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의 상자

미정의 상자

$16.80
Description
아득한 우주에서도, 무너진 세계에서도,
저 멀리 반짝이는 ‘당신’을 발견하는 정소연의 SF
“한 사람의 마음속이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알게 해주는 작품” 구병모(소설가)

데뷔 20주년을 맞은 정소연의 소설집 《미정의 상자》가 출간되었다. 지난해 먼저 선보인 《앨리스와의 티타임》과 나란히 놓이며 《옆집의 영희 씨》 복간 프로젝트가 완료된 것이다. 10년 전 “소박하지만 위대한 삶의 단면들”을 담아내며 “제법 묵직한 성취”(소설가 배명훈)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았던 이 책은 아쉽게도 장기간 절판된 바 있다. 독자들의 꾸준한 복간 요청이 이어지던 이 책이 작가의 신작 단편들과 함께 새 짜임, 새 장정을 갖추어 래빗홀에서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비교적 초기작이 다수였던 《앨리스와의 티타임》과 달리 이 책에서는 구간 수록작 5편에 신작 9편이 더해져 총 14편이 묶였다.
첫 챕터인 ‘카두케우스 이야기’는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배경인 연작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먼 거리를 단숨에 건너갈 수 있는 ‘비상점’을 통해 먼 항성계 사이를 건너갈 수 있지만, ‘도약’이라 불리는 이 초광속 비행 기술을 ‘카두케우스’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공유한다. 특히 〈깃발〉, 〈무심〉, 〈돌먼지〉, 〈비 온 뒤〉, 〈집〉은 기존에 책으로 묶인 적 없는 작품들이라 카두케우스 시대에 어떤 일들이 더 있었는지 궁금해했던 독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챕터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은 재난 상황을 테마로 한 퀴어소설이 다수 묶였다. 표제작 〈미정의 상자〉와 〈현숙, 지은, 두부〉에서는 공통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삶의 다른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상자가 등장하여, 극악의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대상을 살리고 싶고, 그래서 최선을 찾고자 시간마저 되돌리고 싶은 절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환상적인 존재나 고도의 기술 환경이 주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우리의 일상 속 익숙하게 미답의 자리에 남아온 문제들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정소연의 특장은 이 책에서도 빛난다. 더하여 여러 작품이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해 이별하는 이들을 그리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인물들의 의지로 이야기는 항상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게 정소연의 소설은 조금 나은 미래를 향한 문틈을 살짝 벌리고 우리에게 손짓한다.
저자

정소연

저자:정소연
정소연은서울대학교에서사회복지학과철학을전공했고,2005년과학기술창작문예공모에서스토리를맡은만화〈우주류〉로가작을수상하며활동을시작한이래소설창작과번역을병행해왔다.《EPI》《오늘의SF》편집위원,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초대대표로일했다.《팬데믹》《언니밖에없네》등에작품을실었고,지은책으로《미지에서묻고경계에서답하다》(공저)《이사》《세계의악당으로부터나를구하는법》《앨리스와의티타임》《미정의상자》등이있다.옮긴책으로는《어둠의속도》《루나》《이름이무슨상관이람》《허공에서춤추다》등이있다.

목차


카두케우스이야기
이사|깃발|한번의비행|가을바람|무심(無心)|돌먼지|비온뒤|재회|집

무너진세상에서우리는
처음이아니기를|미정의상자|수진|지도위의지희에게|현숙,지은,두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왜날잡지않아?
왜함께떠나지않아?
왜날사랑해?”

손놓고도헤어지지않는마음
각별하게남겨진당신의작별인사

정소연의소설을읽다보면왠지모르게머나먼미래에도어떻게든사람이존재하고있을것만같은작은믿음이생긴다.한사람의마음속이하나의우주라는사실을,증명하지않아도감각적으로알게해주는작품을읽었다.(소설가구병모)

한국여성SF는시공간을뛰어넘으면서도‘지금,여기’를살아가는우리의기쁨과슬픔,고민과희망이생생하게그려져있다.정소연은그대표선수다.확실히다른책에서는경험한적없는따뜻함이넘친다.(번역가사이토마리코)

