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의 노래 :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

전사들의 노래 :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

$21.34
Description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될 때
세계는 다시 시작된다

버스, 지하철, 수용시설 그리고……
마침내 이 사회 전체를 멈춰 세운 이들의
생生을 건 싸움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분주한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에 출몰해 한순간 도시의 리듬을 마비시킨 이들. 세상은 이들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고 불렀다. 한때 거대 양당의 당 대표였던 이는 이들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적 시위’로 몰아세우며 공격했고, 그사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수차례 ‘무정차’ 대응을 개시하며 장애인의 탑승을 거부했다.
이 책은 2021년 12월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시위의 기원을 더듬어보는 기록이다. 몇십 년간 지속해온 매일의 투쟁을 통해 거대하고 견고한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낸 싸움꾼 6인(박길연, 박김영희, 박명애, 이규식, 박경석, 노금호)의 생애가 인권기록활동가 홍은전의 글 속에서 뜨겁게 빛을 발한다. 이 여섯 개의 생애사들은 장애인이 승강장에 서기까지, 시설에서 혹은 집구석에서 지역사회로 나오기까지 걸린 22년이라는 시간을 감각하도록 한다.
전장연 혹은 장애인들의 시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급작스러웠지만, 전장연은 늘 해오던 투쟁을 여전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투쟁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며, 수십 년에 걸친 장대한 역사를 뚫고 오늘날의 이곳에 ‘사건’으로 당도했다. 한편으로 이 책은 《비마이너》가 기획한 ‘진보적 장애인운동 기록 시리즈’의 첫 권인 《유언을 만난 세계》(2021)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장애해방운동에 온몸을 바친 열사들의 ‘죽음’에 ‘삶’으로서 응답하며 고군분투해온 여섯 명의 생애사인 셈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휘청이며 저항했던 무수한 이들의 이야기에 이제 이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저자

홍은전

스물셋에우연히노들장애인야학을만나장애인운동을시작했고서른여섯부터인권기록활동가로살아가다마흔에고양이카라를만나동물권의세계에사로잡혔다.존엄이짓밟히는현장에서싸우는사람들의이야기를듣고전한다.문제그자체보다문제를겪는존재에게관심이있고차별받는존재가저항하는존재가되는이야기를좋아한다.『노란들판의꿈』『그냥,사람』『전사들의노래』를썼고,『나를보라,있는그대로』『아무도내게꿈을묻지않았다』『유언을만난세계』『집으로가는,길』등을함께썼다.

목차

기획의말4
‘시작’을만들고‘다음’을조직한전사들의노래|강혜민(《비마이너》편집장)
기록의말9
우리의말이역사가되도록|홍은전

살아있다는것의의미|박길연이야기17
그누구도아닌자기자신이되기까지|박김영희이야기69
내삶을내손에움켜쥐고|박명애이야기139
나의쓸모|이규식이야기193
싸우는인간의탄생|박경석이야기245
운동은삶을구할수있을까|노금호이야기315
장애해방운동이걸어온길400

출판사 서평

숙명宿命의기록:차별받은존재가저항하는존재가될때

지금으로부터약10년전인2001년에도장애인들은광화문한복판에서버스를멈춰세운적이있었다.쇠사슬로서로의몸과휠체어를묶은채버스를에워싼중증장애인들은이렇게외쳤다.‘장애인도인간이다.이동권을보장하라!’‘장애인도버스를타자’라는언뜻단순하고소박해보이는이구호에는비장애인중심으로흘러가는거대한자본주의세계전체를문제삼겠다는의지가담겨있다.수십년간장애인은자기삶에대한권리를박탈당한채집혹은시설에철저히유폐되었다.자본주의사회의가장중요한컨베이어벨트인지하철에서가장먼저치워진자들의이름이바로‘장애인’이다.하지만어떻게?‘버스조차’타지못하는불구의몸으로이세상전체와맞서싸운다는건얼마나막막하고답이없는일인가.

놀랍게도그불가능한싸움을시작한이들이있었다.차별과배제라는문제를문제삼지않는세계의모든것을문제삼는,실패할것이분명한싸움.2001년,그렇게비장애인중심의질서와문명을온몸으로들이받는장애인권리투쟁이시작되었다.“우리는서지않는열차를멈춰세웠다.당장가야할길이막힌사람들이길길이날뛰며우리가법을어겼다고비난했다.참이상한말이었다.장애인은어길법조차없는존재들이었기때문이다.한발짝만내디디면벼랑끝인이들에게이사회는신호를지키라고했다.”(홍은전,〈기록의말〉)
‘비장애인중심사회’의기본값을뒤흔든변화의시작은참으로초라하기만했다.싸움을시작할어떠한자원도없던시절이었다.장애인들은고작‘불구’로낙인찍힌몸뚱아리하나로지하철선로를점거하고,버스를낚아채쇠사슬로자신의몸을그곳에묶었다.배제와차별의근거가됐던불구의몸이싸움의근거이자토대가되는순간이었다.대체이들은어디에서,어떤시간을거쳐이곳우리앞에당도했던것일까?

