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된 할망 : 설문대루트, 신의 길을 찾아 나선 물음표의 순례

섬이 된 할망 : 설문대루트, 신의 길을 찾아 나선 물음표의 순례

$15.00
Description
제주섬을 만든 여신
설문대할망의 귀환을 기다리며
제주신화의 자장 속에서 ‘제주다움’을 추구하며 전방위적인 예술활동을 펼쳐온 한진오 작가의 신작 신화에세이다. 이번에는 제주섬의 창조주 설문대할망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저자는 그 자신이 하나의 ‘물음표’가 되어 설문대가 이 섬에 남긴 행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 의미를 되짚는다. 그리하여 열여덟 꼭지에 이르는 여정은 ‘설문대루트’를 짚어가는 물음표의 순례기라 할 수 있다.
화자인 물음표는 옛날이야기의 백과사전인 할머니로부터 “치마폭에 흙을 쓸어 담아 제주를 만들었다는” 거대한 여신 설문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로부터 마음에 품은 갖가지 질문들은 청년을 지나 장년에 이르기까지 물음표를 섬의 곳곳에 남겨진 설문대의 내력에 이끌리게 한다. 등경돌, 두럭산, 덩개빌레, 솥덕바위, 엉장메코지, 홍릿물, 외솥바리, 삼솥바리, 족감석, 범섬, 용연, 물장오리…. 할망의 자취를 더듬으며 순력한 제주섬은 더 이상 그 옛날, 할망이 만들었던 섬이 아니다. 파헤쳐지고 사라진 창조의 흔적처럼 물음표가 목도하는 것은 ‘제주다움’이 사라져가는 섬의 오늘이다.
결국 저자가 기다리는 설문대할망의 귀환은 제주다움을 찾은 제주섬이라 하겠다. 지난한 순례 속에 담긴 간절한 염원이 한 편의 ‘아름다운 굿’처럼 펼쳐진다.
저자

한진오

제주도신화와굿의힘을길어작품을빚어내는문화예술가.이십대에삶의고통을승화시키는신화와굿의매력에빠져서창작의원천으로삼아왔다.굿을직접사사하고연구를병행하면서문학,연극,음악,미디어아트등전방위예술작업을계속하고있다.관광이라는렌즈로는보이지않는아름답고내밀한제주의속살을전하고싶은마음으로『제주동쪽』을썼다.지은책에는『모든것의처음,신화』,『사라진것들의미래』,『이용옥심방본풀이』(공저)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제주섬의창세기10

01생각의지도속설문대27
02물가운데섬하나,섬가운데산하나36
03청산에앉아등경돌에불밝히고48
04가장깊고높은전설의두럭산62
05신들의본향에무쇠솥을걸다73
06여신께서밤사이바다를메우시니83
07나는바람으로모든세상을잇는다리를놓으리라91
08사라진홍릿물을찾아서101
09세월을엮고대지를다져111
10다시솥을앉혀만생명의양식을짓다120
11선마선파활아활아131
12신과만난어느석수의이야기142
13세상을지으신뒤에권능을버리다152
14다끄네솥덕바위는어디로164
15산꼭대기는다시산이되어174
16창조주의지문을찾아서183
17섬은또하나의섬을낳고193
18마르지않는물에새긴여신의발자국204

에필로그돌아오시기를기원하며215

출판사 서평

나는어디에서태어났을까?누구에게나태어난곳이있다.나는이따금고향이없다는사람들을만난다.태어나자마자한곳에발붙이지못하고여기저기떠돌며살았기때문이라는이유가붙는다.그런말을듣게될때면고향이무엇인지생각에빠지곤했다.제주라는섬에서태어나여태껏살아온나에게는고향이라는이미지가단단히각인되어있어서그들이사뭇낯설게보였으니까.

그들이말하는고향이란단지장소이거나공간이아니다.삶의내력과영혼의서사가담겨있는곳을고향이라고이른것같다.고향이없다는이들은대부분스스로영혼이메마른삶이라고말한다.첨단도시의군중속에서찰나의휴식도없이앞만보고달리는경쟁이인생의전부라고.영혼이기화되어메말랐다는그들과달리나는고향이있다.그런데나또한그들처럼영혼이사라진채부유하는이유는뭘까?

시곗바늘이미래를향해척척나아갈수록내고향제주의모습은지나온시간처럼엷게지워지고있다.어느날은어릴적뛰놀았던언덕이사라지고,또어느날은자맥질했던바다가빌딩숲으로변하며내가지금어디에있는지잊게만드는고향지우기가시간마저추월하는것같다.고향에발붙여사는데고향을잃어버린실향민이거나나또한애초에그런곳이없었다는착란의미망에서벗어나기힘겹다.

이미망은당연히상실감에서비롯되었다.상실감이원인임을자각한뒤질문을바꿨다.내가태어난곳은어떤곳이며누가만들었을까?그것을알면번민도사라지고잃어버린영혼을되찾을수있을것같았다.그리하여제주사람이라면누구나알고있는이섬의창조주설문대할망을만나기로작심했다.설문대의전설과흔적이남아있는곳을샅샅이뒤지다보면여신을만날수있겠다.그때가되면내가이섬에태어난이유는물론내영혼의정체에대해서도답해주시리라믿었다.그렇게나는의문부호로가득찬꾸러미를메고여신을찾아,고향을찾아,잃어버린내영혼을찾아오랫동안이섬을맴돌았다.그사이물음표가될수밖에없었던제주토박이는섬이되었다는할망설문대를찾는탐사기를여정내내써내려갔다.그리고쉼표하나를찍고잠깐쉬는사이,그동안의여정을담은탐사기를이렇게펼친다.언젠가할망을만나느낌표를얻을때까지여정은계속되겠지.섬이된할망당신을만날때까지….

