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선언 : 개혁이냐, 혁명이냐
저자

바비젤리저,파블로J.보즈코브스키,크리스W.앤더슨

미국펜실베이니아대학교아넨버그커뮤니케이션스쿨의석좌교수다.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의회원이며,2021년에는영국학사원의펠로우로선발됐다.언론정보학분야를대표하는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의학회장을지낸바있고,현재는그분야대표학술지중하나인《저널리즘Journalism》의공동편집장직을맡고있다.언론인출신이기도한젤라이저는위기와전쟁시기저널리즘의권위와문화,집단기억,이미지등에관심을가지고연구하고있다.《왜저널리즘은항상제자리걸음이었나?TakingJournalismSeriously》《전쟁보도:전시의저널리즘ReportingWar》(공저)이한국에소개된바있으며,그밖의저서로AboutToDie:HowNewsImagesMovethePublic,RememberingtoForget:HolocaustMemoryThroughtheCamera’sEye등이있다.

목차

추천사
저널리즘의장기혁명을알리는조종(弔鐘)_정준희

서문

1장.저널리즘,이상과현실사이
제도를기반으로한사회질서의한계|저널리즘의환상과맹신|저널리즘과사회사이의접점:엘리트,규범,수용자|소결:저널리즘은소멸할지도모른다

2장.엘리트
엘리트의균열|저널리즘신뢰도의하락|책임감있는엘리트의몰락|책임감있는엘리트의몰락|소결:저널리즘은엘리트의전유물인가?

3장.규범
왜규범이문제인가?|제도와규범의불일치|저널리즘규범은명확하지않다|결함투성이저널리즘규범의세가지욕망|소결:변화가절실히필요하다

4장.수용자
수용자,가정되고당연시되는존재?|하지만여전히불확실한존재|저널리즘은수용자를다시찾을수있을까?|소결:대중은저널리즘에반기를들고있다

5장.개혁이냐,혁명이냐?
개혁노선|혁명노선|더정의로운세상을위한저널리즘

참고문헌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저널리즘이살아남는법,‘혁명이냐,개혁이냐?’

저자들은‘개혁노선’을따른다면저널리즘의제도적근본인자유민주주의에대해더선명한입장을가져야한다고말한다.트럼프처럼형식적인민주주의절차로선출된지도자라고하더라도그가민주주의에위배된행동을한다면그의반자유주의적이고반민주적인행태를즉각비판해야한다는것이다.저널리즘은자유주의적·민주적통치를가장우선시하기때문이다.이노선을따른다면저널리즘이우선시할엘리트는더이상반자유주의적성향의엘리트,자신의이익과집단만을대변하는지식인,고위직엘리트가아닌역사적으로권리를박탈당해온집단의목소리를대변하는이들일테고,따라서뉴스가전하는목소리는확장될수있다.그러므로개혁노선은‘사회정의’를필수규범으로받아들이는저널리즘을추구한다.“사회정의를수용하는저널리즘은역사적으로스스로변화할기회를갖지못한사람들의생활조건을변화시키는정보의공유를궁극적인목표로삼는저널리즘이다.”(138쪽)또한불의와불평등의발생을단순히목격하는데그치기보다는그상황을수정하기위한구체적인방법을모색하는데중점을둔다.이렇게개혁노선의저널리즘은자신을만들어낸자유민주주의의이념과정치체제를더욱강화하고이를개선하는데힘을쓴다.

‘혁명노선’은자유민주주의그자체에의문을제기하며해방적인정치해결책을다채롭게모색하는길이다.부의집중,빈곤문제,생태문제,소수자문제등자유민주주의체제는여러모로한계에봉착했고,이를해결하기위한여러대안들이등장하고있기도하다.저자들은자유민주주의제도자체가저널리즘적상상력을제한해저널리즘을협소한위치에머무르게했다고말한다.그런점에서자유민주주의그너머를상상해보자고제안한다.혁명의길은엘리트가전혀없는저널리즘,이상적규범을거스르고현장에서의쓸모를최우선으로하는저널리즘,모두를위한,하지만특히오랫동안주변부에서뉴스를읽고보고들어온소외된이들을위한저널리즘을지향한다.역사속에서소수의내러티브로치부되어온다수의목소리,관점,경험을저널리즘이빛나게해주는길이다.그렇게되면언론인자신들에게덧씌워져있는자기검열,관행,규범등을벗어던질수있고,인종차별,동성애혐오,성차별,여성혐오,계급주의를포함한각종억압과차별에대한투쟁으로활력을얻는직업적지형을구축할수있다.“만약혁명적인교훈을얻었다면,저널리즘은정치적성향과관계없이모든정치엘리트에반대하고,또저널리즘이배제해온것이무엇이었는지철저히숙고하면서여성,유색인종,소수민족,LGBTQIA등소외되고억압받아온사회집단을포용해야한다고결론지을것이다.”(55쪽)“이러한다양한실천이작동조건으로통합된다면저널리즘제도는자유민주주의의사고방식이선도해온것보다더완전한레퍼토리를만들어갈수있다.”(143쪽)

이두가지길은한국언론에도시사하는바가크다.한국언론이위기에처해있다는사실은모두가알고있다.존폐의기로에서있는한국언론계는이두노선중어느하나를택할수있을것인가?아니면아무것도하지않고이대로주저앉아있을것인가?언론개혁에대한목소리가그어느때보다높은지금,한국언론에는혁명적변화가필요한것은아닐까?

