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우리 아이는 왜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 물음의 답을 찾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우리 아이는 왜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 물음의 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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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
반도체 산업의 2세 질환 직업병 문제
그동안 문제가 되지 못했던 문제,
“이제 그 답을 하려 합니다”
문제가 되지 못한 문제들
우리는 스물셋의 나이로 사망한 황유미씨를 기억하고 있다. 2007년, 황유미씨는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택시 운전사인 그의 아버지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병명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1년 8개월간 생산직 오퍼레이터(삼성은 반도체 공장의 생산직 여성 노동자를 ‘오퍼레이터’라고 부른다)로 일하다 병에 걸렸고 2007년 스물셋의 나이로 사망했다. 황유미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었다. 그 뒤 지난한 투쟁이 이어졌다. 2014년 서울고법에서 황유미씨가 산재로 사망했다는 걸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황유미씨가 사망한 지 7년 만이었다.
반올림은 2015년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직업병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며 1,023일 동안 농성을 했다. 그리고 2018년 드디어 삼성으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약속받았다. 반도체 직업병 인정 싸움의 큰 성과였다. 그 뒤 반도체 전·현직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질환 보상 제도가 마련되었고, 2022년 2월 현재까지 87명의 반도체 전·현직 근무자가 직업병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걸로 끝일까? 직업병임을 인정받았고, 보상도 받았으니 끝난 것일까? 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바로 직업병의 피해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자녀들에게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녀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됐다. 이들이 수정란, 정자, 태아와 같은 상태로 존재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8쪽) 선천성 식도폐쇄, 콩팥무발생증, 방광요관역류, IgA신증…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얻은 질병 목록이다. 대장을 다 들어낸 아이도 있었다. 왜 아이들은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때는 다른 현안 때문에 ‘문제’가 되지 못했던 ‘문제’들. ‘문제’였지만 ‘문제’로 만들지 못했던 ‘문제’들. 바로 반도체 산업의 생식독성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다. 이 책은 이 문제를 지금 이 세상에 드러낸다. “더는 뒤늦지 않기 위해 ‘문제가 되지 못했던 문제’들을 되짚으려 한다.”(13쪽)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라는 아이의 질문에 이제 답을 하려 한다.
저자

희정

기록노동자.살아가고싸우고견뎌내는일을기록한다.저서로는반도체직업병문제를다룬르포집《삼성이버린또하나의가족》(2011),일하다죽고병드는사회를기록한《노동자,쓰러지다》(2014),청구성심병원이정미노동열사평전《아름다운한생이다》(2016),성소수자노동에대해다룬《퀴어는당신옆에서일하고있다》(2019),싸우는사람들과그에연대하는사람들의이야기를담은《여기,우리,함께》(2020),기록노동에세이《두번째글쓰기》(2021)가있다.
그외《밀양을살다》(2014),《섬과섬을잇다》(2014),《기록되지않은노동》(2016),《416단원고약전》(2016),《재난을묻다》(2017),《회사가사라졌다》(2020)등을함께썼다.

목차

프롤로그|문제가되지못한문제들

1부목소리들
1.“누가좀알려줬으면좋겠어요”_이혜주이야기
다른대화:“그럼넌내마음을아니?”
2.“이제그답을하고자합니다”_김수정이야기
다른대화:산재신청을하기까지
3.“그마음은아무도모를거예요”_정미선이야기
다른대화:한사람몫을요구하는세상에서
4.선택지와직업병

2부무지와증명
1.무지의이유
2.증명의곤혹
3.“평등하지않기에근거가없는거죠”_김명희보건학연구자인터뷰

3부목소리의길목
1.끝이나지않은시작들
2.“우리가또하나의의미를던졌구나”_제주의료원사건관계자인터뷰
3.“존재자체를부정할수없었던거죠”_조승규반올림노무사인터뷰

4부정상일터의사소한비밀
1.본적없는사람들
2.일터,힘의세계이자긍정적육체의세계
3.“임신이죄가되어서는안됩니다”_이현주우송대학교간호학과교수인터뷰

5부누군가의자리,여성
1.“그래도,그때도이겨냈어요”_김희연,박지숙이야기
2.“공주처럼살라고그러더라고요”_최선애이야기
3.오퍼레이터로태어나서
4.더낮은곳에서더위험하게

