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유교걸 (어느 페미니스트의 동양 고전 덕질기 | 반양장)

어쩌다 유교걸 (어느 페미니스트의 동양 고전 덕질기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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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쩌다 유교에 빠져버린 페미니스트의 동양 고전 덕질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동양철학이 ‘최애’인 외로운 덕후의 사연

나이는 서른인데,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조금은 곤란한 처지다. 상대방은 학생이냐고 묻곤 하는데, 대학이나 대학원에 속한 것은 아니니 설명이 길어진다. 학생은 학생인데 대학에서 공부하진 않는다고 덧붙여야 한다. 그럼 뭘 공부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약간 주저하며 “철학, 유교,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그런 걸” 공부한다고 설명한다.
철학, 그중에서도 동양철학, 그중에서도 유교란다. 하필이면 삶의 ‘최애’가 영 요새 트렌드에 맞지를 않는다(철학이 요즘 시대에 인기가 없다고는 하지만 인문학에도 ‘힙함’은 있게 마련인데 동양철학에서 그런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자신에게 동양 고전 공부를 권했던 선생님도 공부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나니 ‘전공’을 바꿔보면 어떨지 권했다. 썩 돈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세상을 진보시켜 나은 곳으로 만들 것 같지도 않고(다른 철학도 아니고 동양철학에, 유교란다!), ‘간지’나는 공부로 보이지도 않는다(인문학 공부라는 게 썩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는 건 아니지만, 서양 철학자들의 흑백 사진을 넣은 스터디 홍보 이미지와 동양철학을 떠올렸을 때의 이미지를 한번 대조해보라).
심지어 저자는 공교육에 불만을 품고 대안학교로 진학한 후, 진보적 학풍의 대학을 다니다가 그마저도 마뜩잖아 그만둔 20대, 여성, 페미니스트다. 그런 이가 유교에 빠졌다. 저자는 약간의 망설임을 섞어, 하지만 분명히 선언한다. 자신은 ‘유교걸’이라고 말이다.

“나는 ‘유교걸’이다. 보수적인 여자가 아니라 유교를 공부하는 여자, 노브라로 앞가슴이 훤히 트인 티셔츠를 입고 《논어》를 들고 다니는 여자, 또래 친구들이 스토킹 범죄로 스러져가는 걸 보고 분노하면서 음양을 공부하는 여자, 고리타분한 건 딱 질색이라면서 고전 텍스트를 읽는 여자,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예(禮)에 대해 말하는 여자다.”

이 사람, 어쩌다 유교에 빠져버린 걸까? 이 책은 10년간 유교와, 동양 고전과, 동양철학과 깊이 사랑에 빠진 페미니스트 유교 ‘덕후’의 ‘영업 글’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이유가 너무 많이 필요했던 외로운 덕질의 역사이기도 하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분명한 ‘최애(=동양 고전, 동양철학, 유교)’의 매력을 구구절절 읊는다. 이리 깨지고 저리 구르며 해온 이 공부가 나를 관통하며 내 삶의 곳곳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그것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자신의 흑역사와 밑바닥을 다 까면서 고백한다. 그만큼 고생스러웠지만 벅차고 진한 경험이었고, 지금도 진행 중인 사랑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걸 모르다니. 그래서 말하고 싶다. 진탕 부딪히며 더듬어온, 동양 고전을 공부하면서 얻은 배움이 무엇이었는지를. 우리의 삶과 관계를,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곳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단초가 여기에도 있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같이 한번 빠져보면 좋겠다고 말이다.
저자

김고은

공부하는인터뷰어(@goeunk1m)이다.인문학공동체〈문탁네트워크〉에서11년째공부중이다.공동체에서동양고전을공부하며일상에서사람들에게배운다는게뭔지알게됐다.거기에우리가나눠야하는무언가가,우리를연결시켜줄무언가가있다고믿는다.『다른이십대의탄생』(2019)을함께썼고『낭송사자소학』(2018)을함께풀어읽었다.

목차

들어가며:“학생이세요?”

