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4·3 연구
Description
‘완전한 해결’로 환유되는 현실과의 불화를 꾀하는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
올해(2023년)로 제주4ㆍ3 75주년을 맞는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제주섬의 깊은 상처인 제주4ㆍ3은 금기의 시대를 거쳐 ‘화해와 상생’ ‘어둠에서 빛으로’ ‘제주4ㆍ3,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등의 깃발 아래 이제는 공적 영역에 자리한다. 4ㆍ3특별법을 비롯한 귀중한 성과도 있었고 보상과 재심 등 그 해결 과정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 책은 묻는다. “공적 해결 과정에서 획득한 유무형의 성과를 사회화하지 못한 채 유리관 속에 가두어 놓고, 4ㆍ3 연구가 유리관 밖으로 나와 현실의 문제에 응답하기를 요청하는 연대의 목소리에 무응답한 지 이미 오래”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비판적 4ㆍ3 연구”는 같은 이름의 4ㆍ3 연구 시리즈를 여는 첫 책이다. “집단적 학술운동으로는 최초의 시도였던 『제주 4ㆍ3 연구』(1999)의 시대 정신과 책무 의식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한 해결’로 환유되는 현실과의 불화를 꾀하고,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서 기획됐다. “『제주 4ㆍ3 연구』가 닦아 놓은 토대 위에 서 있으나 그것의 경계와 한계를 의식하며,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마냥 휩쓸리지 않도록 반작용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그에 따라 보다 새로운 시각을 견지한 연구를 한데 모았다.
이번 책에는 민족자결권과 저항권을 토대로 제주4ㆍ3사건을 바라본 이재승, 재일제주인의 시각에서 제주4ㆍ3을 다룬 문경수, 반공주의와 개발이라는 쌍생아로 폭력의 구조를 다시 보는 김동현, 폭동론의 ‘아른거림’ 속에 제주4ㆍ3평화공원 조성의 정치학을 살핀 김민환, 제주4ㆍ3트라우마와 치유의 정치를 다룬 김종곤, 오사카 4ㆍ3운동을 기술한 이지치 노리코, 그리고 4ㆍ3특별법이 고도화면서 오히려 편협화되는 과거청산을 다룬 고성만의 글을 모았다.
무크지 형식으로 기획된 “비판적 4ㆍ3 연구”는 앞으로도 날카로운 비판과 그에 기반한 공고한 연대를 지향하며, 젊은 연구의 장을 마련하면서 새로운 4ㆍ3 연구의 길을 열어 나갈 계획이다.
저자

이재승,문경수,김동현,김민환,김종곤,이지치노리코,고성만

건국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교수로재직하며법철학,법사상사,인권법,이행기정의등을강의한다.민주주의법학연구회를기반으로연구활동을수행해왔으며,국가폭력의청산과사회민주주의의혁신을연구하고있다.공저로『법사상사』,『우리가살고싶은나라』,『고통의공감과연대』,『세월호이후의사회과학』,『트라우마로읽는대한민국』,『양심적병역거부와대체복무제』등이있으며칼야스퍼스의『죄의문제』를비롯해로베르토웅거의『비판법학운동』,『주체의각성』,『민주주의를넘어』등을우리말로옮겼다.저서『국가범죄』로제5회임종국학술상(2011)을받았다.

목차

15제주4·3사건,민족자결권과저항권(이재승)
51재일제주인의시각에서본제주4·3-과거청산의아포리아:법정립적폭력(문경수)
81가라앉은기억들-반공주의와개발이라는쌍생아(김동현)
111제주4·3평화공원조성의정치학-폭동론의‘아른거림’과세곳의여백(김민환)
163제주4·3트라우마와치유의정치(김종곤)
191오사카4·3운동이구축하는로컬적화해실천(이지치노리코)
2334·3특별법의고도화,과거청산의편협화(고성만)

출판사 서평

『제주4·3연구』는정치사,군사사,사건사중심의기존정통사학에서탈피하여의학,법학등각계의4·3연구가결집했던최초의융복합연구서이다.4·3에대한다면적,다층적접근을통해개개의사실과해석이상호연관속에서‘전체사’를추구하는방식으로기획됐는데,수록된11편의연구논문가운데서도후학들에게는특히다음의논의가인상적이다.

사건이후50년간도민들이겪었던치욕과분노,좌절과체념,그리고가슴속응어리진피해의식등‘4·3이제주도민과공동체에끼친영향’에대한연구는본래사회학자나문화인류학자들이맡아야할주제라할것이다.그러나아직이에대해본격적으로논의되거나연구된바는없다.이는무엇보다도‘4·3’그자체에대한진상규명이제대로이뤄지지않았기때문이다.역사연구도미진하고개별적인사례조사조차충분하지못한탓에‘4·3이후’에대한연구는좀더기다려야할것같다.

그러나‘4·3이후50년’을맞는시기에진단된“4·3이후”연구의불/가능성에관한예측은머지않아수정되어야했다.상황이급변했기때문이다.2000년1월제주4·3특별법이제정되고공적영역에서과거청산프로그램이본격화되면서각분야에서“‘4·3’그자체에대한진상규명”이활발히전개되고,“역사연구”나“개별적인사례조사”의성과도속속발표되기시작했다.윗글의전망대로라면“‘4·3’그자체”를넘어“4·3이후”에대한연구환경이비로소조성된셈이다.