저널리즘과사회사이의접점:엘리트,규범,수용자

“저널리즘은또한무엇이잘못되었는지,어떻게해야달라질수있을지재고해야하는상황에놓이게됐다.물론이재고는언론인들이상황을직시해야만시작될수있다.”(155쪽)

영미권을대표하는언론학자인세저자가지적하는저널리즘의가장큰문제는언론이현실과너무동떨어져있다는점이다.저널리즘이사회와조응하지못하고따로존재한다는것이다.그래서저자들은저널리즘이외부세계와연결되어있는세가지접점,즉엘리트,규범,수용자를다시설정해야한다고말한다.이세접점을오독하고방치한나머지저널리즘이위기에빠졌다는진단이다.“너무늦기전에,그래서우리가알고있는저널리즘이온데간데없이사라지기전에저널리즘이자신을둘러싼세계와더생산적으로연결될수있도록저널리즘이처한상황을직시하고다시상상해야할때다.”(46쪽)

저자들은저널리즘의신뢰가하락한가장큰이유중하나는‘엘리트’시스템에있다고말한다.지금전세계여러국가에서저널리즘은주류엘리트의전유물이되고말았다.엘리트가된기자가엘리트로부터얻은정보를엘리트수용자에게전달할뿐이다.하지만이정보원역할을하고있는엘리트시스템은이미대중의신뢰를잃은상태다.엘리트시스템은오작동하고있고,엘리트시스템에의해지탱되고있던대의민주주의도흔들리고있다.그런데도저널리즘은이엘리트시스템을벗어나려하지않고계속의존하고있다.여기에서배제된것은무엇인지저널리즘은성찰하지못하고있다.이런엘리트시스템에대한의존은여성,유색인종,소수민족,성소수자등억압받아온이들의삶을배제하는결과로나타나기도한다.저자들은저널리즘관행에서엘리트들을떼어내사고할필요가있다고제안한다.“저널리즘하향세의상당부분은엘리트는누구인지,그들은누구를배제하는지,그들은무엇을해야하는지,그들은실제로어떻게움직이는지등엘리트에대한이해가타성에젖은데에서비롯한다.”(55쪽)

“언론인은엘리트시스템의어느부분에귀를기울여야할까?대중의대다수가엘리트시스템의민주주의를불신하는상황에서언론인들은그시스템의민주적잠재력을어떻게향상시킬수있을까?”(57쪽)

정확성,공정성,독립성,객관성등저널리즘이신봉해온‘규범’은또어떤가?안타깝게도규범은현장에서의취재행위와따로놀기일쑤여서유의미한지침이되지못한지오래되었다.다음과같은상황이한예다.기자는“일을최우선시”해야하고,위험을무릅쓰고취재해야한다고주장하는규범은언론노동에대한일종의남성주의적접근법이어서사회적지위가약화된여성의입을막고소외시켰다.‘차별’에대한규범이존재하지만,여전히뉴스룸에는인종주의,성차별,여성혐오,계급편견,외국인혐오,동성애혐오등이난무하고,이것이기사로까지이어지고있다.이처럼시대에뒤떨어졌을뿐만아니라현장에서의취재행위와따로놀기일쑤인규범에집착하는바람에오늘날언론인들은“역사책이나기념회고록”에어울리는존재가됐다는게저자들의설명이다.“규범에대한집착은언론인을포함한그누구에게도도움이되지않는다.소모적이고불완전하고엘리트적이며시대착오적인열망에사로잡힘으로써언론인들은자신이얼마나규범적으로수정되어야만하는존재인지를드러내고있다.그들의규범성은현장의조건으로부터너무나도멀리떨어져있다.”(101쪽)

마지막으로이들이처리한정보의최종적도달지로서의‘수용자’는이미저널리즘으로부터등을돌렸다.기성저널리즘은독자가그냥당연히따라붙는존재인것으로‘가정’했다.엘리트로부터얻은정보를,엘리트인자신들이선별하여제시하면,대중독자들이그걸그대로수용할거라고전제하고움직였다.하지만그건단지내용물의생산과전달을담당하는매체가소수에의해과점될수밖에없었던시대의산물일뿐이다.딱히별다른대안을갖고있지못했던수용자들이그런매체를우회할통로와더흥미로운즐길거리를갖게되자일말의주저함도없이떠났다.“한때기자들이제멋대로판단하고당연시했던수용자.그들은이제알려진존재이자불확실한존재가되었다.그들은이제더는언론사의막대한이익을보장하는기반이아니다.사회적상상속에서중심적위치를차지하지도않고정치극의주연도아니다.대중은저널리즘에반기를들고있다.”(128쪽)

저자들은이세가지접점을다시살피고재규정해야저널리즘이사회와다시연결될수있다고말한다.개혁노선을따르려면사회정의의증진을위해세접점을재구성해야한다고주장하고,혁명노선을따르려면모든것에이의를제기하고이세접점을급진적변화를위해어떻게활용할수있을지고민해야한다고말한다.그리고궁극적으로는언론인들이모두를위해,특히소외된공동체를위해더정의로운세상을만드는데동참해야한다고결론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