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의 숲 : 문화소로 걷다

제주신화의 숲 : 문화소로 걷다

$22.17
Description
신화를 읽는 새로운 길
문화소로 걷는 제주신화의 숲
어느 곳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제주섬 곳곳의 신화를 새롭게 풀어가는 책이다. 저자는 제주신화를 살피는 실마리로 ‘문화소’를 가져왔다. 그 지역에만 있는 문화 조각을 이르는 문화소를 통해 신화에 담긴 또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신화를 읽다 보면 의미가 깨어져 비문법적인 부분이 있는데, 저자는 신의 이야기와 문화질서 이야기가 겉으로 드러나려고 충돌하는 거기에 문화소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문화소를 배치한 원리인 문화 코드, 즉 문화가 서사에 담기도록 해주는 규칙을 통해 신화에 담긴 질서를 살핀다. 예를 들어 〈고내리당본풀이〉의 문화 코드는 ‘어업의 질서’이고, 〈원천강본풀이〉의 문화 코드는 ‘장례의 질서’라 본다.
1부 해석편 〈문화소로 걷다〉에서는 저자의 이러한 문화소 읽기를 통해 제주신화에 담긴 인간질서를 살핀다. 7편의 본풀이를 새롭게 읽어 나가는데, 그동안 신화의 한 조각으로만 넘겼던 요소들이 문화소라는 돋보기를 통해 지금 우리의 현실로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2부 이론편 〈제주신화의 숲 탐방로〉는 이러한 문화소 읽기와 해석을 위한 개념과 방법을 정리했다. 제주신화와 본풀이, 문화소와 신화소, 문화 코드와 문화적 스토리 등을 통해 ‘문화소로 신화 읽기’의 길을 열고 있다.
저자는 이론서나 학술서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친구와 함께 제주의 숲을 거닐며 본풀이를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누며 의미를 확장하고 정리하는 이야기 구조로 구성했다. 편안한 대화와 질문, 시각적인 이해를 돕는 삽화를 배치하여 자연스럽고 쉽게 신화 읽기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면서, 신화의 이야기가 결국 인간 삶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저자

강순희

20여년간제주중학교에서국어교사로학생들과함께하며생동감넘치는생활을하고있다.제주대학교대학원에서제주신화를연구하여박사과정을수료하였다.제주신화연구모임회원으로활동하며제주신화속에담겨있는선조들의정신문화를이해하고전승하고자노력하고있다.그리고제주마을곳곳에남아있는신당을답사하고당신화를연구하며당올레의아름다움과매력을많은사람들과함께하고싶은마음을가지고있다.

목차

1부문화소로걷다

죽어서돌아가는길
〈원천강본풀이〉오늘,혼자서갑니다18
〈삼두구미본〉땅귀의이사47
태어나처음오는길
〈눈미불돗당본풀이〉바위와금쪽이78
밥을위한여러갈래길
〈세경본풀이〉밭의여신,사랑을거두다100
〈삼달리본향당본풀이〉음매장군과황소집사192
〈고내리당본풀이〉바다장군맞이하기224
치유의길
〈지장본풀이〉새가날자병이떨어져256

2부제주신화의숲탐방로

안내문290
신화란무엇인가
인간의문화질서를신의서사로드러낸이야기,신화298
‘그때-거기-그들’과‘지금-여기-우리’사이의간극305
문화에남아있는간극의열쇠308
제주신화,본풀이
본풀이,문화질서의본을풀다314
문화질서의의인화,신317
다양한신,다양한제주문화325
신화의두층위
신의얼굴,인간의마음336
신화문법342
심층의의미찾기346
문화소와신화소
신화에나타난문화소356
신의서사를실어나르는신화소367
신화소와문화소의결합,신화374
문화코드
소통의필수요건,코드388
생활양식을드러내는규칙,문화코드397
신화의문화코드402
문화적스토리
신화의서사409
문화적스토리419
문화적스토리구성하기424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가을잎이물들고있습니다.징검다리를건너하나둘내게로오는중입니다.〈세경본풀이〉를읽었던봄에는자청비의행동이이해되지않았습니다.그래도무작정걷기만했습니다.숲은흥미롭고아름다웠지만낯선단어와문장으로가득했습니다.몇번이고걷다보니〈지장본풀이〉에서지장아기씨를만나고,〈삼달리본향당본풀이〉에서황서국서어모장군도만났습니다.초록의여름,무성한잎들이나무를에워싸하늘을가리는계절이었습니다.숲이창을닫았습니다.온전히숲의시간,제주신화에빠져자청비의행동을이해하고,지장아기씨의슬픔을알게되었습니다.야자수매트는편히걸으라고길을안내해주었습니다만,돌부리가솟아난부분을일부러골라걸었습니다.돌부리에차여앞으로나가지못하는날도많았지만,내가밟은돌부리가다음문맥의징검돌이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듬성듬성,띄엄띄엄놓았던때문일까요?나의징검다리는완성되지못했습니다.비판인지비난인지모를힐책으로논문심사장은채워졌습니다.꼭두해전오늘,박사학위청구불합격의날이었습니다.그겨울은참길었습니다.어김없이때죽나무는하얀종을떼로매달아놓았습니다.아기의돌잔치,아버지의첫제사를치르듯친구들앞에서일년치눈물을흘리기도하였습니다.여름이가고겨울이가는동안많은손길이상처를어루만져주었습니다.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종낭의종소리가숲으로나를불렀습니다.먼지쌓인논문을꺼내어보니모자란것투성이지만,징검돌하나하나를쓰다듬어보았습니다.울퉁불퉁튀어나온돌부리들은이해할수없는환상의세계이전에사람의길로이어져있음이분명하였습니다.