낮달같던시간들:집구석에서혹은시설에서

이책에등장하는여섯명의인터뷰이들은현재왕성한활동을펼치고있는장애해방운동가이다.인천장애인운동의대표적인물로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교장이자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소장으로활동하는박길연,장애여성공감을만들었고장애인이동권연대의공동대표를지냈으며현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대표로활동하는박김영희,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교장을거쳐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상임공동대표로활동하는박명애,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등에서활동하며탈시설운동과자립생활지원에헌신하다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대표가된이규식,24년간노들장애인야학의교장을지낸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상임공동대표박경석,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설립하고센터장으로활동하는동시에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초석을마련하고공동대표를맡아대구지역장애인운동을주도하고있는노금호가바로그들이다.

이들이처음부터지금과같은싸움꾼으로존재했던것은아니다.스스로의의지로투쟁판에뛰어들기전,이들은이유를알지못한채집이나시설에남겨지는생활을받아들여야했다.박김영희,박명애,이규식,노금호는장애를가지고태어났거나어린시절특정질환때문에장애를입게된경우로,주로집에서만생활하거나집과시설을오고가며지냈다.그런탓에또래친구들과다르게종종학교다니는것을포기해야만했다.곁에는다정하고따뜻한부모나형제들이있었고,시설이나장애인공동체에서훌륭한어른혹은좋은친구들을만나나름대로의미있는시간을보내기도했지만,제한된일상속에서알수없는답답함을느낄수밖에없었다.이들은나이가들수록자신의삶이‘무언가부당하다’는인식을가지게되었다고했다.“밤마다울었어요.나는낮달같은존재였죠.떠있는데아무도내가거기떠있는지몰랐어요.”“나는왜이렇게살아야할까?언제까지이렇게살아야할까?나가서살방법은없는걸까?”

중도장애인인박길연과박경석은질병혹은사고로장애를갖게된후집안에만머물러있던시절에대해사뭇다른방식으로회상했다.류머티즘관절염이전신에퍼져걷지못하게된박길연은극도의통증때문에아들을제대로보살펴줄수없었던게뼛속깊이마음아팠다고이야기하며,동시에자신을돌보느라오랜시간고생한가족들에대한미안함을내비쳤다.반면행글라이더사고로하반신이마비된박경석은사고직후스스로를유폐시킨채외부와의소통을단절해버린시간을외려어떤고통도감각하지못하는‘시체의경험’으로설명했다.“모든것을포기하게되니사람이무감각해지더라고요.가장큰절망은아무것도느끼지못하는상태같아요.”

마침내세상밖으로:투쟁의희열과동지라는곁

일상에단단히뿌리박힌차별때문에절망을절망으로느낄수조차없었던이들은어느순간자신이겪는삶전반의문제들,그러니까학교에배우러갈수도,버스나지하철을탈수도,식당에밥을먹으러갈수도없는그모든상태가‘차별’임을깨닫기시작했다.이대단한사건을일으킨건동지와의만남이었다.동지들은장애가있는사람이문제가아니라그사람을배제하는사회가문제임을일깨워줌으로써단숨에이들을세상밖으로이끌었다.동지를만나세상으로나온이들은과거자신과같은상황에처해있는또다른장애인들을동지로조직해싸움을확장해나갔다.

이규식은노들장애인야학을통해장애인운동에입문했다.시설생활을끝내고집으로돌아와지내던어느날아차산초입부근에있는정립회관에우연히들어갔다노들장애인야학과접속하게된것이다.야학교사들과격의없이어울리며청각장애인시설에바다복지회의폭력과비리에맞선투쟁에참여하게된그는점차‘집회의맛’을알아간다.1999년혜화역에서리프트추락사고를당해큰부상을입었을때는야학사람들과함께지하철공사에손해배상을청구해승소를이끌어내기도했다.장애인이동권연대투쟁국장으로열띤활동을이어가던그는2006년탈시설운동으로활동영역을전환했고,2011년에는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설립해10년간장애인의자립생활을지원했다.이때그는시설에사는장애인들이2박3일정도바깥에나와지역사회를체험하는‘이음여행’을만들었다.“위축되어있던사람들이점점자신의권리를알아가고탈시설에대한자신감을갖는모습을보면그렇게뿌듯할수가없었어요.그들을통해나도자신감을얻고요.활동가로서내가더많은일을할수있다는것을느꼈죠.”

