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마음먹었다.완벽을,완벽히폐기하리라고”
도통뜻대로안되는세상에서소설가로살아남기
이책에실린글들은그가작가로데뷔한후지난몇년간여러매체에실었던산문들가운데휴식과여행을테마로한글들을모으고,다듬고,더한것이다.기대와는다른서울살이의도피로떠난첫유럽배낭여행부터,사고치고(?)떠난뉴욕,제주도최남단의섬가파도에서의생활,여행예능도전기등,일과쉼,여행과사람에대한단상들을담고있다.그러나대도시의워커홀릭이온전한쉼에이르는길은결코순탄하지않다.상상속우아한가파도아티스트레지던시의실체는벌레(그리마!붉은다리지네!갯강구!)와의전쟁이고,태풍에발이묶이는가하면,지긋지긋한불면증으로낯선방에서잠을설치기일쑤이고,친구들이방문하는날지독한감기에걸리고,마감은매번코앞에닥쳐온다.그럼에도다시한번순도100퍼센트의휴식을꿈꾼다.작가박상영은더많은풍경과,더고마운사람들,더눈물나게웃긴이야기들을한보따리풀어놓으며,오늘도불안과강박과싸우는이들을향해잘쉬고있느냐고묻는다.
책속에서
어쩌면,내게있어여행은‘휴식’의동의어나유의어가아니라,일상의시름을잊게해주는또다른자극이나더큰고통에가까운행위가아닐까?환부를꿰뚫어통증을잊게하는침구술처럼일상한중간을꿰뚫어,지리멸렬한일상도실은살만한것이라는걸체감하게하는과정일수도.써놓고보니(피학의민족한국인답게몹시)변태적인발상이라는생각이들지만……이또한나에게가까운진실인것만같다.이런내가여행을통해순도100퍼센트의휴식을즐기기힘든건어찌보면당연한일일지도모르겠다.그래서나는마음먹었다.완벽을,완벽히폐기하리라고.
---「프롤로그」중에서
그날밤내몸에서심상치않은일이벌어지기시작했다.역시나누군가의코고는소리에잠들지못했던나는배를칼로찌르는듯한날카로운통증을느껴나도모르게짧은신음을내며자리에서일어났다.내신음소리를듣고놀란Y도덩달아깼다.나는Y에게말했다.
“니……맹장염걸려봤나?”
“아니.”
“내아무래도맹장염같다.배졸라아픔.”
“설마,아니겠지.그거못버틸정도라카던데.”
“내진짜태어나서처음느껴보는통증이거든.아씨어떡하노.내여행자보험도안들어놨는데…….”
“갑자기보험이왜나오는데.”
찢어지는듯한복통을느끼는와중에도나는스코틀랜드의살인적인물가와의료비에대해,만원이아까워들지않은여행자보험에대해생각했다
---「서툰여행자를위한보험」중에서
태어나서처음으로슬럼프에빠졌다.아무것도쓰고싶지않았다.내가쓰고싶었고쓸수있는것은앞선세권의책에모두다쏟아부은것만같았다.더불어나는웃음을잃었다.웃음을잃고나서야비로소깨달았다.나의웃음이진짜웃겨서웃는웃음이아니라슬픈광대가흘리는검은눈물에서배어나오는안간힘이나다름없었다는사실을.내가쓰는글이더이상하나도웃기지않았고,누군가를웃겨주고싶다는의지조차희미해져버린걸깨달았다.‘요즘나왜이렇게안웃길까.’(…)그럼에도불구하고나는쉬어야했다.얼른생각을멈추고,얼른쉬고,얼른마음을추스르고빨리다음책을써야만했다.책계약이밀려있었고,연재도해야하고,첫번째장편소설도(매우유려하고재미있으며작품성과대중성을고루갖출수있게잘)써야만했다.그런데도무지방법을알수없었다.
---「슬럼프와가파도」중에서
커다란솥에면을삶고프라이팬에정신없이야채를볶다보면누군가부엌으로들어왔다.그럴때면나는내가반바지와민소매티셔츠만을걸치고있다는것을상기했다.뭍이었으면타인앞에서불경하게나의겨드랑이를드러내는짓따위는할수없었겠으나여기는가파도아닌가.제주본섬에서10분이나배를타고내려와야하는한반도최남단의섬,이곳의천혜자연은내맨겨드랑이정도야가볍게품어줄수있지않을까?뭐이런얼토당토않은마음으로고급중국집의주방장이라도된것처럼자신감있게웍질을했다.그리고지구상어디에도존재하지않는기상천외한파스타를만들어혼자서게걸스럽게먹어치웠다.
---「가파도아침풍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