다(「아껴 쓴다면」). 평소라면 거의 방문할 일이 없는 산속 마을에 택배 배송을 하러 갔다가 눈 때문에 고립되어 한 노인의 집에 머물게 된 ‘나’의 사연도 있다(「크리스마스 택배」). 사랑하던 이의 죽음, 낯선 이의 갑작스러운 방문 등으로 자기 안에 묻어 두었던 기억을 담담히 떠올리는 수정의 이야기는 중편 소설이자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다(「겨울의 색채」).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견디며 건조해져 버린 인물들, 그들의 일상에 ‘사건’처럼 다가오는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한 미세한 변화의 조짐 등은 소설집 전반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모티프이다. 예기치 못한 폭설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있는, 다시 말해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들을 소설 속으로 옮겨 놓으며 작가 서동욱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한겨울 거리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추워서 옷깃을 여미고 손을 비비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눈과 추위 속에서 별다른 외투도 없이 홑겹 옷 하나만 입고 홀로 서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호호 불지도 않고 덜덜 떨지도 않습니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춥다는 말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은 유난히 매우 춥고, 눈이 내리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제 마음을 가장 울리는 이미지는 그러한 이미지입니다.
-〈뒷이야기〉 중에서
저자

서동욱

1985년生.2019년조선일보에「당장필요한」이당선.

목차

당장필요한
아껴쓴다면
크리스마스택배
겨울의색채
뒷이야기
작가의말
차례

출판사 서평

“당장필요한것들을가져왔어요.여기에당장필요한거요.”

함께주사위를던지거나낚싯대를드리우는일
해결할수없는문제들과불투명한미래속에서
인간을위로하는방법과글쓰기

『겨울의색채』속등장인물들은오래도록추운겨울을홀로지냈던이들이다.그들은제몸을데워줄안락한곳을찾거나더두꺼운옷을껴입으려하지않는다.그저자신처럼오도카니서있는인물을알아차리고그곁으로간다.소설속에서로를얼싸안는것같은극적인장면은등장하지않는다.다만인물들은부루마블을하기위해주사위를던지거나나란히앉아낚싯대를드리운다.건물을살수도있고무인도에갇히는바람에한차례쉬면서다음차례를기다려야할수도있다.마치물고기를낚을수도있고,아무것도낚지못할수도있는것처럼말이다.중요한것은운과불운그자체가아니라,운과불운‘사이’의시간을함께보내는것일테다.

『겨울의색채』를읽고맨처음떠올린것은장면이었다.주사위가던져진직후,말은어쩔수없이이동해야한다.낚싯대가드리워진직후,사람은어쩔수없이기다려야한다.장면은회화나사진처럼으레2차원으로시작되지만,평면에서우리는입체적인삶을상상해야한다.(…)눈은진눈깨비로내리기도하고폭설로퍼붓기도한다.장면에색을입히는것도,눈의감촉을떠올리며볼을쓸어내리는것도,등장인물의말에목소리를부여하는것도독자의몫이다.그의소설을읽는일은적극적으로장면에가담하는일이다.
-〈추천사〉중에서

홀로견디던이들이일시적일지언정누군가와함께하는장면들은미약하게나마그들의삶에새로운가능성을열어준다.극적인행위나결말없이도서동욱의소설에서변화의‘파동’을감지할수있는것은바로이러한이유때문이다.인물들사이에서일어나는고요한응시와그들이함께견디는시간은소설바깥으로까지확장될수도있다는점에서의미가깊다.
〈작가의말〉에서서동욱은그의소설이독자들에게위로가될수있기를바란다고적었다.그의말을빌리자면위로는“비어있고별거없다고생각한공간속에서불현듯몸을부르르떨게되는경험”이다.소설속인물과인물들의사이,그들이무심하게주고받는대화와행동들.그장면속으로‘적극적’으로가담할때그들사이로흐르는저보일듯말듯한온기가불시에우리에게전달될지도모를일인것이다.

‘소설의바다’를항해하는호밀밭소설선,각기다른‘사연의고고학’을꿈꾸며

서동욱작가의『겨울의색채』는소설의바다로향하는호밀밭소설선의여덟번째작품이다.호밀밭소설선‘소설의바다’는한국소설의사회적상상력을탐구한다.또한문학과예술의미적형식을타고넘으며,우리가잃어버린삶의흔적을새롭게탐사하는서사적항해를꿈꾼다.때로는넘어지고,때로는아파하고,때로는분노하고,또때로는서로를보듬으며,난파한세상속으로함께나아가는문학적모험을지향하는것이다.
호밀밭의소설은우리가상실한생의가치와존재방식을집요하게되물으며,동시에우리삶에필요한따뜻한자원을발굴하는‘사연의고고학자’가되고자한다.소설이라는사회적의사소통방식은분명오래된것이지만,그속에는우리삶과공동체의가치를새롭게정초할수있는‘여전한힘’이존재한다고믿는다.이것이바로지금,우리가‘소설의바다’로나아가려는이유이다.
-호밀밭문학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