행글라이더사고로장애인이된박경석의곁에도동지는있었다.가까스로마음을추스르고‘착한장애인’으로살고자했던그는직업훈련을위해들어간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전산과에서박흥수와정태수라는‘나쁜장애인’들과운명적으로조우했다.안정적인직장을얻어어머니에게보답하는‘보통의’삶을살고자했던그의꿈은‘일상이곧데모’인두친구와어울리며점차희미해져간다.그렇게그는노들야학에눌러앉았고,1997년교장이되어2021년까지무려24년간교장을지냈다.죽기직전까지‘조직하라’고했던정태수와늘상‘현장의가난한사람들에게가라’고했던박흥수.그두동지에게조금씩물들어간박경석은나쁜장애인들과어울리며거리에서싸우는희열을알아갔다.그희열은그를이동권투쟁,활동지원서비스투쟁,탈시설투쟁,장애등급제폐지투쟁과같은굵직한투쟁들로이끌었다.

“태수는내가처음만난장애인이었는데그장애인이사람으로보였어요.불쌍한장애인이아니라그냥사람.‘아,이것도삶이구나’그런느낌을처음받은거예요.그런데그장애인이데모까지하는사람이었죠.태수는나에게새로운세계가있다는걸충격적으로알게해준사람이에요.”

지역장애인운동의꿈을길어올리다:활동지원서비스제도화투쟁의물결

대구의질라라비야학에서새로운삶을시작하게된박명애역시투쟁현장에나가게되고부터10년의세월이“어떻게갔는지도모르게재미나게살았”다고했다.그원동력으로주저없이훌륭한동지들을꼽았다.두아이를가르치는빠듯한살림에어렵게준비해둔택시비를움켜쥐고나간야학에서그는“당연하다고믿었던것이하나도당연하지않다는것”을배웠다.자신이싸울수있는존재라는것,그리고그렇게싸워세상을바꿀수있다는것을깨닫게해준야학이소름돋을만큼좋았다며애정을고백했다.2006년야학에나간지5년만에그는대구장애인지역공동체대표가되어대구활동지원서비스제도화투쟁을이끄는주축세력이된다.2007년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대표가된이후로는장애인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도입을요구하는농성과대구시립희망원비리및인권유린사태해결을촉구하는투쟁을벌이기도했다.“참말로악착스럽게싸웠어요.힘드니까빨리끝났으면좋겠다는생각을한번도해본적없어요.오히려평생말한마디못하고살았던한을투쟁하면서다풀었죠.투쟁현장에있는하루하루가행복했어요.”

대구지역은전국에서제일잘싸우는활동가들이많기로유명하다.그중에서도노금호는대구의장애인운동을지금과같은모습으로확장시킨주역으로꼽힌다.노금호와그의동지들은전선이어딘지를이해했고,어떻게싸워야변화를만들어낼수있는지를이해한이들이었다.그들은자신들을이끌어줄선배가부재하는상황에서도죽자사자사람들을조직함으로써더낮고더급진적인운동을개척해왔다.대구대학교재학시절꾸린장애인권동아리‘레츠’를통해삶과투쟁의공동체를다져온그는2006년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꾸려활동지원서비스제도화투쟁을조직하게된다.2005년에는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설립하기도했다.

대구활동지원서비스제도화투쟁은박명애와노금호를비롯해현재대구에서가장치열하게활동하는주요활동가들을조직하고단련시켰다는점에서의미가깊은싸움이다.2006년시작된활동지원서비스제도화투쟁이전국으로확산된데는대구활동가들의힘이컸다.지방정부가활동지원서비스제도화를앞다퉈약속하자중앙정부가이흐름을거부할수없게되었고,이듬해활동지원서비스는전국적으로시행되기에이르렀다.서울에서활활타오른투쟁의불꽃을이어받아대구에서다시불을지핀사람이바로노금호와그의동지들이다.이들은투쟁끝에대구시로부터활동지원서비스시범사업약속을받아냈으며,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전장연의지역조직으로정착시켰다.