1부어쩌다유교걸
(페미니스트)유교걸의탄생
쓸고닦고환대하기
고대의여성선생님
스탠드업코미디언이되다
물들이고물들어가는

2부혼자가될수없었던나날
고립되지않는다정한인간
의지적인간의의지하는글쓰기
DailyCheckList
프로자기계발러공자
간염과수영에게혼쭐나다

3부리추얼대신의례
그래도여전히좋아해
친구들이아프다
동물들의생존비결
108번의댄스
눈치주는비건지향인

나가며:학생입니다

출판사 서평

페미니스트고요,유교걸입니다

(대부분의‘덕통사고’가그런것처럼)그가페미니스트가된것도,유교걸이된것도실은얼결에벌어진우연에가까운사고였다.대학에입학한후첫수강신청을하는데,한선배로부터반드시‘확보’해야한다는수업이있다기에인생첫티케팅을달려성공했는데뭔가가좀이상하다.수강신청을하고난후에봤더니남은자리가많았다.소수의두터운팬층이있던페미니즘입문수업이었다.하지만그수업은대학에서배운최고의수업이었고,거기에서페미니즘‘세례’를받으며세상을새롭게보기시작했다.급발진의시기도물론거쳤다(잘만나고있던애인에게왜우리는독점적연애를해야하는지따져묻고,인문학을공부하며동료들을만들어가고있던엄마에게왜엄마는엄마로만사느냐고따져묻곤했다).하지만이세계는물론자신역시가부장적문화에깊이물들었음을깨달으며과거와의단절을시도하며,유교같은데진절머리를내는페미니스트가되었다.
한편몇몇수업말고는자신의학구열을만족시킬수업이대학내에거의없다고(성급하고도자신만만하게)생각하며대학을그만두기에이른저자는그당시발을걸치고있던인문학공동체문탁네트워크에서본격적으로공부를시작하겠다고다짐한다.그런데하필당시문탁네트워크에서세를얻고있던분야가마침동양고전공부였다.얼결에코가꿰이기는이쪽도마찬가지였던셈이다.
페미니즘이즉각적으로삶에파장을일으킨반면,동양고전공부가삶에영향력을발휘하기까지는더많은시간이필요했다.페미니스트자아와유교걸자아가병존하는데까지도몇년의시간,수많은시행착오가필요했다.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그러니까부부사이에는구별이있어야하고어른과아이사이에는차례가있어야한다는‘가부장적꼰대철학’(으로들리는것)을페미니스트자아는어떻게받아들여야하느냔말이다.여러여성의이야기를담은《열녀전》이그열녀문(烈女門)의열녀이야기인줄알고(저자는이름마저우리말인사람으로,처음한문공부를시작할무렵한문은커녕한자조차또래보다모르는처지였다)공부를하기도전에급발진할뻔했던흑역사(‘아,열녀라니!내가드디어유교의볼장못볼장을다보게됐구나!’_41쪽)도고백한다.아직도저자는유교와페미니즘이어떻게함께손잡고살수있을지답을찾아가는여정중에있다.이책이그에대한명징한답을내놓고자하는시도도아니다.다만페미니즘도,유교도‘내가사회와어떻게만나고있는지’를살피며그의정체성안으로녹아들었다는것,페미니스트이면서진심으로유교철학과동양철학을사랑할수있다는것은알수있다.
그렇다면20대의전부를,10여년의시간동안동서고금을오가는공부를하면서도자신의본진은‘동양철학’‘동양고전’‘유교’를둘수있었던이유는무엇일까.서양사나서양철학,현대미학을공부하는인문학공동체의다른또래친구들에게는건네지지않는질문과시선을받으면서도“저는동양고전이좋아요”라며덕심을버릴수없었던이유는무엇일까.아무래도길을내기가어려워보이는,이고리타분하기짝이없어뵈는철학을끈덕지게공부하는마음이란무엇일까.


