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

선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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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선의 원류’, ‘선불교의 모든 것’을 탐구한 책이다. 선종(禪宗)의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중국 당송시대 선종사원(선원 총림)의 생활과 철학, 문화, 각종 소임과 제도와 조직, 직제, 가람 구성, 법어의 종류와 형식, 선문답의 기능과 방식, 좌선, 선원의 벌칙, 선승의 입적과 장송 의식 및 소지품 경매, 선원의 차 문화, 선종사원의 정원, 선시와 선화의 기준, 공안, 화두 등 선원총림의 생활문화 전반을 탐구하였다.
『선불교』는 2017년에 민족사 학술총서의 하나로 출판된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을 부분적으로 보완하여 대중적인 책으로 재출간한 것이다. 이 책을 리메이크하여 출판하게 된 데에는 출판 분야에 있는 지인이 저자에게 보낸 한 통의 메일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저자

윤창화

강원평창진부출신으로13년간출가생활을했다.초등학교졸업후‘한2년절에가서한문이라도배우는것이어떻겠냐’는어머니의권유에1965년월정사로입산,만화스님의상좌가되었다.수계후8년동안노사(老師)탄허큰스님을시봉하면서학문의세계와만나게되었다.1972년해인사강원을졸업(13회),1978년환속했다.13년의입산생활은고귀한사상과철학을가득싣고달렸던쌍두마차.1980년불교전문출판사인민족사를설립해42년째불교책을내고있다.1999년민족문화추진회국역연수원(한국고전번역원)을졸업했다.속명(윤재승)을쓰면무언가정체성을상실한느낌이들어서류외에는쓰지않고,수계명인‘창화’라는이름을쓰고있다.
논문으로「해방후역경(譯經)의성격과의의」「한암의자전적구도기,일생패궐(一生敗闕)」「한암선사의서간문고찰」「무자화두십종병에대한고찰」(『한암사상』3집,2009)「경허의지음자한암」(『한암사상』4집,2011)「성철스님의오매일여론비판」(『불교평론』36집,2008)「경허의주색과삼수갑산」(『불교평론』52집,2012)등이있고,저서로는『왕초보,선(禪)박사되다』,『근현대한국불교명저58선』,『당송시대선종사원의생활과철학』(2017,세종도서우수학술도서,2017불교평론학술상)이있다.

목차

머리글|중생을부처로,범부를조사로만들다

1장|한송이꽃이천하를뒤덮다
선종사원,총림의독립

2장|부처와조사를만들다
선원총림의목적과철학

3장|조직이없는집단은오래가지못한다
선종사원의직제와조직

4장|맡은바소임이곧수행
선원총림의상위소임과중하위소임

5장|불상속에는부처가없다
불전의쇠퇴와법당의등장

6장|주지는법왕이고,현신불
선종사원의방장(주지)

