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 : 서로를 돌보며 존엄한 삶을 가꾸다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 : 서로를 돌보며 존엄한 삶을 가꾸다

$16.80
저자

최정은

대학에서공예를전공했지만전공을살리지는못했다.할머니가시작한복지사업을아버지와함께이어가기위해준비도없이현장에뛰어들었다.이후사회복지석사과정을마치고사회복지사1급자격증을취득했지만,현장에서사람들과부대끼며이론이가르쳐주지않는더욱소중한것들을배웠다.경비원으로시작해총무,국장,원장을거쳐사회복지법인윙의대표가되었지만사람들은여전히나를‘비덕’(비빌언덕)이라고부른다.지금은비덕살롱에서음식을만들고사람들을만나면서윙의향후비전을모색하고있다.

목차

들어가며|윙Wing,나를있게한우리의기록5

1.여성과집
쉼터는집이될수있을까?17
할머니와아버지24
윙어때요?29
가족이라는굴레39
다양한주거권의실험45
따로,또같이살아가는집50
맨얼굴로만난복지58
쉼터를떠나며66

2.여성과공부
한계없는배움을꿈꾸며73
내인생의작은수첩81
우리에게필요한것은빵보다장미이다90
현장과인문학의낯선만남96
몸과만나는시간103
나를위한밥상108
일상보다위대한혁명은없다115

3.여성과일
사장님이되었어요123
우리도카페하자!130
정직한손작업140
카메라를타고날자149
10대들과함께일하기158
일은삶의척추다166
우리는계속꿈꾸고춤출거예요!174

4.여성과우정
그리운나의언니들에게185
함께걷는길191
우리는언제나네곁에있어198
제이름을찾았어요202
엄마의편지206
혼잣말로전하는안부인사212
서로의비빌언덕217

나가며|함께한이들,함께한시간224

출판사 서평

우리는쉼터를떠났다:시설너머의삶을꿈꾸며

“겨우생존을유지하는삶이아닌다른가능성으로꿈틀대는삶을살아보자고.그렇게우리는쉼터를떠났다.”

윙은1953년설립된데레사원에뿌리를두고있는여성사회복지단체다.자녀셋을홀로키우던싱글맘이었던백수남할머니는한국전쟁직후홀로된어머니들을지원하기위해사재를털어데레사원을설립했다.전쟁의상흔이걷히며산업화시대에접어든1960년대무렵부터는일을찾아상경한나이어린여성들에게안전한주거와직업훈련의기회를제공하는복지사업에집중했다.이런직업보도사업을기반으로1976년사회복지법인은성원으로체제를개편했다.
1990년대까지만해도윙은가난하고소외된이들을위한복지사업에주력하는여느복지단체들과다르지않았다.그러던윙이독특한실험에뛰어든것은2000년대에들어반성매매운동을시작하면서였다.윙의70년여정을기록하기위해펜을든최정은윙대표는자신의할머니였던백수남은성원장의가업을이어받으면서도복지단체와거기머무는여성들에대한편견을깨는것이자신의숙제였다고털어놓는다.“나는윙이가족이운영하는복지법인에대한선입견과성매매여성에대한세상의편견모두에당당히맞서고끝내그것들을깨부수길바랐다.”
세간의편견에맞서는일은곧전형적이고관습적인‘복지의프레임’을벗어던지는과정이기도했다.은성원의실무자로일을시작한최정은대표의가장큰고민거리는은성원이주력해온쉼터였다.그는탈성매매여성들에게궁극적으로필요한거주공간이쉼터라는‘시설’이아닌자신만의아늑한‘집’임을절감했다.쉼터는긴급한주거지원과쉼,회복을제공하며위기상황에처한피해여성들을보호해주었지만,그들에게살아가는방법까지알려주진못했다.타인의삶이양해없이수시로공유되고,혼자만의공간도허락되지않는한계도있었다.
무엇보다당시윙의쉼터는‘가족적돌봄’의구조를재생산하는방식에기대고있었다.쉼터에머무는여성들은손상된가정에서충분한사랑과돌봄을받지못했다는결핍감에사로잡히기일쑤였고,활동가들은그들에게넘치는관심과사랑을주기위해부모역할을자임했다.연민과동정이라는마취제속에서쉼터는너무도쉽게가족적배치로고정되곤했다.윙은이런관성과습속을깨기위해새로운공간에서새로운관계를모색하는여정을시작한다.가족의결핍을쉼터에서의유사가족으로대체하는것이아니라,가족을넘어선새로운관계를만들어내는것,그것이윙이직면한윙이직면한도전이었다.

