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을 만난 세계(큰글자도서)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유언을 만난 세계(큰글자도서)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32.00
Description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장애인을 차별하는 세상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장애해방열사 여덟 명의 흔적을 좇는 기록. 장애문제가 장애인만의 문제로 여겨지고 사람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부터 장애인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열사들의 치열했던 삶과 투쟁을 담아낸다. 이들이 쌓아올린 운동의 물적, 정신적 토대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진보적 장애인언론 비마이너가 기획하고 일곱 명의 기록 활동가들이 써내려간 이 장애인운동사는 주류 운동권의 열사들과 달리 주목받지 못하는 장애인운동 열사들의 이야기를 드러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기록이 “취약한 기억에 안정된 거처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이 이 글들을 쓴 기록 활동가들의 믿음이다.
이들 장애해방열사의 삶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모순과 차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매번 거리의 턱에 가로막혀 운신할 수조차 없던 현실, 장애인에게 가능한 유일한 노동이었던 노점을 단속반과 용역에게 번번이 빼앗겼던 현실, 최저생계비 수급을 빌미로 노동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현실, 중증장애인의 생명과 직결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한 현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장애해방열사들은 경제성장과 세계화의 기치가 내걸리던 1980~1990년대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변방’에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대의 최전선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삶을 꾸리고 투쟁을 조직해갔다. 이들이 벼려낸 저항은 쌓이고 쌓여 어느새 ‘진보적 장애인운동’이라는 깊고도 너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저자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노동권위원회,박종필추모사업회,노들장애학궁리소등에서활동하며,대학에서철학을강의하고있다.《한나아렌트사유의전선들》을썼고,죄르지마르쿠스의《마르크스는인간을어떻게보았는가》를번역했다.

목차

발문‘발아하는씨앗’을남겨준이들을기억하며|박경석ㆍ4
기획의말시대의악령들을애도하며|정창조ㆍ9

1984년서울,‘불구자’의유서|김순석열사ㆍ27
시대의복수가된유언|최정환열사ㆍ55
한장애인노점상청년의삶과죽음|이덕인열사ㆍ93
변방에서,혁명의물리적근거를위하여|박흥수열사ㆍ125
살아남은자,조직하라|정태수열사ㆍ181
이르게온미래|최옥란열사ㆍ221
유서가된죽음|박기연열사ㆍ255
옆에도뒤에도항상그가있었네|우동민열사ㆍ291

참고자료및자문ㆍ332

추천의글
그들이여기,우리와함께머물수있도록|김도현ㆍ338
장애해방열사,살아있는역사|장혜영ㆍ341
장애인의‘살림’살이를위하여|홍세화ㆍ343

출판사 서평

큰글자도서소개
리더스원의큰글자도서는글자가작아독서에어려움을겪는모든분들에게편안한독서환경을제공함으로써책읽기의즐거움을되찾아드리고자합니다.

김순석최정환이덕인박흥수
정태수최옥란박기연우동민……

한평생‘변방의존재’로머물다간이들,
그죽음의순간조차불평등했던이들,
그러나그불평등마저저항으로벼려낸이들

장애해방열사가산자들의‘이세계’에남긴것

한장의유서가촉발한저항:김순석

“왜저희는골목골목마다박힌식당문턱에서허기를참고돌아서야합니까.왜저희는목을축여줄한모금의물을마시려고그놈의문턱과싸워야합니까.또우리는왜횡단보도를건널때마다지나는행인의허리춤을붙잡고도움을호소해야만합니까.
……
장애자들은사람대우를받지못합니다.대우를받아도끝내는이용당합니다.조그마한꿈이라도이뤄보려고애써봤지만시간이흐를수록사회는저를약해지게만만듭니다.”

-《조선일보》(1984.9.22)에실린김순석의유서

1984년,염보현당시서울시장앞으로장문의유서를남기고자결한이가있었다.그의이름은김순석(1952~1984.9.19).김순석의죽음은장애를개인의문제가아닌사회문제라는인식이대두하게된중요한계기가되었으며,장애인의이동권문제를제기한최초의항거로평가받는다.어려서겪은소아마비로다리를절던그는1980년에당한교통사고로인해심한장애를입게되었다.그래도세공기술자로서자부심을가지고열심히액세서리를만들고팔며꿋꿋이생계를이어갔고,가족과함께하는행복한미래를꿈꿨다.하지만번번이도로의턱에가로막혀운신조차할수없는현실과마주해야했다.결국그는자신의삶을꾹꾹눌러담은유서한장을남기고생을마감한다.1984년9월22일의일이었다.
그의억울한죽음은친목위주의단체였던대학정립단소속학생들(주로소아마비장애인들)을행동으로이끌었다.이들은그가생을마감한지얼마되지않은10월6일장애인복지시설정립회관운동장에서열린제8회전국지체부자유학생체전개회식에김순석의모조관을들이고그의사정이적힌유인물을배포했다.장애인을위하는척하는겉치레용행사만열지말고,그들의삶을실질적으로개선할것을촉구한것이다.당시이행사에는문교부장관,서울시교육감,국회의원,보건사회부사회국장등이내빈으로참석해있었다.
김순석열사의유령은그이후에도여러번출몰한다.