7장|선원총림의오도시스템과납자지도
법문ㆍ독참ㆍ청익ㆍ좌선

8장|한마디에부처로급제하다
선종사원의법어와형식

9장|언하에대오하다
법어의종류와성격

10장|깨달음을이루는기지의대화
선문답의방식과기능

11장|깨달음으로가는직선로
고칙·공안·화두

12장|발낭과석장을풀다
선종사원의입방(방부)방법

13장|90일의결투
선원총림의하안거와동안거

14장|정처없는공의여정
만행과운수행각

15장|깨달음을위한가람시스템
선종사원의가람구성

16장|하루네번좌선하라
좌선의정례화와횟수

17장|부처를뽑다
수행승의생활공간,승당

18장|미래의방장과부처들
선원총림의행자교육

19장|조석으로예불하라
선원총림의조석예불

20장|문자에빠지지말라
선종사원의좌선과간경

21장|공양은식도락이아니다
선종사원의발우공양

22장|가사와발우를빼앗고,승복을벗기다
선종사원의규율-벌칙과추방

23장|공의세계로돌아가다
선승의입적과장송의식

24장|차와선은하나이다
선종사원의차문화

25장|지상의유토피아
선종사원의정원

26장|문자와비문자의만남
선과시의세계

27장|선의세계를미술에담다
선화와선미술

28장|선원총림의한해가가다
선원총림의한해일정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지난번보내주신책『당송시대선종사원의생활과철학』을너무감명깊게읽었습니다.그진한감동의여운이남아몇자올리게되었습니다.
이책은불교,더깊게는선불교의원류(한국불교를포함한)를찾아가는느낌이었습니다.‘생활·철학·문화로본선불교의모든것’을담아내고있는이책은단순히학술서적으로가두어두기에는너무아깝다는생각이들었습니다.일반불자들뿐만이아니라스님들도필독서가되어야한다고생각합니다.여러계층의사람들이선불교의태동과지금의한국불교를이해하는데도움을줄수있을것입니다.

그래서몇가지제안을드립니다.
첫째,‘학술서적’의범주에가두지말라는것입니다.‘학술서적’하면특정범위의사람들만보는어려운책으로인식하기쉽습니다.
둘째,‘당송시대’로국한하지말라는것입니다.제목에서부터‘당송시대’로국한하면내용에서전하고하는본뜻에서멀어진다고생각합니다.비록선불교가당송시대에꽃을피웠다고하지만그흐름이지금한국불교로이어지고있기때문입니다.

이메일을받은후저자이자민족사윤창화대표는두근거리는마음과황금시대선불교가선에관해탐구하고자하는현대인들에게올바른방향을제시해줄수있다고생각해출간하게되었다.

◎선종사원은중생을부처로만드는작불학교(作佛學校)
중국중세(당송시대)선종사원(선원총림)은현세이익이나사후왕생극락을기원하는종교적·기복적장소가아니고,선불교의이상적인인간상을완성시키기위한전문적인수도장이었다.선원총림은미혹한중생을부처[佛]로만들고,범부를위대한조사(祖師)로만드는성불작조(成佛作祖)의공동체였다.각종제도,생활철학,그리고가람구조와납자지도및교육시스템은중생을전인적인격자,깨달은부처(佛)와조사(祖師)로만드는성불작조에맞추어져있었다.

◎중생을부처로만드는선불교의4가지시스템
선종사원의납자교육및지도시스템의목적은‘미혹한중생을깨달은부처’로만드는데있었다.그시스템은법문(法門)과독참(獨參,개별적인지도),청익(請益,보충교육),좌선(坐禪)이렇게네가지였다.
상당법어등법문은깨달음,반야지혜를이루게하는차원높은작불대학(作佛大學)의선강의이고,독참은방장과납자가1:1의독대를통한개별적인지도이다.청익은보충교육이며,좌선은번뇌를쉬게하는시간이다.당송시대선원에서는상당법어는5일에1회(한달에6회)있었고,매일법문으로아침법문인조참(朝參,아침8시경)과저녁법문인만참(晩參)이있었다.적어도한달에20회이상있었다고할수있다.독참은5일에1회가의무적이었다.

오늘날한국선원은이4가지시스템가운데좌선만남아있고,독참,청익시스템이결여되어있다.상당법어등법문도결제·해제때만,그것도조실이나방장이있는곳에만이루어지고있다.적어도상당법문은15일에는1회는있어야하고,독참을복원시켜야하며,임제록등중요한선어록몇가지는제창(提唱)해야한다.반면지나치게‘좌선지상주의’라는것이다.우리나라는거의10시간가까이앉아있는데당송시대에는많아야하루5시간이었다.이렇게좌선지상주의가된것은남송후기-원대이며우리나라선원은이시대선이라고할수있다.

◎달마의발낭속의선(禪),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그속의선을내놓으라는뜻
서기510년(양무제1년)보리달마(?~528)가중국남부해안도시광저우(廣州)에도착했다.그의발낭(鉢囊,바랑)속에는선(禪)이들어있었다.
선불교의대표적공안‘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바로‘그발낭속의선을내놓으라’는뜻이다.이는곧‘부처란무엇인가?’라고묻는말로,참선수행자들의영원한탐구주제,과제가되었다.

벽안의보리달마로부터첫발을내디딘선불교가의젓한하나의교단으로세간의관심을끌기시작하는것은그로부터(달마중국)약140년후인사조도신(四祖道信,580~651)과오조홍인(五祖弘忍,602~675)의동산교단때부터다.이어낙양과장안의대법주(大法主)인대통신수(大通神秀,606~706)의눈부신활약으로선불교는정치와종교의중앙무대인장안과낙양까지진출한다.

