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5.18 연구의 새로운 시선, 어느 학살에 관한 보고서
그들은 왜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는가?
그때 왜 다른 지역 대중들은 침묵했을까?
학살 그 후, 진실은 어떻게 가려졌는가?
도대체 학살은 왜 일어나는가?
곽송연
서강대학교현대정치연구소책임연구원.제노사이드와민주주의정치문화를연구하는정치학자다.박사학위논문으로<5·18광주와국가의지역주의담론연구>를제출했으며,이후국가담론과5·18가해자,‘정체성의정치’에대한연구를꾸준히이어오고있다.자신과사회에필요한선한영향력을갖추기위해하루하루연습하는사람들을좋아하고,‘폭력과무지의해악’을경계하는사람들을더좋아한다.주요논문으로2021년한국정치학회‘ResearchGrant’수상결과물인<민주화이후5·18에대한부인(denial)의정치학>등11편을발표했고,《동북아냉전체제의고착과문화적재현》을함께썼다.
책을펴내며
“왜쏘았니?왜찔렀니?트럭에싣고어디갔니?”
:오월광장의질문에답하기
1장그들은어떻게학살의가해자가되었을까?
1.학살은누가저지르나?:‘악마’와평범한군인의경계선
2.제노사이드가해자의행동양식에비춰본한국의경험
3.5·18가해자들은어떻게탄생되었나?
4.여전히숨겨진그들과함께살아가기
2장.대중은왜침묵했을까?
1.대중의지지혹은방관은어떤영향을끼칠까?
2.국가와언론이만든적,광주
3.대중은왜외면했을까?
4.반인권범죄를어떻게대할것인가?
3장.학살그후,진실은어떻게가려졌는가?
1.국가의공식역사만들기:학살을정당화하기또는망각하기
2.방해하는모든것은제거되어야한다:전체주의의지배원리
3.국가가창조한신화:망각의정치와지역주의담론
4.그날의광장을사유하기:신화화된공동체,다시읽기
4장.학살은왜일어나나?
1.격렬한갈등이학살을부르는가?
2.정치적학살이론과5·18
3.쿠데타,사회적갈등,그리고미국의선택
4.군부권위주의와전쟁이남긴유산
5.남은문제:끝나지않는학살을직면하기
주
참고문헌
그들은어떻게학살의가해자가되었는가?
1)학살이정당하다고확고하게믿는사람들:이승만과전두환
518의첫번째의문은‘가해자들은어떻게만들어졌고,그들은왜그런짓을저질렀는가?’이다.보통학살연구자들은가해자의지위(지도자고위간부,정규군,준군사조직)에따라그들의학살동인과행동양식을구분해설명하면서이들이잔학행위에나선원인을밝힌다.“지도자·고위간부는학살이‘필요’할뿐만아니라‘정당하다’고확고하게믿는사람들이다.그리고그들은그믿음에따라주저없이행동하는부류다.”(20쪽)
그렇다면한국의지도자·고위간부의학살동인과행동양식은무엇일까?저자는518당시한국의가해자들을이해하려면이승만정부시기로거슬러올라가살펴봐야한다고말한다.이때한국의역사적특수성이형성되었기때문이다.1948년정부수립당시,이승만은<정부수립기념식치사>를통해국가에대한충성과반공은하나이며,자신에대한반대도국가에대한반역이라는걸공식화했다.이승만은철저하게자신을찬성하는사람과반대하는사람을국민과비국민으로나눴다.여순사건이발발했을당시에는“빨갱이는포살”해도된다며학살을용인하기도했다.이렇게국가최고지도자인이승만의학살명령과기획에의해이즈음많은민간인이희생되었다.4·3사건,여순사건,보도연맹원학살사건등으로사망한사람만20만명이넘는다.학살의대상은종교,이데올로기와같은특성보다는학살을기획한지도자와정책결정자들에대한정치적반대여부가기준이었다.즉특별한기준이있었다기보다는자의적인기준을설정해자신의반대자를처벌했던것이다.이후‘반공주의’는대한민국의공식이데올로기로굳어졌다.“즉공산주의자(빨갱이)또는그혐의가있는사람은더이상국민의범주에속하지않게된것이다.”(22쪽)
이런‘학살의경험’이전두환과신군부에게도곧이곧대로이어졌다.저자는그들의반호남주의와반공주의가결합된이데올로기적특징과친위부대적성격이강한조직계통이광주에서학살을감행한주요한배경이되었다고말한다.