한편이러한지적은“‘4·3’그자체”와“4·3이후”를구획지어각각을별개의세계로배치하도록빌미를제공한다.4·3과4·3이후,4·3그자체와4·3이끼친영향,사실(史?)을발굴·고증하고의미를분석·탐구하는일이분담되는현상은‘4·3이후50년’이후20여년간두드러지게나타났다.그과정에서“‘4·3’그자체”의범주를묻는질문은생략됐고,“‘4·3’그자체”로합의된시공간속에“4·3이끼친영향”은고려되지못해왔다.

“4·3이후”에대한고찰이병행되지않는“‘4·3’그자체”에관한연구는가능한것일까?마찬가지로“4·3이후”를탐구하는작업에서“‘4·3’그자체”로규정된지식을넘어서기위한시도역시부족했다.어쩌면이두영역은상보적이며선후관계를규정짓기어려운,맞거울(oppositemirrors)같은것은아닐까?

“4·3이제주도민과공동체에끼친영향”에대한연구가쉽지않은이유에대해혹자는사건자체가8년가까이지속됐고또‘진압’이후70년이상경과했다는점을꼽는다.사건의여파와후유증이두세세대를거치면서이미우리의생활깊숙한곳까지침투해버린까닭에가려내기어려운측면이있다는것이다.그러나그분별하기어려움은그때그때의변화들에둔감했음을자인하는것으로,경계를정당화하는감각에서비롯되는것은아닐까.

4·3특별법체제하에서도상황은다르지않아보인다.공적해결과정에서획득한유무형의성과를사회화하지못한채유리관속에가두어놓고,모든해결의단위를‘희생자’로한정해온결과,혐오와배제의감정체계가4·3의상흔위에서새로운싹을틔우게됐다.신자유주의적세계화와신냉전적질서속에빚어지는갈등과충돌의한복판에서주민들의자기결정권이위협받을때마다4·3의경험과기억이소환되지만,4·3연구가유리관밖으로나와현실의문제에응답하기를요청하는연대의목소리에무응답한지이미오래다.

따라서작은실천으로서,“‘4·3’그자체”와“4·3이후”사이의벽을허물고,경험과기억,유산을현대세계의다종다양한사회문제와접합시키기위한질문을던질때다.이를위해4·3을단순히밝혀지거나정리,청산되는피동적인대상이아닌,현재를이해하고미래를예측하기위한창이자경험례로서,또한현대사회의부조리,그리고미래의과제와연결고리를만들어긴장관계를형성할수있는매개로인식해야하지않을까.

“‘4·3’그자체”가그러하듯“4·3이끼친영향”에도탈/식민의과제와탈/냉전의과제가착종되어나타난다.근현대사를관통하는아시아·태평양지역의장기적냉전현상에대한입체적인시야가4·3연구에필요한것은그때문이다.

4·3특별법체제에서절충과합의를통해“‘4·3’그자체”가규명되어온과정과성과,의미에대한분석또한중요하다.2000년이후제도권영역에서‘희생자/유족’이나‘유적지’,‘평화’,‘화해’와같은용어가새로운정치적,사회적,문화적의미를획득하고,본래의개념이나기능과동떨어진의미지형을구축해가는상황을동시적으로분석하는일역시소홀히해서는안될작업이다.이책의필자들이지적하는것처럼,‘대한민국재외공관’이나‘제주4·3공원’,‘트라우마센터’와같은공간은과거청산의이념이전파되고특정한‘모델’이구축,재생산되는곳일뿐아니라다양한해석과의미의각축장이된지오래다.

‘완전한해결’을견인하는문법만으로다종다양한주체들의각기다른사회적처지와다층적기억에접근하기어려운상황속에서,‘4·3이후50년’이후20여년이지난제주는새로운전환기를맞고있다.『순이삼촌』의배경인북촌리에서동네잔치처럼펼쳐지던한밤중의제사풍경도세대와의식이바뀌면서마을과떨어진도회지나해외에서조상신을맞아야하는경우가많아졌다.제례공동체의민족별,국적별분포역시다양해졌다.하귀마을의‘영모원’은한국사교과서에소개되고대통령도다녀가면서‘화해와상생’의터로성역화하려는욕망에더욱노출되게됐다.

‘진압’이후의인구구조와현상,가족/친족의변화에관한최신연구가발표된지20년이훌쩍넘었다.후체험세대로의기억계승의중요성을강조하면서새롭게의미부여됐던‘개방세대’에관한연구역시2000년대초반에진행된것이고,그이후의세대는어떻게명명해야할지도공백으로남아있다.묵음처리된목소리,결락된질문들을찾고,현실참여를요청하는호소에4·3연구의응답이더이상지체되어서는안될것이다.‘어둠에서빛으로’로표현되는단선적발전도식에서의식적으로이탈하려는질문들이더욱필요하게됐다.

이책『비판적4·3연구』는,집단적학술운동으로는최초의시도였던『제주4·3연구』의시대정신과책무의식을계승하면서도,‘완전한해결’로환유되는현실과의불화(不和)를꾀하고,비판적시각과목소리를확보하기위한시도로서기획됐다.『제주4·3연구』가닦아놓은토대위에서있기는하나,동시에그것의경계와한계를의식하며,구조와체계를문제시하고사각(死角)을찾아냄으로써‘역사의도도한흐름’에마냥휩쓸리지않도록반작용을도모하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