◎선종은‘더부살이,셋방살이신세’
그러나신흥불교인선종은아직당(唐)초기중국의8대불교종파의대열에는끼지못했다.선종은화엄종ㆍ천태종ㆍ율종등에비하여토착화과정이얼마되지않았고,교단의기반도일천하여그세력은계절풍·지역풍을벗어나지못했다.몇곳을제외하고는여전히독립적인수행공간,독자적인선종사원이없는무주택상태였다.선승들은대부분율종사원에서건물하나를빌려서생활하는이른바‘더부살이신세’,‘셋방살이신세’또는혼자암자에서독거(獨居)하는‘독살이신세’였다.

◎선종의독립운동전개
그러나율종과선불교는목적과지향하는바,그리고수행방법과생활방식등에서적지않은괴리가있었다.율종은불상과경전을신성시했고율장을강독·탐구하며,계율을준수·실천하는것이수행방법이었다.논리적,합리적,이성적이었다.
그러나선불교는불상이나경전은그다지중시하지않았다.대신선은‘불립문자·교외별전,즉경전외에별도로전한진수로서,곧자신의마음을직시하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한다고강조했다.
따라서선은율종을비롯하여여타종파에서중시하고있는불상과경전은그다지중요하지않았다.깨달음의첩경이아니었기때문이다.심지어는불상과경전을무시하기도했다.또선불교는직관적·비논리적이었다.한지붕두가족,이질적인두종파의동거였다.

선불교는제도·법식·수행방법등에서많은애로점이있었다.그들은선종에맞는각종제도와생활방법등이절실히필요했다.그러나율종사원에의탁해있는입장으로서율종사원의제도와규칙과법식등을준수하지않을수없었다.환경적으로의존,종속관계였고,종속관계는해탈,속박에서벗어난무위진인(無位眞人)이아니었다.
조사선의완성자마조도일((馬祖道一,709~778),그리고그정통을잇고있는제자백장회해(百丈懷海)시대에이르러이문제는한층표면화되었다.이제선종의독립,율종사원에서독립은더이상미룰수없는과제로등장했다.이는조사선의완성과더불어선승들이자주성과주체의식이강화된점과도맥락을같이한다고할수있다.

◎선종독립의기치를든백장회해,
중국최초의선원총림은백장산백장사

선종의독립,그역사적인사명을가슴에안고홀로붉은노을을향해걸어가고있는단소독보(丹霄獨步,붉은노을속을혼자가다)의노선승(老禪僧)이있었으니,그가바로‘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의선승백장회해(百丈懷海,720~814)이다.
그는64세의고령임에도불구하고황벽희운(黃檗希運,?~850)등제자들과함께당차게율종사원으로부터독립하여대웅산백장사를창건했다.이것이선불교최초의선종사원이다.또그는생활철학으로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하루일하지않으면하루굶어야한다)을강조했다.직접경작(耕作)즉노동에의한자급자족의생활철학이었다.동시에그는선종사원의법전(法典)인‘백장청규(百丈淸規)’를제정했다.세칭그를가리켜‘선종의건설자’또는‘총림(선종사원)의문을연백장대지선사(叢林開闢百丈大智禪師)’라고부르는것은이때문이다.

이러한사실을송(宋)의고승찬녕(贊寧,930~1001)은『대송승사략(大宋僧史略)』상권「별립선거(別立禪居)」(별도로선원을세움)항목에서다음과같이그사실을전하고있다.

“달마의도(道)가행해지자기봉(機鋒,禪機)이서로맞는이들은서로그도를드날렸다.그러나그들은오직기존사찰(율종)의제도를따르면서별원에서생활했을뿐,별도의제도가마련되어있지않았다.사조도신선사가동림사에주석했고,육조혜능선사가광과사에서,담선사(談禪師)가백마사에주석했으나모두다한결같이율종사원의제도를따랐을뿐이다.참선자가운데혹어떤이는두타행으로누더기를입는것으로써다름을삼았을뿐이었다.그뒤에백장선사가새롭게뜻을세우고큰포부와계획으로별도로선당을세우고좌선을격려했다.”