책속에서

설문대할망은어떻게섬을만들고산을쌓아올렸을까?얼마나클까?어떻게생겼을까?고스란히되살아난어린시절의질문들은내이름조차물음표로바꿔놓았다.근원을향한의문이샘솟자그동안내머릿속에주워담아온설문대의모든사연을차례로복기했다.섬은어떻게생겨났을까?물음표가된나는제주사람들의입에서입으로전해내려온천지창조의옛이야기들을갈무리하며마치한편의창세기같은서사시를엮어내기시작했다.
---p.15

어느덧물음표는섭지코지를장악한리조트코앞까지다다랐다.그는환락의휴양지를애써외면하며고래도물개도사라진새끼청산을바라보았다.그리고고래와물개의깊은잠을떠올렸다.원래뭍짐승인포유류였던고래와물개는바다살이를하는쪽으로진화했지만여전히허파로숨을쉰댔다.수중에서잠이들어도좌뇌와우뇌중하나는늘깨어있다고.호흡이달릴때수면위로올라와숨을들이켜야한다.그렇지않으면잠든채로목숨이끊어지기때문이다.물음표는고래와물개의반쪽잠을달리풀이했다.먼옛날창조주의섬에서태어나바다로떠나갔지만두고온고향을잊지않으려고늘깨어있는것이라고.고래와물개는만생명이함께공생하라는여신의뜻을여전히간직한채섬을향해숨비소리를내고있는데인간만은눈을떠도잠든영혼인불쌍한존재라고.
---p.61

김녕토박이들은두럭산은음력3월보름날이오면신비로운자태를가장많이드러낸다고한다.그래봤자산이라고부르기엔턱없이부족해서막상눈으로보게되면실망할사람들이많을법도하다.하지만다시생각해볼일이다.신화는눈에보이는것과보이지않는것을가리지않고존재하는모든것에신성을부여한다.눈으로볼수없고손으로만질수없지만세상에존재하는것도셀수없이많지않은가.어쩌면설문대는사람들로하여금그것을깨닫게하려고작고볼품없는갯바위에신성을불어넣었는지도모른다.세상모든존재를우러르고함께공생하라는메시지야말로설문대가두럭산에새겨놓은신화의속뜻은아닐는지.
---p.71

세상어느곳이든그곳에오랜신화와전설이있다면그것은당연히자신들의터전이우주의중심이라고여기는주술적세계관에잇닿아있다.그들이숭배하는신이세상을창조했으며그중심이자신들의터전이라고여기는것은신화가지니는공통적인서사다.그런데우리는왜스스로제주를섬이라는제한성과변방이라는한계에가두려고하는가?물론끊임없는자연재해와외세의수탈과학살에수난당한이력에근거한해석인점에대해서는고개가끄덕여진다.하지만99라는숫자에만사로잡혀콤플렉스로만해석하는것이온당할까?
---p.99

세마을에남아있는설문대할망의공깃돌바위들은오늘날제주가처한현실을단적으로드러내는상징처럼보였다.앞만보며돌진해온개발지상주의가이제기후위기의티핑포인트를목전에둔오늘,여전히우리는옛사람들의황당무계한이야기라고여겨설문대를찾지않는다.저공깃돌바위를움켜쥔거대한손이다시한번천지개벽을일으키지나않는한….
---p.119

엉장메코지에서다리를만들던설문대할망은족두리를벗어한천계곡에잠시놓아두고속치마가완성되었는지굽어보았다.안타깝게도명주한통이모자라여신의옷가지가완성되지않은상태였다.설문대는새치마를얻지못하리란것을깨닫고한걸음에오름하나를성큼넘고또한걸음에계곡하나를훌쩍건너뛰며한라산깊은곳으로사라져버렸다.인간세상에남겨놓은것이라고는설문대할망의권능이담긴족두리하나뿐이었다.족두리는어느틈엔가커다란바위로변신해한천의고지렛도에덩그러니남기에이르렀다.
---p.160

언젠가사계리잠수굿에서제주섬이설문대할망의육신이라면바람이된영등신은설문대의영혼이라며파도위에새겼던착상이새삼스럽게떠올랐다.물음표는달빛서린돈짓당의언덕위에서사계리의착상에한마디를덧붙였다.“열한달을다른세상에머물며기다리고기다리던이월이되어찾아왔는데영혼이깃들육신이부서지고무너졌다면제주섬의창조주는어디로가야할까?이돈짓당마저사라지고설문대의영혼바람할머니가영영돌아오지않는다면제주섬은어떻게될까?”
---p.203

태어나서사랑하다죽는것이사람의숙명이라면물음표의사랑은언제나창조주만을향하는나침반에갇혀있었다.사랑이며연민이었다.슬픈섬에태어난서글픈운명의섬사람이라면누구나지니고있을갈망이물음표에겐설문대를향한의문부호로발현된것이다.제주섬의이력이란것이아프고슬펐기때문에.
---pp.217~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