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제국 시대 일본군을 인터뷰하다)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제국 시대 일본군을 인터뷰하다)

$17.15
Description
왜 그들은 ‘천황과 국가를 위해’ 죽을 각오를 다지게 되었나?
왜 옥쇄 명령에 복종해 자신의 목숨마저 버리게 되었는가?

근대국가의 사상통제, 주입된 이데올로기의 위력…
전쟁 수행에 ‘알맞게’ 폭력적인 개조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개인들
제국 시대 군인들의 생애사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되돌아보다
한국인이 제국 시대 일본군을 만나다. 우리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 그야말로 자폭 공격이다.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을 두고 그 잔인함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자살 공격을 해야만 했던 병사들의 심리에 관해서는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들은 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살 공격을 했을까? 왜 이 명령에 복종했을까? 이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을까? 명령을 받은 순간 인간적인 동요는 전혀 없었을까? 무엇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했을까?

이 책은 제국 시대 일본군 병사를 직접 인터뷰해 이런 질문에 답한다. 제주도 토박이이자 해병대 장교 출신의 저자는 한국군에 스며 있는 일본군의 정신주의를 파헤치고자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제국 시대 일본군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석사논문(〈총력전 체제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과 동요: 전 일본 군인·군속의 구술사를 중심으로〉)을 완성했다. 이 책은 그 석사논문을 뼈대로 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옛 피식민지인이었던 한국인이 지배국 일본의 군 관계자들을 직접 인터뷰 조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실제 전쟁 체험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던 사람들의 의식과 심리, 사상통제를 통한 전체주의 국가의 사회통치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독창적인 저작이다. 전쟁 수행에 ‘알맞게’ 폭력적인 개조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주입된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인간 존재가 전쟁의 부속으로 가공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뒤틀림에 대해 들여다보며 전쟁의 본질과 인권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제국 시대 전쟁 체험자들을 통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한 번 더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

박광홍

제주도토박이.제주대를졸업하고오사카시립대학(현오사카공립대)문학연구과에서논문〈총력전체제하내셔널아이덴티티의형성과동요:전일본군인·군속의구술사를중심으로〉로석사학위를받았다.지금은박사과정을밟고있다.
서귀포해안의부자연스러운구멍들이나를일본유학으로이끌었다.그구멍은아시아ㆍ태평양전쟁당시일본군이자폭공격을위해파놓은인공동굴이었다.국가나대의를위해서라면자신의생명까지내던지는그‘정신’,그서늘함.나또한해병대생활을하며그정신의서늘함을조금느낄수있었다.한국군에스며있는일본군의‘정신주의’의실체를밝히고싶어일본유학을결심했고,제국시대일본군을만나그들의이야기를듣고석사논문을썼다.그들의체제와전쟁을이해하는것이지금내가밟고있는현실을이해할수있는단초가될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어서였다.이책은그석사논문을뼈대로해서재구성한것이다.어렵사리인터뷰를하고책을마치고나니,조금은깨닫게되는바가있었다.그깨달음을다른분들과도나눌수있다면큰기쁨이겠다.

목차

프롤로그|제국시대일본군을만나다
제주해안가에있는이상한인공동굴|해병대의‘필사의정신력’‘필승의신념’|한국군에남아있는일본군의정신주의|그들을만나고싶었다

1.‘천황폐하’의신민으로자라나다
‘폐하의자녀’로‘나라를위해죽는’것|삶이파탄난사람들이들고일어나다|교육의군국주의화,충성스런신민만들기|조선인의‘일본화’정책|“천황은일본의상징일뿐”|사상통제의위력,복종하는신민

2.입대,죽음의운명공동체
만주사변,15년전쟁의서막|그들에게전쟁은기회였다|총력전시대,죽음의운명공동체|그들은어떻게입대하게되었나

3.군대교육,천황의군인으로거듭나기
매일밤구타,‘나자신이불쌍했다’|군인칙유,천황제국가관의확립|어쩔수없이죽음의각오를다지다

4.전쟁과죽음
불침전함야마토의침몰|특공,자살공격을명령받은병사들|“안심하고죽어라,야스쿠니신사에모셔질테니”|죽음을앞둔장병들의심리|“그래,내가제일먼저죽자”|‘국가’에‘국민’은없었다

5.일본이전쟁에서항복한날
“이길수없다는걸이미알고있었어요”|“천황폐하를지켜야한다”|“일본이라는나라는어떻게되어도좋으니까”