6부우리가동의한미래
1.싸우는사람들의이동
2.상식을만드는사람들
3.우리의삶이넓어지도록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2세질환직업병문제,
문제를문제로만드는사람들

“처음시작부터이문제가있었어요.”사실반도체노동자들의생식독성과2세질환직업병문제는계속현안으로존재하고있었다.임신중에아이를잃은노동자가있었고,난임으로마음고생이심했던노동자도있었다.생리통과생리불순은너무흔해서큰문제로여기지도않았다.무엇보다아픈아이를낳은노동자들이있었다.그런데도독자적인이슈가되지못했다.왜그랬을까?이문제가‘젠더문제’이기도했기때문이다.반올림에제보한노동자들은‘가족이몰랐으면한다,시댁이몰랐으면한다’같은말을하기도했다.“저는생식독성문제가공론화되기어려운이유중하나가젠더이슈이기때문이라생각해요.한국사회에서‘기형아’를출산하면부모가,특히엄마가엄청난부채감에시달리잖아요.‘내가임신때무슨약을먹은게문제였나.내가담배를피운게문제인가.’오만가지죄책감에시달린단말이에요.이사회적규범자체가여성들을옭아매고있는거지요.”(151쪽)
그렇다면어떻게생식독성과2세질환직업병문제를‘문제’로만들것인가?이책은이문제를문제로만드는사람들의이야기이기도하다.그동안피해당사자뿐만아니라연구자,의료·법률종사자,그리고반올림활동가들이나서서이문제를문제로만들어왔다.이문제는한국사회가함께다뤄야할노동권문제이자,인권문제라는것,더나아가여성노동자의임신과출산,건강권문제이고,질환과장애정체성의문제이기도하다는것.그리고한국의정상가족이데올로기의영향을많이받는문제라는것.이렇게이문제를끊임없이제기해왔던사람들은2세질환직업병문제가이사회의상식이되어야한다고말하고있다.반도체직업병이삼성의주장처럼허언이나괴담이아닌진실이었던것처럼,2세질환직업병문제도이사회의상식으로만들어보자는의지의표현이다.
그리고이책을쓴기록노동자희정.그또한이문제를널리알려온사람중한명이다.희정은2011년《삼성이버린또하나의가족》이란책을통해삼성전자반도체공장에서일하다죽거나병든노동자들의이야기를쓴바있다.그책이나온지11년이되었다.당시희정이만난이들은어느새중년이되어있었다.희정이익히알고있던그일터의그노동자들.희정은이들이겪고있는생식독성과2세질환문제를기록하며이문제에새로운‘동력’을불어넣는다.무엇보다이문제를바라보는희정작가의시선과통찰력은더욱깊고넓어졌다.‘살아가고싸우고견뎌내는일을’기록하는희정작가의진실된글쓰기를엿볼수있는책이다.

끝난문제는없다,시작일뿐

2021년5월,이혜주(12년근무),정미선(8년근무),김수정(20년근무)은정식으로근로복지공단에산재신청을했다.급여수급인은모두자녀들이었다.자녀들에게일어난손상이자신이일했던회사의근무환경과연관이있다며,그에따른보상을요구한것이다.세사람모두삼성전자반도체공장에서오래일했고,그곳에서일하는동안생식독성물질에노출되었다.그리고그들의자녀들은태어나자마자아팠다.
이들이산재신청을할당시까지만해도‘태아산재법’이통과되기전이었다.즉자녀는산재요양급여수급권자가될수없었다.당시법은‘근로자’와그유족만산재요양급여수급권자가될수있다고정해두었기때문이다.그래서이들의산재신청은승산이없는싸움이기도했다.하지만2020년대법원이제주의료원소속간호사의2세질환이직업병임을인정하는판결을하자양상은바뀌었다.그리고2021년일명태아산재법이통과되었다(어머니측의태아산재만인정하고아버지측의태아산재는배제했다는점에서아쉬움을남겼다).드디어부모의업무환경으로인해선천적으로건강손상을입은자녀가수급권자가될수있는길이열린것이다.
하지만근로복지공단은여전히현행법에요양급여지급규정이없다는입장이다.아이의병이직업병때문이라는판결은났지만제주의료원간호사들은아직산재보상을받지못했다.제주의료원간호사들이10년간법정투쟁끝에이룬것이지만,아직도가야할길은많이남았다.마찬가지로반도체산업노동자들의2세질환직업병인정투쟁도해결해야할것이많이남아있다.“사람들의기대와다르게개정안을통해당사자들이얻은것은‘산재신청을할수있는권한’뿐이었다.판결을기다린간호사들도,반도체2세질환직업병피해자들도근로복지공단의판정을기다리고있다.끝난문제는없다.시작일뿐이다.”(167쪽)

