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도서소개
리더스원의큰글자도서는글자가작아독서에어려움을겪는모든분들에게편안한독서환경을제공함으로써책읽기의즐거움을되찾아드리고자합니다.
누구도가던걸음을멈춰뒤돌아보지않도록,‘그들처럼’보이는일
성소수자들은출생직후의료기관이내린성별판단인지정성별과자신이이끌리는성적지향간의불일치속에서살아간다.사회가지정한성별과스스로표현하고자하는성별이다른데,그‘다름’을사회는인정하지않는다.그들이아예‘존재하지않는다고’상정한다.그래서이들에게삶은가혹하다.
결국직장을다니는성소수자들에게가장중대한일은자신의정체성을숨기는것이다.소위‘패싱passing’이라고하는,특정사회집단의구성원으로여겨질수있도록외양과행동을위장하는일.이들은직장이라는무대에서연기하는배우다.그래서이들은각본을필요로한다.그연기는‘그저연기’가아니라생존과직결되는행위다.애인유무와결혼/출산계획까지꼬치꼬치캐묻는직장에서성소수자들은내일당장없어질지도모를자신의자리를지키기위해필사적으로연기한다.여자와남자가만나연애하고결혼하는‘이성애각본’이너무나도당연한직장에서이들은자신의진짜애인을이야기하는대신,가짜로꾸며낸‘애인캐릭터’의정보를읊는다.
“직장에서이야기할때강표는애인의성별은물론이고나이까지거짓으로말한다.나이차가많이나는연하남성과연상여성은사람들을의아하게만들기때문이다.여성커플의경우에는,화장품을같이쓰고있다거나여자대학에서만났다는말이튀어나오지않게조심해야한다.조금더철저하고싶다면가상의남자친구가나온군부대명까지정해두는준비성을보인다.”
완벽한거짓말을위해선훨씬더섬세한지문과대사가필요하다.이‘치밀하고섬세한각본’은참을수없이버겁다.“사람들이의심할틈없게끊임없이이성애자인척”해야하는일은상상이상으로피곤한일이다.집에돌아와낮에동료들에게한말을자꾸되짚어본다.혹시라도실수가있진않았는지,늘염려한다.만약이각본을던져버린다면?대가는작지않다.정식직업을포기한채단기일자리를전전해야하고,‘구직이일상’인삶을이어가야한다.좀더정확히말하면,대부분의직장을포기해야만한다.
세상이네모인데,당신도네모입니까?
세상은남자와여자가맺어지는일을‘정상’이라고규정한다.남자와여자가만나연애하고결혼하는일이‘당연한’사회에서‘정상’으로살아가는게뭐그리어려울까싶지만,성소수자들에게그런연애는당연하지않다.면접관/직장상사의무심하지만노골적인‘애인있느냐는’질문이이들에겐사회규범을재확인하는고도의검열이되는이유다.“세상이네모인데,당신도네모입니까?”
‘정상’이라는범주내에서살아가는일도결코간단치않다.이성애규범을따르는일에는상대에게‘이성으로보일’성역할을수행한다는옵션이붙어있다.즉이성에게어필할수있는외모,옷차림,품성,행동까지‘풀장착’해야한다.이는누가어떤노동을도맡느냐와도직결된다.결혼해가정을이룬순간부터여성의일은‘육아’와‘살림’이되고,집밖노동은남성의일이된다.
이틀밖에서살아가는성소수자들에게삶은고통이다.이들은그저‘자기자신’으로받아들여지길원하지만,자신의정체성을드러냈다가는어떤대가를치르게될지알수없다.직장에서는폭력,따돌림에노출될수있고,해고될수있다.아니,해고되기전에취직자체가어려울수있다.
“제인생이‘트루먼쇼’라고생각했어요.순간의심스럽더라고요.어떻게짜맞춰진것처럼삶이고통의연속이될수있을까.누가조작한게아닐까싶을정도로.아웃팅당하고,왕따당하고.어떤형태로사회에서내가억압받는지계속해서체감해야하고.이렇게까지사람을비참하게만들수있을까.”(마늘,젠더퀴어-퀘스처너리)
노동시장에서성소수자가받는차별은,“포기해야할직장이너무많”(규원,바이섹슈얼)다는것,더정확히는“거의모든직업을선택할수없”다는것자체다.‘여자여야’뽑히고,‘여자로’일해야하는직장으로가지않는것을선택한이에게남겨지는일은단기직이나아르바이트뿐이다.
