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15.92
저자

존프럼

존프럼은제4회한국과학문학상중·단편부문우수상을수상하며데뷔했다.제2회문윤성SF문학상중·단편부문가작을수상했다.천천히서두르며,우리내면의얼어붙은바다를깨는도끼같은소설을쓰고자한다.

목차

노아의어머니들
영원의모양으로찻잔을돌리면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회귀
나의디지털호스피스
신의소스코드
콧수염배관공을위한찬가

발문|‘존프럼월드’라는행복한미로
작가의말
추천의말

출판사 서평

“당신이라면나르시시즘도자기혐오도아닌태도로
자신의분신을대할수있을까?”

우주너머를상상하고
상식의한계를고찰하는정통SF의매력

끝나지않는역설의항로속에서나는분해와재생을거듭하는테세우스의배를타고영원히헤매이게될까.혹은어딘가에서마침내삶의안식처를발견하게될까.
〈영원의모양으로찻잔을돌리면〉,p.130

미국의SF영화감독제임스캐머런은어느인터뷰에서“SF는가장깊은철학의심연을두려워하지않는장르다.단지괴물이나우주선을다루는이야기가아니라인간의영혼을직시하는이야기다”라고말한바있다.이는그가주창하는좋은SF의기준일것이다.존프럼은이명제에정확히응답하는작가다.

소설집『영원의모양으로찻잔을돌리면』의수록작7편은세계와그안의인간에대해질문하는철학적인테마에서출발하여,이와긴밀하게얽힌주제의식을드러낸다.복제인간을다루며자아의범위에대해묻고(〈영원의모양으로찻잔을돌리면〉)우리우주와동일한소우주를설정한다음자유의지와결정론에대해질문한다(〈회귀〉).가상현실속인물들을보여주며세계의실재에대해탐색하고(〈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나의디지털호스피스〉),우리세계의상위차원을이야기하며우주너머를상상한다(〈신의소스코드〉).

이처럼존프럼은정통SF의가치를고수하면서도제재에대한색다른해석,추진력있는서사와위트넘치는대사들로깊이있고풍성한작품세계를이룩한다.

대도시적인감각으로
각자의목표를향해전진하는인물들

그녀를쫓아서라면세상끝까지라도갈생각이었지만,상위차원이라면……이야기가조금달라지니까요.
〈신의소스코드〉,P.304

『영원의모양으로찻잔을돌리면』의수록작은모두과학기술이크게발전된미래세계를배경으로한다.존프럼은초끈이론,시뮬레이션우주론,메타버스등과학적도구를적극적으로활용하여죽음을극복하고우주를탐험하는세계를정밀하게설계해둔다.그렇지만이같은최첨단사회에서도인간은인간이다.7편의작품속인물들은각자의사랑과행복을좇으며,자신만의이야기를만들어간다.처음에이들은세계질서를내면화하고개인적삶에집중하고있는대도시적감각을지닌개인들처럼보인다.그러나사랑하는대상의상실이나뜻밖의경험을계기로세계에의구심을품으며,세계의거대한질서에맞서기시작한다.

표제작〈영원의모양으로찻잔을돌리면〉의화자는원본을위해기꺼이죽음을선택하는복제인간이다.그는자신과똑같은의식과신체를가진원본을확장된자아로받아들이고,그를위해자신은한개체로서소멸하기위한여정을시작한다.수많은SF소설속복제인간들이원본의그늘에서벗어나거나,노동이나장기이식등을위한기능적생존을넘어서길꿈꾸는식으로그려졌던것을살짝비틀어,다른출발점을갖게한것이다.그는오로지죽음을위하여영생이보장되는최첨단문명사회를벗어나아날로그한삶을추구하는‘게토’로망명하는데,뜻밖에도그곳에서삶의희로애락과노동의보람,그리고죽음에대한공포를경험하며하나의독립된인격체로거듭난다.

이렇듯평범한삶을누리다가세계에대해의구심을갖고뜻밖의여정을시작하는것은〈신의소스코드〉의주인공안나도마찬가지다.이세계가상위차원이만든시뮬레이션일뿐이라고판명났을때,안나는차원이동을꿈꾸는대신시뮬레이션우주론을활용한게임을개발해그안에서백만장자가된다.안나가상위차원으로의여정을결심하는이유는오로지연인쥬시를되찾기위해서다.이밖에도〈회귀〉의주인공은잃어버린가족과재회하고자가상현실과소우주라는낯선영역을탐색하기시작하며,〈노아의어머니들〉의노아는양모의죽음을계기로친부모를찾으러고국으로떠난다.

세계보다자신의내면과개인적목표에집중한다는점에서이들은소위‘MZ세대’처럼보이기도한다.이들은각자의목표를추구하는과정에서숙명적으로자신만의울타리를넘어서고,뒤늦게세계와대결하기시작한다.그리고인간복제와다차원의세계,자유의지에대한진중한고민을시작한다.존프럼은이렇게인물의성장을통해작품의주제의식을입체적으로구현해낸다.

미래와과거로동시에뻗어가는SF의시간
첨단도시에서발견하는아날로그의조각들

탈레반은무덤가일대를쑥대밭으로만들었지만,제자들은새무덤을세워오늘도꽃을가져다놓는다고한다.때론붉디붉은양귀비꽃이,때론솜털을흩날리는갈대꽃이유해를잃은그무덤가를장식하리라.
〈노아의어머니들〉,p.56

소설집『영원의모양으로찻잔을돌리면』의또한가지매력은동시대적이고아날로그한감성이다.수록작중가장과학소설에가까운〈회귀〉는최신과학이론인‘초끈이론’을중요한제재로삼는한편,이야기의전개방식에있어선필립K.딕을연상시키는레트로SF의매력을선보인다.마지막수록작인〈콧수염배관공을위한찬가〉는고전비디오게임인‘슈퍼마리오’를주요한소재로다루며,대부분의작품에1960~1970년대록음악과클래식영화들에대한오마주가등장한다.각수록작의배경이모두미래이며,현대보다과학기술이크게발전한세계를상정하고있기에,이렇듯작중에불쑥불쑥등장하는과거대중문화를향한오마주는더욱특별한감성을자아낸다.

한편〈노아의어머니들〉의경우과거가아닌동시대에초점을맞추었다.미군이아프가니스탄에서전격철수한현실의사건을소재로한것처럼보이는이작품은,SF란렌즈를통해현대의비극을다각도로들여다본다.주인공노아는아프간가정에서태어났으나어린아기였을때철조망너머로미군에게보내졌다.그는성인이되어고국으로돌아와친부모를찾는데,그의여정에있어발전된기술은때로는도움이되기도하고때로는위협이되기도한다.이같은딜레마를통해존프럼은과학기술과인간의관계를고찰한다.존프럼은이처럼기술이발전된미래의상황을상정하곤하는SF라는장르에,과거와현대의시간을중첩하며완성도있는작품세계를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