태어나자마자아픈아이,
고통을감내하는사람들

아이가태어나기직전까지삼성반도체기흥사업장클린룸에서일했던이혜주씨는아들이아프게태어났다는것을첫수유를하자마자알게되었다.아이가모유를삼키지못하고다게워냈던것이다.수술후아이는신장한쪽이없다는판정과함께선천성식도폐쇄증진단을받았다.밥을먹다가호흡곤란이오는상황이언제닥칠지모르는병이다.음식물이식도에걸리면아이목구멍에손가락을넣어서빼내야한다.이때문인지아이는자주아팠다.무슨병인지도알수없을때가많았다.그럴때마다이혜주씨는엄마로서아이를챙겨야했다.“엄마가돼서여태몰랐다니”하는자책과함께.“애키우는거너무힘들어요,사실.누가좀알려줬으면좋겠어요.이방법이최선이라고알려줬으면좋겠는데.키우면서힘이드니까.계속제가잘하는게없다고생각하게되고.괜히제잘못같고.”이혜주씨는아이가왜아픈지늘궁금했다.반올림을만나면서아이가직업병때문에아프다는것을알게됐다.그리고대기업을상대로하는게쉬운일이아닐거라는걸잘알면서도산재신청을하겠다고나섰다.“저보다더안좋은상황에계신분들도많을텐데.한사람이라도보태야죠.여러사람이하면좋지않나요?”(36쪽)
삼성반도체에서20년간일한김수정씨는아이가아프다는사실을임신4개월차에알았다.산부인과에서초음파검사를하던날의사가아이의신장하나가보이지않는다고말했다.아이는태어나자마자각종검사를받아야했고,원인모를병에시달렸다.김수정씨는아이가왜아픈지그원인을알고싶었다.원인은고사하고아들의병명을알기까지10년이걸렸다.개복까지해서얻은병명은콩팥무발생증과방광요관역류증,그리고IgA신증.신부전으로이어질가능성이있다는IgA신증은10만명중2명이걸린다는희귀질환이었다.왜아들은이런병을안고태어났을까?김수정씨는이제그답을알고있다.아들이어렸을적“나는왜아프게태어났어?”라고묻던말에답을하기위해산재신청을하게되었다.
정미선씨는삼성반도체온양사업장1기사원이다.1991년에입사해1998년퇴사했다.퇴사할당시그는임신중이었다.태어난지3일째되는날부터아이는아팠다.선천성거대결장.아이의대장은이미기능을하지못했다.결국아이의대장을다들어낼수밖에없었다.아이뿐만아니라정미선씨자신도병을얻었다.2010년갑상선암진단,2011년류머티즘진단,2013년뇌전증발병,2014년자궁경부이형성증진단.그는산재신청을했으나근로복지공단은그의질병이업무와무관하다고말했다.이런병을앓으면서도그는자신때문에아들이아픈거라며부채감을느끼며살았다.“나때문이라는생각을안해봤거든요.처음에는신랑한테도말을못했어요.도저히못하겠더라고요.혼자속으로만삭이고.어떻게할줄을모르겠더라구요.진짜그마음은아무도모를거예요.”(85쪽)그는2015년5월,산재신청을했다.이번에는자신이아니라아들이수급자였다.