6.어제의적,오늘의친구
“헬로,헬로”,“땡큐,땡큐”|중국군의관대한대우

7.새로운세계에드리워진제국의그림자
“폐하는전쟁을원치않으셨어요”|만들어진천황의이미지|야스쿠니만은절대부정할수없다|기억되지못한전쟁체험|왜과거사는정리되지못했을까

8.그들에게전쟁은무엇이었나
국체사상이일본장병들에게끼친영향|일본군은왜옥쇄명령에복종했는가

에필로그|나또한‘국민’으로빚어진존재
감사의글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너희는죽으면야스쿠니신사에모셔진다”

책은제국시대일본군의생애사를바탕으로당시의상황을재구성하는형태로전개된다.전쟁을수행한당사자들의입장과관점에서당시의시대상이생생하게재현된다.즉개인의세계관이전쟁전에어떠한과정으로형성되었으며,그것이전쟁기에어떻게작용했는지,전후에는어떻게변화했는지를파악할수있다.평범한어린이가‘황국신민’으로사회화된이후국가라는‘죽음의운명공동체’를위해군에입대하고,매일반복되는구타등을이겨내며군인이되어전쟁을수행하는과정이담겨있다.
총력전체제안에서인터뷰이들은철저하게전쟁수행의부속품으로가공되었다.국가는오직‘천황’만을위해존재했고,국민의안위는단한번도고려되지않았다.사상은철저히통제되었고,개인의식은집단의식안에고립되었다.전쟁을수행하는동안개인의식의동요도있었지만표출할수는없었다.개인의양심과권리는총력전체제에서설자리가없었던것이다.
그런이들에게‘야스쿠니신사’는큰위안거리였다.천황이나국가를위해죽으면야스쿠니신사에갈수있다는것,그리고그곳에서신으로모셔지는가운데전우들과재회할수있다는것.이것이죽음에직면한장병들을위로하는중요한장치였다.야스쿠니신사의존재로인해죽음을두려워하지않게되었다는이야기는,장병들의사생관에야스쿠니신사가얼마나큰영향을끼쳤는지엿볼수있다.“‘야스쿠니신사’는인터뷰를진행하는내내귀에꽂혔던단어였다.야스쿠니신사에관한이야기를들으면들을수록,야스쿠니신앙은일상화된죽음의동요를억제하는강력한장치였다는인상을받게되었다.”(127쪽)“그래서우리로서는실로야스쿠니신사라고하는것은신성한존재였던것입니다.굉장히신성하니까,‘죽으면야스쿠니에갈수있다고,죽으면모두전우들과만날수있다’고했죠.왠지이제꿈같은이야기지만,어쨌든‘야스쿠니에서만나자!’라는식으로되어버린것입니다.네,그러니까뭐야스쿠니신사에들테니까무조건이렇게열심히하라는뜻이죠.”(127~128쪽)
책은전쟁을수행하는동안형성된아이덴티티가전후에도개개인의삶에계속해영향을끼친다는점도주목한다.이를테면,기시우이치씨는천황은전쟁에전혀관여하지않았고,천황덕분에일본이성장했다는신념을여전히품고있었다.야스쿠니신사에대한생각도전몰자가족을위로하고있다는점에서“훌륭하다”고평가했다.“천황은일본의상징일뿐”이라고말하던히로토아키라씨또한야스쿠니신사의존재만큼은부정하지않았다.야스쿠니신사는“나라를위해죽은사람을위령하는시설”이므로이를트집잡는것은올바르지않다는것이다.불합리하게강요된장병들의죽음을미화하면서국민을통합하는사상전의도구로쓰였던야스쿠니신사의기능은여전히이들의삶속에남아있었던것이다.

