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장르가된,우리시대음유시인정태춘의
선율도화성도벗어버린벌거벗은텍스트들
『시인의마을』(1978)이란데뷔앨범제목처럼정태춘은가수이전에이미시인(詩人)이었다.그런그가12번째앨범『집중호우사이』를발매하면서본격적으로‘문학프로젝트’를표방했다.그의이번앨범을두고문학평론가오민석은“지금까지한국대중가요가이룩한최고의문학적성취”라고표현하기도했는데,이처럼이번앨범은그의노래인생을관통해온‘문학프로젝트’의연장선이자한국문학에진빚을갚고자한그의오랜바람을실현한결과물로평가받고있다.
문학프로젝트중하나로출간한노래시집『집중호우사이』역시그가노래를멈추고가죽공예,한시,붓글,사진작업등으로확장해온지난20여년의기록을한권에담아낸특별한성찰의산물이다.노랫말,한시,산문,사진,이야기시,메모등장르를넘나드는글들이‘노래시’라는이름으로엮인이책은단순한시집이아니라,“노래가된시,시가된노래”라는그만의고유한창작방식을통해한국대중음악사와문학사에동시에발을딛는새로운텍스트들로다가온다.
정태춘은이번책에서자연과삶,존재의무상함을시적으로보여줄뿐아니라,‘고릴라다이어리’라는이야기시를통해문명비판과반산업주의,그리고대안공동체에대한상상력까지담아낸다.또한이를통해그는동아시아의자연시인도연명,평화주의자틱낫한등과같은맥락속에서‘수양적예술’을실천하는사유하는예술가로자리매김하고‘동아시아적노래시인’으로서의독자적위상을다시한번확인시킨다.
책에는그가직접찍은사진들이캡션없이삽입되어붓글씨와함께무심한듯진솔한시적정조를더한다.덧붙여,그의시편곳곳에는동양의풍자시정신,불교의무상관,동아시아예술가들의사유전통이깊게배어있어독자들에게시적아름다움과철학적성찰을동시에선사한다.자서(自序)를통해,“돌아보면저20여년이란세월도별일없이흘러갔다.그시간들의소소한이야기들을노래와시로풀어놓는다.”라고말한정태춘의이번노래시집『집중호우사이』는동명의정규12집음반과함께음악과문학의경계를허무는새로운시도이자사유와예술,삶의통합을지향하는그의예술철학을보여주는또하나의문학적성취이다.
책속에서
p.11첫한시(漢詩)가나왔다.요즘누가한시읽고쓰느냐고들하지만천자문을쓰다가이렇게한시가내게와주어서이제까지내치지않고또,붓을놓지못하고있다.노래만들기를접었어도내말을완전히접을수는없던터에,그걸풀어낼새방법과새로운재미를알게된것이었다.
p.16도시는영하십여도/서북한파가칼바람으로춤추는데/수천세대아파트/집집마다더운물목욕/이른저녁위층에선첼로소리/담벼락아래로/어린고양이울며지나가는소리
p.23강원도원주시부론면정산리솔미마을,멀리강가의하얀펜션.마을에서수익사업으로정부도움받아서지어운영하던솔미펜션,손님없으니몇년째애물단지.2013년유월내가거기들어갔다.저렴한장기임대.마을에선드디어관리인하나둔셈이지만내겐꿈같은작업실이생긴것이었다.내살림을다가져오진못했지만,여기가나의마지막거처가되어준다면좋겠다,여기서내가소진되리라…참,복도많지.그러나,5년여들락거리다결국짐다싸들고서울로다시귀환하지않으면안되었다.2018년에나왔다.
p.491972년,나는그때30만원짜리이태리제바이올린을서울자취방에내던지고도망갔었고,평생변방인으로살았고…아직도나는그도망길에서돌아오지않았는지모른다.
p.612019년,정태춘박은옥40주년프로젝트전국순회콘서트“날자,오리배”첫공연은제주였다.전날20여명의스태프가비행기를타고내려가하루묵고공연날아침,바다도안보이는우리숙소타일바닥에한지깔고무심히썼다.그리고배접해서이후의20여개지역을돌며공연장티켓박스위에걸었다.아무도눈여겨보지않았다.
