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는 사랑 :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

망설이는 사랑 :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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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안희제

저자:안희제
문화인류학을공부하는작가이자칼럼니스트.가벼운공감보다는정확한통감이더나은관계와사회를만드는길이라고,더많은사람과더많은이야기를깊이느낄때비로소더나은‘우리’가만들어진다고믿는다.서로의안팎을조심스럽게오가는일을잘하고싶다.《비마이너》,《시사IN》,《홈리스뉴스》,《기획회의》등에글을썼고,자신의아픈몸과주변적위치에서대중문화를더나은논의로이어가기위해무엇이필요한지고민한다.책《난치의상상력》,《식물의시간》을썼으며,함께쓴책으로는《아픈몸,무대에서다》,《우리는이어져있다》,《몸이말이될때》등이있다.대중문화에대해쓴글로는〈비장애인의,비장애인을위한,비장애인에의한‘접근성’?:드라마〈스타트업〉속비장애중심적상상력〉,〈영원한수수께끼라는공론장의가능성:케이팝세계관콘텐츠를중심으로〉외다수가있다.제57회백상예술대상젊은연극상후보에오른시민연극〈아파도미안하지않습니다〉(2020)에서시민배우로무대에섰다.다큐멘터리〈귀귀퀴퀴〉(2022)에서기획·번역·접근성을담당했고,이를바탕으로영상접근성작업에관해《웹진이음》에글을썼다.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주최·주관하는‘NoLimitsinSeoul2022노리미츠인서울’의전시〈이음으로가는길〉에참여했다.매혹이무엇을가능하게하는지에관심을갖고있으며,팬이라는궤도에서의경험이더나은세상을위한질문의장소가될수있다고믿는다.

목차

들어가며어떤사랑도경멸하지않기로마음먹었다4
프롤로그이것은팬덤에대한책이아니다15

1부|논란의네트워크

1장논란이휩쓸고지나간자리에서31
1.선택이아닌팬심과덕질31
2.논란이라는모호한범주38
3.팬덤의경험41

2장캔슬의분해와배신감이라는정동50
1.캔슬:회수,감찰,퇴출50
2.잉여문화와배신감60
3.감응하는대중의공론장66
4.‘샤덴프로이데’라는감응74

3장“너같은아이들이사랑받는직업으로성공하면안되지”85
1.아이돌처형대와사랑의자격론87
2.논쟁없는사회를만들고보호하는수배의기술122
3.논란과음모론적구조132

2부|매혹과윤리

4장“진짜피해자면,아니야,도로삼킬게요”145
1.“그룹자체에대한애정으로”:팬덤내부의캔슬과추억이라는동력146
2.“지들이뭘안다고!”:사랑에필요한진실의근사치163
3.“○○를좋아하고말고는이제문제가아닌것같아”:팬심과가치관의충돌202

5장“내인생론이결국○○○이형성한거라는거지”216
1.“좋아하기위해서되게치열해진다”:사회적윤리로확장되는팬심216
2.“이게진짜쉽지않다”:길티플레저라는윤리적태도227

6장“자꾸판단을보류하고싶어져요”250
1.“뭐?이렇게예쁘다고?”:허구도낭만도아닌매혹과사랑250
2.“제가좋아하니까그런것같아요”:매혹과논란이촉발하는감응267
3.“결론을정해놓지않고계속돌려보냈으니까”:망설임이라는정지비행280

나가며논란안에서재구성되는것305
감사의말313
미주318
참고문헌331

출판사 서평

논란이휩쓸고지나간자리에남은이들:팬그리고팬심에대하여

흔히팬심과덕질은어떤개인의자율적선택에따른행위로이해된다.그러나이책은팬심이라는마음을바라거나선택하지않아도어느날갑자기찾아오는사건혹은상황으로이해한다.이러한해석은팬이라는정체성을소비행위나팬덤이라는집단에대한강한소속감에근거해규정짓지않으려는시도이기도하다.같은맥락에서덕질이란팬심이라는상황에내던져진이들이자신에게찾아온당혹스러운행복을다루기위해필연적으로선택할수밖에없는실천에가까우며,궁극적으로자신의삶자체를새롭게조율하는과정이기도하다.이처럼저자는팬에대한여느혐오어린시선을답습하며팬을비합리적이고비이성적인(소비)행위자로낙인찍지않고자하며,따라서이들을둘러싼여러사회적영향들에도주의를기울인다.