송초기의한림학사양억(楊億,974~1020)도「선문규식(禪門規式)」에서이렇게상황을전하고있다.

“백장선사는다음과같이말했다.선종(선승들은)은소실(달마)로부터시작하여조계혜능에이르렀지만,그때까지선승들은대부분율종사원에거주하였다.비록별도로당우(선원)가있었지만설법과생활이(선禪의)법도에맞지않았다.그래서항상마음속의과제(독립)가되었다.”

◎선불교가율종사원으로부터독립하고자했던가장큰이유
선불교가율종사원으로부터독립하고자했던가장큰이유는율종의수행방법과생활방식,규칙,그리고설법내용등여러가지제도가선불교의목적,이상과는상당히달랐기때문이었다.어느종파가더옳다거나부족하다고말하기보다는본질적으로율장을탐구하는율종과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주장하는선종과는그방법론이달랐기때문이다.
선불교의수행방법과목적은직지인심을통하여중생을부처로만들고범부를조사로만드는성불작조(成佛作祖)에있었다.그리고종교적·기복적역할을도외시했다.반면율종은율장(律藏)탐구가주된공부방법이었고지계(持戒)가곧수행의척도였다.계율,규범을중시하는율종과고정관념을부정하는선불교는사상적인괴리가심했다.선불교는그들의이상에부합하는독자적인생활공간즉독립된선찰(禪刹)이절실히필요했던것이다.

◎일일부작(一日不作)일일불식(一日不食)의생활방식,보청법
선불교가율종사원의울타리로부터독립한다는것은스스로온실을박차고노천(露天)으로뛰쳐나오는격이나다를바없었다.많은대중이함께생활해야하는구조에서의식주문제등생활경제는가장큰난제였다.
당시중국불교의사찰과종파는대부분황실이나권력자,지방절도사등경제력이큰재가불자의존도가높았다.한사찰을유지·운영하자면큰후원자가필요했기때문이다.그러나백장회해는권력자들의후원을거부하고,그대안으로보청법(普請法,노동·울력)을제정했다.수행자모두가직접적인생산노동,즉경작을통하여총림의생활경제문제를해결하고자한것이다.경제적으로자립하지못한자유인이란예나지금이나관념속의이상에지나지않았다.
‘일일부작(一日不作)일일불식(一日不食)’의보청법은백장총림의경제적자립의기반인동시에생활철학이었다.백장문하의납자들이도시문화와는거리가먼대웅산(백장산)기슭에서권문세가들의손짓을초개(草芥)로여긴채,오로지자기본분사(本分事,수행)에매진할수있었던것은자급자족의보청법때문이었다.
백장선사의대표적공안인‘독좌대웅봉(獨坐大雄峰,어떠한속박도초탈)’은독탈무의(獨脫無依,일체로부터초월)한절대무위진인(無爲眞人,깨달은자유인)의존재를뜻하는것으로,이공안의시대적·문화적배경은‘선종의독립’이라는선종사적슬로건속에서나온것임은두말할필요가필요없다.그리고그지리적배경은백장산대웅봉(大雄峰)이다.우뚝한대웅봉은곧백장선사의이상향이었다고할수있다.

◎무종의회창폐불과선종의비상(飛翔)
만당(晩唐)초에이르러중국불교계를송두리째뒤흔드는역사적인사건이일어났다.당무종(武宗)의‘회창폐불((會昌廢佛,841~846)’이었다.이사건으로말미암아4만여개의사찰이파괴·폐사되었고,승려26만명이강제적으로환속당했다.불상과동종(銅鐘)등철기(鐵器)는모두녹여서주전(鑄錢)등기물을만들었고경전은대부분불에타는등사찰과승려90%가사라졌다.
회창폐불사건은당말불교계에결정적인타격을준엄청난사건이었다.천태·화엄·법상(유식)·율종·밀교등장안과낙양을기반으로한도시형불교는치명타를받고소생불가능한상태에빠지고말았다.특히국가나귀족,권력자등의보호를받고있던불교종파는멸절(滅絶)상태에이르렀다.

백장회해입적(814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