평생아르바이트만한다고해도문제는생긴다.그런단기일자리는대다수가서비스업으로,대부분‘여자’를채용하기를원한다.즉화장을하지않거나치마를입지않는등‘여성에적합한외모’를꾸미지않는사람은아르바이트조차구할수없다.스스로를여성으로정체화하지않는성소수자가선택할수있는건편의점,식당주방,피시방정도다.최저시급과고단한육체노동으로대표되는일자리.
“일을해보니까일찍병이날거같아요.확실히육체적으로어려운걸하니까몸이축나더라고요.젠더수행을하기싫은사람은할수있는게이런것밖에없고.이런걸하면일찍죽는다는사실을증명하는용도로제가사용된다면그것도의미가있겠다.이런생각을갖고살고있어요.”(규원)
‘꾸밈노동’이말해주는불편한진실
그렇다면지정성별과일치하도록외모를꾸미고살면인생이좀더편해지는걸까?지정성별이‘여성’인성소수자들은이와관련해우리에게전혀다른이야기를들려준다.외모를꾸미든꾸미지않든여성들이직장에서외모규정,외모지적/품평을피할길은없다는사실이다.
직장은물론우리사회전반에서는‘여성’,‘여직원’의용모를유독강조한다.외모를꾸미는일에조차강력한성불평등이존재하고있음을알수있는대목이다.자기계발의한영역이된외모관리에서남녀모두자유로울수없는시대지만,그럼에도‘더’꾸며야하는성별이있는것이다.SNS상에서‘여자는고기처럼부위별로나뉘어품평당한다’는말이떠돌듯,‘꾸밈’은유독여성에게강조되고강요된다.“왜머리안기르니?”,“왜치마안입니?”,“살빼면남자들이좋아하겠다”……일터에들어온이상이런식의외모공격과성추행발언을피해가기란어렵다.다만꾸미되치마가너무짧아선안되고,화장도너무진해선안된다.‘여성에적합한꾸밈’을수행하되,그게“여자가그게뭐니?”따위의소리를들을게뻔한꾸밈이어선안된다.
다시말해여성들에게‘꾸밈’은하나의‘꾸밈노동’이다.‘꾸밈’이‘노동’이되는바로그순간에우리는주목할필요가있다.여기서성소수자들의경험과비성소수자들의경험이만난다.그들역시‘여성에적합한꾸밈’을수행하지않는다는이유로무차별적‘외모공격’의대상이된다.그들인생에‘여자처럼’꾸미고‘여자처럼’말하는일은결코존재하지않지만,사람들은그들의성별을의심조차하지않는다.사람들에게의심의여지없이‘여성’으로받아들여지는이들이‘여성꾸밈’규정을피해갈길은없다.이모든게,내주변에성소수자는없다는믿음에서시작된다.
“회사에서‘여직원’인정현은회사밖에서는남자로여겨진다.셔츠에면바지,옷차림은어디에서나같다.달라지는것은없다.정현을‘여직원’으로보고싶어하는사람들이달라졌을뿐이다.”
여성혹은남성만을전제하는성별이분법에서벗어난성정체성인‘젠더퀴어-퀘스처너리’로스스로를정체화하는한인터뷰이(마늘)는콜센터를직장으로선택한이유에대해털어놓기도했다.콜센터는‘용모단정’같은것을아예고용조건에넣지않는다는게그이유였다.콜센터는노동자의외모를알리없는외부고객들의평가가중요한직종으로,“말만또박또박하면되는”곳이다.그렇게그는자신의몸이가려진곳에서‘뜻밖의공정함’을발견하게된다.
실패한모든몸들의이야기
낮은지위에있는노동자일수록,즉여성,낮은연령,불안정한고용(비정규직)일수록직장에서더많은요구를받게된다.특히노동자의성별화된신체를서비스자원으로활용하라는요구는매우흔하다.성별은지위에늘관여한다.
