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시점숏에는무엇이있나요?”
영화가내준수수께끼에답하는
스물한가지방식
영화감독이자싱어터라이터로활동중인저자신승은의첫영화에세이가출간됐다.‘교차’와‘연대’라는두키워드아래30여편의영화를골라촘촘히보고읽어낸다.주로장애인,여성,성소수자,어린이,노동자등사회적소수자들의삶을밀도있게담아내거나,정치,환경,자본주의산업,예술등우리시대의가장첨예한문제와씨름하는영화들을다뤘다.특히국내외의독립영화에큰비중을두며영화에대한넓고깊은시선을발휘한다.
저자는그동안관성적으로배제되어온소수자들의서사를영화가어떻게포착해내고또그에감응하는지,영화내부의문법을세밀히파고드는방식으로보여준다.그의글들은우리관객으로하여금그영화들을단순히관조하는데머무르지않도록한다.무엇보다‘앵글은태도를담는다’는말속에는영화와관계맺는저자의태도와방식이담겨있다.그는영화가‘어떤’메시지를전하느냐보다,‘어떻게’,즉어떤과정과연출을통해메시지를전하느냐에더관심을둔다.또한영화가영화만의고유한문법으로우리가살고있는불평등의세계를깨나가는작업이라는것,그리고자신역시그과정에긴밀히연루되어있다는것을드러낸다.
저자는영화가지닌게너무많기에,영화를더잘보고싶어서글을쓰기시작했다고도털어놓는다.그런점에서이책은영화가던지는알쏭달쏭한수수께끼에저자가스물한가지방식으로성실히답해보려고노력한시도라고할수있다.책곳곳에는영화에대한애정과영화와함께해온그간의시간이눅진히담겨있다.그런부분들을마주하다보면,우리역시영화와얽힌한두가지추억을불러내며저마다의이야기를떠올릴수밖에없을것이다.
동정과연민,차별과혐오의앵글을넘어
『극장앞에서만나』는영화에얼마나다양한주인공이등장하는지증명해주는책이라고할수있다.중년여성배우(〈물물교환〉,〈공명선거〉,〈나의새라씨〉,〈기대주〉,여성노동자(〈성냥공장소녀〉),퀴어어린이(〈톰보이〉),장애인(〈크립캠프〉),정신질환자(〈스탠바이,웬디〉)등그간조연에머물거나심지어영화에출연하기도어려웠던존재들을전면에내세운영화들이대거소개되기때문이다.심지어주인공이아예없기도하고아주많기도한영화(〈개같은날의오후〉)도있다.
저자에의해한곳에모인이영화들은제역할을톡톡히해낸다.첫째익숙하게여겨온사회의문법에물음을던지고,우리의생각에균열을낸다.가령건강을‘정상’으로아픔을‘비정상’으로구분짓는세계에탈시설을주장하며거리로투쟁을나선장애인들의모습을보여주기도하고(〈크립캠프〉),여성에게엄마,주부,아내등의특정역할을기대하는시선에맞서축구하는여성,누군가를웃기는여성이전면에나오는장면들도만날수있다.
둘째,동정과연민의자리에공감을내어준다.특히소심함이나나약함같이‘인싸’답지않은태도나감정을비하하거나불쌍히여기기보다공감하는영화들에주목한다.〈혼자사는사람들〉의진아를통해‘홀로’와‘같이’의의미를짚어내면서도“구태여누군가와함께할필요는없다.그저그감각을잃지만않으면된다”(191쪽)고덧붙인다거나,자기만의동굴에서살던‘아멜리’(〈아멜리아〉)와‘소림’(〈(BLANK)〉을힘껏응원하기도한다.신승은이들려주는영화이야기를듣다보면우리가겪는불안도,우울도,고립도모두안온하게용납받을수있을것만같다.
