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의 숲

들개의 숲

$15.00
Description
들개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경계를 가르는 인간들이 만든 비극
우리가 흔히 공포와 함께 이야기하는 ‘들개’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들개’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들개라는 종은 없다. 들개는 인간에 의해 버려진 개의 다른 이름이다.
소설은 제주 한라산에 깃든 개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사연 많고 상처 많은 개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이 ‘생명’과 ‘자연’이라는 세계 안에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격인 ‘밭’은 노루 사냥으로 무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는 숲이 내어준 만큼,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 인간이 가족을 돌보듯 무리를 보호하면서, 고단하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에 대항하는 ‘곰’의 무리는 다소 폭력적이고 욕망에 물들어 있다. 인간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은 모든 들개에게 마찬가지인 듯하지만, 이들은 반감을 넘어서 복수를, 전복을 꾀한다.
어느 날, 소중한 가족을 잃게 된 ‘밭’은 분노에 찬 채 인간의 공간으로 들어가 묻는다. 무심해서 우두머리가 되었을 그들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왜 그런 거냐!”
“개도 인간도 노루도 땅에 발붙인 짐승이라면 우리 모두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었다.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사소한 것들이 모두 흩어지면 우리는 바다에 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다로 가려고 했다.”는 밭의 마지막은 장엄하지만 비극적이다. 그 비극은 작가의 말처럼 ‘인간의 경계 짓기’가 만든 것이리라. 그런 경계 속에서 개도 사람도 또 많은 생명들이 상처받고 쓰러지고 있다.
결코 아름답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이야기, 많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발간되었다.
저자

손민석

제주에서아내와함께백구를데리고산다.
걷고글쓰고밥하고이것저것하는중이다.

목차

양배추밭7
삼나무아래에서28
노루똥53
처음이었던것들75
도망과이동의차이104
구덩이129
돌덩이156
약해지면악해질수있는178
혁명전야211
사려니236
작가의말268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저는진도믹스한마리와함께살고있습니다.이름은말리,곧9살입니다.적당히깔끔하고적당히똑똑해서썩마음에드는친구입니다.한가지단점이랄까좀답답한면이있다면너무조용하다는것입니다.어지간해서는짖는법이없는침묵의아이콘입니다.개의내면을속속들이이해할수없는인간입장에서는걱정되는부분이없지않아있습니다.다만이친구가가끔저를바라보며옹알이하긴합니다.입을크게벌리고‘우와우아웅’하고뭐라고하긴하는데대충상황에따라제맘대로그의미를추정하는편입니다.
갑자기개자랑을하는것은말리라는친구와저의불완전한소통이이볼품없는책을쓰게된계기가되었기때문입니다.분명이친구도여러방식으로저에게의사표현을하고저도이친구에게꾸준히대화를시도합니다만,본질적으로매끄러운소통이불가능한이종異種이라서한계가있습니다.그런데가만보면동종同種이라고해도말이꼭닿지는않는것같습니다.
경계는좁은공간입니다.더이상밖으로넘어갈곳은없고그렇다고안으로들어오기도버겁습니다.경계에사는존재들은그위태로움때문에고통을받습니다.제주는한반도에역사가진행되는내내꽤오랫동안변방이자경계였습니다.경계는충돌이제일먼저발생하는지점이기도합니다.그래서제주는육지보다한발앞서그상처를받아내야했습니다.말보다총검이앞섰던시대가있었습니다.억울한삶들이말하는제주어가이해하기힘들어서그랬을까요?말보다는총이더편하고쉬웠기때문일겁니다.동종이라고해도말이꼭닿지는않는것같습니다.
그런데이경계라는것이결국인간이만들어낸것이라는생각이듭니다.자연은선을나누지않으니까요.인간들이버린개들이들개가되어한라산이라는경계끝에몰려드는중입니다.75년전,곶자왈구덩이에서포개진채로있었던사람들도결국인간들에게쫓겨갔던것처럼말입니다.
경계에내몰린존재들을통해산과섬이품은비극을기억해보고싶었습니다.요즘세상은다시말이통하지않는것같습니다.사람들이즐겨하는경계짓기는여전히유효하고폭력과억압은역시쉬운선택지입니다.비극을잊은이들은경계에있는소수를희생시키는데거리낌이없습니다.
인간이든동물이든같이사는형편에안통하는말이라도이해하고공감하려는노력을쏟았으면좋겠습니다.버려진이들을경계로내몰기만했을때,어떤비극이우리사회에재현될지알수없습니다.누구든피해자가될수있습니다.무대의중앙에있다고자신하는공리주의자들도예외는아닙니다.제걱정이기우가되기를바랍니다.

