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먼 섬

서해 먼 섬

$16.00
Description
『서해 먼 섬』은 〈위험한 수업〉, 〈전선에서 살아남기〉, 〈서해 먼 섬〉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최임순

인천에서태어나이화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1991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외출」이당선되었다.소설집『바다건너그곳』,『서해먼섬』이있다.

목차

작가의말-5

위험한수업-12
전선에서살아남기-44
서해먼섬-72
이웃-100
크림빵과강아지-130
재개발지역탈출기-158
사진을찍는이유-192
망가진핸드폰-220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겨울밤은깊어져가고있었다.운전요원은조금나이가들어보였고뒷자리에서나를돌보고있는구급대원들은젊어보였는데둘중에서더나이가어려보이는구급대원의얼굴에는진심으로나를걱정하는빛이역력했다.구급차에오르자마자내게산소마스크부터씌웠는데도산소포화도가점점떨어지고있다고했다.구급차는불꺼진동네마트주차장에머무르고있었다.나를인계할병원을찾지못했기때문이었다.남편은아파트에서조금떨어진마트를주소지로119구급차를요청했다.아파트로구급차가들어온다면내가확진자라는사실이드러날지도모를일이었다.주민들은동요할테고같은엘리베이터를이용하는이들은한동안감염에대한공포를떨칠수없을것이다.병상을구하지못해여기저기분주하게전화를하면서도나이어린구급대원은산소가제대로공급이되는지점검을하느라내곁을맴돌았다.나는그에게미안해요,정말미안해요,하고말했는데함께구급차에탄남편이혹시대원들을감염시킬수있으니까말을하지말라고했다.구급차는좀체출발하지못하고있었다.한시간넘게전화를한끝에겨우자리가하나나왔다고했다.여기서먼곳인데가시겠어요?나이어린구급대원이물었고남편은당연히가야지요,하고대답했다.

확진자폭증으로병상을구하기어렵다는것은뉴스를통해알고있었다.환자들이재택대기중에사망하기도하고,이송중에나응급실밖에서죽어가는심각한상황이벌어지고있었다.밤거리를한참달려서병원응급실앞에도착했지만나는여전히구급차안에서대기해야했다.혹시선생님보다더연세가많으신환자가오게되면못들어갈수도있대요,나이어린구급대원이망설이듯조심스럽게말을꺼냈다.불이환하게켜진응급실앞에는여러대의구급차가서있고구급대원들이서성이고있었다.자정을넘기고나서야나는이동침대에실리고응급실안으로들어섰다.나이어린구급대원은의사에게나를인계하고나서도한참이나근심스레나를지켜보았다.

병원을나가면살뜰하게나를보살펴준그순진하고맑은얼굴의구급대원에게고마웠다는인사를반드시전하리라마음을먹었다.그러나나는곧그젊은이에게감사의인사를전할수없을지도모르겠다는생각을하게되었다.느닷없이쏟아진의사의질문때문이었다.사전연명치료의향서같은거쓰셨습니까?이맛살을잔뜩찌푸린의사가추궁하듯물었다.남편의얼굴이흙빛으로변하면서그러기에는아직너무젊어서,하고는말을잇지못했다.그러면연명치료를하실거예요?의사의질문에남편은대답을하지못했다.인공호흡기를착용할거예요?의사는남편을다그쳤다.생명유지장치를할거냐고요?의사가목소리를높였다.남편은여전히답을하지못하고있었다.산소호흡기를달고연명치료를하실거냐고요?간호사인지의사인지알수없는여자가다시물었다.상황이급박하다는것을겨우깨달은사람처럼남편이고함치듯말했다.끝까지갑니다,끝까지치료할겁니다.모든게순식간에벌어진일처럼느껴졌다.내가죽다니,아무리코로나에걸렸다고해도,열이오르고숨이찰뿐인데,의사가지나치게앞서간다는생각이들면서도와락겁이나는것이었다.나는젊은나이는아니지만그렇다고아직죽음을생각해야하는나이도아니었다.물론죽음에나이는필수항목이아니지만말이다.

그강의실에서나는가장나이가많은학생이었다.그강의실에는나이가많은이들이꽤있었는데그중에서도내가제일연장자였다.수강생들이돌아가면서자기소개를할때여러분에게희망을드릴게요,하면서내나이부터밝혔는데기대했던대로나이많은이들이와,환호하면서기뻐하는것이었다.강사는이공부를하는데나이는문제가되지않는다며죽을때까지공부를놓지말아야한다고덕담같은훈계를늘어놓았다.강사의말에연방고개를끄덕이면서도나는나이가많다는게몹시부끄러웠다.조금더젊었을때도대체무엇을하고살았나,후회와자괴가밀려왔다.

강의가끝난뒤수강생들은인근식당으로우르르몰려갔다.수강생들은세개의테이블로나누어앉았는데나는내나이에환호했던무리에게이끌려구석테이블에앉았다.“언니가올때까지는내가큰언니였는데이제왕언니가와서정말고마워요.”커트머리를한여자는활달해보였다.여자는살집이좋아서얼굴에주름도없었지만나는여자가나보다나이가훨씬많은어른이라는생각이드는것이었다.그여자와마찬가지로여자주위에앉아있는이들도내눈에는손윗사람들처럼보였다.사실나는종종내나이를잊고지내는데그때문에실수를하기도했다.바삐길을가고있을때였다.오래전친하게지냈던미영언니가맞은편에서걸어오는것이었다.너무나반가워서언니,오랜만이에요,큰소리로인사했는데그쪽에서는어리둥절한표정으로나를바라보았고나는곧나의착오를알아채고는도망치듯그자리를벗어났다.내가본미영언니의얼굴은20년전에보았던그얼굴이었다.내가아는미영언니는그세월만큼주름진얼굴이되어있을터였다.그뒤로도가끔씩나는비슷한실수를저지르곤했는데아마더나이가들면실수하는횟수도늘어날게분명했다.
---「위험한수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