주도적인여성으로살아간다는것:‘윙의언어’와‘윙다운’방식으로

“우리는누구인가?활동가는무엇을하기위해이자리에있는가?친구들은어떻게살기위해이곳에왔는가?우리는‘복지서비스’라는기능에매몰되지않고자했고,주도적인여성으로살아간다는것의의미를잊지않으려애썼다.”

윙은무조건적인사랑과사명감을전제로하는복지현장을떠나자립과상호돌봄의공간을꾸려나가기시작했다.쉼터를접고여성의주도적인삶과일상을지원하는자활지원센터에집중하기로한결정(2011년8월)은윙의오랜역사를새로쓰는첫번째분기점이되었다.
‘피해자’‘피해여성’이라는정체성에초점을두는쉼터가그자체로일종의보호시스템으로작동하는곳이었던데반해,자활지원센터는개개인이자신의일을찾아주체적으로살아가는법을배울수있도록돕고자했다.윙은폭력을당했던고통스럽고아픈과거가자기정체성의큰부분을차지하는것이존엄성의측면에서결코바람직하지않다고보았다.피해여성들을무기력하고우울하게만든배후의폭력에대해면밀히듣고함께고민하되,그들이스스로의삶을일으켜세워사회적연대와관계망을확장할수있어야한다고판단한것이다.
윙은피해여성들에게변화를강요하는대신,활동가들이직접나서변화의물결을주도하는방식을제안했다.또한시작부터거대한변화를꿈꾸는대신일상의작은부분들을세심히되돌아보고점검하는데시간을할애했다.이를테면언어적실천같은것들이그랬는데,이는윙이라는조직자체를내부적으로성찰하는계기가되기도했다.윙은윙에머무는여성들개개인을문제화하기보다그들에대한윙스스로의인식과태도를찬찬히되돌아보았다.
실제로피해여성들은자신을대상화하는사회복지용어들에불편감을드러냈다.윙이자신들을인격적인존재가아닌상담원이관리해야할하나의‘사례’로취급하고있다는느낌을받는다고도이야기했다.“우리가왜‘사례’예요?우리가물건이에요?”“우리는왜‘관리’받아야하나요?”이런피드백을통해사회복지용어들의폭력성을깨달은활동가들은윙만의새로운언어들을고민하고벼려냈다.윙에서생활하는여성들은그렇게윙의‘친구들’이되었고,윙역시은성원이라는온정적이고시혜적인느낌의명칭을뒤로하고‘윙’이라는새로운이름을발명했다.여성들의주도성initiative을강조하는‘WomenInitiativeNetworkingGrowing’의뜻을심은윙과친구들은변화의날개를펼쳤다.

우리에게필요한건빵보다장미이다:삶을통한,삶을향한공부

“지금당장의끼니를해결하는것도중요하지만,자신과세상을돌아보며인생의파도를용감하게즐기는내면의힘을기르는것,그러니까가슴속에한송이의장미를심는것도그에못지않게절실한일이아닐까.”

쉼터를중심으로이뤄지는복지사업에서탈피한윙은독립형그룹홈더블유W,셰어하우스‘상도동우리집’등다양한주거실험에돌입했다.안전하고쾌적한주거공간은친구들에게큰도움이되었지만,물리적인환경의변화가모든것을해결해주진못했다.두려움없이자기자신과마주하기위해서는내면의힘을길러야했다.쉼터체제안에서이뤄지던직업교육의형태나미술치료,상담치료등사회복지프로그램이전제하는‘치료의문법’을넘어선배움이필요한시점이었다.
윙은친구들이자신과타인그리고세상을바라보는새로운관점을얻을수있도록분야와방식을막론하고다채로운배움을기획했다.대학생들과협업해친구들의검정고시준비를돕고,윙만의커리시스템을만들어인문학,창업,각종특강등을들을수있도록하고,윙만의도서관을만들고,각종글쓰기및여성주의프로그램도마련했다.2009년무렵에는연구공동체수유너머와현장인문학을진행한뒤일부연구자들과손을잡고‘수유너머길’을만들어본격적인인문학프로그램을설계하기도했다.연극무대를꾸미고,여행을떠나고,조각과사진을배우는등문화예술활동의기회를만드는데도정성을기울였다.
공부를향한윙의집념과의지는내면의힘이라는화두를오랫동안고민해온최정은대표로부터비롯된것이다.그는가난하고상처받고소외된사람들에게진정필요한것은‘빵’(하루하루의생계)보다‘장미’(내면의힘)임을한결같이강조해왔다.직업훈련을가난에서탈출하는유일한수단으로간주하는세상이지만,정작중요한것은그런식의훈련이아닌삶을향한철학적사유임을깨달았다고.그가말하듯,그것은“가슴속에한송이의장미를심는”일이다.

