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의 꿈 (김재은 장편소설)

지네의 꿈 (김재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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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곳이 너를 옭아매는 담벼락으로 여겨진다면,
여기에서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너 스스로의 힘으로 여길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탈출 방법까지도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면
그 결말은 지금과 같을 거야.”
저자

김재은

저자:김재은
40대,남편이자아빠,치과의사.이단어들은나를주체와객체로구분하여설명한다.둘을분리하지않고삶과하나되고싶었다.삶이내게소설을써보라고제안했다.2년간틈틈이글을쓰면서깨달았다.삶은나를통해자신의생명력을표현하길간절히바라왔다는것을.

목차

작가의말4

지네의꿈8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사춘기를앞둔12살무렵,‘장래희망’을적는종이의빈칸앞에서한참을망설였다.과학자,대통령,축구선수,그전엔쉽게적었던단어들이연필심지끝에서맴돌았다.만족스러운답을찾지못한나는그종이를고이접어가슴깊숙한곳에묻기로했다.시간이지나면자연스레답을알게되리라믿었다.
세상이그런나를보며말을걸었다.꿈은환상이다.극소수만이자신의꿈으로성공한삶을산다.그러니넌대다수가인정하는대학과직업을목표로살아라.그의말은부드럽고달콤했다.그는진심으로나를위하는듯했다.그의말에동의하자묻어둔종이위로한겹의흙이쌓였다.

30년이흘렀다.나는사회의구성원이되어있었다.새로운가족의구성원이되어있었다.하지만그안에‘나’는없었다.난예전에묻어두었던종이를떠올렸다.그종이를찾아야했다.종이를찾으러간그곳에서오랜세월켜켜이쌓인거대한땅덩이를마주했다.막막함에압도당해그자리에주저앉았다.한참을그대로있다가세상에도움을부탁해보기로했다.
오래전나에게부드러운목소리로얘기해주던세상을기대했다.하지만그는매몰차게나의도움을거절했다.종이를찾으려거든너의맨손으로흙을파라며비아냥거렸다.배신감에치가떨렸지만,그의말을곧이곧대로믿은나의잘못을인정하지않을수없었다.
나는딱딱하게굳은땅을맨손으로팠다.손끝에피가맺히고굳은살이박였다.고통을삼키며파내려간곳에서난씨앗하나를발견했다.

그렇게이소설을썼다.

책속에서

“툭,툭,툭…”
까만먹구름이하늘을뒤덮었다.지네마을에비가내린다.그나시리온이하늘을보며걱정스런목소리로말했다.그는지네마을의대장이었다.
“오늘밤엔틀림없이태풍이몰려오네.마을이물에잠기지않도록모두단단히준비해두게.”
지네들은어둡고습한곳을좋아해서축축이젖은바위틈,나뭇잎속에서산다.이지네마을은죽은떡갈나무안에만들어져있었다.나무안엔촉촉한흙과이끼,나뭇잎이깔려있어서지네들이살기에적합했다.게다가떡갈나무껍질로이루어진천장은지네들이무서워하는강력한햇빛을가려주었다.
햇빛에오랫동안노출되면지네몸이건조해져서죽을수도있기때문이다.그나시리온은이떡갈나무로이사해정착한여러지네중하나였다.오랜세월이지나는동안떡갈나무지네마을이번창하여수백마리의지네가사는큰마을이되었다.
초기에떡갈나무에정착한지네들은하나둘세상을떠났고,이제그나시리온만남게되었다.그는백발이성성한노인이지만총기만큼은여느젊은지네들못지않았다.게다가수많은세월동안쌓여온경험과지식으로인해,그는자연스럽게마을의대소사를관장하였다.
“알겠습니다,어르신.저희들이마을곳곳을돌아다니며비피해가없도록준비단단히해두라고일러두겠습니다.”
마을의청년지네들은그의지시를전달하기위해마을여기저기로흩어졌다.
“안에진리있니?”
“네,누구세요?”
당차면서도아직은어린목소리,어린이지네진리였다.
“나,라라누나야.전할말이있어서왔어.”
“누나,안녕하세요.무슨일이세요?”
“어른들은집에안계시니?어머니는아직병원에입원중이시고?”
“네.아빠는엄마병간호하러병원에가셨어요.”
“그렇구나.빨리쾌차하셔야할텐데.어쩔수없이진리너한테얘기해야겠다.지금태풍이오고있대.그나시리온님이천장을단단히정비하라고말씀하셨어.너희집천장에큰구멍이있지않니?”
“어,어떻게알았어요?그누구한테도말한적이없는데?”
“네가엄마다리를고치는방법을알아냈다고나한테자랑하면서얘기하지않았니?아무튼큰비가내려서떡갈나무천장에빗물이새지않도록구멍을꼼꼼히메꿔야한다.알았지?잘못하면우리지네마을이물에잠기게돼.”
“알겠어요.단단히메꿔놓을게요.”
“그럼널믿고가도되겠지?다른집에도이말을전하러가야해서말이야.”
“네.걱정마세요.”
라라가사라지자진리가혼자중얼거리며문을닫았다.
“내가얼마나힘들게저구멍을만들었는데.단단히메꿔놓으면언제다시구멍을만든담.대충나뭇가지로덮어놔야겠다.”
지네들은축축한곳에서살기때문에곰팡이에감염되기쉽다.특히지네알은곰팡이에취약하다.그래서암컷은알을낳자마자온몸을돌돌말아알을감싸고곰팡이에감염되지않도록알을핥아준다.알이부화할때까지무려한달동안암컷은움직이지도않고알을보호한다.진리엄마역시알을낳은후꼼짝않고알을핥아주다가감염되었다.그래서병원에입원하게된것이었다.
“이쯤해두면되겠지?설마그깟비에구멍이무너지려고?”
진리가나뭇가지를얼기설기엮어서대충구멍을채워넣고선아빠를기다리며잠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