그런점에서논란은팬심과덕질의사회적이고도윤리적인측면이단적으로드러나는계기가된다.‘최애멤버’의논란은팬들에게죄책감을안김으로써덕질을윤리적인고민을수반하는행위로변모시킨다.“자신이사랑하는아티스트가자신이알던것과전혀다른모습을드러낼때”,“특히폭력적인언행에대한의혹이제기될때”,논란은거대한사건이되며덕질의근간이되는팬심자체를뒤흔들게된다.

그렇다면팬들은논란에어떻게대응할까?다양한대응방식이있을수있겠지만,이책이관심을두는이들은판단을보류하거나계속해서수정하고갱신함으로써쉬이떠나지않고그자리에머무르는팬이다.신속한판단을거쳐아티스트의곁을떠나는이들과다르게그자리에남아헤매고망설이는팬들.논란에휩싸인‘클린’하지못한아티스트의팬을자임한다는건곧도덕적·윤리적오염공유하는일이다.논란은아티스트,특히여성아티스트를(유죄·무죄여부를가리지않고)빠르게매장시킨다.“이때관심경제바깥으로밀려난‘철지난’이들을계속좋아하는일은유행에뒤처지는일이된다.논란은유행이지만,논란에휩싸인아티스트의팬이되는것은유행에뒤처지는일이다.”

논란을생산하는네트워크:알고리즘,처형대,사이버렉카

논란에대응하는팬에주목하는것만큼중요한작업이또있다.바로‘논란’이라는명칭/범주자체에대해되짚어보는일이다.아이돌산업에서는갑질,인성,역사/인권의식,성추행,학교폭력,뒷광고,소아성애옹호등내용상하나로묶이기어려운사안들이전부논란으로통칭된다.서로다른이런사건들을‘논란’이라는성긴범주안에포괄할수있는근거는과연무엇일까?

그해답을우리는다름아닌논란을대하는사람들의태도와논란을증폭시키는네트워크에서찾을수있다.이책인터뷰에응한인터뷰이중한명인아메(가명)는연예계,특히아이돌산업에서발생하는논란이“종류를막론하고그논란의당사자들을거의매장하는방식으로,사건자체에집중하기보다당사자들의인성과노력을깎아내리거나성희롱을일삼는방식으로”전개된다는점을지적했다.이처럼당사자를비난하는프레임속에서논란이된행동자체와사건의진실은관심의영역에서사라지게된다.

그렇다면아이돌논란은어떻게생산될까?아이돌논란은대개‘인성논란’으로수렴되는데,아이돌의‘필수덕목’으로여겨지는인성과도덕성이야말로아이돌을논란에취약한존재로만든다.2010년께힙합그룹에픽하이의멤버타블로/이선웅에게제기되기시작한학력위조혐의와이음모론을중심으로꾸려진온라인커뮤니티‘타진요’는여러측면에서아이돌논란과궤를같이한다.‘네티즌수사대’와‘신상털기’로대표되는온라인행동주의,배신감에뿌리를둔‘너도추락시키겠다’는정서(일종의정서적평등주의)등은온라인상에서확산되는각종논란의핵심요소로보인다.그러나《망설이는사랑》은타진요사건때와다른현재의특수한요건에주목한다.대중을계산하고상상하는알고리즘과그알고리즘이퍼뜨리는‘처형대’가바로그것이다.처형대의문법은각종카페나커뮤니티같은특정구심점없이도논란을삽시간에확산시킨다는데있다.

그리고그중심에는유튜브를기반으로활동하는사이버렉카가있다.어떤채널을사이버렉카로규정할수있는지,단순한‘이슈채널’과사이버렉카채널을구분하는기준은무엇인지등의문제가있긴하지만,“조회수생산용혐오콘텐츠물을뉴스인것과같이포장한이슈콘텐츠를익명으로작성후사건이발생하면채널을삭제하거나영상을내리는등의행위를반복”한다는것이사이버렉카채널에대한통상의설명이다.그중에서도아이돌을표적삼는사이버렉카들은아이돌아티스트의사생활등무대뒤의‘진짜모습’을알려주겠다며유료회원전용콘텐츠를통해팬들의호기심과욕망을자극한다.호기심과욕망에서비롯되는특정행위들은논란에적극적으로자금을대주며폭력적인네트워크와접속한다.