p.93오래전,KBSTV의어느여행프로그램을촬영하기위해외연도와태안반도를둘러보게되었고,다녀와서만든노래다.작은섬,작은초등학교음악수업을한다고여남은명어린아이들과학교뒷산에올라갔다.거기서그들과노랫말을만들고그것으로노래를만들고,함께부르고…그가파른산길구식올갠을메고함께오르던학교의고주사님,온산의검은염소들,아이들머리카락같이보드라운산정상의푸르른풀들을빛나게쓸어주며불던서해바람.아,그리고박은옥의풍금소리.그섬에다시가보고싶다.오래묵힌노래를녹음해서〈2019’사람들〉앨범에실었다.
p.181성공회대학교강당에서어떤행사가있었고(아마도난노래를안했다)〈더숲트리오〉의공연을보게되었다.김창남교수와또두분의노래.그런데,내가듣고싶었던〈비둘기야〉를안하고공연을끝내는것이었다.그래내가객석에서“거,비둘기야좀불러주세요,불러주세요.”강권을해서결국,들었다.그리고,집에와서그런노래를나도하나만들어야겠다고생각했다.그비극의서정,나의이야기로....이노래가나왔다.너무비극적이지는않았다.
p.2072019년,내노래에세이집〈바다로가는시내버스〉출간인연으로오민석시인을알게되었다.그분의시집들을거의다보고근래의에세이,평론집까지훑었다.그탁월한작가의평론집에거론되는시인들의시집들도다사서읽었다.어느시인은보내주었다.이노래의도입부는오시인의시너울에서빠져나오지않고얼마간차용하여시작하게되었다.“겨울강…”그한마디에담긴특별한울림이이노래를만들게했다....동백.악양섬진강가의이원규시인네마당에서보았고,여수강종열화백의화실밭에서보았다.날이따뜻해지기시작하면붉은꽃은,동백은세상에서사라진다.
p.221이번앨범에아내가불러줬으면해서처음부터골라놓았던곡이었는데결국은‘잘못부르겠다,잘안맞는다’고포기한,아까운레퍼토리이다.시작부분의테마는이미시집으로도발표했던,전에오래살던송파에서의이야기이다.송파올림픽공원의외진벤치등받이에서보았던하얀수정액글.“너그리워눈물이나.”거기에현거주지마포의풍경을겹치게되었다.이곡이언젠가발표되고,그수정액의시인이불쑥나타난다면저작권의반쯤은그의것이라인정해야할것이다.그리워서눈물이나다니…누가이마음모를까.
p.260나도때론메이저곡(장조곡)을쓰기도한다.메이저라고다그런것은아니지만그명랑함이,때때로내게도온다.나도맑아진다.그안에서만살수는없을까…
p.299내집에서동북으로멀리보이는북한산봉우리보현봉.누가와서‘저건문필봉이네요’했다.여기와서많은글을썼다.주로붓글.10년여만에새노래들도많이만들고…문필봉의음덕일까.“보현”이라는호를하나더쓸까.그보현봉과내이마사이에안산도있다.밖에선,장마지난뒤도로의하수관로대대적으로공사하고보도블록새로깔고(동네의보도는경사면들이너무많아서걷기에아주불편하다.약간은절뚝거리며…그런것까지완벽하게해결하지는않은것같다)오늘은거대한특수차로아스팔트깎아내고,새로깔고있다.좁은길소음과먼지가가득한데난그걸쫓아다니며구경한다.어쨌든,고요히지나가고있지않은가,내생의한철.
p.348시와시메모들이노래가되더니/노래가앨범이되고,결국/책이되었다//노래가되지못한이야기들이/노래앞뒤에실렸다//나는계속말을하고있다/노래로,붓글로,시로,산문으로//아직은/그렇게벗들곁에서멀리/떠나고싶지않은것인지도/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