책속에서

며칠뒤아버지는맞아죽었다.대문을나와마을어귀에다다르기전에큰팽나무가있었는데아버지는거기에거꾸로매달려동네남자들에게매질을당했다.사실아버지가죽고매를맞은것인지매를맞아죽은것인지잘모르겠다.그차이가의미없다고생각했던것같다.동네남자들도그렇게생각했는지한참동안그거대한몸뚱이를쳐대는둔탁한소리가들려왔다.벌건해가돌담끝에걸릴때쯤,아버지는온몸이녹아서집에돌아왔다.너무더운날이라서나는마루아래깊숙이들어앉아조각조각파편이된아버지가자기얼굴보다더검은솥안에들어가는것을조용히지켜보았다.(14쪽)

“가족을…기다리고있어.”
가는바람이힘겹게나뭇가지를긁는것처럼무기력한대답이었다.더맥빠지는것이그대답의내용이라나는(그래서는안되었는데)비아냥이섞인반응을내보였다.
“가족?설마네부모개는아닐테고.너를키워준인간을말하는건가?”
그녀가뭐라반박할겨를을주지않으려고나는재빨리말을이어갔다.
“인간을가족이라고부르다니제정신이아니구나.우리패거리에도인간과부대끼며살았던녀석들이꽤있지만그렇다고그녀석들이인간을가족이라부르는건듣지못했다.”(40-41쪽)

나는때때로도망과이동의차이를고민하며곰을처음만났던날을떠올리곤했다.도망가는것과이동하는것모두살기위해서움직이는것은같았다.그러나둘사이에분명한차이가있음을알고있기에항상나와무리의처지가어디에자리잡고있는지구별하는것이필요했다.곰을만난날은나에게그차이를알수있게하는기준점같은것이었다.녀석을만나기전나는도망치고있었고저수지에서다시나오는순간부터우리는이동하고있었다.‘도망’은그것이인간이든다른들개든나를쫓아오는무언가가있는것이다.반면에‘이동’은쫓기는것을전제로하지않으니더능동적이고계획된것이다.이차이를아는것은우두머리로서나에게중요한문제였다.내가‘도망’이라고생각했어도무리는‘이동’으로알고있게해야했다.(119쪽)

두부의꼬리끝에서도망친터럭한올이라도발견하면비로소숨을쉴수있을것같았다.그때까지냄새에질식해죽을정도로킁킁댈참이었다.인간들의발자국은조릿대를지나산길까지이어져있었다.우리가되돌아온방향과반대쪽이었다.(154-155쪽)

나는인간들을이해할수없었다.나는그들과함께있었던적은있으나그들과진정으로함께살았던적은없어그들과대화할줄몰랐다.만약그들이우리에게참꽃나무숲을떠나기를요구했다면우리는순순히떠났을것이다.그들이우리보다훨씬강하고큰무리라는것쯤은아무리인간에대해무지한나도알고있었다.하지만그들은우리의의사를물어볼생각이전혀없었다.자기들의편의대로개들에게이런저런괴상한이름을붙이듯우리를그들마음대로규정했고그에대해알려주지않았다.우리를곰의무리라고판단했을수도있다.아니,지금곰의무리가아니라고해도상관없이언제든곰의무리처럼될수있다고여겼을수도있다.그럼에도우리는결백했다.우리는그들의것을해치고뺏은적이없다.나와무리는참으로결벽증이라할정도로산이주는것에만신경을쏟았다.그래서우리는억울했다.(159-160쪽)

복수라는단어에흔들리지않았다면거짓이다.그러나인간들은개들이어찌할수있는존재가아니었다.한인간이야우리개들보다약할수있겠지만그들은무리를지어산다.그것도우리보다훨씬큰무리를이루고있다.나는곰이듣기좋은구실로자신의야욕을채우려하는것은아닌지경계했다.허풍과거짓은구체화하기어려우므로나는녀석의계획을묻기로했다.
“어떻게복수를한다는거지?계획이있나?”
“물론이지.일단흩어져있는개들을모두모아서큰무리를이룰거다.그리고산아래로내려가서인간들의우두머리를찾아결판을낼참이다.그런다음잡혀간개들이있는곳을습격해서그들을해방하고힘을합쳐서이땅에서인간들을모두몰아내고개들의세상을여는것이다.”(206쪽)

그러나산은먹고살려고열심히노루를쫓는쫑과만두같은개들의것이되어야한다.오름과숲은어떠한악업도저지르지않은삼구의것이되어야한다.너른산이펼쳐낸공간은낮은덤불아래코를박고살아가는개들이마땅히누려야하는것이다.곰이힘과욕망에취해망쳐놓을이숲을구하기위해서나는할수있는것이별로없어분해졌다.(232쪽)

“어서달려라.숲으로돌아가라.”(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