“여자(성별)를강조한다.‘여자말’을하게한다.(한때논란이된114안내서비스노동자들의매뉴얼멘트“사랑합니다,고객님”이대표적이겠다.‘여자꾸밈’을하게한다.여성다운차림은사회가여성에게기대하는바를고객과직원모두에게각인시킨다.여자옷을입은노동자는어디까지가업무인지,감정노동인지,여성의덕목인지구분하지못한채혼란에빠져노동을한다.그혼란이이윤을만든다.”
이것이바로‘꾸밈노동’이우리에게말해주는또하나의진실이다.비성소수자들과성소수자들이겪는차별과폭력이서로연결되어있다는것말이다.남자혹은여자의꾸밈이라는것을분명히가르는세상에서괴로운이는성소수자뿐만이아니다.꾸미지않는여자,왜소한남자,선머슴같은여자,깔끔한남자도괴롭다.우리의존재는성소수자들과무관하지않다.
혹은이렇게도말할수있다.성소수자들이사회의다른소수자들과도차별과폭력의경험을공유한다고.‘다른몸’을지닌이들은언제나배제되기마련이다.이를테면“사회적으로받아들여지는신체사이즈가아닌몸”은손쉽게‘장애’로판명된다.모두가건강과정상을꿈꾸는사회이지만모순적이게도‘장애’의영역은더넓어진다.사회가받아들일수있는신체범주가점점더좁아지기때문이다.그래서사람들은“몸이우리를배신할까봐,살이찌거나,주름이지거나,너무빨리노화되거나,사람들이우리에게무심해지게될까봐”(실비아페데리치),다시말해우리의몸이‘정상’이아닐까봐전전긍긍한다.장애여성,나이든여성,‘정상체중’에서벗어난여성의몸이어떤취급을받으며‘여성’의범주에서배제되는지떠올려보라.
퀴어는일터에있어야한다,퀴어인그대로.
성소수자들은스스로가일반적인길에서벗어나“제길”을간다고이야기했다.이들의벗어난길이란이런류의대화와일상이다.여자이야기가나오면외모품평부터하는대화패턴,아파트평수와자녀성적과남편건강으로채워지는,‘이성애정상가족’의‘소소한’일상.“이소소함과평범함속에성별을포함한모든권력위계를내면화하는잔인함이숨어있다.우리의일상은잔인한상식을이어붙인징검다리와같다.”
그징검다리를밟지않고물가를걷는다는건어떤일일까.어떤이는직장에서자신의정체성을끝까지밝히고싶지않다고말한다.자기자신을더힘들게하고싶지않다는뜻이다.또어떤이는오히려더‘주류’에편입되고자했다.경계의밖으로가는자신을경계하는것이다.하지만그렇다고온전히주류에머물수없다는것도잘안다.“저는퀴어이지만퀴어이고싶지않아요.내가‘나’인걸받아줄수있는사회가아니니까요.”(강표,게이)그럼에도,가능한한커밍아웃을하며살고싶다고말하는이도있었다.“그것을빼놓고는나를설명할수가없거든요.”(혜민,바이섹슈얼)
경계에서면그간당연하다고여겨온것들이낯설어진다.일터의성소수자들은생산과효율을위해자기자신을끊임없이‘정상’으로재생산해내야하는노동을낯설게바라보는이들이다.그들의그경계성이경계의안과밖을뒤흔든다.경계에선성소수자들은결국“살아온대로계속”살아갈수없는또다른삶들과만나게된다.‘정상’에서벗어난다는이유로,규범에어긋난다는이유로사라짐을강요받는수많은존재들.우리는종종우리의존재자체를이유로사라짐을강요받는다.뚱뚱한여자,고분고분하지않은여자,장애인,질환자,비대졸자……정상성에부합하는몸을갖춰환대받는이들의삶도행복하지않기는마찬가지다.‘노오력’하고‘자기관리’하지않는다면누구든손쉽게퇴출될것이다.
바로이것이우리가성소수자들에게응답해야하는이유다.성소수자들의‘곁’인우리가더이상이들의존재를감추거나예외화하지않고‘드러냄’에응답해야하지않을까.경계에선이들의경험과목소리에응답한다는것은곧지금까지세상이작동해온방식에의문을갖는일이다.“오랫동안살아왔던대로계속사는대신다른삶을꿈꾸는일.그러므로퀴어는일터에있어야한다.퀴어인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