시작이된죽음:최정환,이덕인

“복수해달라,400만장애인을위해서죽어도좋다.”
-최정환

장애인의자립이지금보다훨씬더어려웠던1980년대,장애인이노동을통해먹고살수있는길은사실상노점이유일했다.기술을익히기어려운중증장애인들은거리로나와양말,라이터,휴지,껌등간단한공산품들을팔아하루먹고살만큼의수입을거두곤했다.스물한살때당한교통사고로하반신마비를입은최정환(1958.6.30~1995.3.21)도그중하나였다.수세미를팔다카세트노점으로종목을바꾼그는양재역부근에서쏠쏠한수입을얻으며호시절을맞는다.
그러나정부의노점상탄압은그를사지로내몬다.1994년여름단속을당하는과정에서왼쪽다리를쓸수없게된그는생계에치명타를입게된다.피해보상을요구하는그에게서초구청측은‘고소하지않으면이제편하게장사하도록해주겠다’며합의를종용했지만,끝내그약속을저버렸다.1995년3월8일,단속반원들에게장사밑천인스피커와배터리를또다시빼앗긴그는그물건들을되찾고자찾아간구청에서멸시어린시선을받고쫓겨난다.그날저녁최정환은시너1리터를자신의몸에쏟아붓고불을붙인다.온몸에극심한화상을입고병원으로이송된그는21일새벽끝내숨을거둔다.최정환의죽음은“복수해달라,400만장애인을위해서라면죽어도좋다”라는유언을남겼다.
계획대로라면연세대학교노천극장에서영결식을하고,서울시청과서초구청에서노제를한후에용인에위치한천주교공원묘역으로향해야했지만,그마저경찰이시신을탈취해가면서어그러진다.최정환시신이경찰손에넘어갔던배경에는당시장례투쟁에함께했던일부장애인단체의‘배신’이있었다.3월25일,결국시신없이영결식이치러진다.경찰은영결식을마치고가두진출을시도하는이들을곤봉으로내리쳤고,현장은순식간에수백개의화염병이날아다니는지뢰밭이되었다.연대앞,서울시청삼거리,강남시립병원앞에서사람들은최정환이부탁한‘복수’를실행에옮기고자했다.그렇게열사의죽음은또다른시작을만들어냈다.
최정환열사투쟁이있은지수개월만인11월28일에는장애인노점상이덕인(1967.12.14~1995.11.28)이아암도망루투쟁중의문사하는일이발생한다.경찰의눈을피해망루밑으로내려가탈출을시도했던그가사흘뒤주검으로발견된것이다.경찰은그의시신을탈취하려고했고,시민들은이를막기위해사투를벌였다.그러나경찰은끝내시신을탈취해자신들마음대로부검을진행하고는사인역시‘익사’로일방처리해버린다.1996년4월24일,이덕인의장례는결국그죽음의진상이밝혀지지못한채치러졌고,2021년현재까지도제대로된규명없이‘의문사’로계류중이다.

‘변방’이세계와접할때:박흥수,정태수

“유언은홀로존재하지않는다.‘듣는자’가있을때에야세상에‘존재하는말’로남는다.최정환의유언을읽어낸사람들은필사적이었다.이죽음은박흥수,정태수를조직했다.”(61)

