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항해술 (보편과 특수 사이의 영화들)

비교의 항해술 (보편과 특수 사이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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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 편의 영화가 자본주의와 조우할 때

한국이라는 사회의 모순과 적대를 번역해내는 영화적 순간들
그 충격과 긴장, 균열을 가로지르는 ‘비교’의 사유
한 편의 영화가 자본주의와 조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조우는 영화 내부에 어떤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킬까? 아니, 그 전에 영화와 자본주의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통상적으로 영화는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는 문화상품으로, 탄생부터 자본주의 시스템과 뗄 수 없이 얽혀 있다. 오늘날의 대규모 영화산업과 그 자장 안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대중영화들은 영화와 자본주의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선명히 보여준다.
《비교의 항해술》은 영화연구에 그러한 관계성에 대한 사유를 도입하는 책이다. 동시에 이 작업은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에 반응하는 문화적 형식인 대중영화를 통해 ‘한국’이라는 특정한 국가/사회의 모순과 적대를 포착하고 역사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자본주의와 그 체제에 내재한 사회적 적대들이 영화의 표면적인 내러티브를 넘어,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층위들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산포된다는 것을 강력히 염두에 둔다. 이때 비평의 과제는 한 편의 영화가 자본주의의 모순과 적대를 어떤 식으로 번역하고 표현해내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데 있다.
물론 대중문화로서 영화는 때로 정치, 경제 등 다른 사회적 실천들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역사적 모순이 응축되고, 자본과 국가의 폭력이 극으로 치닫는 사회적 상황에 ‘부인’이나 ‘침묵’의 방식으로 응답하는 영화들이 결코 적지 않듯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부인은 반드시 역사적 조건에 관한 흔적들을 함축하기 마련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하나의 텍스트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여러 요소들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방식, 즉 텍스트의 불완전성과 비대칭성에 초점을 맞추는 ‘징후적 독해’다. 그런 징후들을 포착할 때 우리는 영화 텍스트 내부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파열들을 생산적으로 독해할 수 있다.
저자

하승우

한국영화와영화이론을중심으로연구해왔고,특히세계체계의맥락에서한국영화의형세를살펴보는것에관심을두고있다.언젠가영화이론에관련된저서와1970년대초중반에제작된임권택의영화에대해글을쓸계획을세우고있다.《문화/과학》편집위원이며2022년부터한국문화연구학회학회장을맡고있다.《라캉과한국영화》(2008),《한국영화,세계와마주치다》(2018),《자유로운개인들의연합을향하여》(2022)등을함께썼다.최근에쓴글로는〈‘메드베드킨집단’과러시아혁명의영화적기억〉〈어긋난전쟁의기억:〈증언〉〉〈코로나19팬데믹이후의삶과생태사회주의〉〈객체지향존재론:밋밋한존재론인가대상지향존재론인가〉〈좌파포퓰리즘을둘러싼몇가지질문들:이론과쟁점〉〈GlobalSolidaritybetweenGwangjuandBuenosAires:GoodLight,GoodAir(2021)〉등이있다.현재한국예술종합학교영상원영상이론과에서강의와연구를하고있다.