일은삶의척추다:문턱없는노동

“쉼과치유가마냥쉬는것만을의미하는것은아니다.우리는어떻게든자활의판을키우고싶었다.”

윙이생각하는공부란계몽이아닌공통의리듬같은것이었다.일상과동떨어지지않은꾸준한리듬.친구들은인문학을공부하며서로교감하기시작했고,공부를반복되는일상으로만듦으로써윙이라는공동체의문화를형성해나갔다.활동가들역시사회복지사의권위를벗어던지고각자의자리에서배움을함께했다.모든프로그램에대표를비롯한활동가들이빠짐없이참여하는윙만의방식이만들어진건그때부터였다.
같은맥락에서일에대한감각을익히는것도소홀히하지않았다.윙은노동해서번돈으로자신의생계를꾸리는것을한명의주도적인여성으로살아가기위한필수요건으로보았다.그래서친구들이탈성매매여성이라는사회적낙인에좌절하지않고자신의적성에맞는일을찾을수있도록모든인력과자원을기울였다.여성부및사회연대은행과의삼자계약으로시작한최초의창업(피부관리숍)부터카페겸대안문화공간‘신길동그가게’를통한일자리창출,덮밥브랜드‘오덮밥’및핸드메이드제품(천연염색)브랜드‘인디고핸즈’개발,‘여성인권수세미’납품,영상업체‘여성영상미디어센타’설립,10대위기청소년들과협업한‘조잘조잘분식점’등등...친구들의자활을지원하기위해윙은도전과실험을멈추지않았다.
사회에서열외된여성들이할수있는사실상그리많지않다.그러나능력주의를걷어내고삶의태도에초점을맞춘다면어떻게될까.아주작은일이라도성실하게맡아할수있는삶의태도만있다면충분히잘살아갈수있는세상을꿈꿀순없을까.윙은이런비전을주저없이실현하고자했고,그래서윙의친구들이어떤상황과조건에놓여있든무조건함께일했다.사회에서만들어놓은제한과문턱을이미무수히경험했던친구들인만큼윙에서는별다른규정을두지않기로한것이다.
쉼과치유그리고자활은서로맞물려있다.쉼과치유가일과는동떨어져있다는생각이야말로편협한복지의프레임일수있다는것,윙은이진실을일찌감치깨달았다.친구들과제품브랜드를개발하고,창업하고,매장에서치열하게일했던순간들을회고한최정은대표는생계비를직접벌수있는경제적능력을키운다는것이결코작은성취가아니라고강조한다.
노동이한존재의잠재적능력을확인할수있는활동이며,일상을돌보고지켜내는한가지방편이되기도한다는믿음은윙이라는단체를여타의사회복지단체들과전혀다른곳으로만들어주었다.노동에대한이런관점은윙이친구들을바라보는방식이기도했다.윙은자활지원센터를잠시거쳐가는일종의‘인큐베이터’로설정하고친구들을그인큐베이터에들어가야하는‘미숙아’의상태로보는것을거부했다.