‘천황폐하’의신민으로자라나다

“전쟁중이기때문에그러한교육을받았던것입니다만,그당시의교육이란결국말이지요.‘너희는폐하의자식이다.그러니까나라를위해서죽는것말고는다른길이없다’라는식의교육이었어요.”(27쪽)
제국시대일본은국민의생명보다천황의안위가더중요했던나라였다.인터뷰이들의증언에서개개인을황국신민으로빚어내는작업이얼마나광범위한영역에서시행되었는지를알수있다.제국일본의교육이념은‘천황주권의절대성’에기초한‘황도주의국체론’이었다.학교에서부터천황과국체의신성을강조하는교육이이뤄졌는데,그대표적인것이1890년에포고된‘교육칙어’였다.이를통해천황의신성성을강조하며학생들에게유사시나라와천황을위해헌신할것을주문했다.청일전쟁,러일전쟁,제1차세계대전,시베리아출정등대외전쟁이진행되면서국가주의교육은더욱성행했고,이와함께학교를넘어일상에서도이런교육이실시되었다.
국체사상을근간으로하는내셔널아이덴티티의형성은단순히교육을통해서만이루어진것이아니었다.바로사상통제의영향도컸다.제국일본은천황숭배·일본국민으로서의자각을저해하는사회주의나무정부주의,조선독립론과같은‘위험사상’을철저히걸러냈다.치안유지법의제정과특별고등경찰의등장이이런사회의분위기를더욱옥죄는역할을했다.이로써목소리를내는시민은거의사라졌고,복종하는‘신민’만이남게되었다.그과정에서만들어진황국신민은천황과나라를위해목숨바쳐싸울것을요구받았다.“이런사회의말로는참담했다.군부는자기자신의출세와보신을위해일본이라는나라를전란의수렁으로끌고갔지만,그누구도그들의폭주를막을수없었다.즉이들을견제할세력이없었던것이다.제국의질서를지키기위해벌였다는‘사상탄압’이결과적으로는제국의파멸에일조한셈이었다.”(51쪽)

천황의군인으로거듭나기

“이제는우리가나가서싸우지않으면안된다고생각했습니다.”(71쪽)
만주사변,중일전쟁,아시아ㆍ태평양전쟁…당시일본은계속해서침략전쟁을일으키며대외팽창에만몰두하고있었다.진주만공습이후연전연승이이어지긴했으나곧전황은악화되었다.1942년6월미드웨이해전에서의치명적인패배와뒤이어벌어진과달카날전투에서패배한뒤일본의국운은급격히기울었다.이런상황에서도전쟁지도자들은국민의생명을포함한국가의모든것을쥐어짜어떻게든전쟁을이어가고자했다.이시기에기시씨와히로토씨는조국일본이만주사변이래10년넘게치르고있던대외전쟁에동원되었다.
기시씨는당시제국일본의중요한전쟁지도자중한사람이었던야마모토이소로쿠대장의전사소식을듣고입대를결심했다.야마모토이소로쿠는진주만공습을성공시켜일약영웅이되었으나,1943년미군기의습격을받고사망했다.조국이위기에처하자소년기시우이치는자신이전장으로나가싸워야한다는결의를다지게되었다.위기에직면한조국을위해입대를선택한기시씨에게국체를근간으로하는일본은‘죽음의운명공동체’였다.히로토씨는대학생이었기때문에원래는징집유예대상이었으나전황이악화하면서그제도는폐지되었고,이에따라학도출진하게되었다.
근대국가가출범한이후전쟁규모가확대되었고동시에전쟁의양상역시이전과는근본적으로다른‘총력전’으로변화했다.총력전체제는전쟁에대한전국민규모의동원이전제된다.그야말로‘죽음의운명공동체’인것이다.이죽음의운명공동체는군대내는물론일상생활까지지배하는사실상의종교가되었다.때문에인터뷰이들은입대와전쟁수행에관해어떤이견도낼수없었고,이에복종할수밖에없었다.국가구성원들이가지는국민으로서의자각이전쟁동원에서발생하는동요나반발을억제하는기능을했던것이다.히로토씨는장교로서의책임감,국민으로서의의무감때문에죽음의각오를다지기까지했다.자신의임무를‘죽는것’이라고강하게인식했던그는인간으로서의고뇌를느낄때도있었지만,‘일본국민으로서의자각’이이를억제하게했다.‘죽음의운명공동체’로서의자각이전쟁에동원되는개인의식에강하게작용했던것이다.

