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으로부터 멀리, 낮으로부터 더 멀리

픽션으로부터 멀리, 낮으로부터 더 멀리

$16.80
Description
지독한 고독의 여로에서 희열을 캐는
작가의 순수한 고집
장편소설 『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로 한국 소설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박대겸 작가가 돌아왔다. 가깝게는 2021년에서 멀게는 2011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쓴 작품들을 엮은 『픽션으로부터 멀리, 낮으로부터 더 멀리』는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투신해 온 작가의 끈덕진 자취이자 인간적인 성취이다.
여기 실린 아홉 편의 소설은 모두 고독을 질료로 삼는다. 그런데 이 고독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야기들은 존재론적 허무(마치 내가 빛이 된 듯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슬며시 내비치는가 하면, 사회적 고립을 공간적으로 비유(소리가 또 시작되었다)하기도 한다. 백과사전적 지식이라 할 수 있는 기성적 목소리의 현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력함(부러진 안경)이나 비합리적인 광기가 되풀이되는 세상사의 부조리함(글록 17), 문명이 발달할수록 시간의 사유를 잃어버리는 이야기(나비의 속도) 또한 오늘날 우리가 처한 근원적인 고독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흔히 고독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반면 『픽션으로부터 멀리, 낮으로부터 더 멀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의 실마리를 준다. 여기서 고독은 수도승의 침묵 서약처럼 괴롭거나 고통스러운 관념이 아니다. 파스칼 키냐르가 주목한 신화적 인물, 세이렌의 노래를 듣자마자 바다로 뛰어든 선원 부테스(boutes)처럼, 작가는 지독하고 무한한 고독에 있는 힘껏 몸을 던짐으로써 꼿꼿한 정체성을 확립한다. 서사에서 거듭나는 고독은 자발적인 과정이자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주체적이고, 슬픔이나 외로움이 아닌 순수한 희열이다. 일테면 마음을 주고받는 일 없이 홀로 감정을 간직하는 놀라운 결기(빛의 암호)는 고독이라기보다 투명한 고집이다. 스스로 굴에 들어가는 태도에는 타인이나 세상에 바라는 마음의 티끌이 없기에 그야말로 자유롭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자유로운 것이다. 어떤 깨달음을 완성 짓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며 미완을 자처하는 이야기(그날 있었던 일) 또한 오늘날의 독법이 요구하는 마스터플롯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니, 작가에게 ‘고독=자유’라는 공식을 들이밀어도 좋을 것이다.

저자

박대겸

저자:박대겸

소설가.지은책으로<그해여름필립로커웨이에게일어난소설같은일>과<미세먼지>(공저)가있다.

목차

추천사

마치내가빛이된듯이
소리가또시작되었다
빛의암호
부러진안경
나비의속도
그날있었던일
글록17
호세알프레도를찾아서
시간의유속

해설
감사의말

출판사 서평

“정말좋아하는작가는연구할수가없겠더라고.그냥즐겨야지.”
작가이전에광적인독자박대겸의환희로가득찬서사예찬

딱히선생님이없던저에게창작선생님처럼다가와준수많은작가들(과더불어그들의문장을한국어로옮겨준번역가들),그중에서도이단편들을쓰던10여년의시간동안변함없이문학적스승이되어준로베르토볼라뇨선생님,그리고소설적멘토가되어준마이조오타로선생님께감사의인사를보냅니다.
-<감사의말>중에서

데뷔작『그해여름필립로커웨이에게일어난소설같은일』에서작가는수십명의작가와수십편의작품을호명한바있다.이번『픽션으로부터멀리,낮으로부터더멀리』에서도그는자신의문학적배후에어떤실루엣들이서려있는지굳이감추지않는다.오히려당당히그사실을드러내는데,단순한존경의의미인오마주와는또결이조금다르다.그는관심있는작가와작품을서사로호출하는데기쁨을느끼며,아예하나의이야기(호세알프레도를찾아서)로빚어낸다.그런가하면끝없는독서편력으로흡수하다시피체득한문체들을자신만의스타일(시간의유속)로버무리고있기도하다.이처럼선배들이앞서이룩한서사와목소리를사랑하고즐기는저자의태도에는저들의권위를빌리려는치사함이나거만함을엿볼수없다.오직유희만이소설을장악하고있어,독자또한허구적이야기를바라보는작가만의관점에기꺼이사로잡히게될것이다.

한편작가는이야기를풀어놓되필시통합적인결론에이르러야하는전통적인내러티브의구조를택하지않는다.그간탐독한서사적역사없이박대겸을설명하기어려울테지만,그렇다고그의소설이기성서사에매몰되어있는것도아니다.그는자전적서술,상처를치료해주는감상주의적서사,짐짓지성적인제스처를취하는실험소설같은트렌드를정중히밀어낸다.서사를실험이나문학의이름으로봉합하지않기에소설속이야기는고독하고또자유롭다.그로기상태의복서가꿋꿋이마지막라운드까지버티는모습처럼,아홉작품은분류된지식에항복하지않고결연한정직성으로꼿꼿하게완성된다.

책에펼쳐진아홉편의이야기는다채로우면서도통일감이느껴지는문제작이다.각이야기는빛의다채로운스펙트럼처럼저마다고유한서사줄기를띠는동시에,독특한문체와더불어고독과희열이라는남다른문제의식으로서로연결되어있다.그리하여작품은개개의퍼즐조각이돼사슬처럼상호작용하며거대한플롯을구축한다.분명서로다른작중세계에서벌어지는서사임에도일관된통찰력이엿보이는이야기들을누비며우리는어떤형태가됐건허구가삶을건드리고있음을깨칠수있을지도모른다.

‘소설의바다’를항해하는호밀밭소설선,
각기다른‘사연의고고학’을꿈꾸다

작가의『픽션으로부터멀리,낮으로부터더멀리』는소설의바다로향하는호밀밭소설선의열번째작품이다.호밀밭소설선‘소설의바다’는한국소설의사회적상상력을탐구한다.또한문학과예술의미적형식을타고넘으며,우리가잃어버린삶의흔적을새롭게탐사하는서사적항해를꿈꾼다.때로는넘어지고,때로는아파하고,때로는분노하고,또때로는서로를보듬으며,난파한세상속으로함께나아가는문학적모험을지향하는것이다.

호밀밭의소설은우리가상실한생의가치와존재방식을집요하게되물으며,동시에우리삶에필요한따뜻한자원을발굴하는‘사연의고고학자’가되고자한다.소설이라는사회적의사소통방식은분명오래된것이지만,그속에는우리삶과공동체의가치를새롭게정초할수있는‘여전한힘’이존재한다고믿는다.이것이바로지금,우리가‘소설의바다’로나아가려는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