우리에게는더많은비빌언덕이필요하니까:밥상의진정한의미

올해(2023년)10월70주년을맞는윙은현재최정은대표가운영하는소셜다이닝‘비덕살롱’의모습으로윙의오랜터전인신길동주택가에여전히자리하고있다.코로나19의여파로더이상공유공간을운영하기어려워진것이컸다.2021년9월까지운영된복합문화공간‘곁애’를끝으로지금은따뜻한밥상을지어사람들을초대하는소셜다이닝활동에주력하고있고,향후비전을모색중이다.
최정은대표가비덕살롱을열게된이유는단순하다.오랫동안그래왔듯,앞으로도윙이계속여성들의비빌언덕이되었으면해서다.매장운영,공부,등산,여행,목공,염색등수많은일들을했지만,그어떤작업보다소중한건‘밥을짓는일’이라고.“윙에서보낸지난세월은무엇보다밥이주는위로와의미를체화해일상을단단하게가꿔나간시간이었기에,그어떤손작업보다밥을하고있는모습이제격일수있겠다고생각했다.”
그에게밥을짓고먹는일은자기자신과일상을돌보는일이자그자기돌봄을통해타인을돌보는일이며,다양한사람들과건강한관계를지속해나가는데기본이되는활동이다.반면밥을‘가족로망스’안에가두는일(‘엄마표밥상’)은그가가장경계하는것중하나다.그는윙에서무수한밥상차림의경험을거치며중요한것을깨달았다.밥상을준비한다는것이모두를위한것인동시에결국나를위한것이라는진실말이다.“누군가를위해밥상을차린다는것은자신을위해수도없이밥상을차릴수있어야만가능한일이다.나자신을사랑해야누군가를도울수있듯,혼자잘살수있을때여럿이서도잘살수있다는그평범한진리를우리는밥을통해알게되었다.”
이제는윙을떠난윙의친구들이그어딘가에서자신을위해,또누군가를위해정성스런밥상을준비하며살아가면좋겠다는것,그렇게윙의밥상이순환되고누구나다른사람에게‘비빌언덕’이될수있으면좋겠다는것이윙과최정은대표의간절한바람이다.바로이것이‘복지’를벗어던진독특한복지단체윙의철학이니까.
“도움을주는사람과도움을받는사람이구분되지않는공간에서서로관심과도움을주고받는것이자연스러운일상이되면좋겠다.그렇게윙이라는비빌언덕에서누구나비덕이될수있으면좋겠다.우리에게는더많은비빌언덕이필요하니까.”

함께한이들,함께한시간:윙을거쳐간이들의메시지

“제삶은윙을만나기전과후로나뉘어요.윙을만나기전,저에겐꿈도미래도없었죠.윙을만난이후부터는일하는것도즐겁고사는것도즐겁고삶의만족도가굉장히높아졌어요.”
―이지혜(가명),윙의친구들

“자구책을마련하기위해거침없는도전을해온것이윙의정체성을좀더확고하게만들어주지않았나생각합니다.”
―정유희,《페이퍼》편집장

“윙에서제이름을되찾았던게기억에남아요.언제나‘누구엄마’로살았는데제가제이름으로불리는게참행복했습니다.”
―조미희,윙전취사원

“윙하면가장먼저떠오르는이미지가시대를앞서변화를만들어왔다는것,어떤도전이든서슴지않으며앞서가는결정을했다는거예요.”
―박신연숙,풀뿌리여성네트워크바람대표

“윙에는문턱이없어요.자기자신을숨김없이드러내면서현재와미래를공유하는경험,밑바닥에서부터일상을함께차곡차곡쌓아올라가는경험을하게되죠.그런활동과관계성을만들어내는곳이윙이에요.”―권용선,서울과학기술대학교강사

“그사람이지닌고유한능력을믿고,스스로걸어갈수있도록힘을북돋아주는기관을처음만났어요.정말이지제가윙하고같이인생을살았네요.”
―이숙경,서울국제여성영화제집행위원장

“일주일을일주일로살지말고하루씩살라고했던최정은대표님의말씀이기억에남아요.윙70주년이의미하는것도비슷한것같아요.하루하루가쌓여70년이되었다는이야기죠.그70년중단하루도허투루보낸날이없었다는거고요.70년이라는시간이위대한건그래서입니다.”
―고병권,노들장애학궁리소연구원

“저는윙을통해한명의여성으로서제삶을주도적으로사는방법을배웠어요.또윙은저에게금기를깨는법을가르쳐주었죠.”
―박지영,윙전사무국장

“윙은관성을깨는것을두려워하지않았고새로운것을시도하는데주저하지않았어요.어떤길이든일단들어서보고아니면다시되돌아가새로운길을가는그런용기를보여줬죠.실험적이면서도꾸준한윙의그태도가여성운동의지평을크게넓혔다고생각해요.”
―윤정숙,녹색연합공동대표·60+기후행동전공동대표

대부분의시스템은한번만들어지면잘변화하지않는데윙은그렇지않았어요.다른사회복지시설과달리언제나역동적이고창조적이었어요.
―조진경,십대여성인권센터대표

한국사회에서사회복지법인이갖는고정적인기능과역할이있는데윙은그상을뛰어넘어확장된세계관을구축했다고생각해요.배가지나가면뱃길이생기듯,윙의도전과실험도하나의궤적을남겼죠.27년간여성정책연구자로살고있는저에게가장큰자극과영감을준곳이죠.저의성장기를윙과함께보냈다는것자체가저에게는큰기쁨입니다.
―황정임,한국여성정책연구원선임연구위원