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루어지는 건 사랑이다
-시집 『거꾸로 매달린 날』
증재록(한국문인협회홍보위원)
1. 아리땁게 나가는 길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돌려보고 가랑이 사이로 뒤를 바라보며 온갖 사물을 태생의 순수한 모습으로 새겨 본다. 거꾸로 서고 거꾸로 매달려 거꾸로 보는 사물은 거꾸로에서 바로 선다.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것마다 새로운 날을 세워 예리하게 헤치고 있는 시인은 분주하다.
이선희 시인, 정든 길 아리땁게 나가는 길, 아름지고 아람 벌어 아름다운 생각으로 땅과 하늘과 물 사이를 휘저으라는 ‘아리’를 필명으로 쓴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건 모두 사랑이라는 걸 안다. 달콤한 듯하지만 그 속은 쓰디쓴 게 사랑의 약이고 먹어야 하는 밥이다. 그득하지만 가마득한 거기에서 한숨의 목숨 줄기가 푸른 물결처럼 솟아나는 날의 낟알을 빻고 씻고 찌고 만난다. 오늘의 원초적 기준을 세워주는 바라보기가 약이 되어 한숨 깊이 뿌리를 찾아 아침을 맞고 한나절을 보내 저녁을 그린다. 사방에서 팔방으로 이어 십 육방에서 원으로 방향 따라 시선을 그으며 풍월은 읊는 여유, 사물에서 깊은 뜻을 새기는 아리 이선희 시인, 시간에 시달려 매듭 있는 생활의 차안(此岸)에서 앞으로 다가서는 사연의 고개를 오르며 내다보는 길목의 피안(彼岸)을 깊숙 깨치는 데는 약을 담뿍 담은 약 초항아리를 어려서부터 품어왔던 마음이 알차서다.
잠이 깨는 시각이면 숨결 쓰다듬는다. 한 번도 기침을 끓여 올리지 않은 목에 손을 모아 머리 숙이고, 심중에서 피어나는 시의 꽃을 함빡 피운다.
2. 숨길의 현장을 본다
시인의 발길은 디디는 자리마다 숨길의 현장이다. 아픔과 슬픔을 마주치면서도 당당하다. 삶의 길은 굽이굽이 돌아도 눈길은 올바르다. 목 한번 숙이지 않고 살아온 날 그 깊이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만, 비가 촉촉 물방울 맺는 날, 불에 탄 듯한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속을 부드럽게 흘려 다듬으며 아리아리 아리수의 첫머리를 쏟는다. 아리아리 영원한 깨달음이라며 흘러가세! 낮은 곳으로 그게 순리라고, 만남과 이별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심리적 고백을 한다.
추는 쉼 없이 바삐 가라고 재촉하지만
초침은 듣기나 하였는지
제자리 맴돌 듯 똑딱똑딱 허공을 찌르며
귓구멍 속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해가 오르면 갈 곳과 해야 할 일이
발길을 기다리는데
얽히고설킨 생각은
밖으로 나가지 못해 우왕좌왕
머뭇거리는 사이
해는 벌써 저만치 달아난 석양이다
-「느리게 가는 시계」 전문
바쁘다. 그만큼 일이 많고 그만큼 분주하고 해돋이와 해넘이를 바라볼 겨를이 없다. 시침은 여전히 똑같은 간격으로 하루를 셈본 한다. 하루가 얽혀 보고픔도 기다림으로 들어가 깜빡한다. 열렬과 열정이 한줄기에서 피우려는 꽃, 소용돌이 속에서도 올바른 길이 솟아오를 거라는 믿음,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며 지금 기쁨이 순간을 잡고 이어간다. 솟아오르는 힘의 동력은 희망이다. 초침은 여전히 제자리 돌기지만, 그 힘은 세상을 바꾸며 석양으로 내일을 예고한다.
-시집 『거꾸로 매달린 날』
증재록(한국문인협회홍보위원)
1. 아리땁게 나가는 길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돌려보고 가랑이 사이로 뒤를 바라보며 온갖 사물을 태생의 순수한 모습으로 새겨 본다. 거꾸로 서고 거꾸로 매달려 거꾸로 보는 사물은 거꾸로에서 바로 선다.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것마다 새로운 날을 세워 예리하게 헤치고 있는 시인은 분주하다.
이선희 시인, 정든 길 아리땁게 나가는 길, 아름지고 아람 벌어 아름다운 생각으로 땅과 하늘과 물 사이를 휘저으라는 ‘아리’를 필명으로 쓴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건 모두 사랑이라는 걸 안다. 달콤한 듯하지만 그 속은 쓰디쓴 게 사랑의 약이고 먹어야 하는 밥이다. 그득하지만 가마득한 거기에서 한숨의 목숨 줄기가 푸른 물결처럼 솟아나는 날의 낟알을 빻고 씻고 찌고 만난다. 오늘의 원초적 기준을 세워주는 바라보기가 약이 되어 한숨 깊이 뿌리를 찾아 아침을 맞고 한나절을 보내 저녁을 그린다. 사방에서 팔방으로 이어 십 육방에서 원으로 방향 따라 시선을 그으며 풍월은 읊는 여유, 사물에서 깊은 뜻을 새기는 아리 이선희 시인, 시간에 시달려 매듭 있는 생활의 차안(此岸)에서 앞으로 다가서는 사연의 고개를 오르며 내다보는 길목의 피안(彼岸)을 깊숙 깨치는 데는 약을 담뿍 담은 약 초항아리를 어려서부터 품어왔던 마음이 알차서다.
잠이 깨는 시각이면 숨결 쓰다듬는다. 한 번도 기침을 끓여 올리지 않은 목에 손을 모아 머리 숙이고, 심중에서 피어나는 시의 꽃을 함빡 피운다.
2. 숨길의 현장을 본다
시인의 발길은 디디는 자리마다 숨길의 현장이다. 아픔과 슬픔을 마주치면서도 당당하다. 삶의 길은 굽이굽이 돌아도 눈길은 올바르다. 목 한번 숙이지 않고 살아온 날 그 깊이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만, 비가 촉촉 물방울 맺는 날, 불에 탄 듯한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속을 부드럽게 흘려 다듬으며 아리아리 아리수의 첫머리를 쏟는다. 아리아리 영원한 깨달음이라며 흘러가세! 낮은 곳으로 그게 순리라고, 만남과 이별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심리적 고백을 한다.
추는 쉼 없이 바삐 가라고 재촉하지만
초침은 듣기나 하였는지
제자리 맴돌 듯 똑딱똑딱 허공을 찌르며
귓구멍 속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해가 오르면 갈 곳과 해야 할 일이
발길을 기다리는데
얽히고설킨 생각은
밖으로 나가지 못해 우왕좌왕
머뭇거리는 사이
해는 벌써 저만치 달아난 석양이다
-「느리게 가는 시계」 전문
바쁘다. 그만큼 일이 많고 그만큼 분주하고 해돋이와 해넘이를 바라볼 겨를이 없다. 시침은 여전히 똑같은 간격으로 하루를 셈본 한다. 하루가 얽혀 보고픔도 기다림으로 들어가 깜빡한다. 열렬과 열정이 한줄기에서 피우려는 꽃, 소용돌이 속에서도 올바른 길이 솟아오를 거라는 믿음,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며 지금 기쁨이 순간을 잡고 이어간다. 솟아오르는 힘의 동력은 희망이다. 초침은 여전히 제자리 돌기지만, 그 힘은 세상을 바꾸며 석양으로 내일을 예고한다.
거꾸로 매달린 날 (이선희 시집)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