목차

서문
한국영화를이해하는실타래:독특성과종별성ㆍ5

1장근대의시간ㆍ26
:1950~1960년대한국영화의지정학

2장비교영화연구의질문들ㆍ68
:영화그리고자본주의세계체계

3장알튀세르라는유령들의귀환ㆍ114
:노동다큐멘터리영화와종별성

4장경험적역사와비역사적중핵사이의긴장ㆍ158
:〈괴물〉이라는급진적예외

5장(트랜스)내셔널시네마에서‘네이션적인것’으로ㆍ196
:초국적작가로서박찬욱이라는사례

6장장르적상상력의실패ㆍ232
:현재주의와역사기록의문제

7장포스트-정치시대의재난과공포ㆍ258
:한국영화의정치적상상력

초출일람ㆍ301
찾아보기ㆍ303

출판사 서평

‘비교’라는출발점:이론적자원들
책전체를관통하는‘비교’는그러한징후적독해를실행할수있도록하는하나의방법론이다.비교란영화와자본주의라는서로다른두대상을견주는것그이상의의미를갖는다.책에서저자는한편의영화에부재하는것이다른영화에어떻게현존하는지살펴봄으로써부재와현존의‘성좌적’관계를조명하는작업,혹은서로다른영화들이맺고있는비대칭적관계를살펴봄으로써영화가처한역사적조건들을일별하는것을비교로지칭한다.이뿐만아니라비교는“보편과특수의비교,독특성과종별성의비교,한편의영화를구성하는각각의요소들의비교,한편의영화와또다른영화의비교”등을망라하는포괄적인의미로사용된다.
같은맥락에서부제‘보편과특수사이의영화들’은영화,좀더정확히말해한국영화를바라보는저자의관점과문제의식을담아낸다.그관점이란바로‘보편theuniversal-특수theparticular’라는대당관계속에서한국영화를사유하는방식이다.이대당관계는한국영화를새로운각도에서조망하기위한문제틀을제시한다.보편-특수란기본적으로생물학의분류체계처럼상위범주와(그에포함되는)하위범주사이의관계를뜻하며,흔히상위범주인보편(유)이하위범주인특수(종)을포함한다고상정된다.헤겔로대표되는고전철학의대주제인‘전체-부분’과도맞닿아있는이관계는주디스버틀러ㆍ에르네스토라클라우ㆍ슬라보예지젝과같은현대의좌파정치철학자들사이에서첨예한논쟁을불러일으킨주제였다.
저자는그러한좌파이론가들의보편-특수논쟁을면밀히검토하면서도(4장),그관계를나름의방식으로재구성하며‘한국영화’라는영역으로전유하고자한다.이때가장중요하게소환되는철학자는루이알튀세르다.자본과노동의기본모순이특정한사회구성체의구체적인정세속에서‘과잉결정’되는방식에주목했던알튀세르의작업들은한국/남한이라는특정사회구성체,그리고그자장안에서생산된대중영화들이자본주의와조우하는방식을살펴보는데핵심적인단초가된다.이는곧종별성의문제로,종별성개념은특정한사회구성체를구성하는다양한심급들이불균등하게맺고있는모순의관계를지시한다.
유령적보편성(버틀러)이나구체적보편성(지젝)같은개념들이시사하듯,보편과특수는언제나내재적이면서도동시적인관계를형성한다.다시말해오늘날하나의단일한원리로서의보편성이다양한특수(자)들을포함하지않을뿐더러,특수들이그에종속되지도않는다는통찰은거의상식이되다시피했다.그렇다면양자의관계를동시적으로만드는계기는무엇일까?그계기는특수가변화/전화하는순간에열린다.저자는특수가변모하는계기를독특성과종별성두가지경우로나누어설명하면서,특수의형태변화가보편의개념자체를발본적으로재구성하고복수화한다고강조한다.복수의개념들이서로경쟁할때보편개념은확장될수있다.
마찬가지로,영화를자본주의라는맥락속에서들여다볼수있는계기는특수가‘종별성’으로전화될때마련된다.그때우리는영화를역사의구체적인작동들속에서이해할수있게된다.역사를이해하는방식은곧영화의사회문화적종별성을이해하는방식을제시해준다.