공부,삶,관계

대학을그만두고인문학공동체에서저자는공동체공간을쓸고닦고,공간을방문하는이들을응대하는100일간의수행을한다.글쓰기나공부능력을단한번도의심받아본적없이살아왔고,대학을다닐때까지어떤학교에서든마음을먹으면성적은아주잘나왔다.그런데인문학공동체에서는그렇게글쓰고공부해서는(=말과글로적당한논리를만들어그럴싸해보이게만드는재주는있으나한사람과시대를마음으로이해하고살피지않는태도로는)달라지는게없을것이라고계속혼이났다.나중엔오기가생겨이곳에서공부라는걸제대로해보겠다고마음을냈고,그러고시작한것이쓸고닦고환대하는공부,고대동양에서공부하는이들이내딛는첫걸음인《소학》에나오는“쇄소응대(灑掃應對)”의공부였다.
물뿌리고청소하며,남의말에응대함이예절과맞아야한다는저말을저자는“청소기돌리고물걸레질하며,내일상의공간에사람들이찾아왔을때그들을맞이하는것”이라고풀어낸다.청소는일상을소홀하지않게만들어주는공부이자,자신이어떤존재들과함께일상을살아가고있는지를깨우는공부였으며,응대,즉‘환대’는나를드러내는게아니라타자를만나는준비라는점에서가장기본의공부였다.
저자에게동양고전과그철학은삶과공부의관계,함께살아가는존재들과의관계,우리가살아내는이현장속에서꼬인매듭을풀어내는오래되고새로운가르침이었다.그리고저자에게이배움은그저텍스트안에존재하는뜬구름이아니라저100일수행의“쇄소응대”가그러했듯함께엉겨지냈던관계와존재들과의시간속에서구체적인면면들로나타난다.
초등학생대상의한문교실에선생으로서며,자신을선생으로존중하지않는초등학생학생들과의관계를푸는실마리를자크랑시에르의《무지한스승》에서찾아간다.저자는지적권위를내세우지않고도스승이되는경험을통해선생과학생의다른역할이있다는것을깨닫고,이깨달음을페미니스트자아로는온전히납득할수없었던“부부유별장유유서”와같은문장에대한이해로연결한다.관계속에내가놓여있다는것,그러니까내옆에있는친구와함께사는법을초등학생들과공부하기위한유교의문장을찾아낸다.“근묵자흑근주자적(近墨者黑近朱者赤)”,그러니까먹을가까이하는자는검어지고,붉은물감을가까이하는자는붉어진다와같은같은유명한문장을친구를골라사귀라는메시지가아니라서로를물들이는관계로풀어낸다.이질적존재들이어떻게상호의존하며살아갈수있는지그구체적인방법,가령친구에게꼰대가되지않는법도《논어》에서발견한다(“친구에게아는척하지말고,잘난척하지말고,온진심으로상대를위해서생각하고말하라”).그리고이문장들을함께공부한초등학생제자가친구와함께하는법을배워변화하는어떤순간을목도하기도한다.
인문학공동체에서만난또래친구들과‘길드다’라는인문학사업체를운영하며,그친구들을지독하게미워하고너무좋아하느라힘이들때도동양고전의가르침으로돌아갔다.《논어》에등장하는공자의제자인증자의체크리스트를가져오는식이다.배운것을제대로익혔는지(=공부한것으로친구를탓하기전에일단은참는다),친구와사귈때신의가있었는지(=친구가미워지고싫어지는시간도견디고,상대의의중을이해하기위해서도내의견을전달하고이해시키기위해서도애쓰는성실함을갖기),다른사람을위해일을도모할때성의를다했는지(남이잘하고있는지들여다볼시간에내일을묵묵히해낸다)를살펴봤다.또사업체를운영하며개인의욕망과공동체의가치가충돌한다고느꼈던상황에서는,자기진실성을말하는‘충(忠)’과상호성을말하는‘서(恕)’가공자의가르침전부라는증자의말을떠올린다.스스로에게충실하고서로에게의지함으로써자본주의에매몰되는대신새로운길을낼수있지않았을까반성하기도하고,취약한우리는남에게의존할수있어야만함께살아갈수있다는그가르침을간염과수영에서혼쭐이나며몸에각인하기도한다.