2005년제2회과학기술창작문예공모에서스토리를맡은만화〈우주류〉로,2006년제48회서울대학교대학문학상소설부문에서〈마산앞바다〉로가작을수상하며올해로데뷔20주년을맞은정소연의단편소설이《앨리스와의티타임》,《미정의상자》두권으로모두묶여나왔다.
“조금미래의SF”(소설가배명훈)이라불리기도했던정소연의소설은SF의신비를충분히발휘하는동시에탁월한감수성과섬세한이야기구성으로과학소설을어렵다고느껴온독자들과의거리를꾸준히좁혀왔다.그가2010년대의한국SF중흥기를이끈주역중한명으로꼽히는것또한이때문이다.담담한듯하다가도어느순간읽는이의마음에강한진동을전해오는정소연소설의매력은이번소설집《미정의상자》에서도충분히발휘된다.

우주여행시대,떠나는사람과남는사람

함께퇴근을시작한날.함께처음차를마신날.하정이유나에게가방을선물한날.가방의유래를말해준날.소중히가꾼작은박물관같은온실을열어보여주었던날.그모든날에이미,유나의이주는언젠가반드시일어날일이었다.유나의세계에서는.반드시일어날일이아니었던것은,사랑에빠진것밖에없었다.(〈깃발〉,p.64)

자신의꿈과가족을위한선택사이에서고민하는소년의이야기로화제가되었던단편〈이사〉를포함한‘카두케우스이야기’는세계설정이중요한연작이다.인류는원거리우주를한순간이동할수있는일종의웜홀과같은‘비상점(飛上占)’들을여러개발견하고이주변의행성들을개발했다.이비상점을통해‘도약’하여다른항성계로향할수있는초광속기술을독점하고있는카두케우스사.그들의유명한슬로건은“우주여행은비매품”이라는말이다.효율과자본의3논리에따라움직이는회사의생리답게우주선탑승은개인의희망만으로가능하지않다.자신이사는지역을선택할수있는자유도제한적이며,자신의이동가치를입증해야만우주여행의기회를얻을수있다.각항성계는농업,광업,의학,물자운송등을맡아유기적으로기능하는데,그러다보니지역간격차도극단적이라서자신이원하는일을하기위해서는그능력을인정받아야한다.이런상황속에서각자바라는미래를위해,옳다고믿는신념을위해무언가를선택하고,그래서떠나거나남겨지는사람들이우주곳곳에흩어져별처럼빛난다.헤어지지만서로를아끼는마음은멈추지않아서,이들의작별인사는아프고또따뜻하게계속된다.

무너진세계,잃는사람과구하는사람

눈을뜨고싶은것같았지만,눈가주름사이로눈물이조금흘러나올뿐,현숙의눈동자는보이지않았다.지은은상자의매끄럽고차가운표면에이마를대고,움켜쥔현숙의손과상자에대고속삭였다.
“다음에는실패하지않을게.”(〈현숙,지은,두부〉,p.338)

‘무너진세계에서우리는’은2020년대우리가공통적으로경험한팬데믹이자연스럽게녹아있는단편들이다수묶였다.하지만해외에서감염병에걸린친구를찾으러가는〈처음이아니기를〉은코로나19유행10년전에쓰인작품이고,사회적재난이아닌개인적위기상황에서클론산업에뛰어드는인물을다룬풍자소설〈수진〉도포함되어다양하게변주되는이야기를경험할수있다.더하여한국의뿌리깊은남아선호사상을꼬집는‘남희(男禧)’와레즈비언‘현아’의우정을다룬〈처음이아니기를〉을비롯해나머지4편의단편도모두동성간사랑을소재로삼아차별과편견,소외,아웃팅등의문제를다루는퀴어소설들이모였다는점도주목할만한점이다.모두가함께재난을겪었다고하지만경험은모두달랐고항상더취약한사람들이있었다.가족과사회에서인정받지못한채위기상황에직면한이들이끝내연인의손을놓지않으려는절실함,혹은자신의사랑을희생해서라도상대방을구하려하는모습에서간절한마음이전해진다.

정소연은‘작가의말’에서“우리는결국더나은방향으로나아간다.천천히,망설이고의심하며,그러나확실하게한걸음씩.이믿음을말하고싶었다”고말한다.정소연의인물들은지독한상실에걸려넘어지면서도어깨를한번으쓱하듯툭툭털고다시일어난다.이별에도잃지않는마음들을소중하게간직하고,그것이자신을이루고있음을기억하면서,서로의안녕을빌며,앞으로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