1979년10월29일박정희의사망이후잠시나마민주화의열망이퍼졌으나,전두환과신군부는12·12와5·17에이르는다단계쿠데타를기획·실행하며이를억눌렀다.이들은제3세계에서‘안정,안보,발전이데올로기’에경도된신직업주의적정향으로정치개입을반복해온군부의전형적특성을보였다.여기에반호남주의와반공주의가더해졌다.‘하나회’로대표되는정치장교그룹,미군의작전통제권에서벗어나있던신군부의조직계통은철저하게전두환을위한친위부대성격을띠었다.이들의특징은군본연의임무보다는독재자의권력유지와이에대한국민의저항에대처하기위한임무를더중요하게여겼다는데있다.5·18당시에도이런사적연결망에의해유지된신군부는공식군지휘계통을무력화시키며시민들을학살했다.“게다가이들은시위군중이폭도이기만하다면,어쩌면유사시폭도로낙인찍을수만있다면,일정정도의희생은‘필요’할뿐만아니라‘정당’할수있다는신념을공유하고있었다.앞서보았듯이전남도청에서의집단발포직후신군부의고위간부는‘광주의폭도를전차로밀어버리라!’고일갈했다.지휘계통을벗어난그의명령은사회정치적집단들의제거를목표로하는배제적이데올로기에경도된군부권위주의엘리트의속성을여과없이보여준다.”(172쪽)
이렇게배제적이데올로기와조직적특징을지닌이들은자신들의안위를위해반대자집단을학살했던것이다.
그들은어떻게학살의가해자가되었는가?
2)명령체계에따라복종한사람들-정규군
그렇다면518당시정규군의학살동인과행동양식은무엇일까?정규군이학살에가담하는경우는명령체계에따른복종,이데올로기주입효과,동료집단의압력과집단의순응성,이전제노사이드의경험등이복합적으로작용한것으로추론된다.더불어당시광주지역에투입된군은특전단이었다는것을잘살펴봐야한다.이특전단은516쿠데타와유신의선봉부대였으며국가원수와상관에대한충성심이강한부대다.5·18을이끈두주역인전두환,노태우도각각제1공수여단,제9공수여단을직접지휘한여단장출신이기도했다.
이때문에‘혈육같은인간관계로엮여있는’특전단은‘명령체계에대한복종’,‘동료집단의압력과집단의순응성’이수월한집단이었다.여기에이승만때부터형성된‘반공주의’가큰영향을끼쳤다.저들은우리와다른종류의인간이며,그들은처단해도된다는믿음이당시공수특전단에게작용했던것이다.곧‘이데올로기주입효과’이다.“앞서보았듯이우리사회는한국전쟁이후공산주의자이거나혹은공산주의자의혐의를씌울수있는사람은더이상국민의범주에속하지않는공식적경계가확립되었다.따라서공산당,간첩,더나아가폭도는도덕적거리의구성요소인법적확증과처벌정당화의메커니즘구획안에있었다.”(43쪽)또한특전단은이미베트남에서민간인을학살한경험이있었다.이러한경험은518당시살해에더효과적으로가담할수있게한요인이기도했다.