박흥수(1958.5.15~2001.7.23)는장애인노점확보를혁명의한과정으로생각한이였다.1995년청계천노상에서한동안씨티폰등을팔았던그는자기장사보다다른노점들확보투쟁에더관심이많았다.그가당시이투쟁에제모든것을건것처럼보였다는이야기가전해진다.자본에착취당할자격조차없는장애인들이그지배시스템안으로어떻게든침투해들어간다는것,그생존을향한몸부림이사실상무임금으로활동할수밖에없던운동가들이생계를이어갈수있는하나의대안이기때문이었던것은아닐까.그러나이비루한자들의혁명은환영받지못했다.이른바‘문민정부’라는이름표를달고출범한정권5년동안에만3만5039개의노점상이강제로철거당하고,5662개의손수레가파괴될정도였으니어찌보면당연한일이었다.용역을대동한단속반이수시로들이닥쳐좌판은엉망이되었고,폭력과,욕설,고성이난무했다.“박흥수는언제나이싸움의선봉에서있었다.딱히화려한언변을구사하는선동가도아니었고,정제된사상으로무장된이론가도아니었지만,그의행동하나하나는곁에선동지들을전선으로이끌기에충분했다.”
꽤오랜시간동료들과투쟁을연습해왔던박흥수는준비된운동가였다.그시작은1989년서울장애인복지관직업훈련과정동문회‘싹틈’시절로거슬러올라간다.그는박경석(현장애인차별철폐연대상임공동대표),정태수와함께팔뚝질과구호제창을연습하며양대법안(장애인고용촉진법·장애인복지법)제·개정촉진을외치는투쟁현장에나갈채비를했다.데모를체계적으로훈련받은운동권대학생들에뒤지지않기위함이었다.이렇듯싹틈이운동의역량을다질수있었던데는박흥수의역할이컸다.1989년봄박흥수는아무리열심히공부하고기술을익혀도취업을하지못하거나취업하더라도저임금과차별에시달리는직업훈련과정학생들의현실에대해복지관측에공식적으로문제를제기하고나선다.그과정에서복지관측과마찰이일자그는학생23명을조직해복지관로비를점거하고농성에돌입한다.5일간지속된농성끝에복지관은결국학생들의요구조건일부를수용한다.한편으로는‘미흡한게많은투쟁’이었지만,이투쟁을계기로박흥수,정태수,박경석은‘싹틈출신3인방운동가들’로성장할수있었다.
이후박흥수는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장청)와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장한협)가통합하여출범한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전장협)의부회장과서울지부장을역임한다.그러나박흥수는대부분대학을나온전장협의다른핵심구성원들사이에서자신의한계를느끼고,스스로가‘변방의존재’라는것을더욱더절실히새기게된다.그런그를일깨운것은최정환의분신으로인해촉발된투쟁이었다.그는최정환투쟁에열정적으로참여했고,타단체들과의회의에전장협대표로참석해강경한입장을밝혔다.박흥수는이투쟁을거치며장애인들이새로운싸움에나설필요가있음을깨닫는다.1994년최정환의죽음은장애인들의생존권문제와활동가들의생계문제를고심하던그에게‘장애인노점’이갖는의미를일깨워주었다.1995년박흥수는전장협내부에노점분과를개설했고,전국노점상연합회와함께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를창립함으로써노점확보투쟁의신호탄을쏘아올렸다.
그렇게박흥수는자신이거주하던변방을하나의세계로구축해냈고,그세계를점차세상밖으로확장해나갔다.
1989년서울장애인복지관에서박흥수와함께농성을조직했던정태수(1967.11.6~2002.3.3)역시자신만의스타일을벼리며운동의꿈을키워갔다.세계를변방의힘으로물들였다.복지관시절당시부터정태수는강경파운동세력이었다.그는선배박흥수의이야기를스펀지처럼흡수했고,박흥수역시그런그를애지중지했다.
1991년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의활동가가되어본격적으로장애인운동에뛰어든정태수는열정적으로세상을배우고싶어했다.누구든배울것이있는사람이라면양쪽모두목발을짚고선직접찾아다녔다.당시장청이밀고있던중요한계획중하나는장애대중을조직하기위한공간으로야학을만드는것이었다.그일환으로1993년8월노들장애인야학이문을열었고,장청과장한협이통합되어전장협이출범했다.정태수는장청과전장협모두에서조직국을맡아활동했다.조직이란사람들을만나단체의지향을공유하고,그들을얽어단체의목표를실현할수있는물리적인토대를만드는일이다.사람을만나이야기를듣기좋아하는그에게제격인직책이었다.그는대중들이스스로참여하지않는운동·조직은결코살아남을수없다고믿었다.
정태수의동료들은그에대한가장빛나는기억으로‘장애인고용촉진걷기대회’를꼽는다.1996년에열린이대회는13박15일동안제주에서부터서울에이르기까지전국각지를거치는순회투쟁으로,4월20일‘장애인의날’서울에서개최되는대규모집회로대미를장식하는일정이었다.이대회를조직한정태수의노동권에대한열의와조직화정신을잘보여주는결과물이라할수있다.그는교육,의료,직업재활등모든장애문제가결국장애인을시혜와동정의대상이아닌생산의주체인노동자로세우는방향으로재조직되어야한다고믿었다.이런지향이담긴걷기대회를성사시키기위해수십차례전국을돌고,숙박비를아끼려차에서잠을자곤했다.그렇게한사람한사람직접만나고다니며무려1500명의대중을조직해낸그였다.
“노점자리하나를얻기위해이슬을맞으며밤새그자리를지켜야했듯이,한사람을거리에세우기위해그는밤새누군가의고민을들어주었을것이다.그렇게하지않고서는이루어낼도리가없는일이바로‘조직’이다.”(207)

미리쓰여진유서:최옥란

1988년서울올림픽과함께열린88장애자올림픽에대한거부투쟁과양대법안제·개정을둘러싼싸움으로확산된장애인대중운동은운동과이렇다할접점이없던새로운사람들을조직할수있는힘을마련해주었다.최옥란(1966.7.3~2002.3.26)은바로그변화의물결한가운데에있던이였다.특히1988년4월명동성당앞에서열린‘장애인권익촉진생존권범국민결의대회’는그가본격적으로활동에뛰어드는계기가된다.그는이투쟁을시작으로장애자올림픽거부투쟁과양대법안쟁취투쟁에가세한다.이후11월19일최옥란은정태수등7인과함께양대법안쟁취와장애인의무고용률하향조정철회를요구하며공화당사강당을점거하고열흘간단식농성을벌이기도한다.그러나다른한편으로그는자신의장애인뇌성마비를위한새로운언어와투쟁의필요성을절실히느낀다.
뇌성마비연구회‘바롬’의창립에함께한최옥란은1993년결혼이후이전처럼활동에참여하기어려워진다.그는결혼생활을통해사랑하는아들을얻지만,이내이혼에이르게된다.그과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