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매달린 날 (이선희 시집)

거꾸로 매달린 날 (이선희 시집)

$13.00
Description
이루어지는 건 사랑이다
-시집 『거꾸로 매달린 날』

증재록(한국문인협회홍보위원)


1. 아리땁게 나가는 길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돌려보고 가랑이 사이로 뒤를 바라보며 온갖 사물을 태생의 순수한 모습으로 새겨 본다. 거꾸로 서고 거꾸로 매달려 거꾸로 보는 사물은 거꾸로에서 바로 선다.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것마다 새로운 날을 세워 예리하게 헤치고 있는 시인은 분주하다.
이선희 시인, 정든 길 아리땁게 나가는 길, 아름지고 아람 벌어 아름다운 생각으로 땅과 하늘과 물 사이를 휘저으라는 ‘아리’를 필명으로 쓴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건 모두 사랑이라는 걸 안다. 달콤한 듯하지만 그 속은 쓰디쓴 게 사랑의 약이고 먹어야 하는 밥이다. 그득하지만 가마득한 거기에서 한숨의 목숨 줄기가 푸른 물결처럼 솟아나는 날의 낟알을 빻고 씻고 찌고 만난다. 오늘의 원초적 기준을 세워주는 바라보기가 약이 되어 한숨 깊이 뿌리를 찾아 아침을 맞고 한나절을 보내 저녁을 그린다. 사방에서 팔방으로 이어 십 육방에서 원으로 방향 따라 시선을 그으며 풍월은 읊는 여유, 사물에서 깊은 뜻을 새기는 아리 이선희 시인, 시간에 시달려 매듭 있는 생활의 차안(此岸)에서 앞으로 다가서는 사연의 고개를 오르며 내다보는 길목의 피안(彼岸)을 깊숙 깨치는 데는 약을 담뿍 담은 약 초항아리를 어려서부터 품어왔던 마음이 알차서다.
잠이 깨는 시각이면 숨결 쓰다듬는다. 한 번도 기침을 끓여 올리지 않은 목에 손을 모아 머리 숙이고, 심중에서 피어나는 시의 꽃을 함빡 피운다.

2. 숨길의 현장을 본다

시인의 발길은 디디는 자리마다 숨길의 현장이다. 아픔과 슬픔을 마주치면서도 당당하다. 삶의 길은 굽이굽이 돌아도 눈길은 올바르다. 목 한번 숙이지 않고 살아온 날 그 깊이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만, 비가 촉촉 물방울 맺는 날, 불에 탄 듯한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속을 부드럽게 흘려 다듬으며 아리아리 아리수의 첫머리를 쏟는다. 아리아리 영원한 깨달음이라며 흘러가세! 낮은 곳으로 그게 순리라고, 만남과 이별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심리적 고백을 한다.

추는 쉼 없이 바삐 가라고 재촉하지만
초침은 듣기나 하였는지
제자리 맴돌 듯 똑딱똑딱 허공을 찌르며
귓구멍 속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해가 오르면 갈 곳과 해야 할 일이
발길을 기다리는데
얽히고설킨 생각은
밖으로 나가지 못해 우왕좌왕
머뭇거리는 사이
해는 벌써 저만치 달아난 석양이다
-「느리게 가는 시계」 전문

바쁘다. 그만큼 일이 많고 그만큼 분주하고 해돋이와 해넘이를 바라볼 겨를이 없다. 시침은 여전히 똑같은 간격으로 하루를 셈본 한다. 하루가 얽혀 보고픔도 기다림으로 들어가 깜빡한다. 열렬과 열정이 한줄기에서 피우려는 꽃, 소용돌이 속에서도 올바른 길이 솟아오를 거라는 믿음,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며 지금 기쁨이 순간을 잡고 이어간다. 솟아오르는 힘의 동력은 희망이다. 초침은 여전히 제자리 돌기지만, 그 힘은 세상을 바꾸며 석양으로 내일을 예고한다.
저자

이선희

충북음성에서태어나사진작가로활동하며짓시창작교실에서시를학습하고한국작가를통해등단,제1집『poem&photo』(시사집)을펴냈으며,짓거리시문학회짓거리시세상과한국문인협회원으로작품을발표하고있다.금왕읍응천둘레길과고속도평택제천간금왕휴게소에시화비,백야호반에시화판이있다.2025년충북문화재단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공모전에시가당선되어문예진흥기금을받았다.