리추얼라이프대신의례가있는삶:고립된우리를연결하기

공부가자신을관통하며나의삶,나와긴밀하게엮인이들과의관계위에서어떻게드러났는지,그리고어떤변화를가져올수있었는지를기술하는데서나아가배운것을좀더넓은현장에서써먹으려고한다.‘의례’라는키워드를가지고.
가까웠던지인이스스로목숨을끊었다.친구들은하나둘오랜우울증,공황,자살충동,섭식장애를이야기한다.너무많은사람이이세계와분리되고고립되고있다는것,자신역시인문학공동체안에서공부를해왔음에도불구하고바로그친구들과같은시대를거치며친구들과같은자리에서생존을위해분투하며고립되어왔음을깨닫는다.그러고는이시대를건너가기위해유교걸답게,유교스타일로질문을뽑아낸다.‘어떻게하면함께살아갈수있을까?’일상에서구체적방법을찾아가고,사회와의연결을고민한다는점에서이는너무나유교적인질문이다.저자는세상과연결되어살아가는방법을고민했던철학자이자,자신의현장에서구체적인방법을제시했던활동가이기도한공자가사회와관계에대해말하기위해들고나왔던‘예(禮)’라는개념을떠올린다.어쩌면이고립된시대를건너는데,예(禮),그러니까의례가하나의길잡이가될수있을지도모른다며.의식(儀式)이라는측면에서보자면요즘유행하는리추얼라이프를떠올릴수도있겠다.하지만그리추얼은자기자신을향하고,유교의예,의례는사회와관계를향한다.
유교의예나의례라고하면‘제사’라는형식을떠올리며즉각적으로사라져야할적폐를연상할수있겠으나,저자가연결에서분리된지금여기에가져오고자하는의례의본질은상호간에행하며서로연결되어있음을느끼는행위다.마치콘서트장에서‘떼창’을부를때,흩어졌던시위무리가다시한곳에모여들어서로의존재를확인할때,퀴어문화축제에서전복적문구를들고멋진복장을차려입은누군가를곁에서확인할때,그러니까무언가를함께하며느꼈던강한연대감의순간을떠올려보라.의례는없애야할쓸모없는것이아니다.오히려우리를연결하고,또어떻게연결되어야할것인지구체적인논의의물꼬를트는계기가될수있을것이다.
저자가말하는‘비건의례’를한번보자.저자는‘새벽이생추어리’에서살고있는돼지새벽이와잔디를돌보며자연스럽게비건을지향하게되는데,먹는것을완전히비건식으로바꾸는데는큰어려움을겪지않았다.그런데문제는다른이들과의관계였다.함께먹을음식이제한적이니친구들과만날때미안함이생기고,비건을지향하는자신의삶이소목장을하는친척어른의삶을부정하는것이될까두려워그분과의자리를피한다.이런일이반복되며비인간동물들과연결되고자하는인간이정작인간세계에서는단절되는아이러니가발생한다.서로가너무조심스러운나머지만나는자리를피하는건서로에게침투할수있는가능성을제거하는의례의실패다.그래서저자는이럴때우리에게필요한건’눈치의례‘가아닐까하며이름을붙여본다.너무대놓고의사를표현하기어려운상황이지만,상대를의식하며은근하게서로에게개입하고섞여드는것말이다(상대방이비건인지아닌지모르는상황에서고기고명과육수를쓰지않는국수를시키며,국수에올라가는계란을빼달라고주문하는것도조심스러운눈치의례가아닐까).

대략,여기까지다.20대의10여년을동양고전과유교를공부하며삶과관계와세상과부딪히며관통해온한덕후의시간과사연은.이는다른말로하자면곧혼자서만할수있는일은없고,뭇존재들과함께살수밖에없다는동양옛사람들의글과사상을이시대를함께건너고있는이들과나누고싶은마음이다.다른존재,세계와분리된채살아가는시대적병증을돌파하는데필요한인문학적상상력이이안에도있다는걸알게되었으니까.그래서저자는오늘도덕질을멈추지않는다.“공자왈,맹자왈하는그런걸”공부하며넌지시우리에게영업한다.같이한번이공부를해보지않겠느냐고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