박길연은인천지역장애인운동의대표적인물로꼽힌다.그는2006년인천에서활동하던박기연이‘너무힘들다’는말을남기고지하철선로에투신해사망했을때대책위사무국장을맡으면서투쟁현장에발을들였다.활동지원서비스의부재로어려움을겪었던박기연열사의못다이룬꿈을이어받아인천지역에서활동지원서비스제도화투쟁을이어나갔다.이후사비로직접민들레장애인야학을꾸렸고,야학에서동료들의활동지원을맡은경험을바탕으로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설립해본격적으로탈시설과자립생활을지원했다.“중증장애인한사람을탈시설시킨다는것,분명보통일이아니죠.함부로결정할수있는일도아니고요.하지만그때나는왜이사람들이평생이렇게살아야하는지이해할수가없었어요.너무화가났어요.대책없이그렇게사람들데리고나왔던거,지금의시각으로보면무책임하다고할수도있겠죠.하지만절대후회안해요.”

억압된천사에서자유로운마녀로:장애여성운동의계보

장애여성공감이열어젖힌한국장애여성운동의역사는이책『전사들의노래』를지탱하는또하나의주춧돌이다.남성중심적이고비장애인중심적인운동사회를가로지르며자신만의독보적인이야기를만들어온박김영희의삶은그자체로장애여성운동의탄생을생생히증언한다.그는배복주,김은정등을비롯한아홉명의동료와여성주의세미나를진행하며장애여성공감을창립했다.장애우권익연구소산하의장애여성모임빗장을여는사람들은이들이처음만나게된계기로,그시절그들은빗장의이름으로한국최초로여성장애인대회를개최하고‘장애여성과성’을주제로한프로그램을선보였다.그러나1998년이내빗장에서독립해나와장애여성공감을꾸린다.

박김영희와동료들은장애여성공감을통해‘장애인’과‘여성’이라는서로다른두정체성의교차에대해설명할언어를찾고자했다.단체를운영할비용도,학연이나지연같은사회적자원도갖지못한상황에서낮에는텔레마케터로일하고밤이되면세미나를열고글을쓰는날들이계속됐다.박김영희는자기자신조차스스로가낯설어“내존재를나스스로탐구하고내가경험하고느끼는것에대해직접표현”해야겠다는마음이들었다고이야기했다.“장애여성인우리는누구인가”에대해끊임없이이야기하지않으면“나도나를모르고사람들도장애여성을잘모를수밖에”없다는게그의생각이다.

2000년장애여성공감은강릉에서한지적장애여성이7년간동네남성들에게성폭력을당한사건에대응하기시작하면서본격적으로성폭력상담에대한문제의식을갖기시작했다.해당사건을통해그간제대로알려지지않았던장애여성성폭력문제가최초로공론화되었고,박김영희는공감이성폭력상담에전문성을갖춰야한다는의식을가지고직접상담원양성교육을받으러다녔다.내부활동으로내공을탄탄히다진공감은서울시에서주최하는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사업에당선되어공식적으로상담소를운영하게되었고,사무실을열고상근체계로전환했다.2001년장애인이동권연대공동대표가된박김영희는이동권연대내부의남성중심적문화에끊임없이문제를제기하며이동권투쟁현장을새로써나간다.

“폭력의배경에대해알았다고나할까,나에게향하던이름붙일수없었던시선들이어디에기반하는지알게되었어요.장애여성들은무성적존재로여겨지면서도동시에여성이라는이유로더무시당하고차별받아요.사람들이나를‘박영희’로보는게아니라여성그리고장애인으로만인식하고반말하고무시해왔다는걸알게된거죠.”

생애사의의미:삶과죽음의경계를마주하는기록

한편으로『전사들의노래』는삶과죽음의아슬아슬한경계에놓인장애인활동가들의생의조건을가시화하는기록이기도하다.장애해방운동가6인의생애사를엮는이기획은애초동료의건강악화혹은죽음에대한염려와두려움에서출발한것이다.책을기획한『비마이너』강혜민편집장은수많은동지들의죽음을마주했던기억의알맹이들에서비롯된죄책감,무력감에대해이야기한다.삶에대한관심을촉발한것은다름아닌죽음이었다.‘진보적장애인운동기록시리즈’의첫권인『유언을만난세계』가죽음이라는사건자체에서촉발된죽음이후의기록이라면,『전사들의노래』는지금여기의투쟁현장에서가장뜨겁게장애해방을외치고있는동지들의생을소중히다루고기억하려는시도에다름아니다.주류언론이주목하지않는가장낮고약한곳에서세계를확장하는사람들에대한기록.