이성애자이자비장애인남성이주인공으로등장하는수많은코미디영화를볼때소수자들은어디에이입해야할까.그냥관객석에앉아영원히웃기만해야할까.그것은진정한웃음일까.이렇듯웃음에서도누군가는배제된다.그런데여기서멜리사매카시가나타나면어떨까.매카시의영화를중심으로여성이주인공으로등장하는코미디영화들을소개하고자한다.지금이야말로진정한웃음이필요한시간이기때문이다.(125쪽)
카메라가비추는것을우리가볼때
영화를다른예술과구분짓는데는‘카메라’라는도구가주요하게작용한다.어떤렌즈를써서어느높이위치시킨후얼마만큼의거리를두고찍는지,그리고촬영본의컷들을어떻게연결하고어떤사운드를중간중간삽입해편집하느냐에따라영화의완성도뿐아니라메시지가달라진다.좀더정확히말하면감독이카메라를비추는방식자체가곧영화라고할수있다.
〈책을열며〉에밝혔듯이이번책에서저자는영화적인기법을유독세심하게따라가본다.관객인우리가무심히따라갔던카메라가어떤효과를낼수있는지일러주기도하고(“오복이겪어나가는잔혹한여정을카메라는묵묵히담는다.고정된앵글로,롱테이크로,최소한의컷으로”(49쪽)),카메라의촬영기법이어떻게곧전달하려는내용이될수있는지설명해주기도한다(“두영화(〈우리집〉,〈나만없는집〉속카메라는꿋꿋이아이레벨로가족구성원이되기위한아이들의고군분투를,아이의질긴고독을응시한다”(80쪽)).
그러면서도카메라의욕망에급급한나머지과도한노출과폭력장면에날카로운비판을서슴치않는다.가령〈개같은날의오후〉는“작은대사하나하나가전부주옥”(100쪽)같은영화지만,“영화초중반에나오는불필요한노출신과베드신,그리고트랜스여성인유미를배제하는장면에서등장하는과한폭력신은이영화가지향하는바에걸맞지않는방식이자실패한신이라고생각한다”(100쪽)고말이다.실제사람이등장해서연기하고그것이그대로카메라에담기는영화에서는그만의윤리가지켜져야한다는것,무엇보다는카메라가무엇을찍고어떻게보여줄지에대한진지한고민이필요하다고강조한다.
‘사라지는’영화관,그리고영화를‘줍는’사람들
『극장앞에서만나』에실린첫번째글은각종산업에밀려지금은사라진,예술영화관스폰지하우스를불러내는것에서시작한다.어느공간이든마찬가지지만독립예술영화관이문을닫는일은단순한소실에그치지않는다.그곳에서켜켜이추억을쌓아갔던이들에게는더이상찾아갈곳을잃는일이며무엇보다배우,감독뿐아니라영화가나오기까지애쓰는모든관계자가관객을만나고소통할수있는기회를줄이는일이기때문이다.그렇다면신승은이사라진,사라져가는것들에의미를부여하고독자들에게상기시키려시도하는작업은본문에소개된아녜스바르다감독의〈이삭줍는사람들과나〉와유사해보인다.바르다는이영화에서우연히찍힌,그래서제역할이분명치않은장면들을걷어내지않고그대로삽입한다.쓸모,이윤,세련됨을추구하는사회에썩걸맞지않는이방식은작금의자본주의사회에서우리는무엇을중요하게여기고있는지,혹시놓치고있는가치는없는지질문한다.
영화는한두사람의공과노력만으로가능한예술이아니다.그안에는영화를완성하기위해소리없이제역할을해내는,영화의작은요소들까지도놓치지않고‘줍는’사람들이존재한다.그렇다면이책은영화가점점산업으로만남아버리는지금이시대에영화를향해보내는응원이자,영화의세상에나오기까지애쓰는모든이들이소외받지않기를바라는저자의작은소망이아닐까.
갈수록극장에가는일이줄고,극장도줄며,그러면서극장앞에서만나는일도줄어든다.그러나우리가만나자는약속을한다면,언젠가영화가끝난후세상의빛을보러나올때다시만나지않을까.내가길을잃은듯한상황속에서진주머리방을만난것처럼말이다.그때까지기업과정책이독립영화와예술영화를수익창출의대상으로만바라보지않기를바랄뿐이다.(23~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