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사는 집 : 판자촌의 삶과 죽음

가난이 사는 집 : 판자촌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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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 많던 판잣집은 어디로 갔을까?
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판자촌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무엇인가?
책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철거민들의 저항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집을 철거하기 전에 다른 곳에 살 자리를 제공한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었다. 시 외곽에 집단정착지를 만들었고, 광주대단지는 그중 신도시급 대규모 정착지였다. 시민아파트도 판자촌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입주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이 주민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광주대단지는 수도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은 황무지에 불과했고, 시민아파트는 생활 형편에 비해 입주금이 너무 비쌌다. 더군다나 세입자들이나 후발 전입자들은 대상이 아닐 때도 많았다. 결국 1971년 광주대단지에서 참다못한 주민들이 들고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철거 싸움은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대신 체념하거나 또는 분을 못 이겨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직적인 철거민운동이 시작된 건 1983년부터였다. 1983년 목동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목동 주민들의 대응은 1970년대의 철거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조직화되고 체계적이었으며,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전까지 이뤄졌던 ‘한차례 들고일어나는’ 수준의 철거 반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100여 차례가 넘는 집회, 시위를 거치면서 약 2년간 계속되었다. 특히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가두점거 농성이나 구청 진입, 경찰서 앞 시위 등이 수시로 벌어졌다. 이후 철거민 싸움은 사당동, 상계동, 돈암동, 오금동, 구로동 등 100여 곳이 넘는 곳으로 확대되었다. 초기에는 학생운동권이나 종교계 등의 도움을 통해 조직화되기도 했지만, 차츰 주민들이 스스로 연합조직을 만들고 이끌어갔다. 1987년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를 시작으로 1990년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주거연합) 등이 이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책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싸웠던 제정구, 정일우, 허병섭, 고광석, 김흥겸 등 빈민운동가들도 조명하고 있다. 저자 또한 이 당시 철거민운동에 함께했다.
저자

김수현

저자:김수현
세종대학교공공정책대학원교수다.한국도시연구소소장,서울연구원원장을지냈다.노무현정부와문재인정부기간,정부에참여했다.《부동산은끝났다》《한국의가난》《꿈의주택정책을찾아서》《집에갇힌나라,동아시아와중국》등의책을썼다.

목차

책을내며
그많던판자촌은어디로갔나?

1부.판자촌을아시나요?

1장집
산업화,도시화그리고주택문제
남의땅에집짓기
판자촌의전형이만들어지다:붉은색시멘트기와,미장한블록벽
새로들어선무허가주택

2장사람
판자촌사람들
판자촌의개혁가들

3장사건
물,불,산사태
와우아파트붕괴
광주대단지사건
투쟁하는철거민

2부.집,가난그리고개발

4장집과가난
가난한집의역사

5장판자촌과합동재개발
판자촌을중산층용아파트단지로

6장뉴타운과도시재생
판자촌이후의재개발
뉴타운에서도시재생으로

3부.판자촌이후의판자촌

7장세계의판자촌
어디나‘판자촌’은있다

8장판자촌이남긴숙제
판자촌에대한국제사회의촉구
판자촌이남긴숙제

보태는글
판자촌과부동산정책의경험


참고문헌
사진출처

출판사 서평

판자촌철거의역사,
누구를위한재개발인가?