“내겐소중한사람이언론에선‘불쌍한장애인’정도로취급됐다.그것은무척모욕적이었다.그러한세상의말과글에반격하고싶었다.내게장애인운동은싸우는만큼세상이나아지고,가장약한곳에서세계가확장된다는믿음을안겨줬다.이싸움에서『비마이너』의몫은무엇일까.그물음에오래시달렸다.”(강혜민,〈기획의말〉)

2008년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설립해탈시설운동에본격적으로뛰어든박길연역시동료의안타까운죽음을생생히기억하고있다.그중에는제도적지원이충분했다면얼마든막을수있었을죽음도있었다.일례로전신마비중증장애인이었던권오진씨는박근혜정부당시24시간활동지원이중단되어욕창이온몸에퍼졌고,건강상태가악화해급기야패혈증으로세상을떠났다.지병때문에시설에서나와2년도채못살고떠난한민희씨도떠올렸다.박길연은그가“살아서도외로웠는데떠날때도너무외롭게갔”다며,동료들의죽음을마주할때면힘이들다가도도무지지칠수가없다고했다.

“활동하다보면지치고힘들어서도망갈구멍을찾기도하지만이런죽음을겪으면슬픔과분노가차올라서다시힘을내게돼요.‘나는살아있으니까이렇게지치기라도하는구나.’그런생각을하면지칠수가없어요.”

운동은삶을구할수있을까:여전히남아있는질문들

투쟁판은장애가있는몸으로도차별과배제없이누릴수있는기본적인권리들을쟁취하기위한현장이지만,때로이곳에는역설적으로몸의문제를솔직하게드러낼수없는억압아닌억압이존재하기도한다.장애인의권리를위해싸우는투쟁현장에서정작활동가들의건강문제와통증이부차적문제로다뤄지는경우가있기때문이다.활동가들은종종투쟁을위해자신의몸상태를감춰야만한다.

박길연은질병과장애로인한통증이온전히자신의몫임을이야기하면서도,동료들에게그지점을이해받지못할때외롭고화가난다고털어놓았다.“집회를하는데어떤활동가가발언을요청했어요.치아때문에못하겠다고했더니그활동가가내가자꾸핑계를댄다는식으로툴툴거리는거예요.순간적으로너무마음이상해서다때려치우고싶단생각이들정도였어요.내가통증을참는건미련할만큼독종이어서예요.”더불어그는“어떤사람이자기몸이나장애를이유로뭔가를거절하거나부탁할땐믿어줬으면좋겠”다고당부했다.몸이아픈동료에게는세심한관찰과질문이필요하다는게그의생각이다.

2021년이책을위한인터뷰를진행하던당시척수성근위축증진단을받은노금호는전장연이주도하는진보적장애인운동에어렵고도심대한질문을던진다.치료제인스핀라자는건강보험이적용되더라도첫해에자부담이5000만원이고,매년1000만원씩추가비용이발생하는데,그러려면만3세이전에발병했다는걸본인이증명해야했다.이를증명한뒤에도또다른문제가생겼다.건강보험공단측에서증상이개선되지않을경우급여적용을중단한다고통보한것이다.그는사회와공동체가더이상자신의생존을보장해주지못하는상황에답답함과외로움을토로했다.“국가와사회,조직과공동체는내가노력한것에비해나를돌볼능력이없다는것을깨닫고생존에대한근원적인공포를느끼게됐어요.”

노금호는전장연이투쟁의대의를넘어“더처절한밑바닥,삶의어떤지긋지긋함”을직시해야한다고지적한다.이를테면,“싸움그이후에상황을수습하고세밀하게챙겨야할것들”말이다.투쟁현장에서활동가들의안전과건강은특히중요한문제다.그는무엇보다자신과같은중증장애인들의삶을위해더욱더구체적인해결방안이마련되어야한다고목소리를높였다.“많은중증장애인들이장애인운동안에서느꼈을소외감을지금제가느껴요.저의손상이진행되는속도에비해사회의성숙도는너무느린데그의미를확장하는운동조직안에서조차제가깰수없는한계에부딪힌것같아요.지금저에게가장중요한화두는어떻게나의존엄을지키면서이사회에서생존해갈것인가예요.”

2022년1월전장연은척수성근위축증환자들의고통스러운현실을알렸다.이동권,교육권,노동권,탈시설등에이어희귀난치성질환자의치료받을권리와장애인의건강권문제로싸움을확대한것이다.노금호의질문이촉발한그싸움은이제막시작되었다.다시한번,‘운동은삶을구할수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