목차

5 시인의말


1아리 발길을기다린다

12 거꾸로매달린날
14 느리게가는시계
15 그리움을그리다
16 가야할길
17 그리고남은자
18 그래도한길
19 더미시대
20 신호등
21 잠이든말
22 발은내일을간다
23 허허한날
24 길을연다
25 때는때를깨운다
26 안갯속첫차
27 집으로가는길
28 거울
29 둥지
30 사랑은눈물이다


2아리 오늘을만드는행복

32 삼월이오는길
33 꽃길은혼란스럽다
34 벚꽃이부른오늘
35 벚꽃님가실때
36 벚꽃지는날
37 물에뜬꽃별
38 비를부르는날
39 망초꽃
40 새벽이슬
41 풍선같은날
42 가을산
43 밤나무
44 가을소식
45 가을침입자
46 호숫가저녁노을
47 겨울갈대
48 겨울나비
49 눈길


3아리 어디쯤계실까

52 어디쯤계실까
53 굼벵이앞에서
54 커피타임
55 뜨거운밤
56 부러진삽
57 엽전꾸러미
58 눈치바람
59 미나리
60 오월은아버지의눈을가린다
61 할머니의길
62 장마에핀꿀빵
63 노을여행
64 한가위풍경
65 어떤밥상
66 할머니뜰
67 약초항아리
68 멈춰진날
70 백야리의아침


4아리 봄이부른다

72 봄이부른다
73 끽차(喫茶)
74 어머니빨래터
76 싱그러운무지개
77 발가락
78 가을라일락
79 불청객
80 삼월이
81 헌집주고새집받다
82 빈깡통
83 지푸라기의힘
84 어머니가시던날
86 어머니의봄나물
87 낯선설
88 빈방
89 군화소리를기다리며


5아리 색을칠한다

96 충천중
97 반갑지않은손님
98 삶의중심
99 상처
100 밤새
101 설풍경
102 구정
104 도둑처럼온눈
106 어머니의약손
108 12월
109 홀로서기
110 동행
111 잃어버린시간
112 사랑짓던날
114 아오리와산까치
116 핸드폰속으로
118 용서

발문跋文_증재록(한국문인협회홍보위원)
120 _이루어지는건사랑이다

출판사 서평

이루어지는건사랑이다
-시집『거꾸로매달린날』

증재록(한국문인협회홍보위원)


1.아리땁게나가는길

동심으로돌아간다는건얼마나기쁜일인가.물구나무를서서세상을돌려보고가랑이사이로뒤를바라보며온갖사물을태생의순수한모습으로새겨본다.거꾸로서고거꾸로매달려거꾸로보는사물은거꾸로에서바로선다.눈에보이고손에닿는것마다새로운날을세워예리하게헤치고있는시인은분주하다.
이선희시인,정든길아리땁게나가는길,아름지고아람벌어아름다운생각으로땅과하늘과물사이를휘저으라는‘아리’를필명으로쓴다.너와나의관계에서이루어지는건모두사랑이라는걸안다.달콤한듯하지만그속은쓰디쓴게사랑의약이고먹어야하는밥이다.그득하지만가마득한거기에서한숨의목숨줄기가푸른물결처럼솟아나는날의낟알을빻고씻고찌고만난다.오늘의원초적기준을세워주는바라보기가약이되어한숨깊이뿌리를찾아아침을맞고한나절을보내저녁을그린다.사방에서팔방으로이어십육방에서원으로방향따라시선을그으며풍월은읊는여유,사물에서깊은뜻을새기는아리이선희시인,시간에시달려매듭있는생활의차안(此岸)에서앞으로다가서는사연의고개를오르며내다보는길목의피안(彼岸)을깊숙깨치는데는약을담뿍담은약초항아리를어려서부터품어왔던마음이알차서다.
잠이깨는시각이면숨결쓰다듬는다.한번도기침을끓여올리지않은목에손을모아머리숙이고,심중에서피어나는시의꽃을함빡피운다.

2.숨길의현장을본다

시인의발길은디디는자리마다숨길의현장이다.아픔과슬픔을마주치면서도당당하다.삶의길은굽이굽이돌아도눈길은올바르다.목한번숙이지않고살아온날그깊이를어떻게잴수있을까만,비가촉촉물방울맺는날,불에탄듯한양동이에물을가득담아속을부드럽게흘려다듬으며아리아리아리수의첫머리를쏟는다.아리아리영원한깨달음이라며흘러가세!낮은곳으로그게순리라고,만남과이별의사이에서피어나는심리적고백을한다.

추는쉼없이바삐가라고재촉하지만
초침은듣기나하였는지
제자리맴돌듯똑딱똑딱허공을찌르며
귓구멍속에서벗어나질못한다

해가오르면갈곳과해야할일이
발길을기다리는데
얽히고설킨생각은
밖으로나가지못해우왕좌왕
머뭇거리는사이
해는벌써저만치달아난석양이다
-「느리게가는시계」전문

바쁘다.그만큼일이많고그만큼분주하고해돋이와해넘이를바라볼겨를이없다.시침은여전히똑같은간격으로하루를셈본한다.하루가얽혀보고픔도기다림으로들어가깜빡한다.열렬과열정이한줄기에서피우려는꽃,소용돌이속에서도올바른길이솟아오를거라는믿음,행복은영원하지않다며지금기쁨이순간을잡고이어간다.솟아오르는힘의동력은희망이다.초침은여전히제자리돌기지만,그힘은세상을바꾸며석양으로내일을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