판자촌철거의역사는도심재개발의역사이기도하다.‘대전이나대구규모의초대도시로구상한도시’인광주대단지개발,시민아파트건설,합동재개발사업,뉴타운사업등책에는도심재개발의역사가자세히담겨있다.대규모로재개발이진행될때마다가난한사람들은집을잃고다른곳으로흩어져야만했다.시민아파트등그들을위해짓는다는집에그들은결코들어가살수없었다.가난한사람들은또다른나쁜주거지로이동할수밖에없었다.
특히전두환정권시절진행됐던합동재개발사업은가히폭력적이었다.합동재개발사업은주민(가옥주)과건설업체가각각조합원과참여조합원이되어‘합동’으로재개발사업을한다는의미에서붙은이름이다.합동재개발사업은1983년시범사업을시작한이후빠른속도로서울전역의판자촌을해체하기시작했다.합동재개발사업의충격은컸다.1980년대초만해도서울시민의10%이상이거주하던판자촌이10년만에2~3%가사는곳으로줄어들었다.줄잡아70만명이상이판자촌을떠나야했던것이다.이들은어디로갔을까?영구임대주택,반지하방,옥탑방,고시원,쪽방등이판자촌의빈자리를대신했다.더군다나이연쇄이동으로다세대·다가구주택에서근근이살아가던사람들마저임대료인상의폭탄을맞았다.판자촌주민의관점에서보면합동재개발사업은자신들의주거지를상위계층에게제공하는사업일뿐이었다.즉가난한사람을더가난하게만드는사업이었다.특히판자촌세입자들을위한대책은거의없다시피했기때문에그들에게더욱잔혹했다.
합동재개발사업은한국사회에나쁜선례를많이만들었다.용적률증가에따른개발이익을사유재산처럼소유자가독식하는것이당연시되었고,정부는도시개선을위해재정이나자원을투입하지않아도될명분을얻었다.재개발이나재건축을활성화하기위해서는그저개발규제만완화하면된다는식이었다.시장중심규제완화론이재개발,재건축의원칙이되어버렸다.그러나이런도시재개발논리는부동산시장을더욱양극화하고,가난한사람들을도시에서살기어렵게만들었다.

철거에맞서싸운주민들

책은도심재개발과정에서발생한철거민들의저항도자세히다루고있다.기본적으로정부는집을철거하기전에다른곳에살자리를제공한다는원칙은가지고있었다.시외곽에집단정착지를만들었고,광주대단지는그중신도시급대규모정착지였다.시민아파트도판자촌을철거하고주민들을입주시키는방식이었다.그러나정부의대책이주민들입장에서는받아들이기어려울때가많았다.광주대단지는수도시설도갖춰져있지않은황무지에불과했고,시민아파트는생활형편에비해입주금이너무비쌌다.더군다나세입자들이나후발전입자들은대상이아닐때도많았다.결국1971년광주대단지에서참다못한주민들이들고일어나기도했다.하지만1970년대철거싸움은대부분일회성에그쳤다.대신체념하거나또는분을못이겨목숨을던지는사람들이많았다.
조직적인철거민운동이시작된건1983년부터였다.1983년목동주민들이들고일어났다.목동주민들의대응은1970년대의철거싸움과는차원이달랐다.무엇보다조직화되고체계적이었으며,장기간에걸쳐지속되었다.이전까지이뤄졌던‘한차례들고일어나는’수준의철거반대와는차원이달랐다.100여차례가넘는집회,시위를거치면서약2년간계속되었다.특히당시전두환군사독재시절에는상상하기어려웠던가두점거농성이나구청진입,경찰서앞시위등이수시로벌어졌다.이후철거민싸움은사당동,상계동,돈암동,오금동,구로동등100여곳이넘는곳으로확대되었다.초기에는학생운동권이나종교계등의도움을통해조직화되기도했지만,차츰주민들이스스로연합조직을만들고이끌어갔다.1987년‘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를시작으로1990년‘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주거연합)등이이런차원에서만들어졌다.책은가난한사람들과함께싸웠던제정구,정일우,허병섭,고광석,김흥겸등빈민운동가들도조명하고있다.저자또한이당시철거민운동에함께했다.

모두가함께살아가는도시는가능할까?

판자촌은사라졌지만,여전히싼집이필요한사람들은존재한다.저자는이들이살아갈수있는‘싸고,좋은집’을우리사회가갖춰야하며,더좋은조건으로제공해야한다고말한다.가난한사람들이쫓겨나지않는개발정책이필요하며,그런점에서도시재정비의개발이익은소유자뿐아니라,거기서살아가는가난한계층,나아가도시전체의발전을위해사용되어야한다고지적한다.그래야여러소득계층,여러연령층이함께살아갈수있는도시가구성될수있기때문이다.“모두가좋은집에서살수는없다.그래도최대한모두싸고좋은집에서살수있도록노력하는사회가되어야한다.모두가좋은동네에서살수는없다.그러나어느동네든안전하고쾌적하며,편리한생활시설을갖추도록노력하는사회가되어야한다.도시에부자나중산층들만살수없다.도시는여러소득계층,여러연령층,여러직업군이함께살고,만들어가는공간이다.”(305쪽)무엇보다빈곤을극복할수있는다양한대책이필요하다고말한다.가난이사라지지않는한가난한사람들이사는집은사라지지않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