그런데당시학살에가담한정규군인들을우리는어떻게불러야할까?이들은계엄군이었으므로가해자이기만한것일까?아니면국가의부름에응해어쩔수없이명령을수행했어야만하는국가폭력의희생자일까?저자는국가폭력의가해자와피해자의이중적지위에있는이들에대한섬세한접근이필요하다고말한다.즉문자그대로의가해자인전두환등지도자고위간부와명령을수행한이들을구분하는현실적제도적조처가필요하다고본다.무엇보다이들은목격자이기도하기때문이다.518의진실의“문을열열쇠는필경가해자의이름에서벗어날기회를얻지못한수많은우리장병들의기억과증언,그리고고백들속에가라앉아있을것이다.”(59쪽)이를위해개별사안의정도와성격에따라처벌수위를어떻게조정하고,어떤경우에는면제할것인지에대한구체적인논의가있어야한다고지적한다.
다른지역대중은왜침묵했을까?:국가와언론이만든적,광주
가해자에대한논리와함께다른지역의침묵원인은518연구의대표적인공백으로지적되어왔다.저자는우선학살은대중의지지가반드시있어야가능하다는이론은잘못되었다고말한다.오히려대중의무관심과엘리트의침묵이학살에더중요한요인이된다고말한다.실제로히틀러의홀로코스트는엘리트집단의무관심이특히도움이되었다는학계의연구도있다.
그렇다면518당시다른지역대중들은왜침묵했을까?저자는대중의침묵원인을분석하기위해서는대중의무관심을유도한국가의담론전략과권위주의정부에동조한언론을비롯한엘리트집단의행위를면밀히살펴봐야한다고말한다.먼저당시국가의담론전략은어땠을까?
학살이나제노사이드를기획하고정당화하기위해국가는대개‘거짓정보의전파와선전’에집중한다.이를위해학살의실상을철저히은폐하고,영향력이미미했던기존사회균열을더활성화시키는전략을펼친다.518의경우도마찬가지였다.전두환과신군부세력은‘부인(denial)전략’을통해518을왜곡하거나대중이망각하게만들었고,‘지역감정’을활용해타지역과의갈등을증폭시켰다.
우선‘발포’사실자체를전면부인했다.시민의행위는“난동”“파괴”“폭력”“폭행”“방화”“약탈”“탈취”“난자”“학살”과같은부정적인단어로표현하고,계엄군의행동은“저지”“제지”“진입”등의용어를사용하며사건을왜곡했다.당연히책임은“지역감정”“유언비어”에휘둘린시위군중에게있다고공표했다.또“사태의배후”세력을몇차례바꿔가면서반공주의와지역감정을악용했다.처음에는배후세력이“학생및깡패등현실불만세력”이었다가,그다음에는“북괴의고첩과이에협력하는불순분자들”이었고,그리고마지막으로는“북괴노선을지지해유혈혁명을일으켜국가전복을획책하는김대중과그의추종자”들로바뀌었다.특히영남의발전을질시해온호남출신김대중을최후배후로지목한점은국가가지역감정을얼마나악용했는지를보여준다.이렇게국가는반공주의와지역주의담론을이용해왜곡거짓정보를대중에게전달했다.이것이518이민주화운동으로재규정되기전까지국가의유일한공식담론이었고,정보를얻을수없는대중들은이틀안에갇혀있을수밖에없었다.
언론과지식인들의태도도대중의무관심을부추겼다.제호를가리면어떤신문인지구분이안될정도로당시언론들은518을똑같은편집방향으로왜곡했다.“무정부상태의광주”“총을든난동자들”(조선일보),“군인을잡아낫으로찔러죽이고껍질을벗기는만행”(서울신문),“치안공백상태에서강도들이밤마다약탈행위를자행”(중앙일보)등당시신문에는왜곡된정보로가득했다.독재자를옹호하는지식인들도많았다.그들은오히려광주시민을질타하면서학살이정당하다고말하기도했다.이런정보만을전달받은대중들이어떻게광주의진실에다가갈수있을까?
