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 행복론은 어디에 있는가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당신이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든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공통적 사유 주제는 어떠한 접근형태를 취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를 목표로 하였다.
“모든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는 화이트 헤드의 말처럼 ‘모든 학문은 행복학의 각주’일 뿐이다. 철학이나 종교, 과학과 예술도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학문의 역사는 인간의 행복을 활동의 중심에 두고 삶을 본격 논의 대상으로 삼거나 체계화하는 것에는 소극적으로 보인다. 행복학은 학문의 중심은커녕 윤리적 활동을 보조하는 효과로 유지되거나 밀려나 있으며 심리학, 뇌과학 그리고 사회학에 걸쳐 어떤 상태나 만족도를 그려내는 일에 형식적 역할에 불과하거나 단순한 삶의 기술로 전락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피쿠로스가 제시한 고대 서양의 행복론은 삶의 기술인 ‘덕’ 윤리가 중심이였으나 그나마 행복에 관한 논의는 활발했던 시기였다.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에 행복에 관한 아포리즘과 다채로운 비전을 남겼지만, 그것들의 체계화와는 거리가 먼 방법이었다. 그리고 정작 오늘날에도 행복론은 쏟아져 나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진정한 행복보다는 생존 기술이자 행복 산업에 가깝다.
행복은 우리 삶의 지형도에서 가장 깊고 가장 높으며 가장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어떠한 삶에서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인간의 행복 경영을 위한 학문적 체계화는 미흡하고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다. 이처럼 행복론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행복을 개인의 주관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그 반대로 불가지론이나 객관적인 답을 내기가 어려운 문제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안이한 태도다. 아무리 개별성이 강하더라도 그 속에서 골조는 필요한 것이며, 그 골조의 기초가 되는 구조를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저마다 자신 있게 대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답은 대단히 가벼울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수없이 보고 듣고 쓰고 있으나, 그 가치나 의미를 인식하는 수준은 매우 낮으며 심지어는 왜곡으로 불행한 길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행복을 일생을 통한 경영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에서 가끔 느끼는 즐거움 정도로 보는 근본적 무지 때문이다. 또한 행복을 추구할 도구가 미흡하여 누구도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았고 다른 학문을 통한 우회로에 골몰한다. 또한 그동안 행복은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임에도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상대적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취급하였다. 마치 모든 학문의 전제인 『존재』이해가 너무 보편적 개념이라는 이유로 최근까지 소홀히 취급되었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말이다.
또한, 행복론은 공통의 구성된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높은 위계에 있다면 학문의 한 분과로 우뚝 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간 적지 않은 행복론이 나왔으나, 인간 삶의 전체인 행복 요소 중에서 신체, 관조, 감정, 이성, 자유, 의식 등 특정 영역만을 탐구의 목적으로 함으로써 보편적 체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가장 종합적인 행복론 중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제 삶을 돌아볼 여유가 있는 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삶 전체를 장악하는 구조적 접근을 시도하였으나 체계성은 미흡하였으며 그나마도 이후 명맥을 이어가지는 못하였다.
왜 정작 필요한 개인을 위한 행복학은 별도 분과로 독립되지 않았을까? 오늘날 서점 매대는 ‘행복 방법론’으로 뒤덮였지만, 독자는 그 내용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체화하지 못하고 그저 작은 물결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다 사라져 가버린다.
이제 행복론도 제자리를 찾아야 할 때다. F. 펠만은 “삶의 지혜가 심리학자와 신경정신과 의사에 의해 추구되는 상담자의 실천으로 가고 있다”며 “삶의 지혜가 순수한 기술적 문제 해결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더 이상 경험적으로 측정되지 않는 의미 발견의 공간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한 것을 현재 행복론의 위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가정도 기업도 정부도 비전과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면 비용 대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래서 가정학 재정학, 정치학, 경영학이 발달한 이유다. 사회는 무수한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복잡한 사회망 속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세상에서 개인의 경영을 위한 행복론이 없는 것은 가야 할 지름길을 겉돌게 하는 사회적 문제다. 이 책은 개인의 체계적인 행복 함양을 통해 사회와 세상이 진정한 행복의 연대를 이루기를 바라며 시작했다. 이제 행복 관련 서적을 총류와 철학 사이에 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2. 기획 취지
이 책은 인간 삶의 목표인 행복을 일생의 경영 대상으로 보고, 이를 구조적으로 분해 종합하여 ‘행복 원론서’ 역할을 하도록 그 ‘기초인 주춧돌’을 놓고자 구성했다. 오늘날 대다수의 행복론이 저자의 개별적 경험이나 선호 등을 통한 특정 분야에 대한 땜질식 처방만 있었으나, 이 책은 모든 행복론을 포괄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분류, 함축, 체계화한 것이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경영자이자 창조자이며 예술가이다. 당신이 생애를 마칠 때 훌륭한 작품을 남겼는지는 작품을 만들며 당신이 얼마나 즐거웠는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임종 시 ‘나는 행복했다.’라는 유언을 위해서다.