특공,죽음을명령받은병사들

“‘예!예!예!’하고모두지원해요.10명있으면10명모두지원하니까……그러면‘누구누구’라고지목하죠.대략정원이3명뿐이라고하면,3기만출격하게되겠죠?어쨌든손을안드는사람은없을걸요?이제전부다.그점은뭐랄까,역시지원하는게올바르다는분위기죠.”(137쪽)
이른바특공이세상에처음모습을드러낸것은1944년10월레이테만해전에서였다.일본해군과미국해군사이에벌어졌던레이테만해전은인류역사상최대규모의해전으로기록된다.‘필리핀을빼앗기면일본은말라죽고만다’는절박함에일본해군이사활을걸고총력을쏟아부었기때문이다.이해전에서패배한일본은차츰패망의길로가고있었다.
이런상황에서특공은거스를수없는대세가됐다.해군군령부의광기에찬특공병기투입안이쇼와천황에게곧이곧대로보고됐고,천황은자신의이름으로특공대원들을죽음으로몰아넣을이계획에군말없이도장을찍었다.
그리고1944년8월,인간어뢰카이텐과자폭보트신요가신병기로서정식채용됐다.1944년10월25일에는첫가미카제공격이시행되었다.제국의지도자들은이특공이‘군대’와‘국민’의사기를고양시킬것으로기대하고대대적으로선전했다.이에따라특공을찬미하는영상과출판물들이쏟아졌다.특공은이제전국민에게요구되는미덕이자의무가됐다.전황은이미걷잡을수없이기울었지만,‘일억총옥쇄’‘일억총특공’과같은구호들이난무했고,‘항복’을입에담는것은있을수없는일이되었다.특공은적에게물리적타격을입히는전법을넘어전국민의사상을통제하는도구가됐다.이길수없는전쟁은그렇게지탱됐고무의미한희생은늘어만갔다.
육해군을합쳐5,000여명의장병들이특공에출격했다목숨을잃었다.게다가동원된대원들은대부분10대중반에서20대에이르는소년들과청년들이었다.제국의지도부는어린청춘들을자폭으로내몰고도패전을막아내지못했고,이에대해책임도지지않았다.특공은당시제국일본에횡행했던인명경시풍조를극단적으로보여준사례라고할수있다.
그럼에도대부분의장병들은제국일본이항복하는그날까지각자의위치를지켰다.이들은어떻게최후의순간까지전쟁수행의부속으로기능할수있었던것일까.특공명령을거부한사람들도있었고,“일본이라는나라는어떻게돼도상관없다”고말하는사람도있었다.하지만명령을받으면어쩔수없이수행해야만했다.그이유는죽지않으면상대를이길수없다는교육을받아왔고,이것이‘의무’였기때문이다.학교교육과군대교육의목적은‘나라를위해목숨바쳐싸우겠다’는의지를배양시키는데있었다.개인의자기의지대로생과사를선택할수없었다.기시씨는‘일단명령을받게되면절대싫다고할수없는’상태가된일본군인들의심리를‘교육’의영향이라고설명했다.그교육을통해세뇌된그들은결코‘옥쇄’나‘특공’을거부할수없었던것이다.

일본이항복한날,만들어진천황의이미지

“박:높은사람들은그본토결전이라는것에서이길수있다고생각한건가요?
기시:아니요,이미이길수없다는걸알았어요.
박:전혀안된다는걸알았다고요?
기시:안된다는걸알고있어도요,싸우지않으면도리가없잖아요?”(158~159쪽)
전쟁에가망이없다는것은상하를막론하고모두느끼고있던엄연한현실이었다.그러나전쟁지도부는전쟁에대한집착을거두지않았다.심지어그들은히로시마(1945년8월6일)와나가사키(1945년8월9일)에원자폭탄이투하되고소련이대일전에참전한절체절명의상황에서도전쟁종결을결단하지못했다.
1945년8월10일.도쿄궁성에서모인제국일본전쟁지도부들은일분일초가촉박하던그때,천황제유지를보장받을수있을것인가를두고지루한입씨름을하고있었다.그들에게천황의존재는국가통치의정당성을부여하는일본그자체였다.그들에게국민의안위는중요하지않았다.결국8월14일어전회의에서항복선언을하기로결정되었다.그러나그날일부과격파장교들의쿠데타가일어났다.그들의목표는단하나였다.항복찬성파각료들을제거하고8월15일에예정되어있던천황의항복선언방송을저지한뒤,전쟁을계속하는것이었다.그러나이쿠데타는실패했다.1945년8월에벌어진이난리의중심에는‘천황의그림자’가드리워져있었다.이미310만의국민이전쟁으로희생된시점이었지만,항복논의에있어국민의안위는단한번도고려되지않았다.항복파와항전파를막론하고오직천황제유지가가능하냐,아니냐에대해서만핏대를세웠을뿐이다.즉천황한사람의존재가‘일억국민’의생명보다도우선시된셈이다.제국일본은국민을위한일본이아닌천황을위한일본이었다.
전후이뤄진도쿄재판에서도천황은면죄부를받았다.맥아더사령부는천황이재판에넘겨지면일본을통치하는자신들의입장이‘매우곤란해진다’는판단을내렸다.결국천황에게죄를물으면일본의통치가어렵다고판단한연합군사령부는천황에게죄를묻지않았다.당시사형선고를받은이는7명뿐이었다.실권없이무력하며또한그렇기에전쟁책임에서무결해보이는천황의이미지가도쿄재판을통해만들어진것이다.

일본군은왜옥쇄명령에복종했는가

이책에는일본의군인및군속이었던3명의이야기를중심으로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