“그렇게그날의광주는국가를위기에빠뜨린이기적인자들의지역이자공공의적으로낙인찍혔다.공식담론영역에서국가에의해완벽한내부의적이된것이다.이처럼국가는진실을가리기위해반공주의와지역주의담론을이용했고,극단적인사적이익추구로국가위기를초래했다는만들어진정보만을대중에게부과했다.”(82쪽)
그렇다면518과같은반인권범죄를어떻게처리할것인가?저자는가해자,즉전두환을비롯한고위간부들의부인뿐만아니라이를지지하고진실을왜곡하는권위있는엘리트들의태도를비판한다.이명박박근혜정부시기에우후죽순등장한뉴라이트세력과이를지지하는지지자세력이대표적이다.이들은518을폄하하고박정희,이승만등독재자들을칭송하는작업을이어갔다.이는희생자들을위해힘겨운과정을거쳐겨우얻은정의를뒤집는결과를초래했다.단순한역사왜곡이아니라사람들사이의불신을조장하고사회와국가내외부의갈등을심화시키는일이기도했다.저자는이들의행위에대응해인권과민주주의의가치를심화시키는일,즉화해를위한전략의개발을시급히실천해야한다고말한다.“그것은새삼스럽지만지난세월지체된정의는그날의구호가아닌이시대의문법인토론과숙의,그리고민주주의적가치에기반을둔사회적실천과함께지금우리가선자리에서복원될것이다.”(97쪽)
학살그후,진실은어떻게가려졌는가?
“학살그후,진실은어떻게가려졌는가?”“5·18이후권력탈취에성공한쿠데타세력은학살의참극을어떻게정당화했나?”이질문에답하기위해저자는제5공화국당시지배권력의통치양식과사회구조에주목해우리의민주주의를잠식하고있는반인권행위에대한부정의기원이어디인지를추적한다.그것은곧국가에대한성찰이기도하다.주지하듯이근대국가는국민또는민족이라는단일한정체성을유지하고통합하는기능을수행하며이를독점한다.그러면서국가는공식기억을체계적으로조작한다.특히전체주의나권위주의국가가역사적사실에대한기억독점강도가훨씬높고,더욱노골적으로공식기억을조작한다.518의경우도마찬가지였다.“518은쿠데타라는정치적위기순간에발생한학살사건”(104쪽)이었기때문에국가는더욱기억조작을전면적으로시행했다.이로인해518은‘김대중세력이극단적사적이익추구를위해벌인폭동’등으로조작되었고,이것이곧국가의공식역사로자리잡아대중에게전달되었다.
이렇게기억조작을시도한전두환등신군부가이끄는국가는어떤국가였나?저자는“광주에서승리를거둔”뒤등장한국가는다분히전체주의국가의전형적형태를띤다고말한다.대표적으로삼청교육대를들수있는데,이는전체주의통제장치중하나인‘수용소정치’와‘법적인격살해’를동시에보여주는사례이다.이렇게수용소정치로전체주의기반을닦은군부의다음행보는‘배제’를합법화하는법제도의정비였다.이들은우선헌법을개정하고,각종악법을양산했다.그리고1981년2월25일전두환은잠실체육관에서대통령으로선출되었다.마침내법적제도적구조물이완성된것이다.전두환의군부권위주의정권은‘안정,안보,발전’을지향하는신군부의이데올로기적정향을오롯이유지하고있었다.주목해야할점은이러한이데올로기지향의대척점에민주주의가놓여있다는사실이다.전두환에게는서구식민주정치와동양식민주정치가구분된다.서구민주정치는“우리의정치풍토에뿌리내릴민주정치”가아닌“모방된민주정치”일뿐이다.이를따르는사람들은국가위기를불러일으키는존재들이고,반드시경계해야할‘절대악’으로상정된다.그이유는대한민국이‘북의위협’이도사리고있는국가여서서구와는다른‘특수’상황에있으며,민주주의는내부의분열과갈등을조장해결국‘국기마저위태롭게’하기때문이다.이는정권에대한어떠한반대도용납하지않는전체주의적사고의발현이다.전두환은더나아가정권반대세력을‘정화’되어야할‘비국민’으로설정하고탄압했다.이역시범죄의결과에대한처벌이아닌범죄를저지를가능성마저도단죄되어야한다는전체주의논리전개와맞닿아있다.
