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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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보라

저자:정보라

연세대인문학부를졸업하고,예일대에서러시아·동유럽지역학석사를거쳐,인디아나대에서러시아문학과폴란드문학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1998년연세문화상에〈머리〉가,2008년디지털문학상모바일부문우수상에〈호(狐)〉가당선되었으며,2014년〈씨앗〉으로제1회SF어워드단편부문우수상을수상했다.《저주토끼》로2022년부커상국제부문최종후보에올랐고,이듬해국내최초로전미도서상번역문학부문최종후보에도이름을올렸다.

지은책으로소설집《저주토끼》《여자들의왕》《아무도모를것이다》《한밤의시간표》《죽음은언제나당신과함께》,장편소설《문이열렸다》《죽은자의꿈》《붉은칼》《호》《고통에관하여》《밤이오면우리는》등이있으며,옮긴책으로《거장과마르가리타》《탐욕》《창백한말》《어머니》《로봇동화》등이있다.접기

목차

문어|대게|상어|개복치|해파리|고래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항복하면죽는다.우리는다같이살아야한다.”

직접움직이고실천하는소설가정보라의진실한픽션

전미도서상최종후보자였던작가님께메시지를받았다.올해최종후보자들이시상식에서가자지구학살반대성명을낼계획인데참여하겠냐는제안이었다.나는당장동의했다.(…)시상식당일,저스틴토레스작가가소설부문전미도서상을수상했다.토레스작가는수상소감을짧게끊고우리를모두무대위로불렀다.빌랄작가가앞에나서서성명문을읽었다.(정보라칼럼,〈팔레스타인집단학살을멈춰라〉,『여성신문』2023년11월22일자)

2023년가을,작가정보라는『저주토끼』가전미도서상번역문학부문최종후보에올라뉴욕으로향했다.맨해튼공공도서관에서열린행사에서그는길에서사탕을팔고있던열살배기아이를본일에관해이야기하며“이런일들은나를화나게만들고,화가날때글을쓴다”라고말했다.시상식에서그는가자지구학살반대성명을낭독하는자리에함께했고,폴란드크라쿠프중앙광장에서도팔레스타인내집단학살을규탄하는시위에함께했다.

‘사실보다더진실한이야기’라는소설의성격에충실한정보라의첫자전적연작『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는해양(외계)생물이출몰하는여섯편의소설이모였지만우리세계의모순을거울처럼비춰낸다.노동,장애,기후와생태등의이슈가단지머릿속구호로멈추지않고실제거리에나가땡볕이나추위를견디며목소리를내온작가의행보가생생하게녹아있다.격발하는분노를담은거친문장들이『저주토끼』를비롯한많은전작과닮았지만,“이소설의대부분은실화에바탕을두고있다”라고‘작가의말’에서밝혔듯작가가2020년대를지나오며느낀솔직한고민과남편을만나사랑하게된시절의흔적이군데군데드러난다.한편종잡을수없는서사가펼쳐지며외계존재와의조우로코믹한장면이연출된다는점에서독특한매력으로독자를사로잡는다.

바위에부딪혀부서져도다시솟구치는파도처럼

나는가르치고연구하는사람이었고그것이나의천직이었다.학생은선생이없어도스스로배우고공부하는사람이라면모두학생이다.그러나선생은학생이없으면아무것도아니다.나는학생들을사랑했고강단을사랑했고교육의가치를진심으로믿었다.그것이내존재의의미였다.그러므로싸워보지도않고학교가원하는대로조용히사라져줄수는없었다.(〈문어〉,pp.18~19)

예전엔학생들의강의를한다는것이제삶을완전히결정했어요.철도민영화나세월호서명나간것도그것때문이었고,학생들을마주볼때에떳떳하고싶어서였고,(...)학생들앞에서저는책임있는사람이되고싶었어요.(정보라인터뷰에서,『한겨레』2022년7월16일자)

이책은강사법개정과팬데믹이후대학에서비정규직강사들을대량으로해고하는사태를배경으로한〈문어〉에서시작된다.한밤중대학본관에나타난문어는“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라고엄숙하게외치지만,농성천막을홀로지키던위원장님은잠결에이문어를잡아라면에넣어먹으면서벌어지는해프닝을담고있다.실제로이소설의초반5~6쪽은2021년모대학교농성장에서썼으며,강단과학생을향한작가의짙은그리움도드러나있다.연작은이주노동자와해양생태계를근심하는동시에새로만난가족들을향한애정을드러내는〈대게〉와〈상어〉로이어진다.‘이길것같지않아도’‘도망칠곳이없어도’싸워야한다는남편과의단단한유대감이이해되면서,암투병중인그를잃을수없는작가의절박한마음도읽어낼수있다.이어지는소설〈개복치〉에서는인형과게임을좋아하는선우의바닷속탐험을다루며남들과다른것이틀린것은아니기에각자의삶의방식을찾으면된다는따뜻한조언을건넨다.마지막으로우주해파리와의접촉이후검은정장입은사람들의진실을알아가는여정이담긴〈해파리〉와〈고래〉로정보라의해양생물연작은끝을맺는다.

여섯종의해양생물과얽혀갑자기연행되고억류되기를반복하지만,‘나’와‘남편(위원장님)’은인간종을넘어서여러생명체와연대하며견고한바위같은어려움에부딪혀도저항을이어나간다.이는변화의가능성을믿고거리에서손을마주잡고세상을조금씩바꿔나가는사람들모두의이야기이기도하다.

쫓겨나지않는세상,군림하지않는평화를위해

러시아는2014년우크라이나크름반도를점유한이후크름반도의고질적인물부족문제를해결한다는명목으로인근흑해바닥에구멍을뚫기시작했다.지금까지내가알기로구멍을스물여섯개정도뚫었다는데크름반도의물부족문제가해결됐다는소식은듣지못했고우크라이나측에서크름반도로식수를공급하겠다고제안했는데러시아는물론거절했다.(〈대게〉,p.64)

소금값은벌써몇달전부터통제불가능하게치솟았다.평생먹을소금을미리사놓을수는없다.그리고해수는지구를순환한다.바닷물이오염되면우리는다죽는다.(〈고래〉,p.223)

이이야기는시간강사당사자로서처우개선을위해싸웠던서울의이야기에서부터포항에서의생활과연대의기록을담아지역적인사건들로구성되는한편,러시아의우크라이나침공과일본의원전폐수방류까지국제적인문제에관한입장도드러나있다.세계가무너질때피할수있는사람은없고,지구가망가지면모든생물이터전을잃는다는자명한사실에서비롯한흐름일것이다.

작품속문어는“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라고집요하게외치고,“세상은왠지점점나빠지는것같다”고,“혼자서대항할방법이없다.속상하다”며작가도근심하지만,이책을덮고나면“항복하면죽는다.우리는다같이살아야한다”(pp.263~266)는메시지가선명해진다.책장을덮고나면모두가쫓겨나지않고굶주리지않으며자유롭고건강하게살아갈수있도록,오늘도부지런히평화를위해싸우는지구생물체모두행복하길빌어보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