‘너같은아이들이사랑받으면안되지’:처형대를작동시키는‘도덕주의’와‘사랑의자격론’

더욱더의미심장한것은사이버렉카가아이돌산업이성공하는지점에서이익을취한다는사실이다.팬중에서는사이버렉카를구독하지않는이가더많겠지만,어떤이에게사이버렉카구독은덕질의연장선상에있는행위일수도있다.물론단순히어떤영상의조회수와그조회수가누구에게이득을가져다주는지를기준으로팬과(팬이아닌)대중을가르기란어렵다.오히려중요한것은관심의‘양’이아닌‘질적측면’이다.같은영상을본다하더라도사람들들마다입장과감정이제각기다르기때문이다.팬들의댓글에서불안이나좌절,혹은분노와같은감정이주로드러나는것과달리,팬이아닌이들의댓글은옳고그름,즉도덕의문제에초점을맞춘다.팬과대중의차이는해당영상/콘텐츠를보는이유,방식,보면서느끼는감정에있다.

즉아이돌사이버렉카는아이돌사이버렉카는가십을즐기는대중,자기최애의모든것을알고싶은불안한팬들,유튜브라는영상중심플랫폼,관심경제가결합해작동하는하나의네트워크라할수있다.이들은전체공개용콘텐츠와회원전용콘텐츠를분화해대중과팬들의관심을모두얻어내며관심경제안에서수익경로를안정적으로다원화한다.여기서(아이돌)처형대란특정아이돌아티스트를비난하도록‘판을깔아주는’영상을말하며,주로비난조의제목과그에상응하는아이돌의영상을배치하거나해당아이돌의논란을요약및정리하는형식을띤다.

사이버렉카에의해세워지는처형대는꾸준하고지속적인관심을얻는다.그렇다면처형대가계속해서만들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처형대가성행하는데는대중의‘집단적도덕주의’라는배경이존재한다.결국처형대는집단적도덕주의가발현될수있는토양인셈이다.공적담론안에서자신의도덕적자질을과시함으로써인정받고자하는행동패턴은온라인공론장에서흔히발견된다.이는온라인공론장에서자주나타나는‘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의한가지사례로도거론될수있다.그랜드스탠더는각종논란안에서자신을‘대중’이라는이름의‘옳은편’으로규정함으로써타인들의인정을받고자하며,그런인정을획득하기위해논란속팬들과아티스트에게과도한비난을쏟아낸다.

이때공론장을지배하는것은감정과믿음이지,이성이아니다.중요한것은실제로무엇이이성적인판단인지보다‘도덕적인것’에대한믿음과그믿음에따라행동함으로써느끼는감정,그리고그과정에서얻게되는관심이다.여기서도덕적인것은‘행복할자격’,‘사랑받을자격’이있다고대중에의해판단되고상상되는것을가리킨다.이렇게얻는관심은다시금그감정과믿음을강화한다.관심과감정혹은관심과믿음이서로를강화하며증폭되는과정은그자체로도덕혹은‘도덕적인것’에대한특정한형태의상상,이를테면‘정의구현’으로서의사이버불링을촉진한다.

특히아이돌아티스트는무대위에서멋진모습을보이는것은물론훌륭한인성까지갖추고,무대뒤일상의모습까지철저히상품화해야하는여건에놓여있다.‘무대위’모습과‘무대뒤’모습의차이(‘갭’,‘온도차’)를통해인격혹은인성까지하나의매력상품으로구성해내야하는것이다.이때문에아이돌아티스트의논란은학교폭력이든,갑질이든,성폭력이든,심지어는실력의문제마저모조리‘인성논란’으로치환된다.사실인성과도덕성은단순한고발만으로도훼손되기쉬운가치로,아티스트는인성과관련한논란이생길때비난받기쉬운위치에놓인다.더불어이들은언제나밝은모습을유지해야하는등의감정노동을요구받기도한다.