생식독성물질을누가알까?
“기업은알려주지않는다”

생식독성물질은여성,남성의생식기관에손상을일으킨다.이런물질에노출되면유산·난임,선천성질환을지닌자녀를낳을가능성이커진다.생식독성물질에노출된가임기여성은국내에최소10만명.이들대부분이생식독성이무엇인지도모르고쓴다.즉생식독성물질이무엇인지노동자대부분은잘알수가없다.그만큼국가와기업이그정보를숨기고,잘관리하지않기때문이다.
산재신청을한세사람의공통점은모두삼성이라는회사를너무좋아하고믿었다는것이다.자신이일한직장이위험하다는걸전혀의심하지않았다.왜의심하지않았을까?“왜몰랐나.스스로찾은답은이것이었다.너무어려서.첫직장생활이라.의심하기에는너무큰회사여서.사원을‘가족’이라말하는회사였고,일이많고분주해생각할시간을주지않는회사였다.반도체기업의오퍼레이터입사나이는대체로열아홉.고3여름방학이지나타지로와서3주간의신입교육을받은후근무지로배치됐다.”(117쪽)그들의나이는대체로열아홉,스무살.그누가자신이일하는곳에유해물질이가득하다는걸의심할수있었을까?그것도삼성이라는대기업에.
게다가삼성은1999년기흥사업장이최고안전사업장으로기네스북에올랐다고홍보하기도했다.무재해세계기록을보유한그사업장에서지금까지직업병산재판정을받은이는27명이고,이중12명이세상을떠났다.또삼성은고졸의말단생산직오퍼레이터여성노동자들에겐그어떤정보도제공하지않았다.유해물질을채워넣고닦고뒤처리하는사람은모두오퍼레이터들인데도.“기업은모를만한사람을뽑아일을시키고,알아도어찌할수없는조건을만들고,알면서도모른척하도록길들인다.기업은일하는사람의무지를조장하는수많은장치를가졌다.장치는작동했고,사람들은그장치위에서성실히일했다.”(122~123쪽)

오퍼레이터또는여자일자리

이책은소위말하는‘여자일자리’에관한이야기이기도하다.“반도체나와서현실을깨우쳤죠.반도체에서일하던거는나가서써먹을데가없어요.”(24쪽)고등학교를졸업하고오퍼레이터로입사해결혼하고임신을하면퇴사하는게정해져있는길이었다.“갓스물이된오퍼레이터들이전자·반도체생산라인에서근무하다7~8년이되면자의반타의반퇴사하며사라졌던것은우연이아니다.지금도계속되는일이며,전자산업에국한된현상도아니다.경력단절이라는이름으로여성의시간은분절되고,이것은다시불안정한저임금노동자를만들어낸다.자본은끊임없이생애주기를조각낸다.”(201쪽)임신을해도퇴사하지않았던김수정씨같은사람도회사의‘명예퇴직’권유에결국그만둘수밖에없었고,그뒤로‘여자일자리’를전전해야했다.‘여자일자리’란대게비정규직,하청·외주·파견업체직원이라불리는곳이다.반도체회사를그만둔오퍼레이터들도이런일자리를옮겨다닐수밖에없다.반도체공장에서일한것은경력이되지않기때문이다.
일반여성노동자들도마찬가지다.책은이‘여성’들이처한상황을자세히전한다.여성이라서임금을남성보다적게받고,그것도수십년째여성의월급이남성의3분의1수준이라는것.한국사회는임신한여성들이안전하고건강하게일할수있는일터가지극히드물며,그래서여성은남성보다근속연수가짧을수밖에없다는것.책은이렇게‘여성이라서’라는이유말고는설명할수없는현실들을낱낱이지적한다.또한업무상재해의판단기준이남성노동자중심의산업에서발생하는산재를중심으로한게많아서,여성노동자의직업병은잘드러나지않는다는사실도전한다.
어린소녀들이오퍼레이터로만들어지는과정도자세히살핀다.우리모두이생산직오퍼레이터들을‘착하고모범생이었던누군가의딸’로기억하고있진않았는지묻는다.“젊은여성을클린룸에유폐하고‘근면하고순한’노동자로통제한것은기업과가정의무의식적인공모만은아닐것이다.우리가사는이공동체가여성을,아니자원없는여성들을‘오퍼레이터로태어나게’한것은아닐까.”(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