〈세경본풀이〉의자청비는제주의거친밭이었습니다.왜자청비가그토록문도령을위해고군분투했는지알게되었습니다.문도령은밭에뿌려질귀한씨앗이었으니까요.자청비를괴롭히는종놈,정수남이는밭을일구도록도와주는마소였습니다.이셋은없어서는안될삶의그릇,문도령과자청비와정수남이가하나로어깨동무할때밥상은풍요로워졌습니다.그래서〈세경본풀이〉는상세경,중세경,하세경을농경의신으로모셨던겁니다.문화소,돌부리를다듬어만든징검돌을이글에서부르는이름입니다.맨처음박사학위청구논문의제목도‘문화소중심해석을통한신화교육연구’였습니다.

신화는인간의문화질서를신의서사로드러낸이야기라생각합니다.마땅히신의서사안에숨어있는인간의문화를찾아보는일이필요했습니다.숲에놓여있던삐죽삐죽한비문법적인문맥,아무생각없이걸을땐몰랐지만문화소임을인식하고바라보니현실의문화행위를암시함을알았습니다.2022년의여름,뜨거웠지만제주신화의숲을친구와거니는행복을누렸습니다.야자수매트길을걸으며,숲의돌멩이를느끼며,한마디두마디새롭게쓸수있었습니다.동행한친구의딸이그림도그려주었습니다.제주를떠났던이들은고향으로돌아오고,고향에살던이들도심연의고향을찾고싶어지는가을,오십대의시간이흘러가는중입니다.

그들에게이책을바칩니다.함께징검다리를만들어준김미영과신지민님께감사드립니다.아름다운표지로책의품격을높여주신부순영님께감사드립니다.더불어문화소의길로이끌어주신스승송문석박사님께큰감사를드립니다.인생의숲을사랑으로채워주시는이현미,고성효님께깊은감사를드립니다.사랑하는나의가족,모든처음과끝을함께해주어고맙습니다.따뜻한마음으로책을만들어주신한그루의모든분께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그사이숲에도겨울이왔습니다.

책속에서

오늘이는처음에장상도령을만났어요.왜장상도령은글만읽어야하고성밖으로외출하지못할까요.우선성밖으로외출하지못함은망자가관(棺)속에갇혔음을의미합니다.그리고망자는조문객이올린만서(輓書)를읽어야해요.만서는고인의생전업적과명복을비는추모글이니까요.별층당높은곳에앉아글만읽어야하는장상도령의모습은관앞에쌓여가는만서의풍경과겹쳐집니다.(30-31쪽)

삼두구미는첫째딸에게자기양쪽다리를뽑아주면서마실갔다오는사이에그걸다먹어야한다고하였습니다.다리를먹히면더이상일어나지않아도되지요.이는좋은터를잡아육탈(肉脫)이잘진행되었다는의미입니다.장례후3년정도가되면육탈이완결된대요.명당에모신조상의뼈는기름기가흐르고누렇게변하지만,물속에잠기거나나무뿌리에감긴경우는흉조(凶兆)라고합니다.장사지내고3년,이사가서3년,집짓고3년이란말도여기서유래된것이래요.(62쪽)

정수남이가따로점심을들고피해가는것은파종후자청비가품은곡식을함부로마소가먹게해서는안됨을뜻하지요.자청비와정수남이는다른곳에서각각다른음식을먹어야해요.밭이품어서키운후먹을수있게되는곡식과마소가먹어야하는곡식은달라야하는것처럼말이에요.(140쪽)

〈세경본풀이〉를겉으로만읽으면자청비가상세경이되지않고문도령이상세경이된점이이상하게생각됩니다.자청비의노력과지혜로사랑을성취하게되었으니당연히상세경이되어야한다고생각돼요.그건농경신마저도서열화하려는우리의고정관념이지요.농사짓기위해서는세가지가모두중요했어요.하지만씨앗의발아는인간힘으로는어쩔수없는영역이있었지요.맞아요.비를내리고햇빛을주는하늘의도움이필요해요.문도령은사실우유부단하고우둔한남자였지만하늘의원리로서생명의시작이잖아요.이에‘그때-거기-그들’은기꺼이상세경으로문도령을모시며위하게된것이지요.(190쪽)

김통정이실존인물이아님을알려주는대목을찾아보겠습니다.김통정이제주도에오는과정은‘대국천자국에서김통정을제주로보내고상태를알아서오라고하였다.’로나타나지요.역사적으로보면김통정과삼별초는여몽연합군에반기를들어제주로왔습니다.김통정이대국천자국에서보내어왔다고기술하는것은다른의미를드러내려는뜻이아닐까요?대국천자국은제주에서먼곳,중국과같은넓은세상을뜻합니다.앞서해석한대어(大漁)와결합하면‘먼곳에서오는이동성대어류’로해석할수있습니다.(233쪽)

종합하면발신자는신화를통해현실을환상처럼그려내고,수신자는이를신성시하며수용한다.이때발신자와수신자사이에놓인것은메시지로서의신화다.메시지로서의신화는기본적으로일반적기호체계안에서이야기를엮어나간다.그런데인간의무질서한문제를신(神)의말과행동으로질서있게그려내야한다.이때신화의메시지는일반적기호체계를벗어난은유의전략을사용하게된다.따라서신화의겉은신(神)의이야기이지만,속은인간의문화질서이야기가펼쳐지는것이다.(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