‘대중’은어떻게만들어지는가?:수배문화와비난의기술

사랑의자격론이아티스트에대한여론에서드러나는어떤태도와연관된다면,수배의기술은그태도가온라인에서구체적으로실천되는양상을포착할수있는단서가된다.사랑의자격론은‘수배문화’와‘비난의기술’이라는두실천의결합을통해실현된다.가출청소년의폭력하위문화에서비롯된언어인수배문화는“세상의지배적인질서에서자신을규정할만한공간을박탈당한이들”이폭력으로힘과의미,그리고인정을추구하는과정으로,“자신들이어떠한것을판단하고정죄하는권위를경험하고확인하는장”이된다.

수배문화는아이돌논란을둘러싼장안에서‘좌표찍기’의방식으로재구성된다.쯔양이나한혜연과같이유튜브뒷광고논란에연루된이들에대한캔슬컬처cancelculture와자작곡<제제>와드라마<나의아저씨>를두고발생한아이유/이지은논란의흐름은연예인,특히젊은여성연예인이즐거움을주는동시에괘씸한양가적존재가되어잉여문화의비난대상이되는과정을선명히보여준다.잉여들이그런식의비난을가하는이유는지금의경쟁체제에서자신을패배자로규정하기때문이며,바로그점에서비난은수배와유사한구조를띤다.특히학교폭력논란에서수배와비난은이들이자신이학교폭력사건의2차가해자가아님을표명해스스로가사회의도덕을얼마나잘체화하고있는지뽐냄으로써도덕적으로인정받고자수행하는일종의그랜드스탠딩이기도하다.

이때좌표를찍는이들은자신을당연하게‘대중’이라여기는이들과대중의비난을피해‘정상적인팬’을자임하는팬들이다.이들은망설이고머뭇거리며조금이라도다른진실을찾아보려는팬들을찾아내‘○○시녀’,‘무지성팬’이라는‘좌표를찍는다’.이를테면걸그룹여자아이들멤버였던수진/서수진의학교폭력논란에서그에대한판단을유보하는팬들이나그에대한폭로가거짓인이유를찾는팬들은‘수진시녀’라는멸칭,나아가그를지지하는팬들이사용하는트위터해시태그(‘#수진아먹었다’)는그자체로팬들을찾아내비난하는좌표가되었다.이렇듯아이돌논란안에서아티스트와팬들이공유하던해시태그는일종의수배전단지로변모하게되고,수배의내용에동의하는사람들은해당해시태그나링크로찾아가집단린치를가하기도한다.

여기서저자는당연하게여겨지는‘대중’이라는범주/언어에대해곱씹어볼필요가있다고제안한다.비난이사회를만들고보호하는도구가되는시대,즉강력한‘공공의적’을만들어그들을비난하는것이공론장을개선할수있는방안이라는믿음이성행하는시대에비난의기술은그자체로상이한개인들을대중이라는단일범주로구성해내는경로가된다.

“비난은자기스스로대중이라고규정할수있는감각과동시에자신이공적영역에참여하고있다는환상을만들어낸다.시민들은국가에의해정의된‘건강한사회’와상상된공론장을보호하기위해대중이됨으로써,마치대중이라는것이이미존재하기라도하는것처럼행동한다.이로써탄생하는것은정화된purified공론장이며,여기서비난은개인이자신혹은타인을환영의phantasmal대중으로구성해내는직접적인경로가된다.”

망설임이라는윤리적분투:팬심과사랑의정치적가능성

이제다시,논란이휩쓸고지나간자리에쓸쓸히남게된팬들의이야기로돌아가보자.《망설이는사랑》은대부분의이들이떠난빈자리에남은이팬들의존재로시작하고,또끝을맺는다.좀더구체적으로말하자면,이책은논란의진위가정확히판명되지않아서,그러니까자신이좋아하는아티스트가사건의가해자인지아닌지알수없어떠날수조차없는팬들의마음을헤아려보는데서출발한다.그런맥락에서이책은결코‘팬덤’에대한책이아니다.단일한정체성과이해관계를공유하고있다고상정되는집합체인팬덤으로미처다흡수되거나포괄될수없는개별팬들의치열한윤리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