이 책은 행복은 ‘지혜’에 해당하는 학문임을 염두에 두고, 지혜가 발휘되야 하는 관련 요소들의 종합 프레임화를 시도한다. 모든 학문은 인간의 복리 증진과 편리성, 안락을 위한 행복의 수단인데도 그 궁극적 행복학의 내용이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최근 미국의 유수 대학과 우리나라 일부 대학에서도 행복 연구소를 운영하고 강의를 여는 현상은 분명 희망적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우리는 행복의 근원과 그 지향은 결국 ‘긍정적 감정’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긍정적 감정이란 마음의 즐거움, 쾌락, 기쁨 등 의식의 상태를 말한다. 감정의 상태는 이 ‘행복기초론’에서 가장 먼저 놓여지는 출발점이자 주춧돌이다. 그동안 삶에서 감정은 도덕에 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천대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감정을 다루는 심리학이 근대에 와서야 출현한 탓도 있지만. 돈, 가족, 사랑, 명예, 권력 등은 즐거운 감정을 얻기 위한 중간과정이자 수단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정이 발생하기 이전의 모든 행위는 즐거운 감정을 위한 과정이자 수단인데도, 이것들만이 즐거움을 보증한다는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이제부터 당신의 행복에 감정의 중요성을 고찰할 것이며, 감정에 직접 접근하는 지름길을 찾아갈 것이다. 이것은 당신 의식에 장착된 프로그램인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일부터 선행할 때 비로소 보인다. 행복이란 그런 과정에서 당신의 뇌가 느끼는 즐거움 감정, 긍정적 감정인 것이다.
즐거운 감정을 얻기 위해서는 삶 전체의 모습의 유기적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삶을 범주화하고 행복을 이루는 요소들의 관계를 구조화하며 그 구조물의 본질과 기능을 살펴봐야 한다. 이 구조물은 행복의 근원이자 지향인 ‘긍정적 감정’, 행복의 상태인 ‘자유·사랑·창조’, 행복의 3요소인 ‘필드·감정·이데올로기’로 체계화 된다. 즐거운 감정이자 행복한 상태는 행복의 3요소를 조화하는 기술로 ‘지혜’에 해당한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당신이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든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공통적 사유 주제는 어떠한 접근형태를 취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를 목표로 하였다.
“모든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는 화이트 헤드의 말처럼 ‘모든 학문은 행복학의 각주’일 뿐이다. 철학이나 종교, 과학과 예술도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학문의 역사는 인간의 행복을 활동의 중심에 두고 삶을 본격 논의 대상으로 삼거나 체계화하는 것에는 소극적으로 보인다. 행복학은 학문의 중심은커녕 윤리적 활동을 보조하는 효과로 유지되거나 밀려나 있으며 심리학, 뇌과학 그리고 사회학에 걸쳐 어떤 상태나 만족도를 그려내는 일에 형식적 역할에 불과하거나 단순한 삶의 기술로 전락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피쿠로스가 제시한 고대 서양의 행복론은 삶의 기술인 ‘덕’ 윤리가 중심이였으나 그나마 행복에 관한 논의는 활발했던 시기였다.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에 행복에 관한 아포리즘과 다채로운 비전을 남겼지만, 그것들의 체계화와는 거리가 먼 방법이었다. 그리고 정작 오늘날에도 행복론은 쏟아져 나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진정한 행복보다는 생존 기술이자 행복 산업에 가깝다.
행복은 우리 삶의 지형도에서 가장 깊고 가장 높으며 가장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어떠한 삶에서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인간의 행복 경영을 위한 학문적 체계화는 미흡하고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다. 이처럼 행복론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행복을 개인의 주관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그 반대로 불가지론이나 객관적인 답을 내기가 어려운 문제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안이한 태도다. 아무리 개별성이 강하더라도 그 속에서 골조는 필요한 것이며, 그 골조의 기초가 되는 구조를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저마다 자신 있게 대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답은 대단히 가벼울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수없이 보고 듣고 쓰고 있으나, 그 가치나 의미를 인식하는 수준은 매우 낮으며 심지어는 왜곡으로 불행한 길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행복을 일생을 통한 경영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에서 가끔 느끼는 즐거움 정도로 보는 근본적 무지 때문이다. 또한 행복을 추구할 도구가 미흡하여 누구도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았고 다른 학문을 통한 우회로에 골몰한다. 또한 그동안 행복은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임에도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상대적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취급하였다. 마치 모든 학문의 전제인 『존재』이해가 너무 보편적 개념이라는 이유로 최근까지 소홀히 취급되었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말이다.