한편제5공화국출범이후국가는지역주의를기정사실화하면서‘망각의정치’를수행하는수순을밟는다.전두환은대통령에취임한이후부터518에대한직접적언급대신‘1026이후의혼란’이란말로대체한다.‘10·26이후의혼란’이란말에는‘518의진실’‘사태의진정한원인’등은없고,국가가조작한‘지역주의폐해와불순분자의준동’,즉‘혼란’만이강조된다.518은그저지역주의와불순분자의배후조종탓에국기가뒤흔들린사건이라는정의만이살아있다.그리고518은호남인의영남인에대한고정관념과피해의식에서비롯된사건으로조작해이를퍼뜨렸다.이때문에518은오랫동안지역주의관점에서벗어나지못했다.즉민주화이후한국정치구조를설명하는주요키워드인지역주의담론이1980년5월광주의현장과이후의담론정치를통해완성되었다는걸알수있다.
학살은왜일어나나?
“반인권범죄의최극단인학살은왜일어날까?”저자는518을‘정치적학살’로규정하면서이질문에답하고있다.이를위해저자는정치적학살이론의주요가설을체계적으로검증하고,세계곳곳에서끊임없이재현되는제노사이드를막기위한제도적·정치사회적노력을점검한다.
우선한사회에이미존재하는갈등을학살의주요원인으로제시하는다원적사회이론에반박한다.다원적사회이론은지속적이고만연한분열로점철된다원적사회에서정치적혹은경제적불평등이종족적·종교적·인종적·사회경제적차별위에중첩될때제노사이드의발생확률이높다고주장한다.하지만5·18은학살이발생한여타국가와는달리민족,인종,경제적지위,종교등의차이가두드러지지않는공간에서일어난사건이었다.그럼에도국가는사건의주된원인으로당시만해도미약하기만했던‘지역주의’를지목했으며,이과정에서조형된지역주의담론이5·18의발생요인을설명하는주요기제로활용되었다.다시말해정치적학살이론의관점에서볼때5·18은극도의사회적분열이지속된사회와는거리가먼균일한모델의국가에서발생한학살사건이며,그과정에서국가에의해고안된‘지역주의’가이후주요한사회균열로부상하게됐다.
저자는518공간에서학살이일어난이유로①정부유형과지배엘리트의이데올로기정향:배제적이데올로기와권위주의,②이전제노사이드와정치적학살의경험을제시한다.①의경우를살펴보면다음과같다.당시전두환과신군부가이끄는정부유형은전체주의적성격을띠었으며,이들은대다수제3세계‘신직업주의적군부독재엘리트’들에게서발견되는보편적인특성인‘안정,안보,발전’이데올로기를고수하고있었다.또권위주의체제의유지를위해국가의안위보다는내부의시위나소요진압에더큰관심을두는정향이유지되었다.5·18은이런반공주의와배제적이데올로기로무장한군부권위주의엘리트들이불특정다수의민간인을희생시킨전형적사례로볼수있다.이처럼그들은광주혹은호남지역민들을‘구별,처형,제거’하며자신의권력을오랫동안유지했다.
②의경우는이승만정부시기와베트남전파병당시있었던민간인학살경험을말한다.한국전쟁,베트남전쟁,그리고5·18의공통점은민간인과공산주의자의구분이시민과폭도의대비로오롯이이전되었다는점이다.국민과비국민을결정짓는잣대로다시한번반공이데올로기가이용된것이다.이과정에서이른바빨갱이에대한학살이정당화되었듯이폭도라명명된시민들에대한학살역시정당화되었다.이전정치적학살의경험이5·18이반인권범죄의각축장으로귀결된가장직접적인요인중하나였던것이다.
“우리는5·18을포함해총3번의정치적학살경험을가졌으며,민주주의국가의시민보다는권위주의국가의국민으로살아온세월이더길었다.바꿔말해타협과협의의사회문화보다는대립과배제,반대세력을제거하는풍토에더익숙하다.이는우리의정치문화에도고스란히반영되어있다.”(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