‘영화’가아닌‘한국영화’를질문한다는것:종별성의관점과비교영화연구
말하자면종별성(특정성)은‘관계’와관련된개념으로,관계성자체를뛰어넘어근본적으로‘자기-개체화’를추구하는독특성과달리‘개체와환경의관계’에초점을맞춘다.따라서종별성의측면에서보편개념은역사적자본주의를,특수개념은한국영화를가리키며,이때중요한것은한국영화가역사적자본주의와그것을구성하는서로다른시간성들과조우하는방식을더듬어보는일이다.
영화연구에종별성의축을도입하는시도는곧영화에관한근본적인질문의형태를전환하는일이다.동시에이것은이미지가지닌고유한역량에집중함으로써영화를독특성의측면에서조명한들뢰즈의영화이론에존재하지않는축이다.그러나종별성의관점을견지할때우리는‘영화그자체’가아닌,‘한국영화’를질문할수있게된다.이때한국영화란,한국이라는특정한사회와그사회가포함하고있는자본주의적모순의관계안에서생산되고또그것과이런저런방식으로부대끼는문화텍스트/생산물을말한다.이러한접근은하나의보편으로서의영화,즉특정국가/사회의역사적·사회적맥락들을염두에두지않는보편적이고초월적인매체형식으로서의영화개념자체를변화시킴으로써복수의영화범주들을산출해낸다.
《비교의항해술》은이문제를가장급진적으로사유했던영국의영화이론가폴윌먼PaulWilleman에게주목한다.‘비교영화연구’를위한조건과이론적자원을탐색하는그의작업들은문학뿐아니라영화에도왜‘비교의방법론’이필요한지세밀히짚어낸다.무엇보다윌먼은문학이론가프랑코모레티가비교문학연구의기본적인문제틀로제시하는‘외부적형식vs지역적소재’라는개념쌍을비판적으로점검한다.그에따르면,이런대립구도대신필요한이론적토대는“한지역에서생산된문화텍스트가자본주의와조우하는과정”이다.자본주의적경험을비교영화연구의기반으로삼아야하는이유는그것이서로다른문화권의문화적차이들을관통하는공통의조건이기때문이다.
특히영화는“필연적으로산업화된문화적형식”으로,그형식에영향을주는산업화와근대화의역학을단순히‘외부적형식’으로간주하기어렵다.더불어이런관점은특정민족국가에서발생한문화적형식을자본주의자체와동일시하는오류를범할수있다.이를테면할리우드를자본주의와동일시하며할리우드와그외내셔널시네마nationalcinema들을대당관계로설정하는실수가대표적이다.그러나할리우드그자체는결코자본주의가아니다.윌먼은“지역적으로종별적인자본주의와의조우”라는전혀다른개념을제시함으로써‘서구vs비서구’의대당관계를무효화하고서구/할리우드를지역화한다.
결국한국영화를비롯해각각의내셔널시네마의윤곽을그릴때핵심은“중심과주변의불균형적이고비대칭적인권력관계를근간으로하는세계체계의문제”다.윌먼의이론을통해우리는서구역시이문제를피해갈수없으며,그런점에서보편적이고초월적인시간성으로상정되어온서구의근대조차“자본주의근대화와지역의타협사이에서형성된”매우지역-특정적인결과임을인식할수있게된다.