또한, 행복론은 공통의 구성된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높은 위계에 있다면 학문의 한 분과로 우뚝 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간 적지 않은 행복론이 나왔으나, 인간 삶의 전체인 행복 요소 중에서 신체, 관조, 감정, 이성, 자유, 의식 등 특정 영역만을 탐구의 목적으로 함으로써 보편적 체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가장 종합적인 행복론 중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제 삶을 돌아볼 여유가 있는 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삶 전체를 장악하는 구조적 접근을 시도하였으나 체계성은 미흡하였으며 그나마도 이후 명맥을 이어가지는 못하였다.
왜 정작 필요한 개인을 위한 행복학은 별도 분과로 독립되지 않았을까? 오늘날 서점 매대는 ‘행복 방법론’으로 뒤덮였지만, 독자는 그 내용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체화하지 못하고 그저 작은 물결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다 사라져 가버린다.
이제 행복론도 제자리를 찾아야 할 때다. F. 펠만은 “삶의 지혜가 심리학자와 신경정신과 의사에 의해 추구되는 상담자의 실천으로 가고 있다”며 “삶의 지혜가 순수한 기술적 문제 해결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더 이상 경험적으로 측정되지 않는 의미 발견의 공간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한 것을 현재 행복론의 위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가정도 기업도 정부도 비전과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면 비용 대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래서 가정학 재정학, 정치학, 경영학이 발달한 이유다. 사회는 무수한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복잡한 사회망 속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세상에서 개인의 경영을 위한 행복론이 없는 것은 가야 할 지름길을 겉돌게 하는 사회적 문제다. 이 책은 개인의 체계적인 행복 함양을 통해 사회와 세상이 진정한 행복의 연대를 이루기를 바라며 시작했다. 이제 행복 관련 서적을 총류와 철학 사이에 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2. 기획 취지
이 책은 인간 삶의 목표인 행복을 일생의 경영 대상으로 보고, 이를 구조적으로 분해 종합하여 ‘행복 원론서’ 역할을 하도록 그 ‘기초인 주춧돌’을 놓고자 구성했다. 오늘날 대다수의 행복론이 저자의 개별적 경험이나 선호 등을 통한 특정 분야에 대한 땜질식 처방만 있었으나, 이 책은 모든 행복론을 포괄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분류, 함축, 체계화한 것이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경영자이자 창조자이며 예술가이다. 당신이 생애를 마칠 때 훌륭한 작품을 남겼는지는 작품을 만들며 당신이 얼마나 즐거웠는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임종 시 ‘나는 행복했다.’라는 유언을 위해서다.
이 책은 행복은 ‘지혜’에 해당하는 학문임을 염두에 두고, 지혜가 발휘되야 하는 관련 요소들의 종합 프레임화를 시도한다. 모든 학문은 인간의 복리 증진과 편리성, 안락을 위한 행복의 수단인데도 그 궁극적 행복학의 내용이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최근 미국의 유수 대학과 우리나라 일부 대학에서도 행복 연구소를 운영하고 강의를 여는 현상은 분명 희망적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우리는 행복의 근원과 그 지향은 결국 ‘긍정적 감정’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긍정적 감정이란 마음의 즐거움, 쾌락, 기쁨 등 의식의 상태를 말한다. 감정의 상태는 이 ‘행복기초론’에서 가장 먼저 놓여지는 출발점이자 주춧돌이다. 그동안 삶에서 감정은 도덕에 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천대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감정을 다루는 심리학이 근대에 와서야 출현한 탓도 있지만. 돈, 가족, 사랑, 명예, 권력 등은 즐거운 감정을 얻기 위한 중간과정이자 수단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정이 발생하기 이전의 모든 행위는 즐거운 감정을 위한 과정이자 수단인데도, 이것들만이 즐거움을 보증한다는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이제부터 당신의 행복에 감정의 중요성을 고찰할 것이며, 감정에 직접 접근하는 지름길을 찾아갈 것이다. 이것은 당신 의식에 장착된 프로그램인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일부터 선행할 때 비로소 보인다. 행복이란 그런 과정에서 당신의 뇌가 느끼는 즐거움 감정, 긍정적 감정인 것이다.
즐거운 감정을 얻기 위해서는 삶 전체의 모습의 유기적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삶을 범주화하고 행복을 이루는 요소들의 관계를 구조화하며 그 구조물의 본질과 기능을 살펴봐야 한다. 이 구조물은 행복의 근원이자 지향인 ‘긍정적 감정’, 행복의 상태인 ‘자유·사랑·창조’, 행복의 3요소인 ‘필드·감정·이데올로기’로 체계화 된다. 즐거운 감정이자 행복한 상태는 행복의 3요소를 조화하는 기술로 ‘지혜’에 해당한다.
행복기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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