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고려대장경』국간판,사간판을모두인경(印經)
불교인으로서효당은일제강점기인1937년해인사인경(印經,목판을인쇄해책으로만드는작업)도감을맡아『고려대장경』인경을불교계의동지들과함께6개월간작업하여11월에완성했다.이때효당은국간판(국가가제작한경판)대장경외에그동안해인사장경판고의동서재에방치되어오던사간판(지방관청이나사찰에서제작한목판)도빠짐없이인간(印刊)하여11,391판에달하는「해인사사간루판목록(海印寺寺刊鏤板目錄)」을완성하였다.이사간판에서국간판보다훨씬정교하고우아한요나라대안본(大安本)과수창본(壽昌本)이발견되었고,그때까지발견되지않았던원효대사의『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상권판4쪽,고려『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완질,의상대사의『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등이발견되어세상에처음으로알려졌다.국간판고려대장경이한문으로번역된경전중심으로구성된데비해,이들사간판은경전의주석,중국과한국승려들의개인찬술,고승의전기어록,불교의례등다양한전적들을포함하고있었다.
우리나라의차(茶),차도(茶道)를다시일으킨효당최범술
우리나라에서차를좀마신다는사람들은초의(艸衣)선사를알고있다.초의선사를세상사람들에게알린분이바로효당최범술스님이다.그는조선시대를거치면서일반대중에게는거의사장(死藏)된차문화를중흥하였다.경남사천다솔사에서차나무를심어차를직접만들고한국최초의상업판단행본인『한국(韓國)의차도(茶道)』를저술하여한국차문화의정체성을확립하고한국차문화를대중화시켰다.
특히효당의차도는‘남녀노소어떠한부류에관계없이,누구나차를즐기고차생활을할수있다’는것이다.차를어떤특정장소,특정신분,특정형식등어떠한경계를두지않고차생활은인간의본능에속하는행위로서누구나평등하게추구할수있는권리의범주에속하며차도(茶道)에는들어가거나나오거나할문이없다는‘차도무문(茶道無門)’을강조하였다.그의평등한차생활은부처와중생이다른존재가아니며누구나불성이있다는개념과상통한다.
이러한정신을바탕으로‘한국차도회’를창립함으로써전국각지에차를애호하는동호회가생겨차생활을대중화하는촉매가되었다.
효당의제자이며효당연구가이자반야로선차도를개창한저자채정복박사
저자인원화(元和)채정복박사는효당본가반야로차도문화원본원장이자효당사상연구회회주이다.채정복박사와효당과의인연은고교시절부터시작되었는데효당의문하에정식입문한것은대학교3학년때였다.효당의맏제자로원효(元曉)의원(元)을받아원화(元和)라는호를받았으며다솔사에서효당을시봉하며효당의차문화업적실현을위해실질적으로기획하고추진했다.그녀는효당을이어원효학공부,차도수련뿐만아니라특히독자적인‘반야로선차도’를개창하여국내외에선차문화열풍을일으켜한국차문화의족적을진일보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