한국과일본의아시아상상:미국헤게모니에대한영화적응답
세계체계적관점에서자본축적은상승과하강을반복하며순환한다.조반니아리기는이를‘체계적축적순환’으로개념화하며그순환이‘국가간체계’와긴밀히얽혀있다고지적한다.즉자본축적은전세계적으로동시에발생하는것이아니라,“제노바·네덜란드·영국·미국처럼특정한헤게모니국가내부에서구성되어전세계적으로팽창”한다.기본적으로자본은국민-국가의경계를넘어무한히이동하고확장하는특징이있지만,그런자본조차“특정한사회구성체에서발생하는복합적모순”을피할수는없다.일례로,1960년대동아시아의다층적하층체계가확립된데는1950~1960년대일본자동차산업에서최하층노동자들의노동교섭력이증대된실질적배경이있다.국내하청체계를구성하는노동자들의전투성이증가하자이를동아시아및동남아시아의저임금노동력을동원해해결하려한것이다.
냉전질서아래일본을중심으로형성된다층적하층체계는20세기를주도한미국헤게모니(‘장기20세기’)와밀접한연관이있다.그러나1950~1960년대남한은미국헤게모니가주도하는동일한자본주의세계체계에일본과는전혀다른방식으로반응했다.이러한차이는“모순이종별적으로펼쳐지는양상”에주목해야하는이유가된다.그시기일본이미국의원조를받으며비교적안정적으로경제발전에몰두할수있었다면,남한의국가체계는냉전의소용돌이에휩싸여분단과한국전쟁을경험하며그와다른방향으로나아간다.특히1952년에조인된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후냉전의소용돌이에서물러날수있게된일본은제국으로군림했던과거를망각하고,미국의지원하에스스로를단일민족국가로정비해나간다.반면이조약에서배제된남한은냉전질서의직접적인영향을받게된다.“해방기와냉전기를거치며영토가확장과수축사이에서진동하는사이,한국의아시아상상은태평양을중심으로재조직화된다.”
이렇듯세계체계에대한응답은두국민-국가의아시아상상력에적잖은흔적을남겼다.무엇보다,이시기제작된일련의영화들은한국(남한)과일본이세계체계와의관계속에서매우이질적인방식으로아시아를상상하고있음을선명히보여준다.특히앞서살펴본폴윌먼의비교영화연구방법론은그양상을식별하는데매우유용한자원들을제공하며,저자는그방법론을토대로1960년대후반~1970년대초반에제작된한국영화와1960년대에제작된마스무라야스조의영화들을대상으로비교영화연구를수행한다(2장).그영화들내부에등장하는모종의공간들은두국가가표상했던아시아의심상지리imaginedgeography를나름의방식으로드러낸다.
먼저저자는확장(해방기)과수축(냉전기)사이에서진동했던남한의영토상황을반영하는당대한국영화들에주목한다.〈산불〉(1967),〈고발〉(1967),〈생명〉(1969),〈속팔도강산:세계를간다〉(1968),〈04:00-1950〉(1972)등이바로그영화들이다.서로다른이질적인도시들을확장적순환의방식으로연결하는〈고발〉과〈속팔도강산〉은반공주의를중심으로한아시아-태평양의지리적커넥션을선명히표현한다는점에서지배이데올로기에복무한다.‘조국근대화’의구호를해외로까지확장하면서도동남아시아나아프리카의비동맹중립국들에상당히적대적이었던남한의지리적상상이영화에고스란히반영되어있다.〈산불〉〈생명〉〈04:00-1950〉의경우,공간의무한한확장을꾀한앞의두영화와상반되는전략을취한다.시골촌락,탄광,고립된벙커등꽉막힌폐쇄공간과인물사이의복잡한상호작용을밀도있게담아냄으로써반공이데올로기를‘내파’하는선택을보여주는것이다.
반면위의한국영화들과견주어지는1960년대마스무라야스조의영화들은폐쇄공간이라는동일한전략을전혀다른방식으로활용한다.주인공오카네의행위를통해제국주의적확장을급진적으로파열시키는급진적단절을가시화한〈세이사쿠의아내〉〈나카노스파이학교〉이후,그의영화(〈문신〉〈눈먼짐승〉)는점진적으로그어떤구체적지표도없는폐쇄공간을극대화하는방향으로나아간다.이런경향을출구없는파시즘/제국주의에대한재현으로해석하거나,지구상의모든공간이동질화되는포스트모던한경향의영화적선취로바라볼수도있을것이다.그러나어느곳이어도상관없는탈맥락화된공간을제시하며사회적관계와의연결선을완전히끊어버릴때,마스무라야스조의영화들이그리고자했던“제국주의적팽창과그팽창의힘을단절시키려는힘사이에서발생하는환원불가능한긴장”은오히려사라지게된다.
초국적시대의한국영화:한국형블록버스터의탄생과〈괴물〉이라는급진적예외
그렇다면국민-국가의형성이후한국영화는어떤궤적을그리며변화해왔을까?1990년대후반부터2022년현재까지,한국영화는놀라운변화를거듭해왔다.천만관객시대를열만큼국내영화시장은대단히큰성공을거뒀으며,해외진출이나국제영화제수상소식도꾸준히증가했다.이런성적들은한국영화가기존의관행에서벗어나새로운영화들을생산하고있다는긍정적인평가의근거가된다.실제로일부해외평론가들은한국영화가민주화사회에조응하며새로운흐름을선보였다며‘뉴코리안시네마’라는명명을붙이기도했다.
그러나《비교의항해술》은이런식의목적론적사고에매우비판적이며,한국영화에대한새로운문제설정이필요하다고강조한다.우선저자는한국영화산업의변화시점을1990년대가아닌노동자대투쟁이발생한1987년으로설정한다.1987년을기점으로한국사회는‘형식적포섭’에서‘실제적포섭’으로이행하게되고,노동의본성자체도근본적으로변화한다.형식적포섭이자본과노동의분명한구별을전제한다면,실제적포섭국면에서는테크놀로지가도입되면서자본이노동력을분할하는과정이전개된다.1980년대말한국영화산업역시실제적포섭단계에들어섰으며,그에따라영화제작은물론투자,제작,배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